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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tablackroses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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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미학의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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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lab · 4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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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으로서 대중적인 것
Soziale Systeme 10 (2004), Heft 2, S. 292-324 © Lucius & Lucius, Stuttgart
Torsten Hahn, Niels Werber
번역 – 조은하, 박상우
요약: 이 글은 “팝”이 독립적인 기능적 시스템이 아니라 예술 시스템의 구성 부분이라는 것임을 주장한다. Fuchs/Heidingsfelder가 주장한 것처럼, 예술 시스템으로부터 대중적인, 순수하게 유흥의 커뮤니케이션 형식을 제외하는 것은 Luhmann의 감정가를 위한 높은 등급의 예술과 매스 미디어의 부분인 사소한 것 사이의 구별을 반영한다. 그와 대비해, 예술을 “팝”과 팝 뮤직을 포괄하는 흥미롭거나 혹은 지루한 유흥인 어떤 커뮤니케이션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나아가 저자들이 (커뮤니케이션 측면, 도발, 커뮤니케이션의 체화 등등에 대해 강조하면서) “팝”을 하나의 사회 시스템으로 끌어 올리는 것을 옹호하도록 하는 많은 기능들이 예술 시스템의 조작과 함께 한다. 우리의 제안은 “팝”을 총체적 포섭을 획득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 즉 “총체적” 포섭이 가능하기 위해 다양한 기능적 시스템이 활용하는 하나의 시맨틱 혹은 형식으로 인식하자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차트, 랭킹, 리스트의 진입과 이탈 같은 대중적인 것의 특정한 형식들은 매스 미디어 혹은 예술에서 같이 마찬가지로 경제적 시스템, 과학적 시스템 등등에서 활용된다.
가장 대표적인 이론가들의 죽음 이후에도, 시스템 사회학은 대단히 생산적임을 입증하였다. Niklas Luhmann이 사회의 기능적 시스템에 대한 엄청난 작업들을 통해 주제들을 소진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속은 것이다. 시스템 이론은 여전히 혁신적이고, 무엇보다 다양한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의료 시스템(Gunnar Stollberg), “의상 커뮤니케이션”의 시스템(Cornelia Bohn)에 대해 논의되고 있다. 성과 가족은 기능적으로 차이화 된 사회 시스템으로 고려되고(Peter Fuchs, Sven Lewandowski, Rodrigo Jokisch), 이는 스포츠 시스템(Karl-Heinrich Bette)이나 친밀 커뮤니케이션의 시스템(Peter Fuchs)도 마찬가지다. 군사 시스템도 계획 단계에 있다. Luhmann 메일링 리스트(listserv.dfn.de/archives/luhmann.html)는 현재 이 시스템의 이항 코드화에 대한 논의로 집중되고 있다. 승리/패배, 전쟁/평화, 명령을 내리는 것/명령을 수행하는 것, 살해/생존 같은 개념들이 고려되고 있다. 이런 코드화의 문제가 “기능적 결정”을 위한 제안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이항적 코드화의 개념은 여기만이 아니라 이 모든 주장들 안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기능적 시스템의 형성에 대한” 지표로 고려된다. 커뮤니케이션이 “입을 만한 것/입을 수 없는 것”으로 의복을 고려하거나, 스포츠 이벤트를 “승리와 패배”로 논의될 때 혹은 성적 쾌락의 개념에서 “욕망”이 만족”에서 구별될 때, 혹은 “우리 둘”을 “세상 나머지”로부터 구별될 때, 그러면 우리는 기능적 시스템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Lewandowski는 한가지 예를 들며 “기능적 시스템의 차이화”에서 “어떤 기능의 언급”을 “이차적”이라고 생각한다. 결정적인 것은 섹슈얼리티 시스템의 “이항적 코드의 조작 양식”이다. (Lewandowski 2004,178, 237) 이와 함께, Luhmann의 결정적 특징(그리고 또한 Talcott Parsons의 구조 기능주의에 맞선 성과 있는 논의들)은 파기된다. 가령 기능적 시스템은 사회의 “특별한 문제들”을 동시에 해결하고 반복한다는 것. 희소재화의 분배로부터 집합적으로 묶인 결정으로. (Luhmann, 1987, 163ff.) 시스템 이론에서 기능의 개념은 단지 다른 이항 코드 (와 미디어) 를 통해서 하나의 사회 시스템이 다른 것과 다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다양한 기능들이 사회의 특정한 문제를 둘러싸고 압축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법, 정치, 과학과 같은 시스템의 문제 언급은 명백한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자신의 확신에 반하는 다른 이들의 더 강력한 수용 결정에 맞서거나 혹은 반 직관적 사건들을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기능적 시스템은 그런 가능하지 않음을 가능함으로 전환한다. 누군가 하나의 기능적 시스템을 가정할 수 있는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하나의 “테스트”로서, Luhmann은 자주, 하나의 언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무엇이 일어날 지에 대해 상상해 볼 것을 제안했다. 현대 사회는 다르게 되었을 것이다. [1] 그렇지만 이것이 의상 커뮤니케이션의 “시스템” 혹은 “스포츠 시스템”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 사회로부터 마오 자켓을 입은 중국(홍위병)을 배제하기를 원하지 않는 이상, 입을 수 있는 옷과 입을 수 없는 옷은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운동 장비를 활용한 개인 훈련이나 산악 등반은 승리 혹은 패배와 관계되지 않기 때문에 스포츠로 고려될 수 없을 것이다. 취향이 옷 입기에서 문제가 되고, 그리고 많은 것이 축구에서 승리 혹은 패배 문제에 달려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코드 하나가, 어떤 기능과 문제 사이의 상호적인 관계 없이, 시스템의 조작적 정체성을 성립한다고 가정되기 때문에, 의상이나 혹은 스포츠 시스템의 포섭 범위는 대단히 불확정적으로 남아 있다. 누군가는 마실 만한 것/마시지 못할 것 사이의 차이에 기반한 다듬어진 시맨틱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와인 시스템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동 수단으로서 빠른 것/느린 것을 구별하는 이동 시스템은 왜 안 되겠나? 그 또한 강력한 진화적 이유를 가진 기능적 언급에 대한 주장이 없다면, 양 측 형식은 거의 자의적으로 사회적 시스템으로 선언될 수 있다.
Peter Fuchs와 Markus Heidingsfelder가 “팝”을 하나의 사회 시스템으로 옹호한다면, 그들은 왜 하나의 형식 혹은 시맨틱으로 대중적인 것에 대해 말하기에 충분하지 않은지에 대해 답해야만 한다. Luhmann은 사람, 개인성, 신뢰 혹은 도덕과 같은 높은 수준의 현상을 다룰 때, 이항적으로 구조화된 커뮤니케이션에서 바로 기능적 시스템 형성을 추론하지 않았다. Fuchs와 Heidingsfelder는 왜 “하나의 시스템이 팝을 통해 차이화한다”고 가정했을까? 아마도 “미디어”(노래)와 코드(히트/실패)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팝의 시스템 커뮤니케이션의 특정성은 지각의 커뮤니케이션할 수 없는 것과 지각과 커뮤니케이션의 차이를 커뮤니케이션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 (296) 정확하게 그것을 위한 시스템이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예술. 기능적으로 차이화 된 사회는 용장성을 견디지 않는다. 그러나 Fuchs와 Heidingsfelder는 인용에서 지시한 것처럼, 이를 인식하고 있다. [2] 그래서 당장 Occam의 면도날에 도달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것이다. “팝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 Luhmann의 예술 시스템 개념에 중요한 추가임을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예술 시스템에서 대중적인 혹은 단순히 유흥거리의 모든 것이 배제된다. 만일 흥분 상태가 팝에서 전형적이라면, 그러면 그 상태는 확실히 예술 시스템에서는 있을 장소가 없다. 그런 종류의 예술 작품에 대한 신경증적 반응은, Kant가 현대 미학의 출발점에 위치했던 몸동작을 반복하면서, 예술 커뮤니케이션에서 배제된다. (Luhmann, 1995, 16ff.) “자극과 쾌락”에 따라 “단순히 좋아한다”는 것은 “아름답다”고 불려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런 순수하게 사적인 경험은 “모든 사람의 인정을 요구할 수 있는 미학적 판단”의 일반화 가능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Kant, 1974, 126) 모든 자극으로부터 예술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Kant의 조작적 경계 설정은 그것의 자율성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또한 중요한 제한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어떤 다른 이해가 뒤섞이지 않은, 아름다운 것에 대한 승인된 판단” 안에는, 모든 “물질적” 목적, 모든 감각적 자극, 그리고 모든 쾌락이 배제되기 때문이다. 탈 이해성의 도움으로, 모든 가능한 자극은 자율적인 예술의 작품에서 지워져야만 한다. (Hecken, 1995,146f.) Kant에게 BPM은 정보적일 수 없다. 탈 이해 속의 쾌락 혹은 사회의 예술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에서는, Fuchs와 Heidingsfelder가 말하는 “매 순간의 자기 만족”(314)을 위한 자리가 없다. 높은 등급의 예술(“충분한 애매함”, “다양한 수용”, “구별되는 구별”…)을 향한 Luhmann의 예술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질적 요구는 대중적 “흥분”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것은 새로움 혹은 용장성 완화에 대한 매스 미디어의 소비를 흉내 낸다. 예술과 팝의 구별은 그래서 Luhmann에게서 이미 악성의 차이화를 반복한다. 이런 의미에서 팝은 하나의 “기생적 시스템”이다. (Fuchs/Heidingsfelder)
Luhmann은 Die Realität der Massenmedien에서, 구별적 특징들로 애매함이나 다양한 독해를 언급하면서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 예술을 구별한다. “예술 형식”인 작품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의 경우로부터 차이화 된다. 예술과 대비해서, 엔터테인먼트는 사소한 것으로 고려된다. “정보의 자기-언급이 관찰”되고 “예술 작품의 형식적 놀이”에 관계될 때 사소하지 않다. 예술은 이런 관점에서 “관찰자에 대한 극단적 요구”를 제기한다. (Luhmann, 1996, 53, 41, 123) “정보가 여전히 개방된 결정성 속에서 단지 하나의 놀라움, 하나의 즐거운 해소로 경험될 때”(123) 그것은 사소하다. 그렇지만 Fuchs와 Heidingsfelder는, Luhmann의 견해에서 특정한 의미 매개화 없이 “경험”의 지향과 유사하게, “특정한 의미를 매개화”하는 요청 없이 정확하게 “경험”을 통해 팝을 개념화 한다. Luhmann에 따르면 예술은 엔터테인먼트와 단일 밀도의 경험 등을 배제함으로써 매스 미디어에서 스스로를 구별한다. 공통적 미학 프로그램에 따라, Luhmann은 “예술과 키치” 혹은 “저속한(vulgäre) 사람들을 위한 예술…과 애호가를 위한 예술”을 구별한다. (Luhmann, 1995, 300, 419) Fuchs와 Heidingsfelder는 예술과 팝을 차이화 했다. 그래서 두 부문 사이의 차이를 유지했다. 그렇지만 Luhmann의 가치 평가에서 명백한 위계를 제거한다. 우리는 이 접근에 대해 우호적이지만, 여전히 예술과 팝 사이의 구별이 잘 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대중적 예술을 포함하는 예술 시스템을 선호하고, 다음으로는 팝 뮤직에만 배타적으로 제한되어 사용되는 것이 아닌 하나의 형식으로 대중적인 것을 개념화 하고자 한다.
팝을 하나의 사회 시스템을 지시하고자 하는 제안은 반드시 예술 시스템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중심적 문제 중 하나는 아방가르드 예술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즉 팝 시스템과 놀라운 유사성을 보이는 그 전략이 무엇인지를 고려할 때 생겨난다. 특히 아방가르드 예술은 극단적인 정보의 희소성을 담고 있다. 그것은 Schwitters가 Ursonate에서 했던 것처럼, "bö"를 적대적으로 천천히 "böwöröböpö"로 바꾸는 합창 소리와 같은 시적 형태 속에 몰입할 수 있다. 또한 Ernst Jandl이 "Ottos Mops"에서 했던 것처럼, 요소 "o"를 찬미할 수도 있다. 거기서는 때에 따라 “구토”가 발생한다. 여기서 도발의 영향력 만큼이나 커뮤니케이션 측면이 무대 중심에 오른다. 아방가르드 예술이 예술 시스템에서 “위태로운 위치”를 가진다고 논문 말미에 이야기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저자들이 이를 인식하고 있다. 이것이 확실히 일관된다면, 여전히 예술 시스템의 그런 부분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 문제가 남아 있다. 아방가르드 예술의 문제는, “팝”이라 불리는 현상이 예술 시스템의 부분이라는 증거로 보일 수 있는 데서 중심적이라 보인다. 커뮤니케이션의 이런 형식은 종종 “팝에 가까울 수” (Fuchs/Heidingsfelder, 321) 있다는 사실이, 여기서 다른 독립적 시스템이 관찰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에 팝 뮤직은 예술 시스템으로 (재) 통합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아방가르드 시스템의 가능한 도입을 제안해서, 사회 시스템의 팽창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제안은 또한 의도된 커뮤니케이션의 특정성에 대한 관찰을 제안한다. 그것은 추상적 주장으로 남아 있지는 않는다. 여기서 중심적인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구체화(Verkörperung)” 즉 “체화(Embodiment)”다. 그러나 우리 견해에서 이는 팝 시스템의 특정한 특성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보다는 예술 시스템의 근본적 구성 부분으로 보인다. 사회 시스템에 투입되는 차이화를 통해서, 예술은 커뮤니케이션의 시스템 경계를 더욱 많이 다루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커뮤니케이션, 지각, 육체 등등의 환경은 문자적 커뮤니케이션의 특정한 유형 속에 통합될 수 있는 것으로 결정된다. 거기서 육체적 흐름과 문자적 대응은 잠재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 편으로는 감각적 문학은 “육체의 부정” (Koschorke, 2003, 214)을 선전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그것은 문자 속에서 울 수 있는 가능성을 개방한다. 단지 촉촉하고 흐르는 문학만이 진정성 있는 것일 수 있다. (217) 예를 들어 Goethe의 Werther에서, 7월 29일 편지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결론을 낸다. “Ein unerträglicher Mensch hat mich unterbrochen. Meine Thränen sind getroknet. Ich bin zerstreut. Adieu Lieber.” (견딜 수 없는 한 사람이 나에게 들어왔습니다. 내 눈물은 말라버렸습니다. 나는 부서졌어요. 안녕, 내 사랑)(160) 여기서 커뮤니케이션은 다른 어디에서 보다 문자로 체화 되었다. 눈물 없이 중단된다. 행동에 대한 경계는 식별 가능하지 않다. 요구는 엄격한 불분명함이다. 이런 강조와 함께 문자 커뮤니케이션과 거리를 둔 커뮤니케이션의 하나로 사회를 옮겨가기 위한 추적 비용이나 요구 사항 등이 완충 된다. 1800년경부터 가능성으로 관찰된 어떤 것. 감각적 문학은 그런 차이의 붕괴가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장소에서만 요청된다. 정확하게 미디어의 변화가 그런 가능성의 항상성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예술 그리고 예술과 같은 커뮤니케이션의 진화의 한 부분으로서이다. 1950년경 새로운 사회 시스템의 등장에 대한 결론은 도출될 수 없다.
“팝”을 기술하기 위한 구별 코드에 대한 필요 역시 없다. 본질적으로 팝은 흥미롭거나 지루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예술 시스템의 핵심 구별과 나란히 있다. 적어도 우리가 단순히 높은 지점 이상을 관찰하고자 할 때. 이 코드로부터 묘사는, 특히 인용이 이런 구별을 강조하는 텍스트를 강조할 때 도전적이 된다. “문제가 되는 모든 것은 그것이 만드는 소음, 그것의 충동, 그것의 공격성, 그것의 새로움이다. 금기시되는 모든 것은 지루하다.” 여기서 코드의 선호 값은 또한 지루함을 피하는 것이며, 일차적으로 흥미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팝은 엔터테인먼트다. 그 수용은 예술이 가능한 시간에서 발생한다. 즉 여유 시간. 사회의 자유 시간 속에서, 이 기능적 시스템은 그것의 언급 문제를 발견한다. 이는 어떻게 하든 해결되는 것이다. [3]
차트를 통한 관찰은 그 문제의 더 적합한 정식화로 보이는 대중적인 것의 형식으로 이끈다. 따라서 “팝”은 하나의 분리된 사회 시스템이 아니다. 그보다는 Urs Stäheli의 주장을 따라, 사회 시스템 안에서 포섭의 문제와 관련된 시맨틱이다. (Stäheli, 2002) 포섭을 치명적 매력으로 전환하는 기능은 음악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능적 시스템 안에서 차트 혹은 탑 텐 리스트를 통해서 수행된다. 차트는 구매 결정, 투자, 선호하는 정치인, 체위, 혹은 대학 랭킹의 가치 평가 등을 반영한다. 차트에 드느냐 아니냐는 모든 기능 특화된 커뮤니케이션에서 발견된다. 그 때는 언재 건 포섭에 대해 강조되고 혹은 Greiling이 1805년에 쓴 것처럼, 그 때 전문가는 무언가를 “대중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일반인에게 “양보”한다. 대중적인 것은 다수로부터 관심을 받는 것이다. (Hecken, 2003, 41) 차트, 랭킹, 리스트는 이를 한 눈에 전달하고, 동시에 “유혹과 과도한 과잉보편화”를 보장한다. (Stäheli, 2002, 115)
누구도 기능적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혹은 기능적 시스템의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할 수 “있어야만” 한다. (Luhmann, 1997, 625) “포섭의 조절”은 “하위 시스템”에 남겨진다. (624) 그리고 이는 “개인들”에게 구조적 “커플링”에 대한 기회를 제공한다. (625) 이런 커플링의 한 형식이 대중적인 것이다. 이미 Greiling에서 인기는 기능적 차이화의 문제에 대한 해법이었다. 가는 현대적 공연과 관객의 역할의 비대칭성으로부터 발생하는 매개 문제를 반성한다. 모든 사람은 “모든 기능적 시스템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발전된 “대단히 차이화 된 커뮤니케이션 기회”는 이 과정에서 장애물로 보이기 때문에(625), 그들은 반드시 “대중적”이 돼야만 한다. (Greiling, 1805) “명확성”이 이를 위해 요구된다. 누군가가 어떤 것을 전달하고자 한다면, 제시된 것은 “흥미로워”야 한다. (94) 혹은 그렇지 않다면 “관심”(156)은 사라진다. “새로움의 호소”(159), “변화” 그리고 “집중화”(162)는 “단조로움” 그리고 “지루함”(159)을 피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Greiling은 복잡한 주제들을 “일반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될 만한”(129) 것으로 만들 것을 요구하며 시작해서, 엔터테인먼트 이론으로 마무리한다.
이것이 팝을 예술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 보다는 예술이 대중적인 형식을 활용하고, 이것인 “포섭을 흥미 있고 매력적인 것”으로 만든다. (Stäheli, 2003, 283) 10대 뮤지엄, 가장 비싼 전시, 가장 발전된 갤러리, 가장 젊은 큐레이터, 가장 뛰어난 컬렉터 등등. 여기서 “실체 없는 감탄 효과”를 통해, 저항할 수 없이 “관심”을 사로잡게 된다. (Luhmann, 1996, 59f.) 계속해서 업데이트 되는 차트는 갤러리 혹은 뮤지엄에 들어가는 일 없이도 참여의 기회를 제공한다. 어제는 Düsseldorf의 "Blue Four"였지만, 오늘날에는 Berlin의 MoMA다… 사람들은 그것을 듣고, 또한 다른 이들이 “그것을 안다고” 가정할 수 있다. (121) 차트, 랭킹, 리스트가 매스 미디어를 통해 널리 배포된다는 사실은 확실히 우연은 아니다. 그것들은 모든 사람에게 연결 가능한 “커뮤니케이션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애호가를 위한” (Luhmann, 1995, 419) 예술 시스템 안에서의 포섭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전체주의적” 완전 포섭(Luhmann, 1997, 625f.), “모든 이들에 대한 포섭” (Luhmann, 1996, 116)에 대한 것이다. 미학에서 파티 프로그램까지 시스템 특정한 자기-기술이 그래서 넘쳐나게 된다. 그래서 기능적 시스템은 대중적인 것의 형식을 사용한다. 실증적으로, 이런 가정은, 정당, 이사회 멤버 및 당국이 자신의 의제를 “일반적으로 전달 가능”하거나 정확하게는 “대중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들 자신의 엘리트들 대신에 광고 에이전시나 그래픽 사무실에 더 의뢰하게 된다는 사실에서 지지된다. 코드에 따라 법적으로 정확하거나, 미학적이거나,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이거나 혹은 과학적 방식에 따라 결정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만일 잠재적 유권자가 투표를 하도록, 소비자가 사도록, 연인이 결혼하도록, 노동자가 세금을 내도록, 아이들이 배우도록, 관객이 TV를 보도록, 혹은 기독교도가 믿음을 갖기를 원한다면, 그러면 포섭의 대중적인 방법을 필요로 한다. [4] 대중적 커뮤니케이션이 특별하게 조직화 된다면, 아마도 팝 시스템의 수행자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광고, 마케팅, 선전을 다룰 것이다.
요약하자면, 한 편에서 Fuchs/Heidingsfelder이 다룬 현상을 “예술 시스템” 커뮤니케이션의 진화로서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거론되었던 “전략들”은 사실 예술 시스템 안에 위치할 수 있고, 거기에는 정보 감축과 커뮤니케이션의 “체화”가 포함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높은 등급 (“애호가를 위한 예술”)과 엔터테인먼트 사이의 구별, 두 가지 다른 시스템 즉 예술과 팝에 대한 관찰에 놓여진 구별은, 우리 생각으로는 예술-같은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과 역사적 외양에 대한 받아들이기 어려운 단순화이다. 만일 그것들을 엄격하게 차이화 한다면, 그것은 예술 시스템의 부식이나 혹은 하위 시스템으로의 분절(즉, 아방가르드 시스템)을 가져올 것이다. 그것은 비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예술의 진보에 대한 시야를 놓치는 것이다. 다른 한 편, 하나의 기능적 시스템에 제한되지 않는 하나의 형식으로 “팝”을 읽는 것은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이는 대중적인 것 자체의 개념에 관계될 것이다. 포섭에 의존하는 모든 기능적 시스템들이 “팝”을 증폭하기 때문에, 그 형식은 분명하게 자리잡을 수 없다. 팝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다루는 것, 혹은 심지어 더 특정해야 하는 하나의 시스템의 이름으로 다루는 것은 이런 기능, 그래서 완전한 포섭의 중요한 기능에 대한 인사이트를 감추게 된다. 이는 우리를 출발점으로 돌아가게 한다. 저자들이 말한 것처럼 “팝이 무엇이건, 하나의 현상으로, 그것은 모든 것에서 스스로를 주장한다.” 팝의 강력한 “침입성”, 현상의 편재성, 즉 시스템의 참여권에 관련한 특정화의 부족은 포섭을 조율하는 하나의 “매력적” 형식을 제안한다.
Literatur
Greiling, Johann Christoph (1805): Theorie der Popularität. Magdeburg.
Hecken, Thomas (1995): Gestalten des Eros. Opladen.
Hecken, Thomas (2003): Pop-Literatur um 1968. Text + Kritik, 41-54.
Kant, Immanuel (1974). Kritik der Urteilskraft. Frankfurt a. M.
Koschorke, Albrecht (2003): Körperströme und Schriftverkehr. Mediologie des 18. Jahrhunderts, 2. durchges. Aufl. München.
Lewandowski, Sven (2004): Sexualität in den Zeiten funktionaler Differenzierung. Eine systemtheoretische Analyse. Bielefeld.
Luhmann, Niklas (1987): Soziale Systeme. Grundriß einer allgemeinen Theorie. Frankfurt a.M.
Luhmann, Niklas (1995): Die Kunst der Gesellschaft. Frankfurt a.M.
Luhmann, Niklas (1996): Die Realität der Massenmedien. Opladen.
Luhmann, Niklas (1997): Die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 Frankfurt a.M.
Stäheli, Urs (2002): Fatal Attraction? Populär Modes of Inclusion in the Economic System. Soziale Systeme 8,110-123.
Stäheli, Urs (2003): The Populär in the Political System. Cultural Studies 2,275-299.
Werber, Niels (1996): Nur Kunst ist Kunst. Soziale Systeme 2,166-177.
Dr. Torsten Hahn, Universität zu Köln, Institut für deutsche Sprache und Literatur Albertus Magnus Platz, D-50923 Köln [email protected]
PD Dr. Niels Werber, Germanistisches Institut, Fakultät für Philologie Ruhr-Universität Bochum, D-44780 Bochum [email protected]      
  
[1] 이런 관점에서, 왜 “팝 시스템”이 단지 50년대에만 스스로를 차이화 했는지에 대해서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현대 사회는 200여년이나 앞서 도달할 수 있었을까?
[2] Luhmann의 사회의 예술과 Dirk Baecker의 예술의 주소에 대해서는 Werber, 1996을 보라.
[3] Luhmann은 1996, 126f.에서 이 주장을 거부했다.
[4] 형식의 개념은, 포섭의 인기 없는 방식들(의무 투표, 자백 의무, 강제 부과금 등등)과 불운하게도 배제에 대한 인기 있는 방식(“보트가 가득 찾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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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eundaegrandroom · 5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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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그랜드룸 그랜드룸의 편의 시설은 고객의 경험을 새로운 차원의 평온함을 선사할 수 있도록 엄선되었습니다. 전용 스파에서는 활력을 되찾아주는 다양한 트리트먼트를 제공하여 고객이 친밀하고 고요한 환경에서 스스로를 가꾸실 수 있도록 해줍니다.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하는 옥상 테라스는 방문객들이 부산그랜드룸의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긴장을 풀고 다시 만날 수 있는 고요한 오아시스가 됩니다.
부산그랜드룸 그랜드룸에서의 식사는 고요한 행복이라는 전체적인 주제를 보완하는 절묘한 여행입니다. 호텔 레스토랑은 현지 및 세계 각국의 최고급 요리를 선보이는 메뉴를 통해 미각을 자극하는 미식 경험을 제공합니다. 여유로운 즐거움을 선사하는 분위기 속에서 매 순간을 음미하실 수 있으며, 부산그랜드룸 그랜드룸의 평온함을 더욱 높여줍니다.
부산그랜드룸그랜드룸은 벽 안에 고요한 오아시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도시의 경이로운 문화와 자연으로 향하는 관문 역할도 합니다. 투숙객은 부산그랜드룸의 유적지, 활기 넘치는 시장, 아름다운 풍경을 쉽게 둘러보실 수 있으며, 하루의 탐험을 마치고 객실의 평온함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부산그랜드룸 그랜드룸은 단순한 숙박 공간 그 이상입니다. 평온함이 재정의되는 몰입형 경험입니다. 세심하게 디자인된 인테리어부터 숨 막힐 듯한 전망과 고급스러운 편의 시설까지, 이 고급 휴양지의 모든 측면은 손님들에게 고요한 행복 속으로의 탈출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몸과 마음, 영혼에 활력을 불어넣는 혁신적인 휴양지를 찾는 사람들에게 부산그랜드룸 그랜드룸은 평온함이 중심이 되는 비교할 수 없는 목적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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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lgic · 7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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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적인 빨간색 라이카 카메라의 솔직한 포옹을 받으며 저는 예술과 미학의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클릭 한 번 한 번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결과물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시간이 멈춘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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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daejeon · 9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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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도서 : 예술의 이유 / Les raisons de l'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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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프랑스의 알뱅 미셸 출판사에서 출간한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의 Les raisons de l’art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Une brève — mais magistrale — histoire de l’art, de la préhistoire à nos jours, par Michel Onfray, qui donne les principales clés pour comprendre et s’initier à l’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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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2022)에서 철학자를 그린 예술 작품들의 해석 작업을 통해 서양 철학과 사상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글쓰기를 선보인 저자의 현대 예술 입문서이다. 예술은 ‘미(아름다움)’에 주된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옹프레는 모든 예술 작품을 하나의 언어로 간주하면서, 이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잘 들어맞는 열쇠를 지녀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이아생트 리고가 그린 루이 14세의 초상화(1701년)에는 많은 상징이 들어 있는데, 그것들을 알지 못한다면 이 초상화는 하나의 수수께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8세기 초의 상징들을 아는 만큼 이 초상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옹프레의 주장이다. 그런데 현대 예술 작품은 그것을 해석하는 열쇠의 필요성이 더욱 크다. 현대의 대표적 팝 아티스트 제프 쿤스가 했던 LGBTQ+ 투쟁, 곧 성소수자를 위한 투쟁에 대해 모른다면 그의 작품 튤립 꽃다발(2019)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옹프레는 말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옹프레는 예술의 첫 흔적이 발견된 프랑스의 쇼베 동굴 벽화로부터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비싼 작품을 창작하는 제프 쿤스의 튤립 꽃다발에 이르기까지의 예술 작품들을 생의 도약, 우아함, 진실주의, 교화, 알레고리, 내재성, 유사성, 디오니소스, 반동, 추상화, 개념화, 도상, 스펙터클 등 13개의 코드를 통해 이해하고자 한다. 옹프레는 예술사의 시대 구분을 어느 정도 따르면서 이러한 코드들이 당대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어떻게 의미화되는지를 밝힌다. 옹프레가 제시하는 예술의 이유는 ‘의미’, ‘의미작용’, ‘메시지’이다. 현대에 오면서 예술은 예술 아닌 것과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면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 책에서 예술에 관한 또 다른 물음들을 들을 수 있다. 예술의 재현의 대상이 되는 실재 개념의 확장과 더불어 현대 미학에서 재현의 한계 문제가 대두되었다. 또한 실재를 둘러싼 사실과 거짓, 현실과 가상, 실제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 자연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사이의 경계 문제 또한 뜨거운 미학적 논의의 대상이다. 한편으로 예술과 자본, 시장, 투기, 후원자 등의 문제도 언급된다. 옹프레는 스스로를 아마추어, 즉 현대 예술의 ‘애호가’로 칭하며, 절대적 옹호나 절대적 비판 모두를 경계한다. 감상자의 의미 해독 작업에 저항하는 것이 현대 예술이지만, 감상자로 하여금 작품을 폄하하기보다 그 의미를 알려고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말한다.
“훌륭한 작품은 두 힘을 균형 잡히게 한다. 조형적 형태와 메시지의 힘이 그것이다. 보이는 것은 마음을 사로잡고, 말하는 것은 설득시킨다. … ‘무엇이 말해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말해지는가?’”
옹프레의 전작 『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를 공역한 변광배 교수가 우리말로 옮기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을 달았다. 옹프레의 독특한 사유와 글쓰기, 실험 정신에 매료된 독자들에게, 예술 작품들을 사진으로 접해 보며 예술과 미학의 여러 문제들을 성찰하고 앞으로 출현할 새로운 예술을 기대하고 이해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L’art contemporain est une langue à laquelle il faut être initié de la même manière qu’il faut l’être à toute œuvre d’art quelle qu’elle soit, quel qu’en soit le siècle. On ne comprend pas plus facilement le portrait de Louis XIV par Hyacinthe Rigaud si l’on ignore la symbolique de l’époque que le bouquet de tulipes de Jeff Koons si l’on ne se sait rien de son combat LGBTQ+ dans notre temps.  Je voudrais effectuer le chemin qui va des premières traces d’art (Lascaux 20.000 ans environ) jusqu’au fameux bouquet de Jeff Koons (2019), autrement dit de la préhistoire à nos jours, afin de lutter contre les oiseaux de malheur pour qui l’art est mort, le Beau y aurait toujours fait la loi et ne le ferait plus, à quoi il faudrait ajouter que, selon eux, la totalité de l’art contemporain mériterait la poubelle. Le Beau a été un souci récent dans l’histoire de l’art et il a cessé de l’être assez rapidement – quelques décennies entre l’invention du mot esthétique en 1750 sous la plume de Baumgarten et celle de la photographie en 1826. Arguer, donc, que l’art contemporain ayant cessé d’être Beau, il ne serait pas légitime de parler d’art, s’avère une sottise. » Michel ONF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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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옹프레 (Michel Onfray)
프랑스 철학자, 작가. 1959년 생. 프랑스 철학자, 작가. 무신론자, 쾌락주의자, 무정부주의적 자유주의자, 반란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 정당이 본선에 진출하자 교직을 떠나 ‘시민 대학’을 설립. 2018년 시작된 ‘노란 조끼 운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유일한 좌파 철학자. 대중, 혹은 대중적 삶의 개선을 가장 중요한 화두로 삼아 50권 이상의 책을 발표했다.
Michel Onfray est docteur en philosophie. Il a construit son œuvre autour des thèmes de l’hédonisme, de l’athéisme et de la construction de soi. Auteur, il a publié plus de cent livres, traduits dans de nombreux pays. Fondateur de l’Université populaire de Caen en 2002, il a plus récemment lancé deux médias indépendants : le site michelonfray.com et la revue Front populaire.
감각 기관인 육체와의 조화, 미학에 바탕을 둔 새로운 윤리의 건설을 제안하는 그의 철학은 여타의 환상을 걷어내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기술로 대변된다. 사회의 보수화를 유발하는 순응주의와 독단주의에 맞선 반항의 철학자로서 정치적 사안마다 좌우 모두의 공격 대상이 되곤 한다. 2020년, 잡지 를 창간하였으며 현재 각종 미디어를 통해 가장 논쟁적이며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철학자로 꼽힌다. 저서로는 <<원숭이는 왜 철학 교수가 될 수 ���을까>> <<미셸 옹프레, 이��람을 말하다>> <<무신학의 탄생>> <<철학자의 여행법>>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 <<사회적 행복주의>> <<우상의 추락>> <<프리드리히 니체>> <<북극성>> 등이 우리말로 번역,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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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rk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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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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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renphoto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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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초 미학의 영탁 #제주, 인도네시아 단독 콘서트 등. 5초의 미학을 다시 한번 담아 봅니다. 즐겨 주세요
    #Five-second aesthetic Youngtak #Jeju, Indonesia solo concert, etc. Let's capture the aesthetics of 5 seconds. Please enjoy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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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plaskr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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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oolloooom with KOZABURO // BON-VAR wool jacket & Dexter wool pants pro. [22-23AW ‘BON’ Collection] KOZABURO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일본의 디자이너 KOZABURO AKASAKA가 2016년에 설립한 브랜드 입니다. 일본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런던으로 넘어가 Central Saint Martine 패션디자인 학사 과정을 2011년에 수석 졸업였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THOM BROWNE에 스카우트 되어 디자이너로서 일을 시작하였으며, 뉴욕에서 여러 경력을 쌓은 뒤 스스로가 구축하는 미학에 대한 필요성을 깨달은뒤 뉴욕 Parsons에서 MFA 석사 학위 를 시작했습니다. MFA 프로그램 첫 해에 이루어낸 작업물로 VFILES Runway 16S/S에서 우승을 하였으며, 해당 컬렉션은 Comme Des Garcons Group의 Dover Street Market에서 바로 릴리즈 되었습니다. 2016년 MFA 석사 과정 수료와 동시에 자신만의 브랜드 KOZABURO를 설립 하였습니다. 2017년 LVMH Special Prize로 수상되며 전세계에 KOZABURO 브랜드를 알리게 되었으나, 그는 다른 브랜드들이 LVMH 수상이후 커머셜한 RTW를 전개하는 것과 달리 자신만의 미학을 중심으로 하는 컬렉션만을 선보였습니다. 90년대 일본에서 성장한 Kozaburo의 미학은 성장 기간 동안 서브컬쳐 음악들과 다양한 스트리트 스타일들을 경험한 기억들을 토대로 구축 되었습니다. 클래식 남성 의류의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은 그의 미학의 핵심입니다. 하이 패션과 스트리트 문화의 병치는 독특하고 시적이며 현대적이지만 컨템포러리 하지 않은 KOZABURO만의 스타일을 정의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철학적이면서 자신만의 색이 뚜렷한 하나의 아티스트로 인정받는 디자이너이자 브랜드입니다. _ _ _ Fashion Store in Korea WWW.SAMPLAS.CO.KR International Order Contact. DM or [email protected] #SAMPLAS #샘플라스 #KOZABURO #코자부로 (Samplas에서) https://www.instagram.com/p/CmCH0mcJ6lk/?igshid=NGJjMDIxM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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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lovlun119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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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보나르(나비파) 뷔야르
솜스 밴트리(사울레이터 연인)
중요한 것은 장소나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이다
나는 색의 선구자라는 말을 듣는다 나는 내가 선구자인지 몰랐지만 선구자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저 쭉 계속하기만 하면 선구자가 된다(just go ahead)
모노노아와레(헤이안 시대에 만들어진 문학 및 미학의 이념)
폴린 버메어(뉴욕 나비파)
마지트 어브(재단 창립자 단장)
자포니즘 우키요에 판화 나비파(유대어로 선지자라는 뜻)
카르티에 브레송(불교)
설교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
로버트 프랭크 다이안 아버스
하퍼스 바자
창과 거울 / 순간포착과 느긋한 시선
으젠느 앗제(제 3자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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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daymotors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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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States of America 🇺🇸
News York Academy
색동분자라 해도 어쩔수 없다
눈에서 눈으로 입에서 입으로 다시 입에서 질녀에게로 이어지는 💕 사랑이란 감동의 물결 에너지 화학
인간은 성분이 다른 물체에서도 화학과정을 거쳐 같은 성질의 모습 형태로 나타난다 이심전심이란 나의 엄지가 그녀의 혀로 전해지는 그 순간을 우리는 타오르는 불 욕망 SEX 라고 부른다
섹스는 인간 미학의 완성이자 서로 닮아가는 과정인데 융합 이라고 한다
왜 지구가 불타오르지 않는가 사랑을 가로막는 장벽 혹은 신이 있다면 그는 진정한 신이 아니다
진정한 신이 아니라면 이곳에 올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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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lab · 5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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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시장을 통한 예술
Soziale Systeme 10 (2004), Heft 2, S. 292-324 © Lucius & Lucius, Stuttgart
Michael Hutter
번역 – 조은하, 박상우
요약: 팝 뮤직은 예술 커뮤니케이션의 하위 집합에 속한다. 그 기여 혹은 “작품”은 팔린 재생산의 양을 통해 평가된다. 이 주제를 지지하기 위해서, 미디어, 기능 그리고 팝 뮤직의 코드가 예술 시스템의 부분이라는 것을 보인다. 더욱이 경제적 거래의 구조적 커플링과 팝 뮤직 회사들에 대한 조작적 커플링은 그 구별됨을 제공한다.
더 경제적인 주제
Fuchs와 Heidingsfelder에 따르면 사회 시스템의 새로운 타입은 현재 “고쳐지고 있다.” 즉, 안정성을 진화하고 있다. 그것은 팝 뮤직 시스템의 사례를 사용하여 보이고 있다. 나에게 이 방법은 시기상조라 보인다. 자율성의 기호들이 정의가능한 커뮤니케이션적 사건 안에서 관찰될 때, 이미 알려진 자기-생산적 시스템의 배치의 틀 안에서 최초로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해석적으로 보다 경제적이다.
이 주제를 지지하기 위해서, 팝 뮤직의 미디어, 기능 그리고 코드가 예술 시스템의 부분이라는 것을 보이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그래서 팝 뮤직을 포함한 팝 커뮤니케이션에서 경제적 거래에 대한 구조적 커플링, 회사에 대한 조작적 커플링이 어떻게 그 구별점을 제공하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
예술 시스템에서 팝 뮤직
사실, 루만의 "Die Kunst der Gesellschaft" (1995)은 몇 번이고 언급했던 것처럼 관련되어 있다. 이는 예술의 미디어에서 시작한다. “투명한 기만”으로 기능하기 위해 두 가지 미디어가 필요하다. 내부 미디어안에서는 소재(사운드, 가사, 혹은 컬러)가 모양을 갖추고, 외부 미디어는 주목할만한 구별점과 경계를 보장한다. 의심할 것 없이, 팝 뮤직의 노래는 “이중적 프레이밍”(178)의 범주를 충족한다. 음악적 리듬과 멜로디의 반복은 가사에 따라 운율 형식 안에서 나타나고, 필수적이지만 느슨하게 묶인 요소들을 제공한다. 노래들은 무대 위에서 공연되고, 투어의 형식으로 전해지거나 혹은 스튜디오에서 녹음되고, 녹음 미디어에서 플레이 되는 재생산물로서 배포된다. 팝 송은 비록 맥락화의 외부적 미디어는 변했음에도, Madrigal에서 오페라 아리아까지 분명한 역사적 전통의 부분이다.
Luhmann은 예술의 미디어를 한 단계 더욱 정확하게 규정한다. 공간과 시간은 대상의 척도와 계산을 위한 근본적 미디어다. 이런 미디어에서 예술 작품은 장식과 표상 사이의 차이를 새긴다. 장식은 그들의 연속성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들은 “마치 공간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자기 언급성을 전제한다. (1995, 185) 다른 한 편 재현의 표상은 예술 작품이 전개 되는 상상적 공간과 상상적 시간을 만들어 낸다.
팝 송은 장식과 표상 사이의 구별의 경계를 넘는 뛰어난 놀이의 예로서 역할 한다. 그것들의 전형적인 내부 구조는, 가사 안에서 표상된 내용과, 코러스와 반주 안에서 짜여진 사운드와 단어의 화환 사이에 상호 교환과 억제를 일으킨다. 노래를 코러스, 중심적 장식음으로 감축하는 것은 가능하고 자주 있지만, 역으로 코러스의 상실은 노래의 내부적 지지대를 빼앗는다. 차이는 또한 미디어의 다음 낮은 레벨에서 작동한다. “표상”을 형성하는 개별 음악과 텍스트 구절들은 분해될 수 있고, 장식으로 전환될 수 있다. 여기서 Fuchs와 Heidingsfelder가 모아 놓은 사례들을 사용해 보자. 외부-언급들은 “부드럽게 될 뿐”만 아니라(4) 자기-언급으로 전환된다. 그래서 그것은 특정한 예술 형식으로 전달된다. 이는 "Louie, Louie"나 "Fa-Fa-Fa-Fa-Fa" 마찬가지로 "Bi-Ba-Butzemann" 그리고 "Weilala, weia"에 적용된다. 의심할 것 없이, 그런 테크닉 덕분에, 정보의 성격을 넘어 커뮤니케이션의 형식이 강조된다. 이런 운동은,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 안에서 기술적으로 잉여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20세기에 모든 예술 형식들의 특징이다.[1]
텍스트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팝 뮤직의 기능 평가에서 저자들에 대부분 동의한다. 팝 뮤직은, 거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밀도를 경험하면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의식 시스템의 커플링을 성립한다. 리듬 비트의 맥동하는 심박수에서 감정의 무제한의 보컬화까지, 모든 수단들이 감정의 공통성을 명백하게 하기 위해 사용된다. 가수와 뮤지션의 “물리성”은 그 자체 목적이 아니라. 감정적 표현의 기만을 더욱 신뢰하게 만들기 위한 필수적 구성부분이다. 감정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은 의식 시스템이 독립적인, 자기-인식적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필수적으로 나타난다.[2] 이 발전 단계는 그 자신의 가족에 속하는 사회 시스템으로부터의 분리 단계, 통일체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제공하는 파트너의 탐색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3] 따라서, 감정들은 종종 거부된 것과의 싸움을 향하거나, 권위 또는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환경과의 전투에 영감을 받거나 원하는 단결을 호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잠재적 성 파트너와의 춤, 스타일이 있는 공동체의 음모적 통일체, 또는 자신의 음향 환경 속에 통합되는 것일 수 있다.[4] Fuchs와 Heidingsfelder는 팝 뮤직에 대한 이런 특징을 충분하게 제시한다. 그렇지만 Mozart 소나타나 Schubert의 가곡에서 마찬가지로 강력한 감정적 표현을 보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표현 형식은 전체적 사회의 진화와 개인 연령에 따른 변화를 사용한다. 그렇지만 이 의식 시스템 안에서 의사 소통 불가능하게 발생하는 것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한 그들의 적합성에서는 차이가 나지 않는다.
코드의 성립은 비평의 주제다. 아름다운 것, 선한 것, 진짜인 것 사이의 구별은 미학의 본질적 기여 중 하나였다. “미”와 “추”라는 코드 값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직관적 유용성을 가진다. 비록 거기에 적합한 범주의 분명함은 프로그램 의존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지만. “형식들이 각각의 경우에 미로서 확인되는 것은 역사에 남겨져야만 한다.” (Luhmann, 1995, 313) 팝 뮤직에서, 기능과 함께 선호 코드의 영향은 감정적 영역 안에서 커진다. 최고의 작품은 매혹적이어야 한다. 그것들은 저항할 수 업는 힘을 가지고 의식 시스템에 영향을 미친다. 코드의 적용은 결코 이해될 수 없다. 반대로, 그것은 자주 예술가와 비평가들이 판단을 넘기는 작은 하위 영역들과 관계한다. 다른 예술 장르처럼, 팝 뮤직은 다양한 변형들로 오랫동안 쪼개져 왔다. 거기서 스스로를 예술가로 생각하는 이들과, 스스로를 감정가로 생각하는 이들이, 코드가 어떻게 정확하게 적용돼야만 하는가를 결정한다. 그렇지만 모든 하위 영역은 “미”와 “추”에 대한 특정한 동의어에도 불구하고, 코드의 미학적 특질을 공유한다.
예술 형식 사이에서의 지속적 경쟁 속에서, 도발의 전략은 의심할 것 없이 중심적 역할을 한다. 도발은 거의 항상 새로움의 도입과 함께 한다. 무엇 보다 이전에 유용한 규칙이 파괴되고, 모든 사람이 바로 위반의 의미와 이해에 대한 ���롭게 드러난 가능성을 포착하는 것은 아니다. 모순의 등장은 그래서 밀접하게 관찰되고, 언급되어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중요한 새로운 요소들에 관심을 향하기 때문이다. 이 신호 기능은 모든 예술 형식에서 관찰되어 왔다. 기대했던 것처럼, 작품이 등장하고, 기존의 예술적 스타일의 한계 안에서 머무르는 동안 도발의 몸짓을 마스터하면서 계속 등장한다. 이 몸짓은 예술에서 어떤 새로운 것을 알리며 등장할 때 충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다른 영역에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록앤롤은 포스트-1950년대에 나타난 세대 갈등의 표현을 위한 뛰어난 도구였다. 마찬가지로 도발은 다른 대상의 맥락 속에서 작동했던 Goya의 에칭이나 Dada 운동에서도 성공적이었다.
이는 예술 시스템 안에서 팝 뮤직을 위치하는데 있어서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언급의 스케치 지점을 제공한다. 물론 재구축은 불완전할 것이다. 왜냐하면 팝 뮤직의 고유성은 경제와의 커플링을 관찰할 때만 포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 가지 변형을 다루어 보자. 상업적 성공에 대한 구조적 커플링 그리고 미디어 회사들과 조작적 커플링.
경제와 회사와의 커플링
팝은 엘리트적인 것(elitist)과 대중적인 것(popular) 사이의 차이를 통해서 이름을 얻었다. 사회 안에서 작품의 넓은 보급, 그것의 “특별한 보편주의”[5]는 이런 예술 형식의 구성적 특징이다. 배포의 확장은 메시지의 복제와 보급에 관한 기술적 미디어에 의해 가능하게 되었다. 미디어의 사용은 시장에 의해 거의 변함없이 이끌린다. 이는 15세기 후반 이후 인쇄물, 20세기 초반 이후 청각 혹은 시각 매체에 적용된다. 그 동안 예술 영역은 대응하는 산업 부문의 수행과 굳게 연결되어 있다. 음악과 필름의 경우, 시장은 예술 형식의 동요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면서 성립되어 왔다. 이 동요는 소비자, 작품의 카피(혹은 영화의 경우에는 시청 혹은 대여)에 돈을 지불할 작품의 잠재적 사용자에 의한 선택 형식으로 나타난다. 선택은 제공된 음악 트랙, 영화, 혹은 만화를, 이윤의 4/5를 발생하는 몇 편의 “히트”와 이윤을 만들지 못하고 혹은 심지어 손실을 내는 많은 “실패’로 분리한다.
정보의 생산, 분배와 사용의 특정한 특징은 대단히 제한적인 선택 안에서 발생한다. 재생산 기술을 사용할 때, 대부분 혹은 (디지털 기술의 경우에) 모든 비용은 장치 구입에서 발생하고, 이는 각각의 추가적 카피의 생산을 훨씬 더 싸게 만든다. 배포는 거래 혹은 텔레컴 네트워크를 통해서 발생한다. 거기서 높은 초기 투자는 낮은 운영비에 의해 상쇄된다. 사용자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과 포지션 기회를 만들면서, 다른 사용자 역시 아는 작품에 참여하는 것으로부터 이익을 얻는다. 이 모든 요소는 “winner-takes-all” 시장을 선호한다. 거기서 몇 개의 작품만이 일시적 독점을 형성한다. (Hutter, 2003) 전통적, 물질 소비적 산업에서는 증가되는 생산은 생산성의 감소를 이끌고, 많은 생산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새로운 정보 처리 산업에서는, 양의 피드백 효과는 소수의 생산자만이 소수 작품의 확산에 기반해 생존할 수 있도록 한다.[6]     
어떤 작품이 “히트”할 수 있는지 문제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어렵다. 어떤 작품이 “뜰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는 모든 미디어 산업을 가로지르는 근본적 경험이다.[7] 하지만 어떤 작품은 잠시 동안 차트 정상, 블록버스터, 혹은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 대해 대화에 참여하고 싶은 모든 이들이 승자에게 관심을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 승인 혹은 보편적 인기(popularity)가 관리하는 엘리트 서클을 넘어서 추정될 수 있다는 사실이, “히트”가 되는 것이 팝 작품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인 판매량에 의해 결정되도록 하였다.[8]
시장 성공에 의해 발생한 자극은 반드시 긍정적인 미적 평가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관심의 증가를 만들 뿐이다. 역으로 결코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한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숨겨진 보석”이 있을 수 있다. 이것 역시 동요의 형식으로 받아들여진다. 단지 상업적 성공이 발생할 때 대량 보급이 전제되는 것이고, 그래서 단지 팝 예술의 성공에 대한 모든 범주가 충족될 수 있는 것이다.[9] 그래서 히트와 실패 사이의 구별은 추가적 차이화를 제공한다. 이 구별을 통해, 더 넓은 보급을 위해 만들어진 예술 형식은, 화폐 경제를 통해 가능해진 기술의 사용으로부터 발생한 이익을 “구입”하는 것이다. [10] 이런 추가적인 범주는 예술 지향적 관찰자에게는 예술적 특징을 위협하는 강력한 제약으로 해석될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관찰자는 팝 뮤직에서 작품을 특징짓는 희소성, “접근성 그리고 동종요법적으로 감축된 고유성”[11]은 단지 시장 조건 하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구조적 커플링은 커뮤니케이션에 내재한 “상호 자극의 경로”다. (Luhmann, 1997, 779) 어떤 작품이 엄청나게 성공적인 판매를 거둘 지에 대한 시장에서 이뤄진 결정은, 새로운 작품의 제작자들이 그들의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장에서 새로운 작품에 대한 탐색을 교란한다. 다른 한 편, 이러한 장에서 나온 새로운 작품은 시장을 어지럽힌다. 레코딩 산업과 같은 시장에서, (적어도 가장 최근까지) 극단적인 가격 정책이 생산과 판매 회사들에 의해 행사되고 있고, 이런 “혁신 쇼크”는 시장 쉐어의 하락과 급등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낸다.
모든 회사들처럼, 특정한 정보 상품의 생산과 분배에 특화된 조직은 구조적으로 그들의 생존을 지불 능력과 연결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그들은 가치의 원천을 활용한다. 그들은 성공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원천 시스템, 예를 들어 양어장이나 혹은 활동중인 팝 뮤직 밴드들의 확보를, 크기가 화폐 총량의 통제에 의해 계산되는 시스템과 연결한다. 예를 들어 음악 산업의 경우, 회사들은 선택적으로 작품과 아티스트들을 선택하고, 그것들을 생산하고 시장에 내놓는다. 그래서 조작적으로 두 가지 기능적 시스템을 커플링 한다. 그것들은 상호 동요를 압축하고 업데이트한다. (cf. Luhmann, 1997, 788)
조작적 커플링을 밀접하게 검토하면, 음악, 영화, TV, 출판과 같은 “콘텐트” 산업에서의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생산에서의 규모의 경제가 글로벌 기업의 등장을 이끈다. 이들이 필수적인 자본 투자와 함께, 언어적으로 묶인 지역 문화를 넘어서는 작품의 인기를 보장한다. 팝 문화는 특히 사회의 글로벌 수준에서 잘 작동한다. 이들 다국적 기업과 함께, 수많은 작은, 혹은 마이크로 기업들이, 예술가와 그들의 영역에 대한 지역적 유사성에 따른 경쟁적 이득을 통해 살아 남는다.[12] 전략적 개입의 새로운 파도가 이미 수면 위에 올라와 있다. 통신과 인터넷 양자에서 배포 네트워크의 조작자들은 그들의 전송 능력을 이익이 날 수 있도록 채워줄 콘텐트를 찾고 있다. 결과적인 동요가 팝 뮤직을 이끈다. 그것은 이 채널들을 통해서 빠르게 그리고 질적 손실 없이 커플링의 새로운 형식 속으로 배포될 수 있다. 이 새로운 형식 중 하나인, 비디오 클립과 사운드트랙의 통일은 이미 니치 성공 이상을 겨냥한 음악 생산의 표준이 되었다.
마지막 언급들
목표는 잘 알려진 사회 시스템의 성좌 안에서 팝 뮤직이 형태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 커뮤니케이션적 영역에 속하는 작품들은 새로운 사회적 시스템의 형태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보다는 예술 시스템을 통한 진화적 동학을 반영하는 것이다. 예술 시스템은 특히 경제와의 구조적 그리고 조작적 커플링을 통해서, 새로운 형식, 스타일, 그리고 질적 위계를 생산하면서 발전한다. 발표 전체를 통해서 음악 작품은 단지 팝 아트의 미디어적 표현으로 해석하는데 주의를 기울였다. 청취의 생리학과 사운드 생산과 전달의 기술에서 제시되는 고유성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주장은 인기를 통해 재생산되는 모든 종류의 형식에 적용된다. Andy Warhol의 실크스크린, Walt Disney와 Matt Groening의 애니메이션, Josh Weldon의 TV 시리즈, Allen Ginsberg와 Durs Grünbein의 시. 이들 모두 경제와 커플링 되는 예술 시스템의 전체적 동학의 부분이자 결과물이다.[13]  
마지막으로 방법론적-실증적 접근에 대한 지적이다. Fuchs와 Heidingsfelder에서, 생생한 사례들의 풍부함은 어떤 면에서 강력한 설득력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예들은, 느슨하게 묶인 실증적 미디어로서, 어떤 시스템 이론적으로 영감을 얻은 차이화의 형식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 역시 자명하게 된다. 또한 다섯 배는 변형되는 사례로도, 사례들은 단지 일화적인, 묘사적 특징만을 제시할 뿐이다. 그 사례들은 논의에서 최초의 탐구적 단계를 나타낼 뿐이지만, 다른 것에 비해 어떤 가설이 실증적으로 명백하다는 것을 제시하기에는 거리가 멀다.
Literatur
De Vany, Arthur (2004): Hollywood Economics. How extreme uncertainty shapes the film industry. Routledge: London.
Fuchs, Peter (2004): Wer hat wozu und wieso überhaupt Gefühle? Soziale Systeme 10, 89-110.
Holbrook, Morris/Schindler Robert (1989): Some Exploratory Findings on the Development of Musical Tastes.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16,119-124.
Hutter, Michael (2003): Information Goods. S. 263-268 in: R.Towse (ed.), Handbook of Cultural Economics. Cheltenham: Elgar.
Klein, Georg (2004): Bebend vor Schönheit. Süddeutsche Zeitung vom 21.9.04,14.
Luhmann, Niklas (1995): Die Kunst der Gesellschaft. Frankfurt a.M.: Suhrkamp.
Luhmann, Niklas (1997): Die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 Frankfurt a.M.: Suhrkamp.
Shusterman, Richard (2000): Performing Live. Aesthetic Alternatives for the Ends of Art. Cornell University Press: NewYork.
Simmel, Georg (1989): Philosophie des Geldes. Frankfurt a.M.: Suhrkamp.
Stäheli, Urs (2002): Fatal Attraction? Popular Modes of Inclusion in the Economic System. Soziale Systeme 8,110-123.
Prof. Dr. Michael Hutter, Lehrstuhl für Theorie der Wirtschaft und ihrer Umwelt Universität Witten/Herdecke, Alfred-Herrhausen-Straße 50, D-58448 Witten
[1] “그것은 모든 그 이상의 예술적 발전, 특히 20세기의 예술에 대해 여전히 획기적인 것처럼 보인다” (Luhmann, 1995,467)
[2] 감정의 기능은 그래서 Fuchs, 2004에서의 분석에 따른다.
[3] 그래서 실증적 연구에서, 참여자가 24세 경 팝 뮤직에 대한 가장 강력한 선호를 보인다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Holbrook/Schindler, 1989)
[4] Shusterman (2000, 62)은 “The Fine Art of Rap”에서, 눈에 띄는 반복적이고 내용 없는 가사들 속에서, 의미론적 게임은 “적대적 백인 청취자로부터 의미를 숨기려고” 포함되어 있다.
[5] 이 문제에 대한 추가적인 인사이트에 대해서는 Stäheli (2002)에 의한 논의를 보라.
[6] 소득 분배의 파라메트릭 형식은 De Vany (2004)가 영화 생산의 경우에서 Pareto-Levy 분포로 정식화 했다. 다른 콘텐트 산업처럼 음악 산업에서의 패턴도 정확하게 같다.
[7] 나는 하나의 노래가 하나의 차트 범주에서 히트지만, 다른 차트에서 실패일 수 있다는 저자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랩 송은 컨트리 송과 경쟁하지 않는다. 그래서 해당 장르에서 부재하다는 것이 어떤 놀람을 야기하지는 않는다.
[8] 보급의 범위는 사실 작품이 정치적 커뮤니케이션과 관련 있음을 보여준다. 팝 뮤직(예술)과 정치적 시스템의 커플링은 범주적 오류 없이 관찰될 수 있다.
[9] 두 가지 사례가 이점을 보여준다. 1974년 24의 나이로 자살을 했을 때, Nick Drake의 세 장의 LP는 팝 뮤직의 매니아에 의해 평가받았다. 2004년 그의 노래의 일부가 자동차 광고에 사용되자, 갑작스럽게 그의 작품들에 대해 차트와 관계된 관심을 끌게 되었다. Fuchs와 Heidingsfelder에 따르면, Lou Reed는 스스로를 “One-Hit Wonder"라 묘사한다. 이는 사실 디스코 뮤직 영역에서 "Walk on the Wild Side"의 경우다. 그렇지만 그의 성공은 아방가르드 장르에서 음악가이자 가수로서 오랫동안 지속된 예술적으로 인정된 커리어에 기반한 것이다.  
[10] 또한 이는 특히 광고 수익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라디오와 TV와 같은 방송 미디어의 사용을 포함한다.
[11] 이는 Süddeutsche Zeitung (September 21, 2004)에 실린 Leonard Cohen의 음악에 대한 Georg Klein의 코멘트를 말한다.
[12] 콘텐트 산업에서 기업의 마켓 쉐어는 왼쪽으로 치우친 Pareto–Levy 분포를 따른다.
[13] 재정적 자원 사용의 증가와 결과적인 “일반적인 삶의 템포의 가속화”에 관련한 초기의 검토는 Simmel (1989, 708)에서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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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arablue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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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lyporidge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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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lovlun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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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잘난 척 하기 딱 좋은 철학 잡학사전 왕잉
들어가는 말 CHAPTER 1 도대체 철학이 뭐지 철학이 왜 필요해? │철학의 본질 │철학은 경이로움에서 시작되었다? │철학은 인간 존재의 사상적 원천 │사는 것이 곧 철학이다 │철학의 목표는 자아 인식이다 │철학의 지혜 │철학으로 마음을 치료한다? │인간과 우주 CHAPTER 2 철학자들의 유쾌 통쾌 에피소드 울보 헤라클레이토스 │분화구에 몸을 던진 엠페도클레스 │웃는 철학자 데모크리토스 │플라토닉 사랑 │도망친 아리스토텔레스 │향락에 빠진 돼지 │철인 황제 아우렐리우스 │뇌물수수죄를 지은 베이컨 │루소는 로맨티시스트 │조폐국 사장 뉴턴 │투자의 달인 볼테르 │독신주의자 흄 │오컴의 면도날 철학 │헤겔의 안티 팬 쇼펜하우어 │상갓집 개 공자 │노자는 공자의 스승 │가난뱅이 장자 │장자의 유일한 벗 혜시 │완적의 흘겨보기 │혜강 스타일 │천재 소년 왕필 │범진의 ‘부처란 없다’ │선종의 제6조가 된 혜능대사 │연꽃을 사랑한 군자 주돈이 │책을 베낀 고염무 │개구쟁이 철학자 진웨린 │주광첸 vs 주광산│악처 덕분에 철학자가 된 소크라테스 CHAPTER 3 철학자들은 왜 삐딱하게 생각할까 존재는 지각이다 │같은 강을 두 번 건널 수 없다 │세상에 똑같은 나뭇잎은 없다 │실용이 진��다 │지푸라기 하나가 낙타 등을 부러뜨린다 │제논의 역설 │거짓말쟁이의 역설 │악어의 역설 │바벨탑의 철학적 함의 │자연 순응과 자연 회귀의 차이 │만물의 근원은 물인가 │만물의 근원은 수인가 │물질이 먼저인가, 의식이 먼저인가 │백마는 말이 아니다? │왜 긍정이 곧 부정일까 │무용지용이란 무엇인가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철학 명제 │어째서 선불가설인가 │일념에 집착하지 않는다 │꽃 한 송이에서 비롯된 염화미소 │장주가 꾼 ‘나비의 꿈’ │득의망언이란 무엇인가 │지자요수 인자요산 │도가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CHAPTER 4 철학자의 품격 이성주의 정신을 창시한 탈레스 │존재 개념을 최초로 언급한 파르메니데스 │윤리학의 토대를 다진 안티스테네스 │인간을 소우주로 여긴 유물론자 데모크리토스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본 프로타고라스 │서양철학의 창시자 소크라테스 │객관적 유심론의 창시자 플라톤 │백과전서식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그리스 최후의 기독교 변증론자 테르툴리아누스 │스콜라철학을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메론으로 철학 사상을 구현한 보카치오 │세기의 현대인 몽테뉴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 │유물론적 경험론의 기본 원칙을 제기한 베이컨 │민주와 자유를 위해 일생을 바친 피히테 │프랑스 사상의 아버지 볼테르 │삼권분립을 주창한 몽테스키외 │고전 철학의 창시자 칸트 │진리와 정의를 위해 헌신한 디드로 │인간중심주의자 포이어바흐 │삶을 고통으로 여긴 쇼펜하우어 │위대한 초인 니체 │마르크스의 평생 동지 엥겔스 │구조주의의 아버지 소쉬르 │실증주의의 창시자 콩트 │경험비판론의 창시자 마흐 │실존주의의 창시자 키르케고르 │현상학의 창시자 후설 │실존주의를 집대성한 하이데거 │여권운동의 창시자 보부아르 │사상 체계의 역사학자 푸코 │실용주의를 집대성한 듀이 │해체주의의 창시자 데리다 │같은 듯 다른 듯, 공맹지도 │주역을 연구한 공자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 │손자병법을 집필한 손무 │춘추시대 최고의 재상 관중 │공맹 사상의 한 축 맹자 │세상에서 도를 닦을 것을 주장한 열자 │유가 문화를 부흥시킨 동중서 │정주이학을 창시한 정호와 정이 │신선술의 체계를 세운 갈홍 │유가 사상을 회복시킨 한유 │횡거선생 장재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 죽림칠현 │이기이원론을 완성한 주희 │송명이학을 집대성한 왕양명 CHAPETER 5 세상을 뒤흔든 이 한마디 아름다움은 수의 조화에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지식을 추구한다 │스승은 귀하다. 그러나 진리는 더욱 귀하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합리적이다 │지옥이란 다름 아닌 타인들이다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자 왕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정말 신비로운 것은 세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절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다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들이 이렇게 많다 │인생은 보리 이삭을 꺾는 것과 같다 │욕망을 억제하는 것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한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두 가지: 별이 빛나는 하늘과 도덕법칙 │결혼도 이혼도 모두 행복이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운동에 있다 │인간은 타고난 정치적 동물이다 │군중 속의 고독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인생은 순식간이다 │살신성인과 사생취의 │최고의 선은 흐르는 물과 같다 │서로 습기를 뿜어주고 거품으로 적셔주느니 강호에서 서로 잊고 사는 게 낫다 │우리의 삶은 한계가 있고 지식은 한계가 없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교만은 화를 부르고 겸손은 복을 부른다 │근묵자흑 │존천리 멸인욕 │마음 밖에 만물이 따로 없다 │내 마음이 곧 우주다 CHAPTER 6 세상의 모든 철학 서양철학의 시조 밀레투스학파 │헤라클레이토스의 에페수스학파 │원자론으로 근원을 탐구하다 │수를 통해 미학의 문을 연 피타고라스학파 │인간에게 눈을 돌린 소피스트학파 │플라톤 철학, 이데아설에 바탕을 둔 이원론적 세계관 │유심론을 주장한 스토아학파 │자연주의를 주창한 키니코스학파 │유물론의 선구자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산책길에서 유래한 소요학파 │종교주의를 주창한 교부철학 │신플라톤주의, 영혼을 통해 신성일치를 꿈꾸다 │기독교 신앙에 이성을 부여한 스콜라철학 │신과 우주를 동일시한 범신론 │자연과학에 기초한 기계론적 유물론 │자연과학주의의 태동 │마르크스주의는 인간 해방학 │개인의 존재론을 강조한 실존주의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 │춘추전국시대를 풍미한 제자백가 │동양철학의 으뜸 유가 사상 │유가 사상에 맞선 묵가학파 │음양학파는 무엇인가 │종횡가, 합종연횡도 철학이라고? │손무가 창시한 병가 사상 │노자의 도가 사상 │전국시대 최고의 아카데미 직하학궁 │황로학파의 무위 정치 │유학의 새로운 틀을 제시한 경학 │유가와 민간 종교가 결합한 참위신학 │현학, 오묘하고 또 오묘하도다 │주자이학의 출현 │사회와 정치 개선에 주목한 양명학파 CHAPTER 7 한방에 끝내는 철학 용어 방법론 │부정과 부정의 부정 │규칙 │정신과 의식 │공간 │양적 변화와 질적 변화 │모순 │가지론 │본질과 현상 │필연성과 우연성 │변증법 │형이상학 │논리 │불가지론 │이원론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 │변화 │추상과 구체 │범주 │물질 │주관적 능동성 │주체와 객체 │자연 세계와 인류 세계 │감성 인식과 이성 인식 │객관적 진리 │가치 │사회 존재와 사회의식 │주의주의 │시간의 비가역성 │차원 공간과 연장성 │절대운동과 상대 정지 │실재론과 유명론 │실용주의와 논리실증주의 │중용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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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takesmargin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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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브로드스키:베네치아의 겨울빛
.. 나는 도덕적인 사람이나 현자가 아니다(물론 양심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늘 노력하기는 한다). 물론 탐미주의자도 철학자도 아니다. 나는 상황과 스스로의 행동에 따라 불안초조해하는 남자일 뿐이지만 관찰력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일찍이 말했다시피, 나는 원칙이 없다. 내가 가진 것은 신경뿐이다. 그러므로 앞서 이어질 이야기는 서사를 풀어가는 방식에 관한 신조를 비롯해 여러 신조를 따르기보다 시각에 더 의존할 것이다. 사람의 눈은 펜보다 앞선다 그래서 나는 내 펜에게 그의 입장에 대해 거짓말하게 하지 않을 작정이다. 비난을 들을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나는 피상적인 것에 개의치 않을 것이다. 표면-눈이 제일 먼저 인식하는 것-은 종종 속에 든 내용물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
                         *
.. 본질적으로 무생물인 호텔의 거울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보다 보니 점점 뿌예진다. 그 거울들이 당신에게 돌려주는 것은 정체성이 아니라 익명성이다. 특히 이 도시에서의 익명성. 왜냐면 이곳에서 당신 자신이야말로 당신이 전혀 보고 싶지 않은 대상이기 때문이다 [..] 얼마 후 나는 이 도시가 품고 있는 낙원이나 내세와 같은 효과가 자기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다 어딘가에서는 과도한 잉여 즉, 이 도시를 흡수하는 신체를 흡수하는 거울 이론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최종 결론은 명백히 상호 부정이다. 반영이 반영을 좋아할 리 없다. 이 도시는 너무나 자아도취에 빠져 있어서 자신의 정신에서 깊이를 빼버리고 아말감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다. 이 도시의 호텔과 펜시오네들도 당신의 지갑에 비슷한 영향을 미치며 그것이 매우 적절하다고 느낀다. 이 주 동안-심지어 비성수기 요율로- 머물고 나면 당신은 불교의 승려처럼 빈털털이가 되고 자아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어떤 나이와 어떤 종류의 일에서는 자아없음이 필수는 아니지만 환영받는다 .. 
                        *
.. 저온에서 드러나는 아름다움이 ‘진짜’ 아름다움이다 .. 
                        *
.. 나는 신이 시간이거나 적어도 성령은 그러하리라 줄곧 믿었다 [..] 어쨌든 나는 성령이 수면 위를 움직인다면 수면에는 그 모습이 비칠 거라고 줄곧 생각했다. 여기에서 물과 물의 접힘, 주름, 동심원에 대한 감상적인 느낌이 비롯되었으며 잿빛의 물-내가 북구인이기 때문에-에 대해서도 같은 느낌을 품게 되었다. 나는 단순하게 물이 시간의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년 한 해의 마지막 날이면 약간 이교도적으로 보이지만 훌쩍 물가로 떠난다. 되도록 바다나 대양이 가까운 곳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롭게 만끽할, 새로운 시간 한 컵이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려고 한다. 벌거벗은 처녀가 조개를 타고 있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고대하는 모습은 구름 한 조각이나 자정의 해안가에 부딪히는 파도다. 내게는 그것이 물에서 나오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뭐든 다 안다는 집시 같은 태도가 아니라 겸손함과 감사함을 품은 채, 물이 해안에 그리는 레이스 같은 무늬를 응시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 도시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내 경우에는 이유라고 해야 할 테지만, 이런 환상에는 프로이트적인 측면이나 특히 척삭동물과 관련된 점은 조금도 없다. 물론 파도가 모래 위에 남긴 무늬와 그 자신도 괴물인, 어룡의 후손이 철저하게 진행할 무늬의 조사 사이에 어떤 진화적-단순히 인간적이 아니라면- 이나 자서전적인 연결을 지어볼 수 있을 것이다. 베네치아의 건물에 새겨진 수직의 레이스 무늬는 물로 칭해지는 시간이 어디든 육지에 남긴 최고의 선이다. 게다가 그 레이스의 전시물-즉 현지의 선물들- 이 지닌 사각형 속성와 형태의 개념을 거부하는 무정형의 물 사이에는 분명히 관련성- 설령 명백한 의존관계는 아니라고 해도- 이 있다. 마치 다른 어느 곳보다 이 도시에서는 시간이 열등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공간이 시간이 소유하지 못하는 유일한 속성 즉, 아름다움으로 반응하는 것 같다. 그래서 물이 이러한 반응을 취하고, 그것을 비틀고, 세게 치고 잘게 자르기는 해도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안전하게 아드리아해로 실어가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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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주인은 목소리다. 점잖게 행동하고 저 숙녀의 말을 끊지 말자. 저 말은 다 쓰레기지만 그녀는 철석같이 그것을 믿고 있다. 내 안에는 입밖으로 소리를 내는 행위에서 내용에 상관없이 육체적인 면을 늘 존중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인간 입술의 움직임 자체가 그것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보다 더 본질적이다. 나는 앉아 있는 안락의자에 더 깊숙이 파고들었고 저녁 초대가 아니었기에 다과로 나온 쿠키에만 정신을 집중하려고 애를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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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을 묘사해.” 그러면 당신은 지구가 빛을 향해 다른 쪽 뺨을 돌리는 동안 자카리아의 대리석 조개 위에서 한 시간 가량 휴식을 취하는 그 빛의 피로를 감지한다 이것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겨울빛이다. 그 빛은 온기도 에너지도 우주의 어딘가 혹은 적운 근처에 버리고 남겨둔 채 아무것도 옮기지 않는다. 빛의 입자가 품은 야망은 물체에 가닿고 그것을 크게 혹은 작게 보이게 만드는 것뿐이다. 그것은 티폴로나 틴토레토의 빛이 아니라 조르지오네나 벨리니의 빛, 즉 사적인 빛이다. 그리고 이 도시는 빛이 유래한 영원의 애무를, 빛의 손길을 음미하며 빛 안에서 머무른다. 물체 덕분에 우리는 빛이라는 무한함을 사유화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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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은 우리 몸에서 가장 자율적인 기관이다. 그것은 눈의 관심을 끄는 물체들이 필연적으로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눈은 절대 자신을 볼 수 없다. 눈은 신체가 잠에 곯아떨어지는 순간 마지막으로 기능을 멈춘다. 신체가 마비나 죽음으로 고통을 받을 때도 내내 열려 있다. 눈은 그렇게 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없을 때조차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현실을 계속 좇는다. 질문은 이렇다. 왜? 그리고 그 대답은 이렇다. 환경이 호전적이니까. 시력은 우리가 아무리 그것에 잘 적응한다고 해도 여전히 호전적으로 남아 있는 환경에 적응하는 도구다. 환경의 호전성은 당신이 그 환경에 머무는 길이에 비례해 늘어난다. 점점 늘어가는 나이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간단히 말해서 눈은 안전을 추구한다. 그런 성향을 생각하면 눈이 전반적으로 예술과 특별히 베네치아의 예술을 매우 좋아한다는 사실이 설명된다. 이것은 눈이 아름다움 그 자체의 존재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이유도 설명한다. 아름다움은 안전하고 그래서 눈이 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당신의 목숨을 앗거나 아프게 만들겠다고 위협하지 않는다. 아폴로 입상은 물어뜯지도 않고 카르파치오의 푸들도 마찬가지다. [..] 아무 쓸모없는 데이터라 하더라도, 눈은 계속 정보를 모은다. 사실 쓸모없는 데이터일수록 초점을 더 날카로운 법이다. 질문은 ‘왜'이고 그 대답은 ‘아름다움은 항상 외면적이기 때문에'이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예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눈을 큰 진폭으로 진동하거나-무인의 말투를 빌리자면-방랑하게 만드는 것은 아름다움-그 위치와 특징-이다. 왜냐면 눈이 머무는 곳에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미감은 자기보호 본능과 쌍둥이이자 윤리보다 더 신뢰할 만하다. 미학의 주요한 도구인 눈은 절대적으로 자율적이다. 자율성에서 보자면 눈보다 우월한 것은 눈물밖에 없다 .. 
(이경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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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yeol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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