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죽음
vxtxmrxffx · 21 days
Text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올해 초부터 2년 뒤인 2026년 1월에 자살하기로 마음을 먹고 차근차근 계획을 실행해 나가고 있는 상태다. 어차피 행복하지 못할 거면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이나 하다가 끝이라도 내 의지로 맺어야 미련이 없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태어남에 목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는 것에는 목적의식을 가지라 배우며 자란다. 왜지? 난 그런 거 잃어버린지 오래야. 아니, 애초에 갖고는 있었을까?
어차피 모든 생의 도착점은 죽음뿐이라는 것이야 누구나가 아는 사실 아닌가? 목적의식이라는 거창한 수식을 달고 있지만 다들 그냥 생존본능에 의하여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뿐이지 않은가?
세상은 원치도 않는 자유를 쥐어주고는 자꾸 나보고 책임을 지라고 한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은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들었다. 지금도 되새기곤 있지만, 내가 언제까지 이런 농간에 놀아나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호기심이 많아 늘 여기저기 들쑤시고 답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삶이란 가혹함 그 자체다. 이곳엔 그 어떠한 답도 존재하지 않는다. 매일이 미궁으로 빠지기 십상이니 무얼 하더라도 불안정하고 위태롭다.
정 없으면 내가 만들어서라도 답을 내려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내가 내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2년 동안 잘 훑어보도록 해야겠지.
4 notes · View notes
1001muni · 10 months
Text
우리는 죽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반자가 밥 준비하면 셋이서 지켜보던 자리에
이젠 딸만 둘이 남아 있네요.
라니가 떠난 후
눈물은 일찍 그쳤지만
5일 정도 멍한 상태로 보냈습니다.
할 일은 다 하는데 뭔가 멍하니...
고운 친구들이 위로주도 사주고
동반자와 아픔을 나누면서
이제 회복했다 싶습니다.
죽는 게 어디 라니뿐이겠습니까.
우리 아이들 모두 하나하나 죽을 겁니다.
저도 언젠가 죽습니다.
Tumblr media Tumblr media
저는 죽음과 관련된 얘기를 잘 합니다.
나 죽을 때 어쩌고저쩌고,
나 죽고 나면 어쩌고저쩌고...
그러면 듣는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며
뭘 그런 얘기를 하냐고 막습니다.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금기어 같은 느낌입니다.
그런데 말 안 한다고 안 죽습니까?
저는 오히려 죽음에 대해 자주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좋은 글귀들 많이 읽으시는데,
내가 언젠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그게 1분 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그 글귀들처럼 살게 됩니다.
8 notes · View notes
fruchtchen · 10 months
Text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엘리자벳 - 이해준 (죽음)
Elisabeth - Lee Hae-jun (Der Tod)
2 notes · View notes
the-crying-king · 2 years
Text
Tumblr media
제발 날 죽여줘요
7 notes · View notes
dod333777 · 1 year
Text
상상
요즘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것 같다. 아무도 모르는 죽음에 대하여 우울한 마무리 하듯이 말야. 가족이 슬퍼하겠지, 고양이는 날 그리워 할까... 아무 미련 없이 떠나는 죽음, 이 또한 도망으로 치부해 버리는 나의 비겁함.
아직 마무리 할 나이는 아닌데, 왠지 살면서 해볼건 다 해본듯한 마음이 들어 생에 미련따위는 없는...
도망아닌 선택으로 변질되는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4 notes · View notes
summerlypeach · 5 months
Text
Tumblr media
아빠를 보낸 지 삼십일이 지났다.
내 평생 써왔던 모든 자전적 수필과 어린 시절 동시의 마침표는 사실 ‘아빠’였다. 참 유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원망하고 미워했었다.
아빠의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슬퍼해도 되는가, 과연 나는 이럴 자격이 있는 자식인가’를 수천 수만 번 자문했었다. 아빠를 미워했던 그 때의 내 마음은 삼십여 년의 시간치만큼 더 괴롭고 더 아프게 내게 고스란히 돌아왔다. 슬픔과 죄책감 그 잠깐의 사이 엄청난 혼란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여전히 그 혼란의 마음은 정리하지 못했다. 당신 생의 반절을 따라 살아보니 내가 그렇게 닮고 싶지 않던 ‘당신’과 ‘나’는 마주히 닮아있었다. 그 고독이 드리운 긴 그림자마저 꼭 맞물려서.
아 당신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빠가 응급실로 옮겨 간 밤. 나는 수많은 기계들에 둘러싸인 그의 옆에서 차게 식어가는 그의 손을 잡고 미안하다는 늦은 고해밖에 할 수 없었다. 볼로 옮겨간 내 손끝에서 느껴졌다. 우리가 곧 이별하게 될 거라는걸. 연달아 찾아온 뇌경색으로 돌아가 있던 아빠의 눈은 그 순간 나와 마주했고, 그 굳은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이 생에 아빠와 화해하지 못했지만, 아빠는 가서 할아버지랑 꼭 화해해. 할아버지가 기다릴 거야’
용인에서 택시를 타고 새벽에 도착한 막내까지 기다려 준 아빠는 곧 지쳤는지 중환자실로 옮겨 갔다.
그 새벽 우리는 구겨진 채 차를 타고 아빠가 있었던 재활병원으로 갔다. 도둑마냥 아빠의 짐을 빼서 차에 실었다. 평생을 간결하게 살아온 아빠는 아픈 동안 자기도 모르게 짐이 참 많이 늘어있었다. 그렇게 아빠를 가득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즈음 하루 두 번에 나눠서 10분씩 가족들은 중환자실의 아빠를 면회했다. 분명 나와 눈이 마주쳤었는데 아빠는 더 이상 눈을 뜨지 못했다.
어느 오후의 면회에서 나는 물었다. 아빠가 지금 고통을 느끼고 계시냐고. 그건 아니란다. 하지만 모든 장기가 망가지고 심장 하나만 온전하다는데, 그게 아빠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 이상의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아빠의 심장만이라도 살려서 보내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하나요?’ 모진 말은 또 못된 내가 먼저 꺼냈다.
아빠에게 뇌경색이 찾아온 지 십 년이 훌쩍 넘었다. 아빠는 산을 좋아했고 자연을 그리워했다. 그런 아빠가 몸에 갇힌 게 십 년이 지난 거다. 나는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엄마는 힘들어했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아빠와 반년의 재활을 함께한 건 엄마였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식들의 뜻이 같아서 엄마는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우리는 하루 면회를 쉬었다.
장례식에 아빠의 건강한 사진을 두고 싶었다. 마냥 아픈 사람으로 있다가 가는 걸로 기억되게 하긴 싫었다. 각자의 앨범에서 사진을 모았고 나는 엄마와 액자를 사러 갔다. 영정을 찍어두기엔 너무 젊은 나이였기에, 내 결혼식의 사진들 중 하나로 영정 액자도 만들었다. 잠깐 카페에 들러 엄마와 아무일 도 없는 듯 무심히 차도 마셨다. 아빠의 장례식을 치를 곳에도 미리 가보았다. 어떤 크기의 공간이면 될지 해는 몇 시부터 얼마나 드는지도 보았다. 미리 준비하라던 아빠의 당부에 사두었던 묘지에도 갔���. 외할아버지가 계시고, 외할머니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잠드실 곳. 그곳에 아빠와 엄마의 자리도 있다. 숲과 가장 가까운 곳, 강이 가장 멀리 보이는 곳. 아빠가 보았다면 좋아했을 거 같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아빠의 묘비에 쓰일 글을 정리했다. 아빠를 닮은 글, 이해 못 했지만 이제는 너무 알 것 같은 당신을 닮은 글.
다음 날 엄마와 나는 담당 교수와 면담을 했다. 간호사들은 주저했던 말을 ‘어려운 결정 잘 해주셨습니다. 아버님 지금 많이 힘드실 거예요.’라고 교수는 단조로이 정리해 주었다. 생전 아빠가 연명치료를 원치 않았음을 확인하는 글을 쓰고 간단한 인적 사항을 적은 서류를 냈다. 법적인 서류라더라.
아빠를 보내기로 한 날, 모든 가족이 모였다. 차례로 인사를 하고 호흡기를 뗐다. 숨죽여 자는 모습이던 아빠는 가삐 숨을 쉬었다. 오래 뜨지 못한 아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만 원망해 아빠. 내가 아빠 보내주자고 했어. 미안해 내가 미안해.’
호흡기를 떼면 아빠가 바로 갈 거라던 교수의 말과는 다르게 아빠는 힘들게 숨을 쉬어갔다. 임종이 가까워오면 불러주겠다는 간호사들의 말에 우리는 무거운 걸음으로 중환자실을 나서야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승압기를 포함해 다른 기계들도 떼시겠냐는 물음을 받았다.
'아 그거까진 생각하지 못했는데.’
승압기도 뗐다. 아빠를 살려두던 기계들이 모두 멈췄다. 오후 두시, 아빠는 참 예쁜 가을 단풍을 뒤로하고 좋은 날에 그렇게 잠이 들었다.
아빠는 하얀 천을 곱게 덮고 엄마와 장례식장으로 갔다. 나는 아빠 뒤의 단풍 나무를 찾아서 사진을 찍고 병원을 떠났다.
짧은 장례였다. 신부님과 많은 신자분들이 오셔서 아빠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울면 아빠가 좋은 곳에 가지 못한다는데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가 그걸 아는데? 누가 다녀온 거야? 어떻게 아는데? 아빠가 죽었으니 슬픈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한낱 보잘것없는 인간일 뿐인데 어떻게 슬픔과 눈물을 참으라는 건지. 나는 또 가면을 써야 했다. 우울하지 않은 나, 씩씩한 나, 구김 없는 나. 서글프다. 아빠가 가는 날에도 나는 가면을 써야 하다니.
발작이 올까 모두들 내게 비닐을 챙겼냐고 했다. 아빠의 입관날이었다. ‘울지 마세요. 제가 아버님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장례지도사는 적당히 다정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아빠의 푹 꺼진 볼은 봉긋 차있었고 아득히 닫혀있던 눈은 그저 평온히 잠든, 내가 아는 아빠의 얼굴이었다. 그 순간엔 내 죄책감을 잊었다. ‘내가 아빠를 아픔 없는 곳에 편히 잠들 수 있게 보내준 게 맞구나.’ 잠깐 자만도 했다. 아빠의 배에도 기대 보고 아빠의 이마에 내 이마도 맞대어 보고 나는 어린아이처럼 아빠 주위를 맴돌았다.
살짝 흔들면, 가지 말라고 떼쓰면 잠귀가 밝았던 아빠가 꼭 일어날 것만 같았다.
발인 날 아침엔 비가 왔다.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당신이 지은 집에 아빠는 큰 사위의 품에 안겨 영정으로 돌아왔다. 자식을 먼저 보낸 할머니의 통곡은 그이 자식의 것과는 달랐다. 그 순간엔 나도 할머니께 참으라 말했다. 참 이기적이지. 참아지는 게 아닌 걸 알면서.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했다. 아빠의 세례명은 라파엘.
'아빠는 별이 될까 천사가 될까.'
입관할 때 몸이 틀리지 않게 묶는다고 하더라. 우리는 그러지 말자 했다. 몸에 갇혀있던 아빠를, 가는 날까지 자유롭지 못했던 아빠를 또 묶어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고이 갔다. 많은 분들의 기도 속에, 꽃으로 가득 채워 아빠를 묻었다.
‘친구야 잘 가라. 잘 가라.’ 거친 손으로 흙을 뿌리고 밟아주며 아빠의 친구는 목놓아 울었다. 생전에 약속했었다더라. ‘우리 둘 중에 누가 먼저 죽든 잘 가라고 꼭 밟아 흙 다져주는 게 친구 아니겠느냐’고.
아빠는 갔다. 내 방은 아빠의 장례 이후로 멈춰있다. 어느 것도 풀지 못하고 그대로 쌓여있다.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많이 울어서 아빠가 좋은 곳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노파심과 죄책감에 성당을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와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를 보내며 신앙을 약속했듯 나도 꼭 같이 약속했다. 키큰 남자와 나는 늦었지만 혼배 성사도 했다. 혼배 성사 때 작성한 문서는 봉인되어 바티칸까지 간다고 한다.
사랑을 약속하는 날의 고해에서 신부님은 ‘사람이 죽으면 사랑밖에 남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 남은 감정은 사랑 하나로 충분하지. 그만 자책하자.’
사망신고를 하러 간 날, 아빠의 이름으로 가족관계 증명서를 뗐다. 그거라도 있어야 아빠가 정말 내 아빠였던게 증명될 거 같아서. 사실 그 어떤 증명은 필요도 없이 나는 그의 딸인게 확실하면서도 말이다.
언젠가의 면회에서 휠체어에 앉은 아빠를 붙잡고 바닥에 주저앉아 죽고싶다고 했었다. 아빠 당신은 괜찮느냐고 나는 더 없이 견딜 수가 없다고. 정말 지쳤다며 세상에 우리 둘 뿐인 듯 엉엉 울었었다. 당신은 날 기억하지도, 내가 했던 말의 의미도 모를테지. 아빠가 아프다는 것이 그 순간 내게는 안도였다. 하지만 이젠 죽을 수 없다. 내가 죽으면 아빠를 만날 수가 없으니까. 주어진 날까지 다 살고 죄 없이 죽어야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아프지 말고 아빠 좋아하던 숲과 나무 많이 보고 편안히 있다가 우리 다시 만나자. 나 이서방이랑 오래 살다가 나중에 갈게. 아빠 나 죽지 않을게.’
모든 고해와 고백과 약속들은 다 늦어있을 뿐이었다. 돌릴 수 있는 일은 그런 말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늦었다. 너무 느렸다 나는.
'아빠 내 사춘기가 아빠에게만 너무 오래였어서 미안해.'
앞으로 내가 쓰는 모든 글들의 마침표 역시 '아빠'일 것이다. 가슴이 미어지고 코 끝이 아플만큼 찡해도 나는 마침표를 찍고 늘 그를 기억해야 한다.
내가 결혼하면 수영장이 있는 집을 지어주겠다던 아빠의 말이 생각난다. 부지런했던 아빠는 아마 그곳에서도 우리를 위한 집을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희고 밝은 집을 짓고 있을거다. 아프지도 않을 것이고 고단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아빠가 기쁨과 평온속에 있기를 기도한다.
✟ 라파엘의 묘
‘여기’라는 말에 홀렸으며
‘그곳’이라는 말을 참으며 살았으니
여기를 떠나 이제 그곳에 도달할 사람
1958.6.22~2023.11.4
1 note · View note
Tumblr media
copyrightⓒ 2023 All rights reserved by TheOnlyUniverse
행복하고 싶었어요. 사랑받고 싶었구요. 살고 싶었어요. 그냥 그것뿐이에요.
0 notes
k1004 · 9 months
Text
youtube
1 note · View note
heilmetropolis · 1 year
Text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수감자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감옥은 원래 죄인을 벌 받은 동안 어떤 불편함과 함께 있어할 곳이지. 대한민국 교도소는 인권을 철저하게 지켜주고, 아프면 병원 데려가고, 음식 잘나오고, 직업훈련도 시켜주는 수준이다.
0 notes
bluefox9023 · 1 year
Text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youtube
월야에게 설휘가 격전 중,
후퇴하지 못하고 붙잡혔다는 소식이 닿았습니다.
과연 월야는 어떤 감정일까요..?
설휘는 괜찮을까요?
1 note · View note
vxtxmrxffx · 10 days
Text
새벽 5시 22분.
창문을 보니 어스름하고 푸르뎅뎅하다. 문교와는 계속 얼굴을 보기로 했지만 이전같은 일반적인 연애의 형태를 띄고 있지는 않다. 나도 또라이지만 이 새끼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상한 인간이다. 이상하지 않은 인간이 보기에는 언뜻 비슷한 양상을 띄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겠지만 이상한 인간끼리 붙여놔도 어차피 서로를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간극은 절대로 좁혀지지 않고 이해의 부재는 계속 된다. 그래서 인간들은 모두 외롭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창문을 흘끗 들여다보니 그새 앞전보다 밝아졌다. 고작 5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상해-. 눈이 무겁다. 이대로 뜨지 않기를 바라보지만 소용은 없을 것이다. 사실 죽는 걸 진심으로 바란 적도 없거든. 죽어버리면 내가 바라던 모든 것들이 어떻게 이뤄지거나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 알 수가 없잖아?
난 호기심이 많다. 모든 것들을 골똘히 생각하며 시간을 허비하곤 한다. 그러다보면 항상 결말이 죽음으로 이어졌다. 삶은 죽음과 가장 밀접하다는 게 내가 최근에 찾은 답이다. 완벽한 정답은 아니라서 기분이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역시 답을 내가 직접 내리는 수밖에 없나.
무(無)로 돌아가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4 notes · View notes
1001muni · 2 years
Text
Tumblr media
전에는 뒷산 꼭대기에도 따라가던 흰둥이는
이제 12살이 되어 집 근처에만 머뭅니다.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둘 중 누가 먼저이든 우리는 이별하게 되지요.
그래서 저는 매 순간을 꼭 꼭 밟으며 삽니다.
6 notes · View notes
parkmj · 1 year
Text
我想死
0 notes
dheart · 2 years
Text
All interest in disease and death is only another expression of interest in life.
Thomas Mann
질병과 죽음의 모든 관심은 삶에 대한 관심의 또 다른 다른 표현일 뿐이다.
1 note · View note
valepiedra · 2 years
Photo
Tumblr media
CISNE NEGRO Luz y oscuridad, todos somos cara o cruz! Por hoy dejo la luz y me hundo en la profundidad de la noche para morir un poco y tratar de renacer un poco más puro. Morir para limpiar pecados, renacer para volver a intentarlo. . . . #poetry #poesia #시 #诗歌 #詩 #fotografia #photography #摄影 #写真撮影 #muerte #death #죽음 #死 #死亡 #renacer #bereborn #生まれ変わる #重生 #다시태어나다 #cisnenegro #blackswan #黒い白鳥 #黑天鹅 #검은백조 🖤 (en Ciudad Autónoma de Buenos Aires) https://www.instagram.com/p/CdShHeWuS03/?igshid=NGJjMDIxMWI=
0 notes
koreaams-posts · 2 days
Text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3 notes · View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