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수사학
Text
엄마의 수사학
엄마는 아집을 넘어 독선적이다.
우선 피해의식이 매우 심하고, 감정적이다.
그 어떤 영화에서 유명한 작가가 그랬던가?
자신이 여성 캐릭터를 잘 만드는 방법은 남자캐릭터에서 책임감과 이성을 빼면 된다고.
오늘도 엄마에게 뺨을 맞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감정이 일어나지를 않는다.
화도 안 나고, 승질도 안 나고, 눈물도 안 난다.
애초에 화를 낸다는 건, 기대를 한다는 거고, 기대라는 감정이 희망에서 나온 것이기에 그런 것 일지도 모른다.
그저 자기연민을 안 하고, 세상을 선과 악;좋은것과 나쁜걸로 구분짓지만 않으면 된다. 나의 모든 것은 정의감이 원천이기에, 나를 히어로로, 상대를 악당으로, 상황을 시련으로 인지하지 않는 이상 그저 더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예전에는 우리 부모님을 있는대로 안 보고 과대평가 했음 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는 과대평가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당신의 어떠한 행동이, 상황에 대한 판단이, 누구에게는 선이 되고, 그 누구에게는 악이 되는것 아닌가?
마치 같은 INFP라도, 그 속은 천차만별 다르듯이, 사람을 자세히 지켜보지도 않는 이상,
엄마는 그렇게 뺨을 때리고 다시 돌아가 경을 읽는다.
그래서 사람 속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아무리 종교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도 시커먼 속이 보인다.
그들이 부처님을 뵙는 마음이 나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애초에 나의 잘못된 생각이였던 것이다.
뭐랄까, 예전에는 세상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절에와서 모두를 위해 부처님을 뵈었다면, 이제는 오직 나만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배풀고 (물질적인 것이 아닌 나의 마음의 편안함을 위해서), 나를 위하여 부처님께 기도한다 (나의 정신과 신념을 위하여).
엄마가 기도하다가 갑자기 왠지 찔리나 보다.
전에 해서 끝낸말 또 끄내고 또 끄네서 나의 '악'을 증명하여 본인을 정의로 증명하려 애쓴다.
전에 말실수해서 그자리에서 바로 사과한말, "엄마가 그래서 아빠가 바람피지"를 또 꺼낸다.
내가 보기엔 설령 내가 이 말을 않했어도
그러면서 또다시 시나리오를 쓴다. 그저 본인 직관으로 느낀, 사실이 않은 사실을 부풀린다.
마지막은 결국 본인을 가련한 시련에 빠진 정의의 공주님으로 포장한다.
너는 내가 너희 아빠랑 이혼하지 않은걸 고마워 해야지.
내가 우울증 때문에...(가련에 보이게 하려고)
너는 나를 벌래같이 밟잖아 (내가 언제?)
엄마는 감정을 사실화하고, 진실화 시키려 한다.
나는 전부터 "엄마가 이런 자신을 인지했으면 좋겠다." 이 행동이 얼마나 많은 것을 눈과 판단력을 가릴수 있는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으나, 이것 또한 나의 기대였고, 잘못된 희망이였기에, 분노라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이였다. 에초부터 옳지않은 일에 희망을 품으면 결과는 나쁠 수 밖에 없는것이다. 나 또한 앞에서 서술하였다 싶이 엄마의 그대로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고, 감히 남을 나처럼 바꿔보겠다는 (내가 신도 아니고 감히) 어리석고 오만한 생각을 순간 하여 잘못된 희망을 품었던 것이다.
잘못된 희망을 품는건 내 자신을 독재자로 만드는 것과 다른점이 없다.
각설하여 엄마는 그러면서 말한다. 내 행동이 얼마나 나빴는지, 본인의 입장을 과장하면서, 둘이만 있을땐 아무말도 안 하더니 가족들이 있을때 큰 소리로 외친다. 동시에 내가 나의 상황을 설명하면 닥치라고 협박한다. 이럼으로서 자신의 애피소드는 실제화된다. 내가 그래서 "치사하다고, 어차피 내 상황을 설명하면 이렇게 안들어 줄거면서"라니 할 말을 잃는다. 그러면서 대중들이 본인 얘기에 신빙성을 잃을까, 자신의 편이 돌아갈까, 갑자기 자신이 나에게 서운했던것에서 대중들이(지호가) 나에게 서운해 할만한것을 쫙 나열하며 그들이 나에게 적개심을 일으키게끔 만든다.
그러고 마지막 화룡정점. "너! (대중들)에게 다시한번 그렇게 굴면 내가 너의 입을 찟어놓을거야!!"
휴. 이제 끝났네. 이후 또다시 얼마나 나를 감정 쓰레기통마냥 틈만나면 찔러대고 갈둬댈지 상상도 안간다. 그러고 마지막에 지호말에 대꾸를 않한 건, 엄마에게 맞는것 따위가 두려운 것도 아니고, 그저 시끄럽고 굳이 이런 터무니없는일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아서다. 온전히 나를 위한 것. 내가 딱히 지호나 남의 총애나 호감도 받고 싶은 마음도 코딱지 만큼 없어서, 그저 온전히 나를 위한거다.
애초에 남을 위하는 것은 참 바보같은 것이다. 내가 위한다는 정의와 행동이 상대와 완전히 같지 않은 이상, 아무리 나의 것 (에너지, 진심, 생각, 돈,등)을 내어준다 하더라도, 상대는 인식하지 못한다 (모른다). 그리고 상대가 내가 투자한 만큼의 같은것을 준다고 장담하지도 못한다. 만일 줬다 하더라도 내게는 필요하지 않은 것이며, 그만큼의 대가를 바라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그 행동 본연의 의미를 흐리는 것과 별게로 가능성 없는 기대는 사람을 고통스럽게함과 동시에 상대에게 엉뚱한 분노를 일으키며, 최악의 경우, 분노를 표현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바보같은 것일까? 나 또한 매번 잊고 또 다시 남을 위하며 상처입고 후회한다.
1 note · View note
halfsiblingsinblue · 7 months
Text
찾았다, 수사학. 찾았어. 자네가 물어보던 그 창백빛 고래 말이다.
요 며칠간 집중해서 들은 결과, 안타깝게도 고래 이야기는 들리는게 없더군, 해안에 누군가가 고래를 칠해놓은 배를 비행 청소년들이 훔쳐갔다는 거 빼곤. 기록들 중에서도, 아무리 읽어도 그 처음 찾았던 보고서밖에 없었다.
하지만 답은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 레나가 해리한테 보내주는 낡은 미확인동물 잡지들 말인데- 그중 하나가 그 순경을 인터뷰했었고 우리는 그걸 읽게 됬다. 뭐, 엄밀히 말하면 해리가 읽은거지만.
어쨋든, 거기 써있기를, 그날 그 순경은 순찰돌 겸 술도 께기 위해 해변을 따라 걷고 있었다. "먼 바다쪽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 고갤 돌리자 [창백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걸 봤다. 그리고 몇초 후, 창백이 바다속에서 뛰어올랐다." 여기까진 보고서에 나와있는 내용이지만, 이 다음 내용은 새로운 정보다.
"...멀리 떨어져 그 창백빛 덩어리를 쫓아 창백이 움직였다. 그 광경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였다- 마치 기름이 물과 만나는 표면과 같았고 동시에 구름이 뭉개져 합쳐진 것같은 자연스러움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보였다. 갈라진 창백빛 꼬리를 향해, 전혀 어울리지 안는 어두운 물체가 잠시 벌어진 창백 사이로 보였다 사라졌다..."
그 고래 뒤에 무언가가 있었다, 수사학. 이것이 뭔진 모르지만.
@rhetorical-rhetoric
35 notes · View notes
textlab · 3 months
Text
개인, 개인성, 개인주의 (2/4)
Gesellschaftsstruktur und Semantik, Band 3. Niklas Luhmann
번역 – 조은하, 박상우
Ⅳ.
현대적 의미에서 개인성에 대한 ‘장소’를 남기지 않는 것은 계몽 이전 유럽의 사회구조적 조건만은 아니다. 커뮤니케이션이 학습되고 수행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장소의 부재, 즉 topos의 부재.[1] 다듬어진 커뮤니케이션은 쌓여 있는 주제들 혹은 다른 topoi, 혹은 어느 정도 일반화에 초점을 맞춘다. 그 목적은 설득력과 카리스마를 통해 풍부하게 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 자체를 증폭하는 것이다. 후기 르네상스까지, 주제들에 대한 이런 강조는, 인쇄술의 영향을 통해서 더욱 강화되었다. 비록 점차 그것은 웅변적 수사학으로 제한되게 되었지만.[2] 변증법과 수사학 혹은 일반적 topoi와 특정한 topoi 사이의 모든 차이와 구별을 넘어서서, 한 가지 전제가 의문 없이 받아들여졌다. 가치 있고, 중요하고 효율적인 것으로 커뮤니케이션을 구별하는 강화 효과는 일반화 자체에 놓여 있고, 이런 방식에서만 획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건적, 시간적 그리고 사회적 일반화가 여기서 상호 교차한다. 부분적으로, 이는 다른 사례들과 상황들을 가로지르는 의미 구성의 사용성으로 전해지고, 부분적으로는 기존의 전통, 검증 가능성 그리고 신뢰성의 구성 부분이라는 그들의 위치로 전해진다. 부분적으로, 그것들은 입장 혹은 의견에서의 어떤 차이와 독립해서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 의해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이런 언급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특정한 기회를 치장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그것들은 논의의 ‘발견’(inventio)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들은 개인적 사례를 높이고 과장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을 우연적이고 이행적으로 다루었다.
다듬어진 커뮤니케이션이 요구될 때면 언제나, 사람들은 일반화된 방식으로 이를 강화한다는 임무에 맞춰 교육받는다. 악과 선에 대한 도덕적 도덕 역시 그에 따라 일반화되고, 칭찬과 비난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으로 바뀐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훈계와 교육에 기여하고 부분적으로는 세계의 상태에 대해 한탄하는 데 기여한다. 사람들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은 이 기초 위에서 유형화된다. 캐릭터 유형, 개인들에 대한 초상들이 그들 자신 하나의 문학적 장르로 발전한다.[3] 이런 캐릭터화가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과에 대한 관심과 안내를 기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어떤 비교 가능한 경우도 존재하지 않는 다양하고 우연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는 삶의 상황 혹은 성격을 가진 고유하고 특정한 개인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관심을 가지길 기대할 수 있을까? 관심을 끌어 내기 위해서, 학교에서 배우고 학습한 것 그리고 가장 먼저 커뮤니케이션에 의미를 줄 수 있는 것 모두에 맞서서 ‘개인’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 이런 이유로, 언급할만한 가치가 있는 근대적 개인의 흔적은 18세기 이전의 자서전이나 소설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4] 더 확장된 의미에서 ‘개인’에 대해, 즉 의미작용의 문제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심지어 미학과 도덕적 자질을 분리하는 것조차 가능하지 않다. 아름다움, 특히 여성들이 관계하는 것은 미덕에 대한 주제적 지표였다. ‘선하지만 추하다’는 결합을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치 이는 상승의 목적을 부숴버리는 것처럼. 영웅과 악당들이 세상에 관여하는 행위들을 기술함으로써, 이야기는 사실적으로 구성되고 제시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기술은, 일련의 경험과 결정을 통해 스스로에게 구별되는 성격을 부여하는 자기-형성적 개인성을 상상할 수 없다. 그보다는, 상승을 성취하는 방식으로서 리얼리티에 대한 언급으로 단순하게 치장하는 하나의 사례에 초점을 맞춘다.
‘개인’의 시맨틱을 추적할 때 같은 조건들에 다시 만난다. 18세기가 훨씬 지나서 개인에 대한 독창적인 어원적 이해가 확산된다. 그것은 이 존재를 다른 개인들과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개인성을 자연적인 것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사람(the person)’은 단지 특별한 경우, 합리적 본질의 개인화다. 각 개인은 나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개인’을 부분으로 나누는 것은 그들의 파괴(그들 부분들의 부분성의 파괴를 포함하는 것)로 이끌 수 있다. 이 개념에 근본적인 하나의 이해, ‘인간 존재의 개인성’에 특별하게 연결된 것은 분명하게 인식 가능하다. 존재의 문자적인 ‘개인성’, 그들 본질, 그들의 영혼의 분리 불가능성은 그들에게 그것이 어떤 형태이건 영원한 삶을 보장한다. 분리 불가능한 것은 세상을 떠날 수 없다. 단지 복합적인 것, 비본질적인 것만이 이행적이다. 따라서 영혼은 그것이 개인적인 이상 불멸이다. 단지 이런 방식을 통해서만, 개별 인간 존재들이 최후의 심판에 그들 스스로에 대해 제시하고 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이 종교 시스템이 스스로와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구원과 저주 사이에서 코드화 하는 핵심 차이다. 마침내, 그러나 적지 않게, 이는,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직접적 이해에 맞서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종교와 도덕을 설교하는 것이 가능한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는, 개인성이 관여한 곳에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역사적 변화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확실히 전통과는 관심이 없었던 작가인 Edward Young은 1759년에 “내가 생각하기에 모든 시기를 통 틀어 인간 영혼은 동일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썼다.[5] 그래서 상승은 도덕적 평가의 경로로 향하거나 혹은 Young의 경우처럼, 문명 비평과 관계한 자연 경로를 향한다.[6] 그렇지만 그들은 더 이상 ‘개인’의 개인성의 상승으로 이해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contradiction in adiecto (개념상 모순)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 개념의 이런 형성과 파괴 불가능성 개념에 대한 위탁은 무엇보다, 형식의 변화 가능성이 인식될 필요가 있다는 것, 개인성은 특정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과소하게 특정되는 방식으로 규정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형성하기 위한 대안적 방법은, ‘개인’이 더 이상 (우연적) 특성들의 특정한 모습들에 의해 개인화 되는 것으로서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 될 것이다. 개인성은 창조에 빚을 지고, 그 자신의 개인화의 원리, 그 자신 안에서 ‘차이를 개인화 하는 것’을 수행한다. ‘개인’은 하나의, 분리 불가능한 단위이고, 이는 정확하게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로서 보인다. 왜냐하면 단순한 통일체는 완전하다. (그것은 더 완벽해질 수 없다)[7] 이런 이유로, 적어도 후기 스콜라 철학 이후[8] 개인성 역시, 그 자체 principium individuationis (개성화의 원리)를 실현하고, 사실상 그 자신의 principium individuationis를 구성하는 하나의 자기-언급적 방식으로 규정되었다. Duns Scotus, Ockham, Suárez 그리고 Leibniz에 대해, 개성화는 존재의 자기-언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기-언급적 개인성이라는 면에서 이런 위치는 개인성의 원리와 범주에 대해, 본질, 개념론, 그리고 부정에 의해 기능하는 부분에 대한 길고, 뒤 얽힌 논쟁의 기초에 이르게 된다. 이는 획기적 발견이나 ‘과학 혁명’이 아니라, 어떤 확실성이 무너진 이후 획득되는 미봉책[9], 가능한 개념들의 다양한 저장고에서 선택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기-언급은 ‘자기-애’를 의미하고, 자기-애에 대해 주어진 이유는 자아의 동일성, 자아의 통일성이다.[10] 그래서 이런 논의는, 자기-애는 자신의 선과 완전성 속에서 충족을 찾는다고, 왜냐하면 이것 만이 대상과의 계속된 결합을 보증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도덕적, 종교적인 전환을 하게 된다. 이는 적지 않게, 누군가의 선과 완전성은 타인의 선과 완전성보다 그 자신에게 더 중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방식으로 자기-애는 신에 대한 사랑에 복속하고, 그것은 동시에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신이 창조한 인간 본성을 위반하는 거을 의미한다.
운 좋게도 이런 개념은 개인적 사람에게 어떤 특성이 ‘개인’에게 어떻게 그리고 어떤 수단에 의해 부여되는가에 대해 열려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한 개인적 존재는 다른 이에게서 구별될 수 있다. 17세기 지배적인 의견은 여전히 ‘개인’은 타인과의 관계, 특히 출생에 의해, 또한 지정학적 기원, 특정한 고향 혹은 가족에 의해, 혹은 충성심으로 연결된 가족에 대한 언급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이다. 이 모든 정보는 ‘개인’의 성격을 안정되고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줄 수 있었다. 자질은 잘 지도된 방식 안에서 사회적 문장에서 추론된다. 정신적 속성과 도덕적 대응은 자질에 대한 것인 것처럼. 따라서 이 시기 소설에서 언급되는 개인적 성격은 형식적이고 규정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타자에 대한 이런 관계는 상대적 방식으로, 그래서 신분제 사회의 높아진 이상을 인정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소설에서는 성격을 부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예를 들면 “그녀는 그 영지에서 가장 유명하고 부유한 집안 중 한 곳 출신이다”, “그녀는 궁정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또한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하나의 ‘조건’을 지시하기 위해서) “그녀는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었다”고 쓰는 것으로 충분하다. 15세기 이후부터 양성되었고, 종종 새로운 개인주의를 표현하는 것으로 칭송 받던[11], 인문주의자들 사이에 편지 왕래는 고전적 모델에 기반했고, 18세기 이후까지 공식적으로 남아 있고, 일반적인, 도덕적 범주들로 향해졌다.[12] 사람에 대해 도덕성을 언급하는 것이 자명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넘어서 개성(personality)에 대한 질문은 거의 없다.
소설 혹은 편지들에는, 요구된 것을 넘어서 진행하는 장점이 사적인, 종교적 혹은 정치적 감각 안에서 주입될 수 있고, 관계될 수 있다. 이런 장점은 어떤 Valeur, gloire를 구성한다. 그리고 또한 특정되지 않는 정상성과 대조하여, 다른 이들에게서 떨어진 개별적 존재를 설정하는 일정의 사려 분별과 성격을 구성한다. 그래서 개인성은 타자의 의견으로부터 좋은 자질이 독립한 것에서 보일 수 있다.[13] 우애의 예찬도 그것을 넘어 갈 수는 없다. 개인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판단은 인간 존재의 일종의 ‘걸작’에 묶여 있고, 그 기준은 성층화와 연결되었고, 아부로써 실용적 사용은 필수적으로 생각되었으며, 동시에 비판되었다. 이제 누군가의 평판 자체를 위해서만 찾아졌던 것으로부터 구별하기 위해, 의심스러운 추가적인 강조와 함께, ‘vrai’ mérite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개인성을 성취하는 것은 단지 진정으로 위대한 장점뿐이다.[14] 창조의 빛나는 첨탑으로 보이는 인간 존재 자체는 그래서 동시에 먼저 세상을 인식하고 그리고 이 영광을 스스로에게 돌릴 수 있는 ‘주체’일 수는 없다.[15] 17세기, 자기-언급적 내포가, 특히 열정의 통제, 대화에서 언어적 표현의 조절 그리고 자기-통제라는 점에서, ‘개인’을 강화하는 이런 도덕성 안으로 들어갔다.[16] 개인성과 성층화 한 사회 구조의 시맨틱은 또한 이런 의미에서 균형을 이뤘고, 그래서 도덕성이 가능해졌다. ‘개인’은 Erving Goffman이 ‘유령적 정상성’이라 불러야 했던 것과 비교해서 두드러질 것이 필요했다.[17] 따라서 orgueil이 초기 근대 서구 유럽 인간학에서 지배적 모티브로 강조되었다. 왜냐하면 도덕성의 단계는 더 이상 미덕과 이성의 객관적 개념 위에 기반하지 않지만, 여전히 성층화에 의존하였다.[18] 그렇지만 의미에서의 이상한 이동이 이미 orgueil의 성층-의존적 시맨틱 안에서 추적될 수 있다. 즉 그것은 ‘개인’을 찾아 냈다.[19] 긍정적 내포는 점차로 부정적인 부정적 의미에 의해 싫은 것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 개념은 결과적으로 부정적 개념으로 전환된다. (독일어로는, Hoffart !)[20] 이는 성층화의 타당성 상실과 관계 있지만 동시에 미묘한 방식으로 또한 개인성과 개인성 구성을 위한 사회적 관계의 의�� 작용에 대한 이해와 연결되어 있다. 17세기에 쓰여진 Jean La Placette의 Traité de l’orguil[21]는 여전히 자신들만의 특별한 방식을 구원을 찾는 종교적으로 구성된 개인들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Orgueil은 그래서 무엇보다도 ‘Second Artifice de l’amour propre: Nous consoler de ce que nous sommes en nous mémes par la consideration de ce que nous sommes dans l’Esprit des autres’ (자기-애의 이차적 기교: 타자의 마음 속에 있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고려함으로써 우리 속에 있는 우리 자신을 너머 우리를 위로하는 것)[22]을 통해서 성격이 규정될 수 있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사회적 정체성은 개인적(personal) 정체성에 대한 보상 기능을 취한다. 개인적 정체성은 그것이 얼마나 나쁘고 우아함을 필요로 하는지 보려 하지 않는다. 상상적인 사회적 판단을 만들어 냄으로써, 개인들은 그들 자신들로부터 그들 자신을 떼어내고, 이것이 orgueil가 거부되는 이유다. 거의 백 년 후, 사람들은 같은 거부에 있어 반대되는 이유를 발견한다. Orgueil는 타인의 의견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이유.[23] 그렇지만 이런 의미의 변화는 ‘개인’이 실제로 무엇인지, 그리고 타인의 판단에 대한 수용 혹은 정확하게 이런 판단에 대한 무관심이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해서 긍정적이거나 혹은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게 되는 이유를 표현하지 않는다.
그런 복잡한 의미론적 전환은, 단순하게 차이화의 증가와 개인화의 증가 사이의 조응 관계로 이해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성층화가 의의를 잃자마자 개인화는 더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성층화와 관계된 도덕성의 가치 저하가 이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성의 시맨틱에 대한 필요의 변화에서 발생한 문제는 (이 문제들을 적합하게 정식화할 어떠한 가능성도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은 채) 다른 많은 면에서도 감지된다. 가장 중요함 문제 중 하나는,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언제부터, 그리고 어떤 의미적 도움을 사용하면서 개인이 허용되냐는 것이다. 전통적인 평가의 등급으로는 이를 예상할 수 없었다. 원리상 다른 이들에 의해 성취될 수 없는 위치는 없지만, 예외적인 성취, 운명을 통해, 영웅주의 혹은 금욕주의 혹은 신성한 섭리를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는 유일한 위치들은 있다. 그렇지만 개인들은 고유성과 비교 불가능한 위치까지 스스로를 끌어올려야만 하는 어떤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Affection de singularité는 허영심의 형식으로 고려되었다.[24] Madame de Lafayette의 소설에서 Clèves의 공주는 그녀의 사랑을 통해서 정확하게 이것을 성취하고자 했지만, (그러나 여전히 사회적 관계에서 한정된 사랑 안에서!) 이런 허영심 때문에 실패한다. 개인성은 언제나 ‘개인’에 대해 부여된 어떤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고유성을 증명할 필요가 있거나 획득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고유성 심지어 누군가가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이미 그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야만 하기 때문이다.[25] 정확하게 이런 이유 때문에 단독성은 누군가가 어떤 것, 예를 들어 사랑 같은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어떤 것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존 규칙을 무시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식으로 사고하는 것이 1678년에는 이미 가능해졌고, 이에 대해서 1789년에도 여전히 거부되었다.[26] 영웅적인 것, 특별한 것, 모법이 되는 것은 여전히 갈구되었지만, 그러나 동시에 이미 새로운 인간학이, 비록 그것을 통해 인간 존재를 규정하지는 않지만, 자기-언급을 통해 인간 존재를 다루게 되었다는 사실에 의해 훼손된다. 그래서 영웅은 자기-숭배자가 된다. 적어도 이것은 그가 스스로에게 지닌 문제다. 만일 그가 영웅으로서 스스로와 커뮤니케이션한다면, 그리고 무엇이 영웅다운 것인지 다른 이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면, 그는 스스로의 영웅적 숭배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피할 수 없거나 혹은 악을 만들어 내는 효과를 가진 속임수를 통해서만 이를 피할 수 있다. 비록 잠시 동안 gloire의 본질로서 통일성을 주장하기 위한 절망적 시도가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다른 이를 배제한다. 비극은 그 주장에 대해 책임을 지고, 희극은 폭로에 책임을 진다. 19세기 후반부터, (esprit와 대조되는) 천재의 한 가지 특성은, 그가 직접적으로 자신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없고, 발견되기를 기다려야만 한다.[27] 영웅은 독자가 규정할 수 있는 일반인으로 대체되자마자, 동작과 운명을 통한 사람의 묘사는 내부로 이동해야만 한다. 그래서 개인성의 새로운 감각은 일반인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위한 조건으로 등장한다. 누군가가 이런 사람들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전형적 문제들을 경험하지만 동시에 그들 자신의 행동을 취하는 그들 자신의 경험에 의해 운명이 정해져 다른 이들과 달라야 한다.[28] 문제의 일반성(예를 들면 성차의 문제)과 운명의 특수성이, 모든 사람들이 특정한 어떤 것으로 그들 자신의 운명을 그들에게 부여하는 보다 복잡한 수준에서 전달된다. 이 모든 것은, 18세기말에 이르러서야 따라가는 개인성의 개념에 관한 시맨틱보다 개인성의 변화하는 인식을 더 많이 조명한다.
사실 시맨틱 형성과 발생한 ‘개인성’의 현재적 이해의 선행자들은 이 개념에 의해 이끌려지거나 통제되지 않았다. 한 가지 중요한 예를 회상한다면, 세계에 대한 종교적 비평, 무엇보다 얀센주의자들의 비평은 17세기 후반, 성실과 역할, 자부심과 겸손함, 진실함과 허영심 사이의 차이의 소멸을 가져왔다. 역할은 스스로를 위장하고, 술책��� 자연스러운 것으로 가면을 쓰고, 자부심은 겸손함으로 위장하고 결과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반대에 기반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근절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심지어 가면을 벗기고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불신을 찾는 모티프들을 사용해야만 한다. 헌신적 운동의 경험은 이런 의심을 강화한다.[29] 궁극적 결과는 사람들이 더 이상 그들을 궁극적으로 구성하는 것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대화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이다. 그들 자신의 본성은 더 이상 그들의 규정을 위한 어떤 기초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확한 개념 안에서 내적 반성성으로서 언급될 수 있는 것에 의해 해소된다. 누군가가 성실해지기를 원할 때조차, 사람은 자신의 비성실성을 그래서 비성실한 존재라는 것을 은폐함으로써 그렇게 하기를 원할 것이다. 이는 원죄 때문에 그렇다. 그것은 그럴 것이고, 자기 자신 동기의 순수한 진부함의 기초 위에서 더욱 그럴 것이다. 종교적,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인간(human)’ 개념은 여전히 개별 사례의 기초 위에서 성실과 역할 사이의 이런 차이를 관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지칭하고자 하는 목적에 충분하다. 적어도 잠시 동안, 그 결정들이 단지 행위의 기준만이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에 관계한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한. 살롱의 방구석 도덕주의자들은 마찬가지의 경험을 가진다. 그들에게도, 심리적 자아는 불안정하고, (즉) 불균등하고, 기술에 의존적인 terra incognita가 된다. 사람들이 여전히 부여하고자 하는 성격 규정과 사회적 평가의 모든 정확성은 외부로부터 관계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기대되야만 한다. 그래서 이는 문제가 되는 범주의 정확성을 만든다. 도덕 이론은, 객관적으로 유용한 행위의 요구조건에서 존경에 대한 갈구와 비난에 대한 회피로 이동함으로써 이에 반응한다. 신성한 섭리를 통해서 본성으로부터 나온 것처럼 사람 속에 새겨진 이런 갈망은 그들을 사회적 통제 아래로 밀어 넣는다. 이성이나 미덕과 같은 어떤 객관적 기준도 이를 위해서 가정될 필요가 없다. 자연적 인간학이, 그 배경과 삶의 성취에 기반한 문제에서 인간 삶의 개인화를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30]
Ⅴ.
이상의 간략한 분석의 기반 위에서, 한 편으로는 17세기 개인성의 시맨틱이 아직 영향에 이를 수 없었던 변화에 대한 가능성을 쥐고 있다는 인상을,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시맨틱 안에서 표현되지 않은 변화를 위해 준비된 기반이라는 인상을 가질 것이다.[31] 개인성은 이미 자기-언급적 방식으로 인식되었고, 이미 사회적 불편함의 내부적 억압에 노출되었고, 이미 성실함과 자기-접근성의 문제와 마주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성층화된 사회의 포섭이라는 맥락에 여전히 묶여 있었고, 배제를 위해 풀려나지는 않았다. 따라서 여기서 역시, 최종적인 사회적 배치를 발견할 수 없었던 관념들의 변화를 통해 시맨틱 안에서 어떤 것이 시험되야 한다.[32] 형식의 변화를 위한 요구조건은 미래에 대한 어떤 고려 없이 등장했다. 그것은 사회 구조 안에서 연결점을 찾을 수 없지만 여전히 상실을 회피하기 위한 방식으로 관념의 세계에 대한 특별한 문제 안에 굳게 정박해 있다. 그들은 이미 미래의 가능한 진화를 위한 소재로서, 사회 구조 안의 변화가 개인성의 더 넓은 활용을 제시하자 마자 적용될 수 있다. 이것은 특별히 몇 가지 관념들에 (처음에는 관계하지 않았던 그것들의 발전에) 적용된다. 1) 개인들은 자신 안에 그들 개인성의 원리를 지니고 있다. 2) 개인성은 고유성과 비교 불가능성의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증명될 수 있고, 살아 있을 수 있고, 구성될 수 있다.[33] 18세기로의 이행을 특징 짓는 주된 문제를 규정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신앙 운동의 의도들과 결과들로 돌아가보자. 이것은 종교에 의해서 한정되고, 그것의 출발점으로 개인을 택하지만, 그러나 그들 자신의 구원을 향한 개인의 노력만을 개인화 한다. 구원에 대한 관심은 이제 일상 세계로 이동한다. 그리스도의 계승자로서, 폐쇄적 삶과 예외적 자비심이 행위를 통해 다른 이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건 더 이상 목자만이 아니다. Vita activa와 vita contemplative 사이의 차이는 줄어들고 먼저 이는 구원과 저주 사이의 차이를 더욱 심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가 거기에 노출된 것을 본다. 누군가 자신의 구원은 이전보다 더욱 중요하게 되었고, 헌신은 이런 목적을 위해 도구화 된다. ‘Être devot, c’est vouloir se sauver et net rien negliger pour cela’ (헌신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구원을 원하는 것이고 이 목적을 위해 아무것도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34] 모든 사람들은 성직자의 도움을 통해 자기 자신들을 위해 이를 할 수 있다. 어떤 좋은 행위가 필요하지는 않다. 이 임무는 직업적 그리고 가족적 의무와, 정치적 복종과 재무적 투자와, 일상 생활과 병존한다. 왜냐하면 신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단지 한가지 문제가 남는다. 그러나 점차로 사기라 판명된 문제, 즉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다.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는 이들은 이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거의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동료들 속에서 살아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를 커뮤니케이션하는 사람들은 이미 잘못된 경로에 있는 것이다.[35] 그들은 그들 동기의 신실함을 커뮤니케이션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경건함에 대한 평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건함 자체를 위해서 경건하다는 것을 확신시킬 수 있어야만 한다. 결국 심지어 그들은 더 이상 그들 자신의 진정한 동기에 대해 확신할 수 없어야 한다. 그들은 이를 위해 필요한 ‘사회적 정체성’이 부족한다.
종교적 도그마가 이런 불확���성을 진행하는 방식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칼뱅주의자와 얀센주의자는, 예를 들면 예수회보다 무지(unknowability) 이론의 더 급진적 버전을 향한다.[36] 그렇지만 문제는, 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적인 도그마적 시맨틱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 안에서 구원에 대한 갈망의 개인화에서 나온다. 영혼의 구원 혹은 저주라는 주제, 그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개인에게 제시되는 주제, 영혼의 개인성(그 차에로서의 존재 그리고 불가분성)이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주제에 대해서, 개인은 그들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 없으며, 그 주제에 대해 시도할 수 있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반대 효과들에 주어지는 어떤 사회적인 안전을 발생할 수도 없었다. 종교의 차이화 코드의 지도 아래서, 개인은 막다른 길에 도달한다. 물론 그들은 성층화 된 사회나 혹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스스로를 개인적으로 증명하는 것에서 혹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규모의 성취와 공적, 자비심, 고귀한 삶의 방식, 금욕주의 그리고 그들의 믿음을 보여주는 용기 등에 대한 그들 자신의 노력을 늘려 나가는 것으로도 해법을 찾을 수는 없다. 이 모든 것은 정직하지 못한 동기의 의심에 의해 오염된다. 개인은 심지어 그들이 허용되지 않는 이차적 동기를 필요로 한다고 배운다.[37] 그렇지만 주된 동기와 이차적 동기의 구별은 (거의) 구별할 수 없게 된다.[38] 사회적 변화의 문제가 이런 의심스러운 동기의 문제와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성층화 된 사회는 다른 이들의 동기에 대한 인식과 오인에 대해서 대단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도덕성과 현실 사이의 매우 엄격한 불일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사회적 지위에 대한 귀속은, 다른 이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상관없이, 상대적으로 구체적인 방식으로 행동을 규제한다. 이런 사회의 안정성과 그들의 기대에 기여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동기에 적응할 필요를 정확하게 이런 식으로 완화하는 것이다.[39]
기능적 차이화에 의해 기본적으로 특징이 규정되는 체제로의 이행에서, 이런 무차별성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이제 사회에서 포섭은 더 이상 출생을 통해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 이상 가계를 통한 사회화에 의존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요구 조건은 기능 시스템 사이로 나눠지기 시작한다. 헌신 운동은 포섭의 요구조건을,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초기 차이에 독립해서,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도록 새롭게 정식화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다른 시스템들, 포섭에 대한 다른 요구와 맞서야 하고, 문제적 공생에 강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궁정에서 경건함은 때로는 유행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아니며 그래서 때로는 승급에 이익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아니다. 사랑의 문제에서는, 부분적으로 그것이 끈질긴 구호자를 막는 보호가 된다.[40] 부분적으로 사랑은 인식할 수 없는 자비심의 같은 기름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41] 그리고 부분적으로 경건함은 나이든 숙녀에게는 사랑의 대리로서 역할을 한다.[42] 이 주제의 확장된 논의는, 포섭과 사회화의 형식들이 충돌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여주고, 그리고 이는 동기들이 보편적으로 의심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개인’의 개인성의 새로운 개념, 이런 보편적으로 의심되는 동기에 대해 정확하게 맞춰진 개념은 아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개인화 될 수 없지만 여전히 특별한 층위, 비웃음의 대상인 거짓된 미덕과 거짓된 동기에 대한 제재를 위한 특별한 양식의 발견에서 이는 명백하다.[43] 비웃음은 그것과 맞설 수 있는 것, 즉 진정한 이성과 본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준다. 개인적 존재의 고유성은 여전히 시야 밖에 있다. 누군가가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르다는 요청 자체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18세기 역시 자연적(주어진) ‘개인’의 개념은 지속되고, 따라서 배경과 성층화를 통해, 다른 것들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사람들을 미리 규정하는 것 역시 지속된다. 구체적인 사람은 l’homme universel의 연속적 특정화의 최종 단계가 된다. 이런 방식으로 성층화는 여전히 특별한 개인의 특정화에서 포함될 수 있었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배경, 양육 그리고 그가 속한 친구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주는 방식이었다. 특정화에 대한 이런 필요는 일반적 인간학에, 특히 일반적 인간 존재의 자연적 비결정성이라는 주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같은 표지를 통해서 자기-언급적 측면은 인간 개인의 이론, 즉 독립적 지위처럼, 누군가 자신의 훌륭한 행운, 자신의 미덕(행복!)을 즐길 수 있는 능력으로 진입한다. 그래서 성층화에 독립적인 혹은 심지어 성층화와 공개적으로 충돌하는 순간들이 18세기 중반 이후 등장한다. 교육과 행복의 프로그램적 결합에서, 이런 순간들은 교육 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 본성의 비결정성은, 존재하는 성층화 한 질서의 맥락 안에서 그들을 행복의 상태로 이끌기 위해 사용될 수 있었다.[44] 그렇지만 ‘개인’의 개념에서, 이 모든 것은 개념의 폭발적 뒤섞임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Abbé Joannet이 쓴 것[45]처럼 동시에 단순하며 확장적이고, 동시에 파괴될 수 없으면서 변화 가능하다. 단순함은 여전히 종교, 창조, 사후의 삶에 대한 보장과의 관게의 기초다. 도덕성과의 관계 그리고 특히 다른 이들에 대한 고려를 자신의 행복 추구 안으로 포섭하는 것은 이런 개념의 확장 능력에 기초한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종교와 도덕은 더 이상 통일체로 될 수 없었다. 그들은 더 이상 모든 사람이 규정할 수 있는 한 개인에 대한 언급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개인’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양식화하고 시간화 한다. 나머지 창조를 따라서 그것은 완전성을 향한 하나의 운동으로 재 개념화되었다. 반면에 삶의 ‘조직’에 대한 새로운 개념은 완전성을 얻기 위한 능력을 보장한다.[46] 더욱이 자기-애, 자기-결정, 자기-이해와 같은 관념을 통해 자기-언급의 분명한 가치 평가가 있다. 사회와 도덕은 이런 자기-언급에 대한 판단을 금한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검토 없이 ‘좋은 것’으로 인증된다. Rousseau 이전에 루소주의가 지속된다. 단지 개인적 자기-언급 수행의 결과는 선/악 도식에 따른 도덕적 평가에 따른다.[47] 그래서 도덕성의 문제는 시간적 차원으로 이동한다. 거기서 유용성의 관념과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압력 하에 놓인다. ‘개인’ 그 자체는 더 이상 이런 문제에 잡히지 않는다. 그 자체로부터 자유롭게 출발한다. 개인성(혹은 심지어 확장 가능한 개인성)의 적합한 개념이 없이, ‘개인’은 이미 그 자신을, 여전히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위계 밖에서 발견한다. 더 이상 그 자신이 이 위계를 지지할 수 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을 강조하고 그리고 그것에서 이탈한다. 역할과 사람의 차이화는 사회 자체의 차이화 원리에 적용되고, 성층화는 사회 안에서 단순한 역할들에 대한 기술로서 재구성된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복종은 지위와 관계될 수 있지만 더 이상 사람들에게 관계되지 않는다. “(‘사람’과 ‘지위’ 사이의) Cette distinction se trouve aujourd'hui si vulgairement établie, qu'on voit des hommes réclamer quelquefois pour leur rang ce qu'ils n'oseraient prétendre pour eux-mêmes. 'Vous devez', dit-on humblement, 'du respect à ma place, à mon rang'; on se rend assez de justice pour n'oser dire 'à ma personne'” (이런 구별은 오늘날 저속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그 방식에서는 사람들을 자기 자신에게는 감히 요구해서는 안 될 것으로 그들의 위치에 대해 주장하면서 바라본다. 겸손하게 이야기하면서 ‘그들은 내 지위, 내 위치를 존중해야만 한다. 그들은 내 사람에게 감히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 충분히 정당하게 나를 대우한다.)[48] 그 세기 후반에는, homme du monde와 homme de bonne compagnie는 의식적으로 지위 특정한 속성 없이 정의되었고(그것이 물론 모든 사람이 동등한 접근성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49], 역사적으로 honnête homme로부터 구별되었다. homme du monde는, 위치, 가족, 성격을 가지지 않고, 단지 붙임성을 가진다.[50] 위치와 가족은 더 이상 없고, 성격은 아직 아닌. 모든 나라, 모든 지위의 선한 사람이여 단결하라!, 사람들은 거의 모두 ‘ce temps de lumières et de dégoûts’(계몽과 역겨움의 이런 시기)라는 경구를 말할 수 있다.[51] 그러나 이는 누구도 만족시키지 않는다. 마치 개인들이 사회적 질서가 몰락하기 전에, 개방된 곳, 자유로운 곳으로 탈출하면서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서 그들은 자연적이고, 좋고, 감각적이고, 인간의 개선에 열려 있는 본성인 양식 안에서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Ⅵ.
‘개인’이 무엇이건, 그것은 모든 경우 하나의 통일체이다. 그러나 이 통일체가 이해되고 재정식화 되는 방식을 구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확장된 개인성에 대한 기대를 ‘개인’의 이런 개념에 포섭하는 것, 성층화로부터 그것을 뽑아내는 것, 반성된 정중함을 통한 이에 대한 보상. 이 모든 것들이 18세기의 복잡한 의미적 발전에서 단 하나의 흐름이다. 통일성 개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 포섭과 사회화의 맥락에서, 이는 적합성과 일탈의 주제를 과도하게 강조하게 된다. 각각은 이미 충분히 개인화 되거나 혹은 그렇게 되도록 훈련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개인적 존재 혹은 19세기의 전형적 개인이건, 개인들이 그 자신을 발견하는 상황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다. 차이의 도식이 정보 획득을 위해서 필요하다. 그들 자신에 대한 정보에 의해 이끌리는 개인들은 동일성과 차이의 형식에서 자기-언급을 절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18세기 문화적 시맨틱의 탐구는, 이런 시맨틱이 ‘개인’의 개인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차이의 도식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한 개인이라는 ‘개인’의 초기 버전이 의존하는 구원/저주의 구별 도식이, 구원 갈구의 개인화, 특정한 종교적 포섭의 새로운 형식, 이차적 (하위) 동기에 대한 필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위에 기반한다는 것을 보았다. 18세기 계몽 철학자들은 지옥에서 면제되었다.[52] 그들은 심지어 17세기의 자유 정신에 있어 지속적으로 지시되야만 했던 확실성의 보장에서도 면제되었다.[53] 이는 ‘개인’이 무차별적인 개선이 가능한 것으로 이해된다는 사실에 조응한다. 그렇지만 이런 결론은 계몽의 표면 위에서만 그려진다. 즉, 자동적으로 반성 없이 지옥의 소멸로부터 등장한다. 그러나 이는 구원과 저주 사이의 차이를 대체하지 못했고, 하나의 차이로서 그것을 대신하지 못했다.
아마도 제안 된 가장 중요한 대체는 자연과 문명(자연적 상태와 ‘문명화된 사회’) 사이의 차이다. 이런 차이는 자연과 은총 사이의 이전 구별을 대신한다. 새로운 버전은, 평등의 주제를 다룰 때 존재에 대한 정치적 이념이 차이를 만드는데 중요한 이점을 제공한다. 자연적 상태에서 이미 힘, 적성 그리고 가능한 소유에 이미 불평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고, 그리고 동시에 문명화 된 장치로서 상태들의 불평등 속에서, 자연에 의해 메워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연/문명 차이에 대한 기술은 역사적인 그리고/혹은 지역적 투영을 사용한다. 자연적 상태는 시간적 혹은 공간적 개념이건 거리를 두고 위치한다. 이는 현실과의 인식가능한 연관에 도식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 차이 역시 차이로서 다뤄진다. 사회와 개인은 동시에 자연적이고 문명적일 것이 기대된다. 혹은 이 차이를 유지할 것이 기대된다. 과학적 인간학과 문명 비판은, 정보의 전리품을 공유하면서, 같은 배에 타고 남해로 항해하기 시작한다.
18세기에 시작된 ‘부르죠아지 사회’ 이론에 대해서, 자연/문명 도식은 문명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연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도식은 ‘혁명’의 과거 의미를 날려버리고, 새로운 의미를 위한 바탕을 놓았다. 순환적 운동을 과거로 돌려보내는 대신, 노력을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조건을 바꾸는 것으로 이끌어야만 한다. 이것은 상실의 감각을 일으킨다. 문명 상태 (James Fenimore Cooper에서 읽을 것처럼 미국의 경우 조차도)는 불이익을 지니고 있다. 부르죠아지 사회의 설명은 전복된다. 회계적 개념을 그것은 적색(적자) 상태이고, 손실이 더 커지지 않도록 재무재표를 지켜보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개인은 어떻게 이런 개념을 기술된 사회와 연결될까? 이전 결과들에 대해 나은지 혹은 낫지 않은지를 비교하는 개인적 재무재표를 가지고?
자연/문명의 도식의 도움으로, 한 편으로 ‘개인’은 도덕성으로부터 어느 정도 멀어진다. 즉 사회화로부터 그리고 집에서 배우는 이상한 관습으로부터.[54] 도식의 이런 응용은 그 자신에게 비판의 권리를 제공한다. 다른 한 편, 도덕이 아니라 경제에 관계된 두번째 응용이 있다. 자연 상태에서 모든 사람은 스스로를 먹여 살린다. 문명은 질서를 생산해야만 하는 상호의존성을 도입한다. ‘개인’은 ‘소유권자’가 되고, 그래서 법적 그리고 경제적 상호의존성의 망 안에 스스로 묶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55] 재산을 통해서 동시에 더 의존적이고 더 독립적이다. 동시에 그것의 필요는 증가하고 그것의 기쁨은 강화되고, 그리고 스스로로부터 멀리한다. 자연의 상태, 그리고 그와 함께 자유, 평등 그리고 무구함은 재소환을 넘어 상실된다. 규칙에 이끌린 사회는 ‘개인’을 족쇄로 묶어 둔다. “Dés cet instant, son existence cessa, pour ainsi dire, de lui appartenir” (그 순간부터 말하자면 그의 존재는 그에 속하는 것을 멈췄다)[56] 이런 조건은 스스로를 강화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고 증가하기 위한 모든 노력의 전제조건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문명화된 사회’는 자신의 치료제만을 가지고 그 단점을 다룰 수 있었다. 이 부정의를 생산한 법을 통해서만 부정의를 다룰 수 있다. 가난하건 부자이건, ‘개인’은 이 메커니즘 안에 자신이 갇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Il semble que la société lui devienne nécessaire en proportion des maux qu'elle lui cause” (그에게 사회는 그에게 약을 야기한 것에 비례해 그에게 필수적으로 되는 것���럼 보인다)[57] 이렇게 경제적으로 인식�� 사회에서 포섭은 자연에 반대해서 작동하고, 그래서 사회화를 통해서 스스로 발생하지 않는다. 자연을 억압하기 위해서 교육을 필요로 한다.[58] 혹은 중농주의자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ordre naturel의 주장(!)을 퍼트리기 위해서. 결과적으로, 인간 존재는 독립의 환상 위에서 의존 상태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사회는, ‘개인’이 자신들이 자유라고 믿는 것을 막지 않고 노예화 한다.[59] 만일 ‘개인’이 재산 소유자로서 성립된다면, 이는 정치적 목적으로서 평등성을 설정하는 것을 배제한다. 평등이 성취될 수 잇는 것은 개인의 조건이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 안에서(그것은 이제 국가를 의미한다) 만이다.[60] (그들의 경제적 성공과 ‘동일시되는’) 재산의 기초 위에서 자신을 개인화 할 수 있는 누구라도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사회의 관점에서, 정당하게 그것을 판단하기 위한 기초를 형성하는 것은 특별한 개인의 상태가 아니라 이런 관계 뿐이다. 정의는 재산의 보호다. 이런 의미에서 ‘La justice pour tous est l'encouragement pour chacun’ (모두를 위한 정의는 각각에 대한 장려다)는 진실이다.[61] 모두에게 평등한 조건을 통해 성취될 수 없는 것은, ‘개인’의 개인성으로부터 거리와 동시에 관계를 표현하는 이런 ‘l'encouragement pour chacun’이다.
그러나 부자와 빈자 사이의 불평등과 차이를 이끄는 것은 정확하게 이런 배타적인 관계적 평등성이다. 궁극적으로 이 차이가 문명화 된 사회와 자연 상태 사이에 구별을 만드는 것이다. 혹은 어느 정도, 이는 이런 원리의 효과를 관찰하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은 재산의 소유자이거나 소유자가 아니거나, 혹은 부자이거나 가난한 사람이다. 여기가 ‘개인’의 실체, 개선의 능력이 놓여 있는 곳이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키메라적’ 환상 혹은 이데올로기에 탐닉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의 응집은 노동을 통해 매개된다. 일은 부자와 빈자 사이의 차이를 동태화하고, 돈을 흐르게 하며, 빈자가 재산에 참여하게 허용하고, 말하자면 소급적으로 (그렇지 않았다면 임금 노동이 등장하지 않았을) 불평등한 재산의 분배를 정당화한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일은 사회의 연결 고리가 된다. 그것은 부자와 빈자 사이의 갭을 통해서 스스로를 파괴할 것이라 위협한다. 장치는 현상 유지의 접근법을 채택하도록 권유된다. 그렇지만 부자와 빈자 사이의 차이가 극단적으로 되지 않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노동과 노동 분업 모두를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62] 따라서 부자와 빈자의 차이는 자연 상태와 구별로서 문명을 규정한다. 이런 차이에 대한 언급을 통해 일 혹은 노동은 포섭되고, 배제되는 제3항, Serres의 의미에서 ‘parasite’이고,[63] 그것은 부자와 빈자 사이의 차이의 성립으로부터 이익을 얻는다. 즐기는 사람, (노동 시장과 관계된 필요와는 다른) 필요를 가진 사람과 대조해서 일을 하는 사람은 그들 자신이 아니다. 일을 하는 사람은, 이 직접적 차이의 기생(parasite) 기능을 가정하는 한 그들 자신으로부터 소외된다. 그들은 도래하는 사회 질서, 부자와 빈자 사이의 차이에 대한 보완적 질서에서 수행한다. 이 질서에서 (다시금 즐기는 것과 필요에 대비되어) 그들은 그들의 자기-언급의 제정으로서 나타날 수 없다. 포섭되고 배제된 제3항으로서 그들은 다른 논리적 세계에서 살아간다.
만일 (일이 실제로 부자로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나, 혹은 그것이 소외시키지만 개인화 하지는 않는 이유에서건) 이런 순수하게 경제적 관점에 동의한다면, 기생적 해법에서 변증법적 해법으로 도약해야만 한다. 부자와 빈자의 차이를 뒤로 하고, 국가와 혁명이 등장한다. 상대적으로 Hegel과 Marx는 거기에 궁극적 책임성을 부여한다. 즉 궁극적 책임성은 개인으로 존재할 가능성을 빼앗긴 ‘개인’에 대한 것이다.
부르주아 사회는 더 이상 ‘좋은 사회’일 수 없고, ‘좋은 삶’을 약속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이를 알고 있다. 그것은 실체에 대한 우울한 그림을 그리면서 동시에 환상을 키운다.[64] 개인들은 다른 상태들의 무너지는 사회로부터 탈출해서 재산의 땅으로 날아가고자 노력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 모든 사람을 위해 충분한 공간은 거기에 없다. 어떤 이들은 인구학적 ‘올바름’, 극빈층이 죽어 없어지는 것을 제시하고[65], 어떤 이들은 더 합리적인 재산의 착취를 통한 성장을 옹호한다. 더 비극적인 버전과 더 낙관적인 버전도 서로 균형을 맞춘다. 양자는 경제적 개인주의를 통해 이제 우세해진 경제적 사회 이해를 뒷받침한다.[66] 그들은 사회 안에서 ‘개인’의 경제적 포섭을 다루지만, 이 (기능 특정적) 기반 위에서 ‘개인’의 개인성 개념을 제공할 수는 없다. 
운 좋게도, 이것이 18세기가 ‘개인’을 개념화하려 시도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어떤 지위에 특정적인 범주에 거리를 두고 마찬가지로 ‘개인’이 스스로에 대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차이 도식을 사용하는, 경제적 접근법에 독립된 관념이 발전하는 두 번째 노선이 존재한다. 이는 일에 대한 평가, 특히 예술 작업에 그리고 이후에는 그것의 이론인 미학에 관계된다. 협력, 경쟁 혹은 갈등 어디에서건, 재산이 인간 행동을 이끌지만, 이것은 무엇보다 누군가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에 대한 감수성, 포착하고 판단할 능력, 구별할 능력에 관한 것이다.[67] 이런 발전의 출발점은, 1700년경, 예술 작품에 대한 평가와 개인(사람, 예술가)에 대한 판단이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분리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판단의 단위, 완벽함/유용성은 분해된다. 사람/작품의 판단은 더 이상 그들이 더 완벽한지 덜 완벽한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 무엇에서 나올까?
작품의 완벽성의 이런 전통적인 기반과 이 완벽함을 성취하기 위해 요구되는 기술은, 개인성의 문제가 처음에는 특별한 작품(예술 작품)의 판단으로부터 등장하고, 즉각적으로 순수하고 단순한 심리적 문제로 논의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한다. 예술 작품은 개인적 예술가에 의해 개인적으로 생산되는 작품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들의 자질을 판단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어떤 범주인가의 질문이 문제가 된다. 이 문제에 대답하면서 발전된 대답들의 조합은 현대 개인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고려될 수 있고 그래서 주의 깊은 조사가 당연하다.
이제 예술 작품에서 기대되는 제일의 가장 충격적인 특징은 참신함과 놀라움의 자질이다. 참신함과 호소력 사이의 연결이 인식되면서, 그것은 처음에는 회의주의와 함께 고려되었다.[68] 그러나 17세기를 거치면서, plaisir의 인간학의 충격과 그에 따른 참신함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었다. 예술 작품이 놀라움을 만들기 위한 초기의 요구조건은 그래서 새로운 기능적 차이를 제공한다. 이 놀라움이 누군가의 기억에 작품을 남기기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면서, 인쇄된 언어가 이제 이 목적에 기능하면서, 그것은 호소력의 하나의 조건을 구성한다. 예술 작품이 호소력을 가지는 것은 누군가 작품이 전달할 인상의 특별한 형식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탈에 대해 개별화 하는 구별성을 제공한다. 그것이 다르기 때문에 충격적이고 즐겁다. Muartor는 ‘bello poetico’ (미적 시학)를 ‘vero muovo e maraviglioso dilettevole’ (진정으로 새롭과 놀랍게 즐거운 것)이라 정의한다.[69] 새롭다는 것이 미학적 요구, 사로잡기 위한 조건, 즐거움의 조건이 되었다. 영감 혹은 심지어 우연의 발생도 생산을 위한 정당한 순간 (그리고 어떻게 무언가를 생산하는지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당화하는 것)이 되었다. 이로부터 얼마 있지 않아, 예술가의 개인성은, 그들의 창조가 새로운 어떤 것을 보장하게 되었다. “des beautés propres à l'auteur et par conséquent Nouvelles” (작가에게만 속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새로운 아름다움)[70] 놀라움에 대한 이 놀라운 이동은 비밀리에 사회화의 문제와 연결되었다. 앞의 Ⅱ에서, 일탈된 사회화가 더 복잡해지는 사회에서 더 선호된다고 주장했다. 특정한 규칙에 따라 만들어진 예술 작품은 그래서 더 이상 즐거움을 줄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 그것의 효과는 미와 지루함 양자에서 역설적이 된다. 한 편으로 즐거울 것으로 제시된 것이 시초부터 새롭고 다른 모습을 취한다면, 이로부터의 일탈은 더 이상 선택이 되지 않는다. 인정-일탈의 과정 대신, 이제 일탈-인정의 과정을 가지게 된다. 같은 시기 동안 유행이 더 많이 논의된 것은 놀랍지 않다. 이전에 받아들여질 만 했던 것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일탈이 일어나고 정확하게 이 때문에 높은 수준의 인정을 획득한다.
새로운 미학의 더 나아가는 요소, 즉 도덕으로부터 더욱 멀어진 거리는, 개인성의 바탕을 준비하는데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Perfecionare la Natura, non la morale’ (도덕이 아니라 자연을 완벽하게 하라)가 Muratori가 이 프로그램을 정식화한 방식이다.[71] 이 거리의 목적은 갈등이 아니라 단지 독립이다. 놀라움과 참신함을 보임으로써 자신을 개인으로서 드러내고자 하는 무엇이건, 자신의 개념 안에서 도덕과의 관계, 즉 직접적인 존중과 경멸을 유지하는 규칙에 묶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지표들은 더 상세하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맥락에서,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은, 예술 작품을 평가하기 위한 범주들이 재정의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좋은 취향이 역할을 하게 된다.[72] 좋은 취향은 이성에 묶여 있는 연결을 느슨하게 한다.[73] 그것은 규칙에 대해 그렇고 그 자신의 영역을 수립한다. 그렇지만 이 영역은 사회적 성층화에 묶인 채 남아 있다. 비록 누군가가 점점 그것을 인정하는 것에 대해 혐오한다고 할 지라다. 단지 이런 방식에서만 완전한 비결정성을 피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참신함의 성격 안에 놓여 있고, 놀랍게도 그것은 규칙의 적용에 의해서 한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범주들은 규정되지 않은 채 남아 있어야만 한다. 사회적 차원에 대한 언급은 사실 차원에서 사라진 특정화를 대신한다.
그래서 좋은 취향의 교의는, 이미 ‘개인’과 함께 시작되고, 취향의 획득을 가능하게 한 시대, 그러나 사회적 지위와 시험 가능성에 대한 언급을 분배하기 위한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시대에서, 포섭의 문제에 대한 인간학적 형성을 제공한다. 더욱이, 상위 계층, 한 때 차이화 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자 여전히 그것을 지지하는 것이 여기서 이전의 그것이었던 커뮤니케이션을 대신하기 위해서 사용된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De gustibus non est disputandum (취향은 논쟁될 수 없는 것이다) ‘취향’ 개념은 정확하게 이런 이유로 선택되었다. 자신의 지위 안에서 누군가의 취향을 정당화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취향의 형성에 참여함으로써 그 층위에 속하게 되고, 여기서 커뮤니케이션이 역할을 한다. 그것의 기능은 취향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화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누군가는 취향의 확실성, 즉 이성과 더 정확하게는 분석 그리고 논의가 결과적으로 직관적 감정을 산출하는 확실성에 대해 그 층위에 빚을 지게 된다.[74] 동시에, 상위 계층의 우월성에 대한 자신감은 사라진다. 이 계층은 단지 사회화를 통해서 지속되고, 명백히 그들 자신에 대해 어떤 다른 주장을 하지 않는다. 만일 판단의 근거에 대해 질문 받는다면, 악(그리고 정확히 그래서 성과적인)순환으로 끝날 것이다. 범주는, 범주를 다루는 방식으로서만 결정될 수 있는 판단을 통과하는 능력에서 등장한다.[75] Jean-Baptiste Dubos는 탈출구를 찾고자 했다.[76]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이성(raison)에서 마음(Coeur)으로 이동한다. 마음이 내리는 판단은 맹렬하고, 빠르고 그리고 정확하게 이런 이유 때문에 확실하다. 마음은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래서 규칙에 기반한 어떤 전문적 판단보다 우월하다.[77] 범주를 형성하는 능력의 상실과 함께, 상위 계층의 권위의 상실이 일어났다. 이는 이 계층에 속한 개인의 권위에 대한 요청으로 전환된다. 그들은 이제 더 많은 것을 판단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렇게 할 권위를 가졌기 대문이다. 이것을 할 능력은 내재한 것이다. 그것이 부재한 곳에서는, 레시피를 사용해서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공중 (the public)’(청자, 독자 그리고 지켜보는 공중)을 구획한다. 그것은 예술 작품이 받아들여질지 아닐지에 대해 최종 판단을 가진다.
따라서 예술은 그 자신의 ‘공중’을 가지고, 그 자신의 포섭, 그 자신의 사회화를 가진다. 이 ‘공중’은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술가는 따라서 개인화된다. 그는 즐거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천재성을 필요로 한다. 이것 역시, 자연주의적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학습을 통해서, arrangement heureux des organs du cerveau (뇌 기관의 행복한 배열)을 통해서 얻어질 수 없는 내적 자질이다.[78] 자연은 이 천재성을 가끔씩 생산한다. 그러나 성공은 단지 ‘공중’의 경험 속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 예술은 천재성과 마음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존재하게 도니다. 이는 특별한 미디어로서 차이화 된다.
그렇지만 어디에 차이화가 놓이게 되는가? 만일 모든 것이 참신하고 놀라운 것으로 발명되야만 한다면, 그러면 거부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자질을 아는 자질이라는 순환은 어떻게 깨질 수 있는가? 그렇게 확실하게 제시되었던 이론은 궁극적으로 다시 한번 사회적 성층화로 돌아가 언급을 한다.[79] 우리는 선택된 ‘공중’을 다루고 있다. “Je ne comprens point le bas peuple dans le public capable de pronocer sur les poèmes .... Le mot public ne renferme ici que les personnes qui ont acquis des lumières, soit par la lecture; soit par le commerce du monde” (나는 시에 대해 판단을 내릴 능력을 지닌 공중의 구성원 안에 낮은 게층을 확실히 포함하지 않고 있다. …… 여기서 ‘공중’은 독서나 세계에 대한 경험에 의해 계몽된 사람들만을 언급한다)[80] 결정적 차이는 무엇보다도 사회적 차원 안에 놓여 있고, 성층화에 기반한다. 비록 그것이 더 이상 출생에 기반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계층-특정된 사회화를 통해 배운 점잖은 체하는 ‘구별’에 기반한다.
바로 만족하기에 실패하는 것이 정확하게 이렇게 외부적으로 방향이 정해진 예술-특정적 차이다. ‘천재성’과 ‘마음’에서 서툴게 무언가를 표현했던, 예술 생산과 판단에서 개인성의 승인은, 무엇이 예술적 판단을 이끄는 차이인가를 알기 원한다면 쓸모가 없다. Breitinger와 Bodmer에서 Gottsched, Wolff, Eberhard와 Baumgarten에서 마침내 Kant에 이르는 오랜, 뒤얽힌 논쟁이 새로운 차이, 특별한 것과 보편적인 것 사이의 차이에 기여를 한다.[81] 그래서 판단 능력과 범주의 논리적 순환은 차이에 의해 대치되고, 이것인 ‘개인’의 논리를 이끌 것으로 기대되었다.
이 차이의 기원은 곧 규정된다. 고대 unitas multiplex에서 도출된 차이, 복합성의 구성적 개념.[82] 특별한 것과 보편적인 것 사이의 차이는 차이로서 복합성 문제를 정식화 한다. 통일성과 총체성을 향하는 보편적인 것이 어떻게 특별한 것에서 실현될 수 있는지는 미적 반성의 중심 문제가 된다. 이는 하나의 과학으로서, 즉 보편적인 것의 이론 그리고 (단순히 취향과 판단의 정확한 적용의 안내 대신에) 예술의 반성으로서 미학의 가능성을 수립한다. 참신함과 놀라움이라는 이미 익숙한 시맨틱, 독창적인 생각과 감정적 즐거움이 포함될 수 있고, 사회적 성층화에 대한 언급은 뒷자리로 물러났다. 물론 여기서 또한 보통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실 차원으로 되돌려 진다. 특별한 것과 보편적인 것 사이의 (예술-특정한) 차이는 예술과 비-예술 사이의 차이를 만든다. (마치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문명과 자연 사이의 차이를 만들었던 것과 같이) 그러나 이런 차이의 기생자, 포섭된 배제된 3항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논리적 아포리아를 존재하게 하는 방법은 어디서 발견될 수 있을까?
18세기 후반, ‘개인’의 개념은 이 문제에 대한 답으로 역할을 한다.[83] 개인은, 보편적인 것과 특별한 것 사이의 차이의 기생자로서, 그리고 이것들이 통합될 수 없다는 사실을 통해서 개인성을 획득한다. 이것은 무엇보다 먼저 아름다움을 주장하고 그것의 고유성에서 이를 보일 수 있는 예술 작품에서 자명하다. 한번 기반을 갖추면, 이런 관념은, 때가 맞아 떨어지면 매우 빠르게 일반화될 수 있다. 이는 살아있는 유기체로 옮겨졌다. 그것은 전체와 부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개인적 표현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서 정확하게 살아있다. 마침내 초월적 주체의 발명은, ‘개인’이 세계를 특별한 자아 속에 통합했다는 능가할 수 없는 정식화를 가능하게 한다. ‘개인’은 세계의 주체다. 동시에 세계는 주체를 개인화 한다. 왜냐하면 세계는 다른 전체의 부분으로서 이해될 수 없는 유일한 전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개인은 심지어 취향이나, 그것과 함께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에 대한 기존의 범주도 지운다. 단지 사회 밖에서만 성립될 수 있는 위치에서 취향의 규칙을 설정하면서, 다시 한번 과장된 의미에서 스스로를 천재로 본다.
이 개인과 주체의 동일시가 새로운 관념이라는 사실은 강조될 필요가 있다. 개인적 사람, 그들의 가치, 그 자신을 강화하는(완벽성) 능력이 이전에 강조되었을 때, 개인은 인간 존재로서 생각되었고, 사회적 위치에 기반한 낡은 차이화에 맞서는 것으로 그러했다. 이런 원리가 18세기 후반 정치 저널의 페이지를 채운다. 그러나 여기서 관심은 능력과 힘의 제한 없는 발전이지 각 개인적 사람의 특성에 대한 보호와 형성이 아니다. 단지 인간 권리의 구현이, 자유 역시 이상하고, 비합리적이고 이후에는 심지어 비도덕적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차이화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는 논점을 끌고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보편적인 것과 특별한 것 사이에 차이의 기생자로 남아 있다. 그 어느 하나가 아니라, 배제된 그리고 심지어 요구되는 3항으로서, 그리고 이는 이 차이화에 의해 포섭된다. 초월적 주체가 그들 자신의 자아, 그들의 실제 자아, 그들 자아의 자아라고 개인적 존재를 설득하려 시도하는 것은 덧없는 일이다. 낭만주의는 이를 알고 있다. 보편적인 것과 특별한 것 사이 차이에 대한 관계에서 ‘개인’의 논리적 위치는 그들의 문제로 남아 있다. 아마도 그 문제가 개인성을 규정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Marx는 이 문제가, 노동자로서 ‘개인’이 또한 부자와 빈자 사이의 차이에 기생자로서 역할을 하는 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1] 편집자 주: Topos는 ‘주제’나 ‘공식’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전에, 고대 그리스에서는 문자 그대로 ‘장소’를 의미했다.
[2] Joan Marie Lechner, Renaissance Concepts of the Commonplaces, New York 1962, Westport, Conn. 1974 재출판.
[3] 전형적인 예에 대해서는 Joseph Hall, Characters of Vertues and Vices, London 1608. Diderot에 이르는 17세기 후반에 이런 문학적 장르의 (신체적 외양에 대한 언급의) 소멸에 대해서는 Louis van Delft, Le moraliste classique: Essai de définition et de typologie, Geneva 1982, S. 137 ff.
[4] 예를 들면 Paul Delany, ·British Autobiography in the Seventeenth Century, London 1969는, 17세기에 더욱 자주 등장했던 자서전이 특정한 역할에 대한 이해와 밀접하게 연결된 채로 남아 있는 것을 보여준다. 더 큰 자유는 신과의 거리라는 종교적 경험의 맥락 안에서 대부분 정식화 될 수 있다.
[5] Conjectures on Original Composition, in The Complete Works, London 1854, Hildesheim 1968에 재출판, Bd. 2, S. 547-586 (554).
[6] 그는 계몽된 낙관주의에 대해서 “자연 자신은 사다리를 놓고, 원하는 것은 그것을 오르겠다는 우리의 야심이다”라고 썼다. (Young, Conjectures on Original Composition, p. 555)
[7] “스스로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뿌리는 그 스스로가 지닌 통일성과 동일성이다. 그것은 모든 것에 대해 자연적이고, 존재 자신의 단순성에서 기쁨을 취한다. 왜냐하면 더 단순하고 단일할수록, 존재의 기초에 더욱 가까워진다. 그래서 그 안에 더욱 완전성을 가진다.” Edward Reynolds, A Treatise of the Passions and Faculties of the Soule of Man, London 1640, GainesvilIe, Fla. 1971 재출판, S. 84 f.
[8] 스콜라 학파 논쟁의 개관에 대해서는 Johannes Assenmacher, Die Geschichte des Individuationsprinzips in der Scholastik, Leipzig 1926; Jorge E. Gracia, Suárez on Individualism, Milwaukee 1982; Introduction to the Problem of Individuation in the Early Middle Ages, München-Wien 1984. 중세 개인성의 개인적 인식의 발전에 대해서는 Colin Morris, The Discovery of the Individual 1050-1200, London 1972.
[9] 이는 개념적-역사적 논의라는 맥락에서 특별하게 말하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즉 Francisco Suárez, Disputationes Metaphysicae, Disp. VI., insb. VI, 14. (“modus substantialis, qui simplex est et suo modo indivisibilis, habet etiam suam individuationem ex se, et non ex aliquo principio ex natura rei a se distincto” [하나의 본질적 양식, 그것은 단순하고, 그 자신의 방식으로 분할 불가능하고, 또한 그리고 사물의 본성에서 그것에서 구별되는 어떤 원리로부터가 아니라 그 자신의 개성화를 가진다.]) Opera Omnia, Bd. I, Paris 1866, S. 185.의 Hildesheim 1965 재출판에서 인용.
[10] 그래서 Thomas Wright, The Passions of the Minde in Generall, erw. Aufl., London 1630, Urbana, IL. 1971 재출판, S. 216; Edward Reynolds, 앞의 책, S. 84 f.
[11] 예를 들어, Pierre Mesnard, Le commerce épistolaire, comme expression sociale de l'individualisme humaniste, in: Individu et société à la Renaissance: Colloque internationale 1965, Brüssels 1967, S. 13-31. 중세의 수도사 사이의 ‘펜 팔’ 서신 왕래와 교회 정치에 대한 의의에 대해서는 Morris, 앞의 책, S. 97 ff.; 또한 Franz Josef Worstbrock (Hrsg.), Der Brief im Zeitalter der Renaissance, Weinheim 1983.
[12] 이것이, 많은 양의 개인적이고 전기적 정보가 많은 양으로 남아 있는 이런 편지에서 수집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이것조차 주의 깊을 필요가 있지만!)
[13] “La parfaite valeur est de faire sans temoins ce qu'on serait capable de faire devant tout Je monde”(완벽한 장점은, 전 세계 앞에서 수행할 수 있는 어떤 행위를 보는 사람 없이도 수행하는 것이다) La Rochefoucauld의 Maxime 216, Œuvres complètes (ed. de la Pléiade), Paris 1964, S. 432는 마지막 말에 놓여 있는 제약 때문에 적지 않게 충격적이다. 이 ��질은 다른 사람 앞에서 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하는 것으로 구성될 수는 없다. 이런 자기-확신의 개인주의에 대한 사회적(지위 기반) 규율에 대해서는 Frank E. Sutcliffe, Guez de Balzac et son temps: Littérature et Politique, Paris 1959, S. 131 ff.
[14] Jean de La Bruyère, Charactères, Du mérite personnel Nr. 24 (Œuvres complètes, éd. de la Pléiade, Paris 1951, S. 97 f.): 특별한 성취가 누군가를 화가, 음악가, 시인으로 만든다. “mais Mignard est Mignard, Lulli est Lulli, et Corneille est Corneille”
[15] 한 가지 중요한 부대 효과는 자연 과학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연구에 대한 이런 시맨틱의 비판적 반응이다. 이에 대해서는 (그 당시에 심하게 비판 받았던) Discours anatomiques von Guillaume Lamy, 2. Aufl., Bruxelles 1679. 여기서 창조의 목적으로 인간 존재를 높이는 것에 대한 비판이 도입되었다. (pp. 1ff.) 동물은 마치 ‘sans étude et sans erreur (S.5)’ (배움도 없고 잘못도 없는) 존재로서 어떤 비난도 없이 살아가는데, 반면에 인간 존재는 긍정적 취급도 증가하고 강화되었지만, 부정적 취급도 마찬가지다.
[16] 이에 대해서는 Maurice Magendie, La politesse mondaine et les théories de l'honnêteté en France au XVIIe siècle, de 1600 à1660, Paris 1925, Genf 1970 재출판. ‘자기-통제’로서 ‘성격’에 대한 재해석에 대해서는 Ruth Kelso, The Doctrine of the English Gentleman in the Sixteenth Century, Urbana, Ill., 1929, s. 91f.
[17] Eriving Goffman, Stigma: Notes on the Management of Spoiled Identity, Englewood Cliffs, N. J. 1963, S. 122.
[18] 이에 대해 더 자세하게는 Arthur O. Lovejoy, Reflections on Human Nature, Baltimore 1961, S. 152 ff.
[19] 동등하게 goût의 성층-의존적 시맨틱에서 동일한 현상을 이후 살펴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n. 106.
[20] 종교적 맥락에서는, 이런 거부는 물론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미 도덕성의 세속적 이론들은 기탄없이 어울리게 된다. 예를 들면 Rémond Des Cours, La véritable politique des Personnes de Qualité, Paris 1692, S. 147 ff.
[21] Amsterdam 1692.
[22] Jean La Placette Traité de l’orguil 의 5장 제목. P. 51
[23] 예를 들어 Sénac de Meilhan, Considérations sur l'esprit et les moeurs, London 1787, S. 117: ‘amour propre est flatté des hommages, l’orgueil s’en passe, la vanité les publie’ (자기-애는 찬사에 의해 우쭐해지고, 자부심은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고, 허영심은 그것들을 공공연하게 만든다.)
[24] De La Volpilière, Le Caractère de la véritable et de la fausse piété, Paris 1685, S. 169 ff. 그래서 진정한 경건함에선 ‘singularité’는 존재하지 않는다.
[25] Charles Duclos, Considérations sur les Mœurs de se Siècle (1751), Lausanne 1970 재출판, S. 291 f. “La singularité n'est pas précisement un caractère; c'est un simple manière d'être qui s'unit à tout autre caractère, et qui consiste à être soi, sans s'appercevoir qu'on soit différent des autres; car si l'on vient à la reconnaître, la singularité s'évanouit; c'est une enigme qui cesse de l'être aussitôt que le mot en est connue” (단독성은 정확하게 하나의 특성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다른 특성을 묶어주는, 그리고 그것을 존재 자체로 구성하는, 다른 이로부터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없는, 단순한 하나의 존재 방식이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그것을 인식하게 된다면, 그것의 단독성은 파괴된다. 단어가 나오자마자 존재를 멈추는 하나의 수수께끼다) 따라서 하나의 영향 받은, 잘못된 고유성이 그 결과다. “Ce fausse singularité n'est qu'une privation de caractère qui consiste non seulement à éviter à être ce que sont les autres, mais à tacher d'êtres uniquement ce qu'ils ne sont pas” (이런 가짜 단독성은 단지 다른 이들이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그들이 지니고 있지 않은 다른 존재를 담고 있는 것을 구성하는 특성들의 타락이다) 역시 여기서 커뮤니케이션의 불가능성이 인식의 금지에 이른다는 것이 놀랍다. 모든 개인의 자기-언급이 원리상 요구하는 것과 반대로, 사람들은 그들이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26] “단독성을 통해서 대중의 눈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시도하라”라고, Contess Dowager of Carlisle은 그녀의 책 Thoughts in the Form of Maxims Addressed to Young Ladies on Their First Establishment in the World, London 1789, S.40에서 충고한다.
[27] Louis Gabriel Ambroise, Vicomte de Ronald Réflexions sur l'esprit et le génie (1806), Puvres complètes, Paris 1858에서 인용, Genf 1982 재출판, Bd. X, S. 164-175.
[28] Ian Watt, The Rise of the Novel: Studies in Defoe, Richardson and Fielding, London 1957, 1967 재출판에 따르면, 이것이 소설의 문학적 형식을 가능하게 한다.  
[29] 이런 경험의 의미는 또한, 예수회가 진짜 경건과 가짜 경건의 구별 불가능성 (신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기도자들에 의해서도)에 부여했던 반론의 약점 속에도 간접적으로 발견된다. 이에 대해서는 Pierre de Villiers, Pensées et réflexions sur les egaremens des hommes dans la voye du salut, Paris 1693, 3. Aufl., 3 Bde., Paris 1700 -1702에서 인용.
[30] 일차적인 서유럽의 원천에 대해서, Lovejoy, a. a. 0., S. 128 ff. 심지어 Kant는 이런 생각에 진화적 우위성을 부여했다. 그것을 그는 겸손(Sittsamkeit)이라 불렀다. (in: Muthmaßlicher Anfang der Menschengeschichte (1786) Sämtliche Werke, Bd. 6, Leipzig o. J., S. 49-68, 56 에서 인용) 그러나 도덕 이론 자체는 객관적인 ‘도덕 법칙’(Sittengesetz)에 기반했다.
[31] 이것은 무엇보다도 역사가들의 사회역사적 연구에서 보인다. 예로는 Lawrence Stone, The Family, Sex and Marriage in England 1500-1800, London 1977, insb. S. 221 ff.
[32] 동일한 것이 관찰된다. Mutatis mutandis, in Niklas Luhmann, Liebe als Passion: Zur Codierung von Intimität, Frankfurt 1982.
[33] 여기서 소위 르네상스 개인주의와 근대성의 개인주의가 등장하는 데 선행한 그것의 (논쟁적) 성격에 대한 복잡한 연구들이 범주화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Norman Nelson, Iridividualism as a Criterion of the Renaissance, Journal of English and Germanic Philology 32 (1933), S. 316-334.
[34] De Villiers, a. a. 0., Bd. 2, S. 93. 또한 Alois Hahn, La sévérité raisonnable: La doctrine de Ja confession chez Bourdaloue, in Manfred Titz, Nolker Kapp (Hrsg.), La pensée religieuse dans la littérature et la civilisation du XVIIe siècle en France, Paris-Seattle-Tübingen 1984, S. 19-40. 17세기에서 특별한 강조에 대해서는 Jacques Le Brun, Das Geständnis in den Nonnenbiographien des 17. Jahrhunderts, in: Alois Hahn, Nolker Kapp (Hrsg.), Selbstthematisierung und Selbstzeugnis: Bekenntnis und Geständnis, Frankfurt 1987, S. 248-264.
[35] “On tombe en faisant profession d'être devot dans tous les vices ordinaires à ceux qui se piquent de quelque profession particuliére”(독실함에서 나와 공개적 선언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어떤 특별한 공언의 흉내를 내려는 사람들의 일상적 모든 악덕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II y en a beaucoup qui seroient devenus devot, s'ils ne s'etoient piquez de le devenir”(그리고 그런 척을 하지 않는다면, 독실해야만 할 많은 사람들이 있다) “qui voudra être devot pour en faire profession, ne le sera pas; qui Je sera veritablement, en fera profession sans penser de le faire” (공언으로서 독실함을 원하는 사람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독실한 사람은 자신이 그렇게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도 그것의 공언을 할 것이다) (De Villiers, a. a. 0., Bd. 2, S. 96-98). 그렇지만 위선과 ‘거짓 경건함’에 연관된 악평 때문에,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기독교적 삶의 방식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모든 방향에 함정이 놓여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통과하기 위해서 보조적인 정신적 카운셀러를 필요로 한다. 모든 임무는 전문적인 수행자의 관점에서 기술되어 있다. 그들은 그것을 대단히 어려운, 그러나 넘을 수 없는 것은 아닌 것으로 그린다. 이 때문에 사람들 대부분은, 개인성의 시맨틱 대부분이 행위의 전문화의 부산물로 등장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가진다. 이는 전문적 고백자, 전문적 조신함, 그리고 전문적인 유혹자, 즉 모든 종류의 abbés에게도 마찬가지로 진행된다.  
[36] 이에 대해서는 특히 Pierre Nicole, Essais de Morale, Paris 1671-1674, Bd. 1-4, Paris 1682에서 인용.
[37] “On a beau prêcher la devotion; presque personne ne s'y determineroit si l'on devoit trouver dans sa devotion que la devotion” (어떤 이가 아무리 독실하게 기도하는 지와 상관없이, 어떤 누구도 독실함 속에서 단지 독실함 만을 발견할 수 있을 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Pierre de Villiers, Réflexions sur les défauts d'autrui, Amsterdam 1695, S. 144.
[38] “Faire servir la piété à son ambition, aller à son salut par le chemin de la fortune et des dignités; c'est du moins jusques à ce jour le plus bel effort de la dévotion du temps” (경건을 야심의 종으로 만들어라, 부귀영화의 길을 따라 구원에 이르러라, 적어도 오늘날에는 그것이 시간의 독실함 속에서 누군가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노력이다) Jean de La Bruyère, Les caractères: De la mode Nr. 21, Œuvres complètes, éd. de la Pléiade, Paris 195 1, S. 398. 또한 인간의 덕과 진정한 덕 사이의 구별, 이 주제에 정확하게 초점을 맞춘 인공적으로 보이는 구별에 대해서는 Jacques Esprit, La Fausseté des Vertus Humaines, 2 Bde., Paris 1677/78.
[39] 17세기 격언이라는 문학 장르에서 이런 관념이 형식화 된다. 이에 대해서는 Madeleine de Scuderi, De la connoissance d'autruy et de soy-mesme, in Conversations sur divers sujets, Bd. 1, Lyon 1680, S. 65-135. 자신에 대해 과도하게 확장된 지식은 어떤 우애나 모든 상호적 평가를 파괴하면서, 사회적 담론에서 유지될 수 없는 우월성을 만들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회적 담론은 불투명성에 기반한 투명성을 필요로 한다.
[40] Jacques du Bosq, L'honneste femme, Neuaufl. Rouen 1639, S. 132 ff.에서는 난봉꾼은 숙녀에게서 우선 그들의 경건함을 빼앗고, 그리고는 나머지를 빼앗는다고 경고한다.
[41] Charles Duclos, Les confessions du Comte de ... (1741), Lausanne 1970 재출판, S. 77 ff.
[42] Nicolas d'Ailly, Sentimens et Maximes sur ce qui se passe dans la société civile, Paris 1697, S. 40 f.; de Villiers, a. a. 0. (1700), Bd. 2, S. 100 ff.
[43] 상세하게는 Jean Baptiste Morvan de Bellegarde, Réflexions sur le ridicule, et sur les moyens de l'éviter, 2. Aufl., Amsterdam 1701. 여기서 비웃음은 피할 수 있는 제재로 이해된다. Shaftesburysms dl 원리를 더 능동적이고 ‘증명의 방식으로서 비웃음’이라고 방법론적으로 만들었다. Anthony, Earl of Shaftesbury, An Essay on the Freedom of Wit and Humour, 1709,: Characteristicks of Men, Manners, Opinions, Times, 2. Aufl., o. 0. 1714, Bd. 1, S. 57-150 (S. 61에서 인용).
[44] 특히 Ernst Christian Trapp, Versuch einer Pädagogik, Berlin 1780, Leipzig 1913 재출판.
[45] Abbé Joannet, De la connaissance de l'homme dans son être et dans ses rapports, Paris 1775, Bd. I, S. 96 ff. bzw. S. XCVIII ff. 자아의 현실성(!)에 대한 추가에 있어서, 이런 사고의 대담한 본성(a. a. 0., S. XCVIII f.)을 인식한 Joannet은, “l'existence du Moi est susceptible de plus et de moins ... car on conçoit qu'elle a, si j'ose m'exprimer ainsi, d'autant plus de réalité que Je sentiment est plus agréable et plus pleine, la connaissance plus étendue et plus vraie, la volonté plus efficace et plus universellement satisfaite” (Me라는 존재는 더 감각적일 수도, 덜 감각적일 수도 있다. … 왜냐하면 내가 내 자신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존재는 더욱 더 현실성을 가진다는 것을, 그 감정은 더욱 즐겁고 더욱 완벽해지고, 그 지식은 더욱 확장되고 진실될 수 있고, 그 의지는 더욱 유효하고 더 완전하게 만족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 몇 세기동안 감수성은 이미 증가의 매개로서 이해될 수 있었다. “Les âme sensibles ont plus d'existence que les autres: Les biens et les maux se multiplient à Ieurs égards” (감각적 영혼은 다른 이들보다 더 풍부하게 존재한다. 선과 악은 그것에 따라 증폭된다), Charles Duclos, Considérations sur les moeurs de ce siècle, a. a. 0., S. 235.라 썼다.  
[46] Pierre-Louis Moreau de Maupertuis, Essai sur la formation de corps organisés, Berlin 1754 그리고 같은 해 George Sulzer, Versuch über die Glückseligkeit verständiger Wesen, Vermischte Philosophische Schriften, Bd. I, Leipzig 1773에서 인용, Hildesheim 1974 재출판, S. 323-347.
[47] “Les hommes sont, dit-on, pleins d'amour-propre, et attaché à leur intérêt. Partons de là. Ces dispositions n'ont par elles-mêmes rien de vicieux, elles devient bonnes ou mauvaises par les effets qu'elles produisent.” (인간은 자기-애로 가득 차고 자신의 이해에만 매달린다고 이야기된다. 그것을 잠시 치워두자. 그들 자신에게서 이런 배치에 대해 타락한 어떤 것도 없다. 그들은 그들이 생산한 효과에 의해 선하거나 악하게 된다.) (Charles Duclos, a. a. 0., S. 198).
[48] Duclos, Considérations, a. a. 0., S. 350 f.
[49] ‘Une espèce d'Aristocracie’, Sénac de Meilhan, Considérations sur l'esprit et les mceurs, London 1787, S. 312 f. 에서 의식적 무심함을 가지고 쓴다.
[50] Siehe Senac de Meilhan, a. a. 0., S. 317 ff.
[51] Sénac de Meilhan, a. a. 0., S. ·41.
[52] (세기초 이후 수고 형태로 알려진) Pierre Cuppé, Le ciel ouvert à tous les hommes, ou traité theélogique, 1768 J. J. (= Dom Nicolas Louis), Le ciel ouvert à tout l'univers, o. 0. 1782. 이런 제목의 형식은 종교적 포섭에 대한 관심의 완벽한 실례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섭하는 대신, 이제 사회화에 대한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53] Pascal을 따라서 Pierre de Villiers, Pensées et reflexions, a. a. 0., Bd. l, 1700, S, 204 f. 에서는 지옥을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영원한 저주의 처벌에 대한 고려 없이 사는 광기라 쓰고 있다.
[54] 많은 예 중 하나는 Diderots ‘Supplément au voyage de Bougainville’, Œuvres, éd. de la Pléiade, Paris 1951, S. 993-1032. 초기의 인간학적 연구와의 결합에 대해서는 Eberhard Berg, Zwischen den Welten: Anthropologie der Aufklärung und das Werk Georg Forsters, Berlin 1982.
[55] Locke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장 영향력 잇는 전통 노선 중 하나는, 재산이란 이미 자연 상태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문명화 효과는 화폐 경제를 통해서 발생한다. 화폐 경제가 18세기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면서, 이 문제는 근본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Locke에 의해 이뤄진 전통의 노선은 재산이 자연 법에 기반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 문제에 다른 관점을 취한 이들은 실정법 위에 재산을 다룰 필요가 있었다. 어떤 경우에건, 재산은 불평등과 연관되었고, 그래서 부정의와 연결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서건 법은 스스로가 만들어 낸 부정의를 다뤄야만 한다.  
[56] Simon-Nicolas-Henri Linguet, Théorie des loix civiles, ou Principes fondamentaux de Ja société, 2 Bde., London 1767, Bd. 1, S. 193.
[57] Linguet, a. a. 0., S. 187.
[58] “L'education vient étouffer la voix de Ja nature”,(교육은 자연의 목소리를 질식시킨다)라고 Linguet, a. a. 0., S. 184는 주장한다. Sade는 동일한 것을 훨씬 더 주장한다.
[59] Linguet, a. a. 0., S. 199.
[60] Mögen also die Menschen immer verschieden bleiben und untereinander in Rang, Titeln, Reichthümern, Kenntnissen, wirklichen Nutzleistungen, Religionsmeinungen u.s.w. bald vorgehen, bald nachstehen. Nur gegen die Gesellschaft, gegen den Staat, müssen sie alle gleich seyn und mit edlem Eifer auf diese Gleichheit halten” (인간 존재는 그들의 위치, 직책, 부, 지식, 진정한 능력, 종교적 의견 등등에 따라서 언제나 때로는 우월하고, 때로는 열등하게 다를 수 있다. 단지 사회, 국가와 관해서만 그들은 모두 동등하고, 고귀한 열정으로 이 평등을 추구해야만 한다.) Carl Friedrich Bahrdt, Rechte und Obliegenheiten der Regenten und Unterthanen in Beziehung auf Staat und Religion, Riga 1792, S. 37
[61] Boesnier de l'Orme, De l'esprit du gouvemement économique, Paris 1775, München 1980 재출판, S. 55.
[62] 이 논의는 Boesnier de l'Orme, a. a. 0.
[63] Michel Serres, Le parasite, Paris 1980.
[64] 회고적으로, 부르주아 사회의 전-혁명기 이론은 종종 잘 못 평가되고, 부르주아 사회 비판은 Hegel과 Marx의 발명처럼 보인다. 이런 버전은 또한 확실하게 낙관적인 ‘성장하는 계급’의 허구에 잘 맞아 떨어진다. 그렇지만 이런 회고적 맥락에서, 그것은 역사에 대한 강하게 단순화된 해석의 산물일 뿐이다.  
[65] Claude François-Joseph Auxiron, Principes de tout gouvemement, ou examen des causes de la splendeur ou de la foiblesse de tout Êtat considere en lui-même, et indépendenment des mœurs, 2 Bde., Paris 1766, Bd. 2, S. 302.
[66]  이에 대해서는 Louis Dumont, Homo aequalis: Genèse et épanouissement de l'idéologie économique, Paris 1977
[67] 그렇지만 여기서 시작된 사유의 발전이 개인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지지하는 한에서, 순수하게 수동적인 이해는 더이상 충분하지 않다. 취향이 판단이 되면서 능동적이 된다. 
[68] 이 전통은 Ovid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러나 정확하게 여기에는 특히 신학자에 대한 하나의 빛나는 그리고 유혹적인 자질이 존재한다. Jean Pierre Camus, Les Diversitez, Bd. 1, 2. Aufl., Paris 1612, S. 289 ff. (292)는 sorciere Nouveauté에 대해 말한다.
[69] Lodovico A. Muratori, Della perfetta poesia italiana (1706), Milane 1971에서 인용, Bd. 2, S. 104 ff. 일반적으로 Gracián (혹은 ‘Spanish’)이 원전으로 인용되지만, 그러나 이런 관념 자체는 훨씬 더 오래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François de Grenaille, La Mode ou Charactere de la Religion ..., Paris 1642, S. 5: “Si la durée fait subsister toutes les parties du monde la nouveauté les faict estimer” (만일 인내가 상류 사회[le monde]의 모든 부분을 유지해 준다면, 참신함은 그것에 가치를 제공한다)
[70] Jean Le Rond d'Alembert, Dialogue entre la poésie et la philosophie, in: Mélanges de littérature, d'histoire et de philosophie, Berlin 1753, Œuvres complètes, Bd. IV에서 인용. Genf 1967 재출판, S. 373-381 (379)
[71] A. a. 0., S. 150 f.
[72] Muratori, a. a. 0., S. 91 ff. 또한 Lodovico A. Muratori (Pseud. Lamindo Pritanio), Riflessioni sopra il buon gusto intorno le scienze e le arti, 1708.
[73] 더 이른 시기의 개념에 매달린 이들은 이것을 좋은 취향의 ‘타락’으로 그렸다. 이에 대해서는 Anne Lefebvre Dacier, Des causes de la corruption du goust, Paris 1714.
[74] 이런 17, 18세기 취향론의 표준적인 topos에서 나타나는 이전/이후의 연대기적 구조는(이에 대해서는 John Gilbert Cooper, Letters Concerning Taste, 3. Aufl. London 1757, S. 6 f.) 그 자체 상호의존성의 중단과 비대칭적인 순환성을 그리기 위한 하나의 기술이다. 그리고 이미 이성이 직관을 승인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면,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의견을 물을 필요는 없다. (특히 상호작용의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의심의 목소리가 허용되지 않는 것처럼)
[75] R. G. Saisselin, Taste in Eighteenth Century France: Critical Reflections on the Origins of Aesthetics, or Apology for Amateurs, Syracuse, N. Y. 1965, S. 64 f. “18세기 취향은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설명되었고, 취향의 정의는 예술적으로 해결되었다. 그것은 순환적 추론이지만 역사적으로 이것이 그런 경우다.”
[76] Réflexions critiques sur la poésie et sur la peinture, (1719), Paris 1733 확장판에서 인용.
[77] “Le coeur s'agite de lui-même et par un mouvement qui precede toute déliberation, quand l'objet qu'on lui présente est réellement un objet touchant” (마음은, 저절로 동요하고 현실에서 제시된 대상이 하나의 접촉한 대상일 때, 모든 숙고에 선행하는 하나의 운동을 통해 성장한다.) (a. a. 0., Bd. 2, S. 326).
[78] Dubos a. a. 0., Bd. 2, S. 13.
[79] 물론 이런 정식화는 어느 정도 과하게 명백해서, 수정을 필요로 한다. 비록 좋은 취향이 그 규칙을 알거나 명명할 수 없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 사이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Abbé de Bellegarde, Reflexions sur le ridicule et sur les moyens de l'éviter, 4. Aufl. Paris 1699, S. 160 ff. 에서 쓰고 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서 역시 “cinq ou six honnêtes gens, qui se connaissent en vrai merité” (서로 다른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대, 여섯 명의 정직한 사람)에 매달릴 필요가 있다.  
[80] Dubos a. a. 0., Bd. 2, S. 334 ff.
[81] 이런 관념의 발전에 대해서는 Alfred Baeumler, Das Irrationalitätsproblem in der Ästhetik und der Logik des 18. Jahrhunderts bis zur Kritik der Urteilskraft (1923), 2. Aufl., Tübingen 1967.
[82] 복합성〔unitas multiplex〕 문제에 대한 특별히 인상적인 해법을 제시한다는 주장을 통한 예술의 흥미로운 ‘상승’은 감정화를 향한 〔낭만적〕 경향과 독립해서 증명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Jean Pierre Crousaz, Traité du Beau, Amsterdam 1715, S. 12 ff.
[83] 이것이 미학 자체에 만든 문제들에 대해서는 여기서 더 살펴볼 수는 없다. 어떤 경우건, 그 때 이후 예술작품이, 스스로를 재현한다는 사실 이외에 예술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가 있어왔다.
1 note · View note
livlovlun119 · 1 year
Text
달로 달의 뒷면 바다 우주 이야기 등등 / 죽음의 푸가 1942 이후의 세계 국가 / 세이렌99 손경욱 전생 신화 분위기 / 그리고 음악 나 환영 미디어 수사학 schweig 나의 야만 /
베를린 북극 꿈 ; 전승기념탑 전쟁 나 마리 제인 코펜하겐 너 북극 고래들의 자살 / 죽음에 이르는 병 나 환희(죽은 친구 연인?) 사랑니 발치 죄와 벌 지와 사랑 어머니 아버지 키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그 개 / 지옥은 어디일까 케르베로스 종교서적들 그레고르 잠자 벌레 토니오 크레거 유형지에서 프로크루스테스 발목 칼 지옥 / 암송 뼈 유령 기억 비밀 음악 세계 시간 공간 /
수사학 시대의 독백의 다양성 우찬제 / 1 언어 학대증과 실어증 / 르 클레지오 홍수 실어증 / 양치기 소년 언어 학대증 / 이제 그만 이야기하자 다만 노래하자 한유주의 독백 / 2 수사학 시대를 거스르는 감각과 수사 / 미디어 야만에의 절망 / 고립과 독백 / 911 ; 공시적 ; 즉시성 ; 장면은 감각 너머에 있다 / 파울 첼란 죽음의 푸가 우리는 허공에 무덤을 판다 / 3 허공에 무덤 파기의 은유와 윤리 / 브레히트 아도르노를 떠올리게 함 / 동행이 파탄으로 귀결 / 동행자는 단지 남이 아니라 나의 다른 존재 이기도 하다 / 그야말로 나의 환영 / 묵시록적 꿈 내용을 은유의 전략으로 농축한 시적인 이야기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 개인적 독백 윤리적 담론 / 4 독백 음악 다양성 / 시적이다 / 서사적 구체성의 결여 / 수사학을 넘어 음악으로 / 그리고 음악에 나오는 환영의 경우처럼 언어에 대한 결벽증 / 소설 전체가 낯선 것은 문학언어 때문 /
0 notes
regina-88 · 1 year
Text
교감공명
내 생각과 네 생각이 다를 때
울리는 머리 속 불협화음
네 생각이 사리에 맞는지
독설에 조롱도 못하고
욕설에 무관심이 안되고
자기전에만 생각나는 말대꾸
타고 나는 것이지 훈련된 것인지
배워서 되는 것이라면 수사학 좀 배워 둘 걸
너를 이기려면
원하지 않는 시간에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
예상하지 않는 방법으로 ���격
그래도 질 것 같으면
내 편은 우리 안으로
네 편은 우리 밖으로
무리한 교감공명을 바라며
맷집을 기르는 중
0 notes
Text
GRAD 502 - Week 7.1
Voice and persuasion/message and meaning
The art of rhetoric (수사학)
Logos - coherence, structure, facts, data, statistics, test results, research, graphs
Pathos -  humour, vulnerability, metaphor, surprise, images, storytelling
Ethos - credibility, reputation, authority, expertise, trustworthiness, confidence
Ethos how does your campaign speak to ethics?
Pathos what emotions are you trying to evoke?
Logos what evidence/logic behind your call to action?
-prototyping and message and meaning
Strategies for persuading
Headline or title
Subject line
Caption
Statistic
Quote
Attention statement
Call to action
Are you promoting, informing, challenging, asking, persuading, demonstrating, prompting or 
Thinking of copyrighting.
Clarity + cleverness
Use conversational language
Identify your audience
They're using the simple drawing looks like using the colour papers. Simple contrast, simple colour
Big title with the colour cute typographic with the simple question underneath. And quote.  
Green Big bold typographic
There’s don’t have line for the subject there have simple question under title
Climate is changing 
Don’t have any statistic
Why aren’t we?
Penguin on the island with the tree and there looks a tropical island (penguin live in Antarctic)
Test your copywriting in small group
Using a zebra crossing and stop Harold the giraffe - mascot (zebra) Zebra crossing Stop drop and roll - fire escape 
The plan for the holiday
Logo
Gif 
Animation 
Planning with the exemplar
Zine book
m&m logo animatic
0 notes
tumsonzy · 2 years
Text
튀니지 국민 투표: Kais Saied 대통령은 권력
튀니지 국민 투표: Kais Saied 대통령은 권력
튀니지 국민 투표: Kais Saied 대통령은 권력 확장을 위한 권한을 요구합니다. 튀니지 대통령이 월요일 유권자들에게 더 큰 권한을 부여하는 새 헌법을 승인해 줄 것을 요청하자 북아프리카의 분석가인 마그디 압델하디는 지지자들이 그를 구세주로, 반대자들에게 권력 찬탈자로 여겼습니다. 구글 상위 노출 카이 사이 사장은 자신이 운명의 사람이라고 분명히 느끼고 있다. 그의 권위주의적 성향은 튀니지나 그 지역에서 독특하거나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의 학문적 자격과 수사학 스타일은 그를 다른 모든 아랍 독재자들과 멀리 떨어뜨립니다. 종종 애드리브가 있는 흠잡을 데 없는 고전 아랍어로 연설을 하는 전직 법학 교수는 명확한 초점과 비전, 철통같은 결단력으로 말을 신중하게 평가하는 남자의 느낌을…
Tumblr media
View On WordPress
0 notes
stockofgod · 4 years
Photo
Tumblr media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으로 말잘하는법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키케로, 말잘하는법, 서양철학 https://coupa.ng/bpoq7W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키케로 #말잘하는법 #서양철학 #베스트셀러 #신간 #bookcover #本 #読書記録 #読書 #instagood #そしてバトンは渡された #瀬尾まいこ #小説 #本 #本が好き #読了 #book #books #bookstagram #本屋大賞 ★협찬★AD #선팔 #맞팔 #북카페 #책스타그램 #책추천 #bookworm #Novel #소설 #fantasy 2년차 백수겸 힘겨운 환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용카츠에게 도움을 주는 방법 : http://bit.ly/2DQkKVr 음악: For Now URL: https://icons8.com/music/ 블로그 http://m.blog.naver.com/wntlrgod 오픈카톡https://open.kakao.com/o/gRVe4wob 해당 업체로부터 제품을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파트너스 활동을 통해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을 수 있음 https://www.instagram.com/p/B8kqZT9HmM1/?igshid=hf99igyfnqrw
0 notes
livlovlun · 3 years
Text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실천적 지혜(보편 개별) 관조(테오리아)와 실천(프락시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성서 존 보커 시공사
가톨릭에 관한 상식 사전 페터 제발트 보누스
단테(1265~1321)의 세례명 두란테 참고 견디는 자
베르길리우스 베아트리체 베르나르두스(중세 수도사)
원제는 희극이었으나 보카치오가 1555년 신곡으로 출판
지옥 연옥(~29곡) 베르길리우스 연옥 30곡 ~ 천국30곡 베아트리체 천국(31~33곡) 베르나르두스
철학의 위안 보에티우스
설득 이데올로기 역량 헤게모니
코스모폴리스 스티븐 툴민 경남대 출판부
다시 쓰는 근대사 이야기 로버트 마르크스 코나투스
걸리버 여행기 조나단 스위프트
방법서설 데카르트(1596~1650) 에세이 대중철학서
원제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서설 그리고 그 방법에 관한 에세이들인 굴절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
신기관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
베이컨 홉스 로크 버클리 흄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혈액 순환에 관한 연구 윌리엄 하비
갈릴레이 베이컨 케플러 윌리엄 하비->데카르트
폭정의 역사 브렌다 랄프 루이스 중세 유럽 왕실의 비극과 광기의 역사
홉스(1588~1679) 자연법 개명된 이기심 사회계약 현실주의적 인간론 리바이어던 전쟁상태로서의 자연상태
로크(1632~) 통치론 원제 통치에 관한 두 논문 제2론이 통치론 명예혁명 소유를 욕망하는 개인
데카르트는 인간을 중심에 두고 로크는 인간의 소유권을 중심에 둔다
��간은 사라지고 소유권만 남게 되다
법의 정신 몽테스키외(1689~1755) 삼권분립
보편적 이성주의가 아니라 인류학적 상대주의 입장
공화정 덕성 군주정 명예 전제정 공포
18세기 말 프로이센에서 칸트(보편적 이성주의)와 헤르더(인류학적 상대주의)의 충돌로 나타남
직업으로서의 정치 막스 베버(1864~1920)
주요저서 <경제와 사회> 근대 사회의 형성과 전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위 저서에서 파생되어 나옴
파시즘 출현 예언
파놉티콘 벤담(1748~1832) 서구 근대 문명의 파산 원인 감옥 건축 계획 벤담의 사회운영 모델 응축
거대한 전환 칼 폴라니(1886~1964) 서구 근대 문명의 파산 과정
문 행 충(정치적 식견) 신(수사학 언어)
71세에 춘추 엮음
공자는 역사적 플라톤(이데아 신)은 몰역사적
공통점은 규범이 파괴된 현실
2 notes · View notes
13month0day · 6 years
Text
예술가들
우리는 같은 직업을 가졌지만 모든 것을 똑같이 견디진 않아요. 방구석에 번지는 고요의 넓이. 쪽창으로 들어온 별의 길이. 각자 알아서 회복하는 병가의 나날들.
우리에게 세습된 건 재산이 아니라 오로지 빛과 어둠뿐이에요. 둘의 비례가 우리의 재능이자 개성이고요.
우리에게도 공통점이 있죠. 죽고 싶은 순간들이 셀 수 없이 많다는 것. 우리 중 누군가는 분명 요절할 테지만 정작 죽음이 우리를 선택할 땐 그런 순간들은 이미 지나친 다음이죠.
버스 노선에 없는 정류장에 내려서 주변을 둘러볼 때의 어리둥절함. 그게 우리가 죽는 방식이라니까요. 보험도 보상도 없이 말이에요.
사랑? 그래, 사랑이요.
우리는 되도록 아니 절대적으로 사랑에 빠지지 말아야 해요. 검은 수사학, 재기 어린 저주, 기괴한 점괘. 우리가 배운 직업적 기술이 사랑에 적용된다면……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지 않나요?
옛날 옛적 어느 선배가 충고했죠. 그대들이 만에 하나 사랑에 빠진다면 동백꽃이 지는 계절에 그러하길. 그것은 충분히 무겁고 긴 시간이라네.
간혹 우리 중 누군가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이 들려요. 그러곤 아주 끔찍한 일이 생겼다는 뒷이야기도요. 우리의 사랑은 사내연애 따위에 비할 수 없어요. 버스 종점에 쭈그리고 앉아 영원히 흐느끼는 이. 이별을 하면 돌아갈 집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이. 그 사람이 버림받은 우리의 처량한 동료랍니다.
노동? 그래, 노동이요.
마지막 파업 때 끝까지 싸운 이는 노조 간부가 아니라 연극반원이었다네요. 그가 경찰에게 몽둥이로 얻어터질 때 세 명의 피 흘리는 인간이 나타났다네요. 그중에 겨우 살아남은 이는 조합원이고 죽은 이는 햄릿이고 가장 멀쩡한 이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조차 못 외우는 초짜 배우였다네요.
남들이 기운차게 H빔을 들어 올릴 땐 저만치서 뒷짐을 지고 콧노래나 흥얼거리지만 우리는 사실 타고난 손재주꾼이랍니다. 공장 곳곳에 버려진 쇳조각과 페인트로 불발의 꽃봉오리, 반기념비적인 바리케이드, 죽은 동지들의 잿빛 초상화를 담당하는 건 언제나 우리 몫이죠.
우리는 큰 것과 작은 것 사이 이를테면 시대와 작업대 사이 그 중간 어딘가에서 길을 잇고 길을 잃어요. 고통에서 벗어나는 건 고통의 양을 줄이는 것이 아니에요. 그건 뭔가 다른 세상을 꿈꾸는 거라고요. 우리는 벤담의 공장에서 자발적으로 해고됐다고요.
우리는 이력서에 특기는 돌발적 충동 경력은 끝없는 욕망 성격은 불안장애라고 쓰고 그것을 면접관 앞에서 깃발처럼 흔들어요. 그리고 제 발로 문을 박차고 걸어 나오는 거에요. 의기양양하게 그리고 지독히 외롭게.
우리의 직업 정신은 뭐랄까. 살고 싶다고 할까. 죽고 싶다고 할까. 아니면 조금 유식하게 해방이라고 할까. 네, 압니다. 알고말고요. 우리가 불면에 시달리며 쓴 일기와 유서는 지나치게 극적이라는 것을.
생존? 그래, 생존이요.
언제부턴가 우리의 직업은 소멸하고 있어요. 죽은 노동이 산 노동을 대체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동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는지. 모든 공문서에서 우리의 이름 위엔 붉은 X자가 쳐져요.
기억? 그래, 기억이요.
나는 우리에게 벌어진 일을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어요.
1 note · View note
kpoqwr · 4 years
Text
대구시, 코로나19 방역수칙 어긴 콜라텍 29곳에 ‘집합금지’ 행정명령 o 토머스 울지
토머스 울지 최근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튜더스(The Tudors)]에 등장하는 토머스 울지는 비천한 도살업자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헨리 8세에 버금가는 권력을 휘두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묘사되곤 한다. 또한 그는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을 불러 일으켰던 헨리 8세의 첫 번째 이혼을 반대하다가 국왕의 총애를 잃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인물로 그려진다. 특히 “또 다른 왕(alter rex)”이라 불리울 정도로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그가 비참하게 몰락하는 모습은 [튜더스] 시즌 1의 마침표였으며, 앞으로 진행될 잉글랜드 종교개혁의 서막이었다. 다만 튜더스는 꽤나 고증이 잘 되어 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울지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요크 대주교이자 로마 교황청의 추기경이었던 울지의 직함만 보면 그는 당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종교인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의 삶을 살펴보면 그는 당대 유럽에서 그 누구보다 영향력 있는 외교관이었으며, 유럽 내 절대 강자의 탄생을 막기 위해 합종과 연횡을 주도했던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매우 섬세한 행정능력을 갖춘 행정가였으며,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헨리 8세에게 충성하던 신하이기도 했다. 이런 그가 헨리 8세의 이혼을 적극적으로 찬성할 수 없었던 데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었을 터였다. 과연 울지는 어떤 맥락에서 헨리 8세의 의중에 반하는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또한 그의 몰락이 잉글랜드 국, 내외 정치에 미친 영향력은 무엇일까? 비천한 출생? 토머스 울지는 1473년 잉글랜드 서퍽(Suffolk)을 대표하는 도시이자, 중세부터 양모를 수출하는 무역항으로 알려졌던 입스위치(Ipswich)에서 태어났다. 흔히 울지의 아버지 로버트 울지는 도살업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1520년대 울지를 모함하던 정적들이 남긴 기록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믿기 어렵다. 이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울지를 “천한 도살자의 아들”로 몰아붙였으나, 이에 대한 증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다만 1519년 영국을 방문한 베네치아 대사가 남긴 기록에서 울지가 “매우 비천한 신분” 출신이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기록을 통해 사람들은 울지의 아버지가 비록 도살업자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천한 신분 출신이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울지는 어떤 가문에서 자랐을까?울지가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는 기록은 여기저기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가난함이라는 것이 ���대적인 의미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당시 울지의 아버지와 형제들이 입스위치 지역에서 이름난 유지였던 던디(Daundy) 가문과 사돈을 맺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울지의 아버지가 단순한 도축업자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아버지가 작성한 유언장에 상당한 규모의 토지가 기록되었던 점을 보아도 울지가 결코 절대적 가난 속에서 성장하지는 않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왕따를 당하다 울지는 어린 시절 학업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입스위치에 위치한 그래머 스쿨(Grammar School)에서 라틴어와 ���랑스어를 배운 울지는 15살에 옥스퍼드 대학에 있는 모들린 칼리지(St. Mary Magdalen College)에 진학하여 문법, 수사학, 논리학, 수학, 음악, 천문학, 지리학 등을 수학하게 된다. 여기서 7년여에 걸친 기초과정을 마친 울지는 당시 많은 학생들이 법학부를 선택했던 것과 달리 신학을 선택한다. 이는 그가 중세 스콜라 철학을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가 신학부에 진학하자 그는 기존의 열정을 학업에 쏟지 못했다. 이는 당시 울지가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언제나 주변에 적이 많았던 울지는 이미 학창시절부터 동료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1498년에는 동료들이 울지가 장학생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집요하게 비난하곤 했는데, 이는 당시 모들린 칼리지가 탑을 짓느라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료들은 울지가 장학금을 수혜하는 것을 두고 학교 재정에 부담을 주는 파렴치한 행위라 비난했다. 그런데 1496년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터라 재정적 여력이 없었던 울지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장학금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집요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장학금을 포기할 수 없었다.이와 같이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상황에서 울지는 과연 사제가 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아버지 역시 울지가 사제가 되지 못할 것이라 걱정했던지 “울지가 사제가 되지 못한다면, 나를 위해 기도해 줄 사제를 따로 고용하라”고 유언을 남길 정도였다.1498년 간신히 사제 서품을 받을 수 있었던 울지는 교수가 되려는 꿈을 이루고자 학업을 이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는 높은 학비를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교수가 아닌 가정교사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학교에서는 왕따였고, 일개 가정교사로 커리어를 시작했던 울지는 과연 어떻게 권력의 핵심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을까? 가정교사의 인생 역전 울지는 학교에서 나와 도싯 후작(Thomas Grey, 1st Marquis of Dorset, 1455~1501) 가문의 가정교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울지가 시작한 가정교사 일은 그의 향후 인생에 매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당시 울지는 후작의 15명의 자녀 가운데 가장 어린 아이들 3명을 맡아 가르치고 있었는데, 후작은 “똑똑한 가정교사”를 구했다면서 기뻐하곤 했다. 심지어 후작은 1499년 크리스마스 축제에 일개 가정교사였던 울지를 초대했고, 울지는 그의 제자 3명과 함께 축제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축제에서 3명의 제자가 보여준 똘똘한 모습은 울지의 입지를 크게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도싯 후작은 크게 기뻐하며 울지의 학업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주었고, 비로소 울지 인생에 서광이 비치는 듯했다. 울지는 이듬해 옥스퍼드에 복귀할 수 있었으며, 교수가 되려던 그의 꿈도 머지않아 보였다.그러나 안정된 생활도 잠시, 1501년 9월 후작이 세상을 떠나면서 울지는 너무도 빨리 후원자를 잃고 말았다.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했던 그는 자리를 잡아야만 했고, 당시 켄터베리 대주교였던 헨리 딘(Henry Deane, 1440~1503)의 서기관으로 발탁되었다. 언뜻 켄터베리 대주교의 서기관이라는 자리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딘 아래에는 수십 명의 서기관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 막내였던 울지는 온갖 잡무를 도맡아야 했을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이미 나이가 70에 가까웠던 딘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고 만다.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울지의 입장에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울지는 서기관 가운데 막내였다는 이유로 딘의 장례절차 전반을 홀로 처리해야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 장례식으로부터 울지의 인생역전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매우 꼼꼼한 성격이었던 딘은 양초 하나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장례절차 전반을 미리 정해두었던 사람이었다.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딘의 장례식이 두말할 나위 없이 장대한 것이었음을 감안했을 때, 일체의 잡음 없이 식을 마무리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울지는 딘의 세세한 지시를 꼼꼼히 수행하며 성공적으로 장례식을 마무리 짓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딘의 지정유언집행자였던 레지널드 브레이 경(Sir Reginald Bray, 1440~1503)이 지켜보고 있었다.브레이 경은 울지의 행정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자신의 친우이자 칼레의 부총독이었던 리차드 낸펀 경(Sir Richard Nanfan, ?~1507)에게 강력히 추천했다. 사실 브레이 경과 낸펀 경은 당시 국왕이었던 헨리 7세(Henry VII, 1457~1509)가 아끼던 총신이었다는 점에서 울지는 상당히 강력한 후원자를 얻게 된 셈이었다. 15세기 후반 잉글랜드의 칼레항 잉글랜드가 소유한 대륙의 마지막 영토였던 칼레는 잉글랜드에게 매우 소중한 무역항이었다. 이 항구를 통해 잉글랜드의 주요 산물이 대륙으로 수출될 수 있었으며, 칼레를 오가는 상품에 매겨진 관세는 매우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칼레의 부총독 낸펀 경은 바로 이러한 무역 상품들의 수량과 가격, 관세를 관할하는 책임자였다. 그런데 1488년부터 오랫동안 칼레의 제반 업무를 수행했던 낸펀 경은 1503년 즈음에는 고령의 나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때마침 브레이 경이 울지를 추천하자, 낸편 경은 곧바로 울지를 칼레로 불러들이게 된다.칼레에서 울지의 꼼꼼한 행정능력은 빛을 발했다. 울지는 항구를 통과하는 상품 하나하나를 감독했음은 물론, 그 가격과 관세를 매기는데 특출한 재능을 발휘했다고 한다. 낸펀 경의 평가에 따르면 울지는 “똑똑하고, 섬세하며, 경제관념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매우 성실한 조수”였다. 시간이 흐르며 낸펀 경은 울지를 점차 중용했고, 건강 악화로 칼레 부총독의 지위를 내려놓을 때가 되자 울지를 헨리 7세에게 추천하기까지 했다. 헨리 7세는 자신이 아끼던 부하 낸펀 경의 추천을 외면할 수 없었고, 울지를 왕실 예배당의 사제로 받아들이게 된다. 가는 곳마다 후원자가 일찍 죽는 바람에 빛을 보지 못했던 울지가 드디어 왕실 사제로 부름 받은 것은 그야말로 인생 역전의 사건이었다. 최초의 외교업무 울지는 왕실 예배당에서도 금세 인정받았다. 또한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비슷한 출신의 실무자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특히 다아시 남작(Thomas Darcy, 1st Baron Darcy de Darcy, 1468~1537)은 울지가 “어디서나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라 회고하기도 했다.왕실 내 이름난 워커홀릭이었던 울지는 헨리 7세에게도 꽤나 인정을 받았다. 이는 울지가 1507년 헨리 7세의 대사로 임명되어 신성로마제국으로 파견되었던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1503년 아내와 사별한 헨리 7세는 결혼을 통해 유럽 내 강국들과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려고 했다. 특히 헨리 7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 1459~1519)의 딸 마가렛과의 결혼을 추진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은 잉글랜드에게 중요한 위협이었던 프랑스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가렛은 나이 많은 헨리 7세와 결코 결혼하고 싶지 않았고, 결국 1506년 이 혼담은 파기되고 만다. 이미지 목록 헨리 7세. 그는 당시 정치적으로 필요했던 마가렛과의 혼담을 토마스 울지로 하여금 추진토록 했다. 막시밀리앙 1세의 딸 마가렛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우방을 놓칠 수 없었던 헨리 7세는 1507년 울지를 보내 다시 한 번 마가렛과의 결혼을 추진하려 했다. 사실 울지가 맡은 이 임무는 이미 마가렛 측에서 분명한 거절의 뜻을 밝힌 터라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울지의 첫 번째 외교업무는 아무런 소득을 거두지 못했고, 빈손으로 돌아온 울지는 헨리 8세의 등장까지 비교적 조용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외교력을 인정받아 추기경이 되다 왕실 예배당의 사제로 조용한 시간을 보내던 울지는 1509년 헨리 7세의 사망과 함께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었다. 예배당에서 곧잘 마주치던 헨리 8세가 울지를 중용했던 것이다.장남이 아니었던 탓에 제대로 된 국왕 교육을 받지 못했던 헨리 8세(Henry VIII, 1491~1547)는 12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죽은 형을 대신하여 왕세자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게다가 18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까닭에 헨리 8세는 국내, 외 정세를 직접 처리하기에 부족함이 많았다. 이에 헨리 8세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추밀원에 앉혔는데, 울지 역시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울지는 36살의 젊은 나이로 추밀원의 일원이 되었으며, 국왕의 직속 부하로 일하게 되었다. 특히 헨리 8세는 울지의 외교적 식견과 능력을 마음에 들어 했고, 이는 1512년부터 1514년에 진행되었던 대프랑스 동맹 결성과정과 대프랑스 전쟁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1511년까지만 해도 프랑스와의 전쟁을 반대했던 울지는 프랑스와 전쟁을 하려는 헨리 8세의 확고한 의지를 마주한 이후 강력한 전쟁 지지자가 되어 적극적으로 전쟁을 이끌어갔다. 1512년 잉글랜드는 당시 프랑스로부터 위협을 당하고 있던 교황 율리우스 2세(Julius II, 1443 ~1513), 스페인의 페르난도 5세(Fernando II, 1452~1516),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와 손을 잡고 프랑스의 루이 12세(Louis XII, 1462~1515)를 공격했다. 비록 전쟁 초반에는 고전했으나, 1513년 잉글랜드는 프랑스의 투르네(Tournai) 지방을 함락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성공의 일등 공신은 바로 울지였다. 울지가 이끌던 부대의 깃발 울지의 역할은 무기와 식료품 보급이었다. 당시 대부대의 무장과 식료품을 차질 없이 준비하고 보급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딘의 장례식장과 칼레의 항구에서도 빛을 발했던 것처럼 울지의 꼼꼼한 행정 처리는 전쟁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또한 본국의 보급 상황을 꿰고 있던 울지는 잉글랜드가 결코 이 전쟁을 오래 끌고 갈 수 없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어차피 전쟁을 지속할 능력이 없음을 깨달은 울지는 1514년 프랑스와의 정전협상을 추진했다. 여기서 울지는 잉글랜드의 상황을 철저히 숨긴 채, 온전히 잉글랜드에게 유리한 계약을 맺는데 성공한다. 그가 꺼낸 패는 바로 결혼외교였다. 울지는 헨리 8세의 여동생 메리와 루이 12세의 결혼을 추진하는 한편, 지참금을 가져가도 모자랄 판에 프랑스로부터 앞서 정복했던 투르네 지방을 완전히 양도받는데도 성공한다. 이는 그가 외교협상의 달인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결과물이었다. 다만 이 협상에 불안 요소가 있었다면, 루이 12세가 이미 나이가 너무 많았다는 사실뿐이었다. 울지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와 결혼하기를 싫어하는 메리를 달래고자 ‘루이 12세가 죽는 즉시 사랑하는 남자와 재혼하겠다’는 메리의 요구를 받아줘야만 하기도 했다.불안 요소는 적중했다. 결혼한 지 고작 3개월 만에 루이 12세는 사망했고, 메리도 즉시 사랑하던 남자와 비밀리에 결혼해버렸다. 프랑스 왕실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마지막 끈도 사라져버린 셈이었다. 게다가 호전적 군주 프랑수아 1세(François I, 1494~1547)가 프랑스 왕위에 오르면서 울지의 평화 구상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잉글랜드가 차지한 투르네 지방 역시 풍전등화의 위기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에 울지는 즉각 스페인, 신성로마제국과 손을 잡고 프랑스를 압박하며 잉글랜드의 안위를 꾀했다. 아무리 호전적인 프랑수아 1세라고 하더라도 세 국가와 전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헨리 8세는 울지의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 본인의 약점을 숨기고 외교 협상에서 거둔 최고의 성과, 위기 상황에서 나타난 임기응변에 감탄했다. 이에 헨리 8세는 울지를 요크의 대주교 및 대법관직에 앉히기에 이른다.울지의 능력을 높게 평가한 것은 헨리 8세만이 아니었다. 교황 역시 울지를 자신의 대변인으로 삼아 외교협상에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사실 울지가 교황청으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받을 수 있던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교황의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울지를 추기경으로 임명하는 한편, 교황의 특사로 삼아 유럽 각국의 협상에서 교황의 대변인으로 활용했던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아마 본인의 종교적 신실함이 아니라 외교 협상 능력을 기준으로 추기경에 임명된 경우는 울지 외에 많지 않을 것이다. 유럽 내 힘의 균형을 꿈꾸다 울지가 스페인, 신성로마제국과 손을 잡고 프랑스를 압박하며 평화를 유지한 것도 잠시, 1516년 스페인 국왕 페르난도 5세의 죽음은 또 다시 울지의 구상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페르난도 5세의 후계자 카를 5세는 울지의 기대와 달리 프랑스와 화해를 추구하고 나섰다. 이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자리도 노리고 있던 카를 5세가 프랑스까지 압박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카를 5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잉글랜드는 프랑스를 압박할 수 있는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두 가지 카드를 한 번에 잃고 말았다. 바로 이 위기 상황에서 울지의 능력은 또 한 번 빛을 발한다.울지에게 남은 마지막 카드는 교황뿐이었다. 1517년 교황 레오 10세는 오스만 제국에 반대하는 십자군 운동을 일으키고자 했는데, 이는 실제 십자군을 구성하려는 것보다는 단지 기독교 국가끼리의 전쟁을 막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특히 1494년 프랑스의 이탈리아 침공으로 큰 고통을 겪었던 교황은 유럽 주요 국가들끼리의 다툼을 막아야만 자신의 안위를 지킬 수 있었다.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자는 명분은 사실 교황청의 안위를 위한 얄팍한 속임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울지는 이러한 레오 10세의 의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잉글랜드에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하고자 했다.1518년 레오 10세의 특사였던 울지는 유럽을 대표하는 20개국 대사들을 런던으로 소집했다. 그리고 교황이 제시한 십자군 결성의 대의를 앞세워 기독교 국가끼리의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는데 성공한다. 특히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스페인, 부르군디, 네덜란드가 동참한 이 조약은 프랑스, 스페인,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고립되어있던 잉글랜드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었다. 이 조약을 통해 잉글랜드는 기존의 고립상태를 완벽하게 벗어나는데 성공했으며, 울지와 헨리 8세는 유럽 정치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나아가 잉글랜드는 유럽외교의 조정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때문에 울지가 제시한 런던 조약(Treaty of London)은 그의 대표적 업적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화려한 옷과 온갖 진기한 물건이 동원된 ‘금란의 들판’. 행사를 주관했던 울지는 이후 더 큰 명성을 얻게 된다. [금란의 들판], 1774. 울지의 기획력은 “금란의 들판(Field of the Cloth of Gold)”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런던 조약에서 불구하고 잉글랜드는 프랑스, 스페인, 신성로마제국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이에 울지는 1520년 프랑스의 국왕 프랑수아 1세와 잉글랜드의 헨리 8세의 만남을 기획했으며, 이 만남을 통해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관계를 크게 진작시키고자 했다. 칼레 인근 발링헴(Balinghem)의 들판에서 만난 두 국왕은 화려한 옷과 진기한 물건을 앞세운 수천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자신들의 부유함과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이 행사를 위해 임시로 만든 건물조차 온갖 금은보화로 치장되었고, 짐꾼조차 평상시에는 결코 입지 못할 고급 옷으로 치장했던 이 행사는 당대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행사의 화려함이 당대인에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는 위 그림 상단에 그려진 용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전설의 동물인 용이 와서 구경할 정도로 “금란의 들판”은 장엄한 행사였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행사의 주관자였던 울지의 명성은 국제적으로 크게 높아졌다.다만 행사의 실제적 효과는 매우 미미했다. 이는 행사 직후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울지는 가차 없이 프랑스를 버리고 신성로마제국을 택했는데, 이는 울지가 판단했을 때 프랑스가 잠재적으로 훨씬 위협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울지는 유럽 내 힘의 균형을 맞추고자 이리저리 편을 바꾸어 가며 외교전을 펼쳤는데, 이는 단기적인 잉글랜드의 안정을 위해 매우 유리한 것이었다. 하지만 편을 바꾸어가며 균형을 추구하는 울지의 전략은 결국 잉글랜드를 고립시켰고, 울지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잉글랜드의 외교적 고립 신성로마제국과 손을 잡고 프랑스를 견제하려던 울지의 시도는 교황의 입장에서 결코 환영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카를 5세는 중요한 외교적 사안마다 교황을 협박하곤 했기 때문이다. 또한 울지는 카를 5세와 손을 잡는 과정에서 레오 10세와 의견을 나누거나, 허락을 구한 적이 없었다. 오직 자신의 선택을 교황에게 통보했을 뿐이었다. 실상 울지에게 있어서 교황 역시 하나의 외교적 힘에 불과했으며, 일부 학자는 울지가 교황의 힘을 국왕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하려 했을 뿐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울지는 단지 복잡한 유럽의 외교 관계 속에서 오로지 국왕의 영향력 강화를 위해 골몰했을 뿐이고, 이는 1521년 신성로마제국과 손을 잡으려는 과정을 통해 엿볼 수 있다. 파비아 전투 1521년, 마침내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내심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를 노리고 있던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는 교황청이 마틴 루터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카를 5세의 황제 대관을 인정하자 크게 분노한 바 있었다. 시기를 엿보던 프랑수아 1세는 잉글랜드와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자 신성로마제국을 공격한다. 그런데 잉글랜드는 프랑수아 1세의 뒤통수를 치고 신성로마제국의 편을 들고 나섰다.물론 대륙 깊숙한 곳에서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었던 잉글랜드는 신성로마제국에게 이렇다 할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에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은 서로를 압도하지 못한 채, 1525년까지 지루한 공방전을 이어가게 된다. 조용히 전황을 지켜보던 잉글랜드는 1525년 프랑수아 1세가 파비아 전투(Battle of Pavia)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하고 포로로 잡히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몫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나섰다. 헨리 8세는 자신이야말로 프랑스 왕위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며, 프랑스 영토에 대한 직접적 야심을 드러냈던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헨리 8세의 무리한 요구는 신성로마제국의 분노를 사고 말았다. 카를 5세는 헨리 8세의 주장을 가차 없이 기각했고, 심지어 동맹관계마저 파기해버리고 말았다.프랑스를 배신하고 신성로마제국과 손을 잡았던 잉글랜드의 입장에서 카를 5세와의 단절은 위기였다. 그런데 울지는 여기서 수완을 발휘하여, 이번에는 프랑스와 다시 손을 잡는데 성공한다. 그가 제시한 패는 잉글랜드가 다시는 프랑스 영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며, 프랑수아 1세의 복권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 대가로 잉글랜드는 프랑스로부터 매년 2만 파운드를 받기로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울지의 협상 조건을 받아든 프랑스의 입장에서 울지의 약점을 파고드는 능력은 참으로 밉살스런 것이었다.울지는 프랑스만으로는 신성로마제국을 온전히 견제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카를 5세는 스페인은 물론 신성로마제국과 신대륙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영토와 무력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울지는 교황청 및 이탈리아 몇몇 도시 국가를 끌어들여 코냑 동맹(League of Cognac)을 결성한다. 이는 신성로마제국을 중심으로 한 캉브레 동맹(League of Cambrai)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유럽 내 강력한 세력이 나타날 때마다 적대 세력을 총결집하여 대항하는 울지는 그야말로 합종연횡의 달인이었다.코냑 동맹은 카를 5세에게 꽤나 부담스러운 것이었던 모양이다. 1527년 카를 5세는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교황청을 함락시키고, 교황 클레멘스 7세를 사로잡아버렸다. 심지어 1529년 프랑스는 밉살스러운 잉글랜드를 버리고 카를 5세와 화해해버렸다. 스코틀랜드마저 프랑스와 손을 잡고 잉글랜드 북쪽 국경을 위협하면서 ���글랜드는 국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되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울지가 손을 내밀 수 있는 세력이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다. 임기응변으로 억지로 유지해 온 유럽 내 힘의 균형이 한 번에 무너진 꼴이었고, 이를 주도했던 울지와 잉글랜드는 유럽 내 강국들을 한 번에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헨리 8세와 그의 첫 번째 부인 캐서린. 헨리 8세는 캐서린과 이혼을 추진했으나 울지는 당시 잉글랜드의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이를 반대했다. 이때부터 울지는 몰락의 길을 걷게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헨리 8세가 자신의 첫 번째 부인인 캐서린(Catherine of Aragon, 1485~1536)과 이혼을 추진한 것은 울지가 보기에 그야말로 자충수였을 것이다. 물론 이혼 소송은 아직 잉글랜드의 외교적 역량이 남아있던 1527년부터 시작된 것이었으나, 이후 급격히 고립되었던 잉글랜드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헨리 8세는 이혼 소송을 중지해야 했다. 무엇보다 캐서린이 카를 5세의 숙모였다는 점에서 그녀와의 이혼은 잉글랜드의 외교 협상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외교 환경에 민감했던 울지는 당연히 헨리 8세가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볼린(Anne Boleyn, 1507~1536)과 재혼하는 것에 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울지의 입장이 그를 초라한 몰락으로 이끌었다. 울지의 몰락 헨리 8세와 캐서린 사이에 장성한 아들이 없다는 것은 튜더 왕가에게 심각한 위기였다. 아직 왕권을 사이에 둔 귀족 가문 간 내전이었던 장미전쟁의 상흔이 가시기 전이었기 때문에, 왕위 계승 문제는 왕국 안정의 필수적인 요소였던 것이다. 이에 헨리 8세는 1527년부터 혼인 무효 소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카를 5세가 숙모인 캐서린을 보호하기 위해 교황을 협박하면서 중대한 국제적 문제로 비화되었다. 우유부단했던 클레멘스 7세는 미처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울지는 분명하게 국왕의 이혼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왕의 신임을 잃고 말았다.결국 그는 요크의 대주교라는 직함만 남긴 채, 자신의 관저와 토지를 빼앗기게 된다. 사실 1514년 이래 요크의 대주교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생애 한 번도 요크를 밟아보지 못했던 울지는 노구를 이끌고 낯선 지방으로 향해야 했다. 요크에 도착한 것도 잠시, 노섬벌랜드 백작에 의해 반역죄로 고발당한 울지는 런던으로 다시 압송당하기에 이른다. 결국 허약해진 심신을 이기지 못한 울지는 1530년 11월 29일 레스터에서 호송 도중 죽고 만다. 그의 나이 55살이었다.당시 울지는 “만일 내가 세속에 소요했던 시간만큼만 하느님을 섬겼더라면, 내가 이렇게 늙은 후에 하느님께서 나를 버리시는 일은 없었을 텐데….”라며 깊이 후회했다고 한다. 그 스스로도 마지막 한탄을 통해 본인이 성직자라기보다 세속적 업무에 치중한 사람이었음을 자인했던 것이다. 울지가 남긴 것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헨리 8세는 울지를 실각시키기 직전까지도 외교 및 실무에 관한 중요 업무에 그를 동참시켰다. 또한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았을 때, 헨리 8세와 울지 사이에 직접적 의견대립은 찾아보기 어렵다. 헨리 8세와 울지는 이혼 문제로도 그다지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울지의 실각은 단순히 그가 헨리 8세의 이혼을 지지하지 않았다거나, 정적들의 음모에 휘둘린 헨리 8세의 분노 때문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울지의 실각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중요한 것은 울지의 실각 자체가 헨리 8세에게 매우 유용한 외교적 수단이었다는 사실이다. 외교적으로 고립되었던 헨리 8세에게 남은 유일한 교섭 대상은 당시 교황이나 황제에게 상당한 부담이었던 종교개혁 세력이었다. 또한 당시 잉글랜드 내부에서 점차 세력을 과시했던 반성직주의(anticlericalism)는 헨리 8세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었다. 이에 교황의 대사이자 추기경이었던 울지의 실각은 국내·외적으로 국왕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었다. 결국 울지의 실각은 헨리 8세가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고자 선택한 계산된 판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오늘날 미디어를 통해 재현된 울지는 단지 비천한 출신을 극복한 권력자, 세속 권력에 몰두한 타락한 종교인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울지의 진면목은 유럽 내 힘의 질서를 꿈꾸었던 유능한 외교관에 있다. 비록 그의 구상은 끝내 실패로 돌아갔으나 일부 사람들은 그가 1518년 이끌어냈던 런던 조약을 근거로, 울지야말로 현재 EU통합의 목적과 방법을 제시한 최초의 인물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이는 물론 과한 평가이기는 하나 당시 울지가 얼마나 강력한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비참하게 몰락하던 순간마저 국내, 외적으로 유용한 외교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토머스 울지. 단순한 종교인이나 권력자를 넘어 그에 대한 마땅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참고문헌> Bernard, G. W. “The Fall of Wolsey Reconsidered.” Journal of British Studies, Vol. 35, No. 3(Jul., 1996), pp. 277-3 10. Cameron, T. W. “The Early Life of Thomas Wolsey,” The English Historical Review, Vol. 3, No. 11(Jul., 1888), pp. 458-477.Dunham, William Huse Jr. “Wolsey's Rule of the King's Whole Council,” The American Historica Review, Vol. 49, No.4(Jul., 1944), pp. 644-66 2. Gairdner, James. “The Fall of Cardinal Wolsey,” Transactions of the Royal historial society, New Series, Vol. 13(1899), pp. 75-10 2. Gwyn, Peter “Wolsey's Foreign Policy: The Conferences at Calais and Bruges Reconsidered,” The Historical Journal, Vol. 23, No. 4(Dec., 1980), pp. 755-77 2. Sidney Lee, ed., 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 vol. 62(1900)Woods, Robert L. Jr. “Politics and Precedent: Wolsey's parliament of 1523,” Huntington Library Quarterly, Vol. 40, No. 4(Aug., 1977), pp. 297-312. 대구시는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위반한 콜라텍 29곳에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내렸다고 6일 밝혔다. 대구 방역당국이 지난 5일 서구의 한 콜라텍 출입문에 붙인 집합금지 행정명령서의 모습.|대구시 제공 시는 구···
0 notes
jayintheblue · 7 years
Text
<예술가들> 심보선
우리는 같은 직업을 가졌지만
모든 것을 똑같이 견디진 않아요.
방구석에 번지는 고요의 넓이.
쪽창으로 들어온 볕의 길이.
각자 알아서 회복하는 병가의 나날들.
우리에게 세습된 건 재산이 아니라
오로지 빛과 어둠뿐이에요.
둘의 비례가 우리의 재능이자 개성이고요.
우리에게도 공통점이 있죠.
죽고 싶은 순간들이 셀 수 없이 많다는 것.
우리 중 누군가는 분명 요절할 테지만
정적 죽음이 우리를 선택할 땐
그런 순간들은 이미 지나친 다음이죠.
버스 노선에 없는 정류장에 내려서
주변을 둘러볼 때의 어리둥절함.
그게 우리가 죽는 방식이라니까요.
보험도 보상도 없이 말이에요.
사랑? 그래, 사랑이요.
우리는 되도록 아니 절대적으로
사랑에 빠지지 말아야 해요.
검은 수사학, 재기 어린 저주, 기괴한 점괘.
우리가 배운 직업적 기술이 사랑에 적용된다면......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지 않나요?
옛날 옛적 어느 선배가 충고했죠.
그대들이 만에 하나 사랑에 빠진다면
동백꽃이 지는 계절에 그러하길.
그것은 충분히 무겁고 긴 시간이라네.
간혹 우리 중 누군가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이 들려요.
그러곤 아주 끔찍한 일이 생겼다는 뒷이야기도요.
버스의 종점에 쭈그리고 앉아 영원히 흐느끼는 이.
이별을 하면 돌아갈 집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이.
그 사람이 버림받은 우리의 처량한 동료랍니다.
노동? 그래, 노동이요.
마지막 파업 때 끝까지 싸운 이는
노조 간부다 아니라 연극반원이었다네요.
그가 경찰에게 몽둥이로 얻어터질 때
세 명의 피 흘리는 인간이 나타났다네요.
그중에 겨우 살아남은 이는 조합원이고 죽은 이는 햄릿이고
가장 멀쩡한 이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조차 못 외우는 초짜 배우였다네요.
남들이 기운차게 H빔을 들어 올릴 땐
저만치서 뒷짐을 지고 콧노래나 흥얼거리지만
우리는 사실 타고난 손재주꾼이랍니다.
공장 곳곳에 버려진 쇳조각과 페인트로
불발의 꽃봉오리, 반기념비적인 바리케이드, 죽은 동지들의 잿빛 초상화를 담당하는 건 언제나 우리 몫이죠.
우리는 큰 것과 작은 것 사이
이를테면 시대와 작업대 사이
그 중간 어딘가에서 길을 잇고 길을 잃어요.
고통에서 벗어나는 건 고통의 양을 줄이는 것이 아니에요.
그건 뭔가 다른 세상을 꿈꾸는 거라고요.
우리는 벤담의 공장에서 자발적으로 해고됐다고요.
우리는 이력서에
특기는 돌발적 충동
경력은 끝없는 욕망
성격은 불안장애라고 쓰고
그것을 면접관 앞에서 깃발처럼 흔들어요.
그리고 제 발로 문을 박차고 걸어 나오는 거에요.
의기양양하게 그리고 지독히 외롭게.
우리의 직업 정신은 뭐랄까.
살고 싶다고 할까. 죽고 싶다고 할까.
아니면 조금 유식하게 해방이라고 할까.
네, 압니다. 알고말고요.
우리가 불면에 시달리며 쓴
일기와 유서는 지나치게 극적이라는 것을.
생존? 그래, 생존이요.
언제부턴가 우리의 직업은 소멸하고 있어요.
죽은 노동이 산 노동을 대체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동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는지.
모든 공문서에서 우리의 이름 위엔 붉은 X자가 쳐져요.
기억? 그래, 기억이요.
나는 우리에게 벌어진 일을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어요.
7 notes · View notes
queenhee · 5 years
Photo
Tumblr media
#에이트 #충격적 일많다고 불평 불만 대박 했는데 저 인공지능에 밀려서 백수 백조 되면 어떻게 하나요 하며 읽기 시작한 근데 읽다보니 실제사례가 나오는데 사실 더 충격 먹은 #케이쇼 라는 로봇이 #600명 보다 일을 잘해서 #598명 #직장 #잃어버림 헐 😱 왠지 살아남은 2명에 못 속할것 같은 반반 확률이면 어찌 해보겠다고 큰소리 치겠는데 ... 근데 리얼 실화 라서 ㅜㅅㅠ 거차나도 고민과 걱정을 짊어지고 있는 성격의 저는 또 한번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다시 읽었어요 근데 왠지 저 감성적이긴한데 공감능력은 좀 부족하고 어려워요 점점 더 어려운 왓슨 알파고 머리는 내가 못따라겠으니 책이라도 다시 많이 읽고 사색 내면 공감 봉사 그리고 생각을 더 다양하게 해봐야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비지니스석. 일등석 이용자들은 '기계'처럼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사람이고, 특등석 이용자들은 '인간'답게 독서와 사색과 성찰을 하면서 쉬지 않고 자기 '교육'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에이트 P. 32 1.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는(인공지능의 주인이 되는) 교육을 받은 사람은 인공지능의 주인이 될 수 있다. 2. 특이점(싱귤래리티)이후의 인공지능을 지배할 수 있는 교육을 받은 사람은 10억 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3. 인공지능 시대에 조만장자가 되는 교육을 받은 사람은 인류 최초의 조만장자가 될 수 있다. 4.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은 사람은 앞으로 20년 내에 인공지능의 종이 되어 모든 재산을 합법적으로 빼앗기고 난민 수준의 삶을 살 수 있다. 에이트 P. 44-45 에이트 01 디지털을 차단하라 에이트 02 나만의 '평생 유치원'을 설립하라 에이트 03 '노잉'을 버려라, '비잉'하고 '두잉'하라 에이트 04 생각의 전환, '디자인 싱킹'하라 에이트 05 인간 고유의 능력을 일깨우는 무기, 철학하라 에이트 06 바라보고, 나누고 융합하라 에이트 07 문화인류학적 여행을 경험하라 에이트 08 '나'에서 '너'로, '우리'를 보라 에이트 P. 8-9 인공지능은 기계에 종속되어 인간 고유의 능력인 공감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상실한 사람은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지만, 그 반대의 사람은 절대로 대체할 수 없다. 에이트 P. 151 하루 중 두 세시간만이라도 스마트폰을 끄고 독서하고 사색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일주일에 한번만이라도 사람들과 진심으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당신만의 아날로그 문화를 하나둘씩 만들어나가라. 당신이 진정으로 인간다워질 때 당신을 대체할 수 있는 기계란 존재할 수 없다. 에이트 P. 154 몬테소리 교육의 창시자 마리아 몬테소리 교육 철학의 핵심인 '자유', '몰입', '성취' 등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실천하는 아이가 창조적인 인재가 된다. 에이트 P. 160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드는 힘은 몬테소리 교육에 있다기보다는 유치원에 다니는 나이대의 아이들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에이트 P. 164 공감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가진 사람은 인공지능의 주인이 될 수 있지만 그렇기 못한 사람은 인공 지능의 노예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에이트 P. 169 철학은 인간 고유의 능력인 공감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일깨우는 최고의 도구다. 즉 철학하는 인간은 인공지능에게 대체될 일이 없다. 아니 인공지능의 지배자가 된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철학하는 능력을 갖지 못한 인간은 인공지능에게 대체된다는 것이다. 아니 인공지능의 노예가 된다느 것이다. 에이트 P. 212 진짜 철학을 하는 방법, 트라비움 (문법학, 논리학, 수사학) '문법학'은 철학서를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것, '논리학'은 철학서에서 터득한 철학자의 사고법을 도구 삼아 내 생각을 하는 것, 즉 내 논리를 만드는 것, '수사학'은 내 생각을 글로 쓰고 나누는 것, 즉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에이트 P. 215 #생각하는인문학 을 읽을때 큰 깨달음이 있었다. 머리가 띵~ 바로 #리딩으로리드하라 를 읽었다. 결론적으로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는 사람이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사색, 내면의 힘, 공감, 창조적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런 힘을 가지려면 결국 독서와 깊이있는 내면의 시간 그리고 봉사..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급변하는 이 시기. 앞으로 더 정신없이 몰아칠 미래...이 시간에 두려워 하지 말고, 겁먹지 말고, 다시 한번 화이팅 화이팅 입니다 포기란 없당 ㅎㅎ(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Incheon, Korea에서) https://www.instagram.com/p/B5ClBnVFOU0/?igshid=6xu3sk5rdvq7
0 notes
glssafe-blog · 5 years
Text
여성 클리틱 센터의 미프진 권유
그것은 그녀의 주장을 완전히 훼손했기 때문에 놀랍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되돌리려 고 노력했지만, 그녀는 그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10 분 안에 그녀는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수치스럽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클리틱 센터의 미프진 권유
Tumblr media
완전한 세계에서 우리는 낙태 클리닉 에스코트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성들은 생식기 치료를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이 헬스 풍경은 환자가 최소한의 괴롭힘으로 계획된 학부모와 같은 진료소에서 서비스를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경우 클리닉의 에스코트는 낙태 클리닉에 출입하는 환자를 돕는 자원 봉사자입니다. 분명히 표시된 유니폼을 입고 종종 건물을 둘러싸는 낙태 방지 시위대와 구별됩니다. 항의 시위는 환자에게 소리 치며, 끔찍한 징후와 환자 괴롭힘을 동반 할 수 있습니다.
진료소 호위병의 일은 환자 대부분이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 즉 의사에게가는 것을 돕기 위해 환자를 혼란스럽게하고 모든 것을 막아주는 것입니다. 진료소에 호위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시위대와 직접적인 대결을 수반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반항 시위 (counter protest)"역할이 아니라 환자의 즉각적인 필요에 중점을 둡니다. 그러나 에스코트에 대한 폭력은 전례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1994 년 펜서 콜라 레이디스 센터 (Pensacola Ladies 'Centre) 외부의 존 브리튼 (John Britton) 박사와 함께 74 세의 클리닉 호위병, 베테랑 및 은퇴 한 교사가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그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그의 이름으로 만 여기에서 확인 된 제프 (Jeff)는 거의 10 년 동안 일리노이 주 오로라에서 에스코트로 자원했습니다.
예, 사람들도이 일을합니다. Jeff가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그것은 남성들이 선거 정치를 행동으로 옮기고 심지어 페미니스트 방식으로 특권의 일부를 사용할 수있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Jeff는 적절한 면접을 시작하기 전에 자원 봉사 활동과 마지막 인터뷰 대상자 Robert Yang의 예술 경력을 예기치 않게 연결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위험은 로버트 양 (Robert Yang)과 클리닉 에스코트 (Closer Escort)와 같은 누군가에게도 동일합니다. 당신은 단지 그들의 전술에 대해 매우 치열한 사람들의 아주 작은 부분의 관심을 끌어 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셨습니까? 나는 대학 주변에 조금 있었지만 졸업 한 후에 시작했습니다. 나는이 높은 페미니즘 이론을 모두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 내가 한 행동주의 밖에서는 세계에 나가서 페미니즘 적 행동을 취할 수있는 많은 방법이 없었습니다. 나는 몸과 공간, 그리고 나의 특정한 신체와 나의 특권의 교차점이 정당한 의심으로 읽힐 수있는 방법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앉아서 이런 것들을 가져다가 자산으로 전환 할 수있는 방법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나는 호송 클리닉에 정착했다. 당시의 나의 이론은, 여기에 나의 몸의 크기, 모양 및 나음이 긍정적으로 읽힐 공간이 있습니다. 진료소 밖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당신을 남성 클리닉의 에스코트로 어떻게 대합니까? 환자는 대부분 매우 차갑고 행복합니다.
당신이 병원을 방문 할 때 배웠던 멋진 점은 자신의 힘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감정을 높이는 것입니다. 계획된 부모가되기 위해서는 많은 이유로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나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기분이 조금씩 달라 지기도합니다. 그 무언가의 무언의 공간을 탐색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이 사람은 좀 더 행복합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몇 가지 일을하면서, 나는 더 우울한 어조를 취할 필요가있다. 이와 함께 모든 일에 놀란 환자들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에있어 이상하고 중요한 교훈입니다. 나는 왜 호위병이 호위를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반복적 인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자동차에서 사람들에게 접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은 제가 시위대 중 하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시위대가 우리가하는 조끼를 입는 전술을 취했기 때문에 우리 조끼의 색깔을 바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쪽에서 난독 화 전술이 많아서 누가 누군지 혼란스럽게합니다. 그 멋진 점은 그 모든 것을 매우 빠르게 제거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즉석에서 제거하고 해제하십시오.
Tumblr media Tumblr media
나는 지금 사물을 풀기 위해 내가 사용하는 농담을한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 당신이 기대하지 않을 방법으로 세계에서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 지 깨닫게됩니다. 제가 클리닉에서 이야기 할 때, 특히 훈련을받을 때 에스코트하는 것은 전투에서 90 % 나되는 경우가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좋은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순간적으로 좋은 느낌이들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판단을하지 않고도 실제로 진짜 일 수 있고 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시위대의 경우, 그 반대의 모든 사실이 사실입니다. 그들은 모두를위한 최선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하는 멋쟁이 에스코트에서 소리 지르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것을 알립니다. 당신이 빨리 배우는 것은 당신이 기대하는 모든 방법으로 여성 대행사를위한 공간이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저에게 소리를 지르며, 특히 "남성이 여성을 보호하기로되어있는 방법"을 목표로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선택권을 갖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물론 그것은 환자 손님들에게도 해당됩니다. 
당신이 남자 친구와 함께 오는 여자라면, 그들은 보통 그를 목표로 삼아 아버지가되는 것이 자신의 직업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종류의 에이전시 삭제는 이상하고 유익한 방식으로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그런 시나리오에 대해 어떤 종류의 교육을 받습니까? 훈련은 생각보다 훨씬 쉽습니다.
오래 2 시간 정도입니다. 우리는 극단적 인 시나리오를 준비하지 않습니다.
수사관과 문자 그대로 미국 내 진료소에 대한 폭력의 맹렬한 발언이 있지만, 호송중인 진료소는 여전히 믿을 수 없을만큼 안전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과는 달리. 계획된 학부모 님들은 구체적으로 시나리오를 너무 많이 훈련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좋은 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시위대와 어떤 방식 으로든 상호 작용해야한다고 말하는 무 접촉의 담요 정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하거나 전혀 토론하지 마십시오. 정책은 정말 잘 작동하고 내가 가진 모든 시나리오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당신을해서는 안되는 것을 말하도록 당신을 미끼로 삼 으려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곤경에 빠지게하지 않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게다가, 어떤 요점도 없습니다.
정기적으로 진료소 밖에서 항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신을 말할 수 있다면 우리가 될 수 없다는 약속을 이미 보여 줬습니다. 환자의 손님, 특히 남성 손님이 조금 더 많이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어떻게 카타르시스가 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다음 사람들이 들어올 시위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전부입니다. 전반적으로 당신이 기대하는 것만 큼 외투와 대거는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정체성있는 방법, 불법 침입과 불법 침입에 대한 규칙, 그리고 버블 존 규칙과 관련하여 허용되는 것과 허용되지 않는 것에 대해 가르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정책은 단지 그들과 상호 작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요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할 것도없이 에스코트로서 우리는 에스컬레이션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자에게 집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잠시 후 시위는 백색 소음에 빠지게됩니다.
당신이 다루어야 할 구체적인 시나리오는 시위자 - 규칙을 깨뜨리는 것보다 훨씬 더 환자 중심적이고 손님 중심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6 개월 전 우리는 담배를 피우지 않은 환자의 손님을 맞았습니다. 그녀는 발작이있었습니다. 우리는 거기에있는 첫 번째 사람들이었고, 구급차에 전화하여 그녀가 필요한 보살핌을 받았는지 확인했습니다.
다른 때에는 사람들의 타이��를 교체했습니다. 나는 자동차를 뛰어 들었다. 때로는 재미있을 수있는 컨시어지 전체가 있습니다. 그것은 에스컬레이션을 찾고있는 시위대 같아 보이지? 시위대 준비. 즉, 처음에는 GoPro를 뒤집을 때, 이름을 부르거나, 토론에 도전하거나, 무엇이든 도전 할 때 무시하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당신은 그들이 정말로 당신을 말로 미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시작하기 전에 당신이 전에 언급 한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에 대해 말해 줄 수 있어요? 그래, 나는 7 년이나 8 년 전 처음으로 돌아 왔어. 그 이후로 다시 한 번 일어난 일이야. 그것은 부분적으로 가난한 데이터 보안이었고 부분적으로는 우연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그것을 알아 냈는지 아직도 확신 할 수 없다
만일 그것이 내 번호판 번호 나 소셜 미디어상의 나의 이름이거나 무엇인지, 그러나 내 이름이 잘못된 사람들에게 돌아갔다면. LifeSiteNews 나 WorldNetDaily에 익숙한 지 모르겠지만,이 나라의 전통적인 우익 미디어와 상호 작용하지 않는이 전체적인 선택형 미디어 날개가 있습니다. 일단 그 사이트가 트위터 추종자에게 정보를 배포하기 시작하면, 당신은 그것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 고맙게도, 몇 명의 협박 용 DM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실제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래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당장 분명하게 보입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많이 두려워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시점에서 당신은 그것이 그 영토와 함께 온다는 것을 배웁니다. 나는 외모를 혼란스럽게하려고 애 쓰지 않고 내 번호판을 은폐하고 그 길이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진료소 에스코트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내 이름이 거기에 붙어 있다면,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또한 내가 경험 한 것이 거의 같지 않을만큼 나쁘지는 않다는 것을 약간 분명히 밝히고 싶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내 고용주에게 연락했습니다. 또한 에스코트에 흔히있는 사건이 아니며 내 트위터 계정에서 공개적으로 내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결정한 결과였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고려하는 경우에 누군가가 너무 많이 걱정해야하는 것이 아닙니다.다른 특별한 상황이 있습니까? 수사학 적으로 강렬한 상황이 있습니다. 그러나 빨리 배우는 것은 규칙적인 시위자가 규칙을 알고 돌아 오는 것을 허용하는 데있어서 이기심을가집니다.
[편집자 주 : 계획된 부모의 보안 정보에 따르면, "시위대는 표지판을 휴대 할 수 있으며, 팜플렛을 건네고, 사진을 보여주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을 말해 줄 수 있습니다. 합법적으로, 그들은 당신을 만지거나 병원이나 주차장으로가는 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서 무엇이라도 가져 가거나 그들과 이야기 할 필요가 없습니다 ... 항의자가 법을 어 기지 않는 한 항의 할 권리가 있습니다. "]
Tumblr media Tumblr media
따라서, 그들은 항상 규칙을 따를 것입니다  
그들이 당신이 걱정해서는 안되는 사람들의 유형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12 일이나 13 주 연속으로 협박을 당했을 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병원의 다른 측면은 환자 나 손님들과 상호 작용하는 데서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힘든 하루이며 때로는 사람들이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누군가와 똥을 쏘고 싶어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나 무겁고 딱딱한 상황에 관해 당신에게 공개 할 때가 있지만, 결코 다시는 그들을 보지 못할 것임을 알고있는 누군가와 가질 수있는 아름다운 상호 작용에서 태어납니다. 정말 근사한 정직함이 있습니다. 잠시 후에 배우는 것은 그런 날에는 사람들이 환기를 원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을 갖지 않게 낙인 찍혔습니다. 멋지다면 담론에서 잃어버린 정서적 노동에 대한 긍정적 인 변화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제가 솔직히 그것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이 사람들을 위해 감정적 인 노동을하기 위해 여기에 나가있는 것처럼, 또한 저에게는 유익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조금 더 집중할 수있는 것입니다.
긍정적 인 교훈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있는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힘으로 그들을 압도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생식 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있습니다.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모든 환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내가 왜 그런 괴롭고 흥미로운 공간을 찾은 이유입니다.
Milo가 관객에게있어 자신의 삶에서 듣고 싶은 것에 대해 이미 몇 가지 결정을 내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클리닉 밖에서 배우는 것은 언론의 자유가 매주마다 적극적으로 벌어지는 공간에서 그 모든 것이 무한히 복잡하다는 것입니다.계획된 학부모 프로그램은 반대 시위에 대한 지원을 광범위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다음 두 차례의 항의 시위가 벌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환자들이 대부분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집단의 사람들을 소리 치며 추가하는 것이 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진흙 투성이였습니다. 나는 과거에 전술을 탈피하는 것을지지했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왜냐하면이 모든 가운데에 의사에게 가고 싶은 가난한 여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의 실시간 효과를 볼 수있는 기회를 갖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몇 달 전에 트랜스 환자를 앓 았고 시위대는 당신이 기대하는 모든 것을 말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격한 말을하고 사람들이 종종 이런 종류의 연설에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에스코트를 받는다는 것은 일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탐색하는 것입니다. 위협을 구성하는 것, 괴롭히기를 구성하는 것, 그런 다음 그 라인들을 더욱 더 흐리게하는 것  
내가 위협이라고 생각하는 것, 장교 나 시위자가 생각할 것 같은 것이 위협인가? 시위대는 그 노선에 맞서서 그 공간을 탐색하는 법을 매우 잘 배웁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도 배워야 만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그것들은 단지 모든 연설 행위 일 뿐이며, 나는 그 급료 등급 중 어느 것이 그 상황에서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 이상입니다.
강렬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누군가의 파트너가 약속을 잡았으며, 항상 힘들었습니다. 나는 HIPAA 사유로 그들을 전제로 허용 할 수 없을뿐만 아니라 HIPAA의 이유로이 사람이 건물에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거나 부정 할조차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외부의 사람은 자신이 아는 사람이 내부에 있고 어떤 진술을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 주 전에 누군가의 남자 파트너가 밖에서 장면을 만들기 시작한 후 그녀의 가족 구성원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경찰을 데리고 나와서 건물 밖으로 나오게해야했던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어쨌든, 네가 아는 누군가가 너의 약속에 대해 알았고 네가 알고있는 거의 모두가 너를 기다리고있다. 지금 당장 밖으로 와라. "이런 종류의 날들은 빨기도하지만 극단적 인 소수에 속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규칙을 따르며 항의 자와 에스코트 사이에는 이상한 종류의 데탕트가 있습니다. 끝내기 위해, 선량한 행동주의에 더 많이 참여하기 위해 사람들이 할 수있는 일은 무엇인가? 귀하의 지역 가정 계획 부모 또는 낙태 진료소에 연락하면 거의 항상 에스코트를 구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충분하지 못합니다. 계획된 친자 관계 웹 사이트로 가면 가입하게됩니다. 아마도 한 달 정도의 과정 일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몇 가지 참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약 2 시간 정도의 교육입니다. 짜증 나는 것은 토요일에 일찍 일어나야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토요일에 오전 5시 30 분에 병원에 갈 때인 7시에 일어난다. 하지만 시간 외에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만난 다른 에스코트는 평생 동안 만난 가장 멋지고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당신과 같은 방식으로 당신과 같은 생각을하는 사람들과 당신이 할 수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대화를 나눌 수있는 것은 단합되어있는 것이 좋습니다. 때때로 이상하고 재미있는 일도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지난 여름, 우리는이 노인에게 거대한 토트 백을 보여주었습니다.
Tumblr media
그녀는 소도구가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말로 알지 못했지만, 그녀는 단지 그녀의 가방을 우르르 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이 여자는 무엇을 가지고 있나?'마지막으로, 그녀는 기본적으로 Beats Pill과 같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꺼내 클리닉 옆에있는이 빈 곳으로 간다. 스피커를 큰 풀밭에 숨기고 옆에 그녀의 전화를 놓는다. 그것. 그녀는 40 야드 또는 50 야드 거리를 걷고 묵주기도를 시작합니다. 갑자기, 어쩌면 20 초 30 초 후에 우리는이 우는 아기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아기 울음 소리를 녹음하고 클리닉에서 직접 연주합니다. 그녀는 그것이 육체가 아닌 육체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녀는이 연설자를 숨겼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소리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물론 5 분 후, 이상한 일시 정지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튜브 자동 재생 목록을 울리며 아기를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광고 블록이나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광고가 나왔습니다. 광고는 Summer 's Eve를위한 것입니다. 첫 번째 줄은 "왜 Summer 's Eve? 왜냐하면 끈 팬티는 그 이유야. "그 여자는 붉은 사탕무로 변하고, 죽은 스프린트에서 벗어나, 인간이 뛰는 것을 본 것보다 더 빨리 40 야드 거리를 닫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우연히 Summer 's Eve 광고 방송.
https://mifegyne.net/
0 notes
mife0070-blog · 5 years
Text
낙태 클리틱의 미프진 권유
완전한 세계에서 우리는 낙태 클리닉 에스코트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성들은 생식기 치료를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이 헬스 풍경은 환자가 최소한의 괴롭힘으로 계획된 학부모와 같은 진료소에서 서비스를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경우 클리닉의 에스코트는 낙태 클리닉에 출입하는 환자를 돕는 자원 봉사자입니다. 분명히 표시된 유니폼을 입고 종종 건물을 둘러싸는 낙태 방지 시위대와 구별됩니다. 항의 시위는 환자에게 소리 치며, 끔찍한 징후와 환자 괴롭힘을 동반 할 수 있습니다. 
Tumblr media
진료소 호위병의 일은 환자 대부분이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 즉 의사에게가는 것을 돕기 위해 환자를 혼란스럽게하고 모든 것을 막아주는 것입니다. 진료소에 호위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시위대와 직접적인 대결을 수반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반항 시위 (counter protest)"역할이 아니라 환자의 즉각적인 필요에 중점을 둡니다. 그러나 에스코트에 대한 폭력은 전례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1994 년 펜서 콜라 레이디스 센터 (Pensacola Ladies 'Centre) 외부의 존 브리튼 (John Britton) 박사와 함께 74 세의 클리닉 호위병, 베테랑 및 은퇴 한 교사가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그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그의 이름으로 만 여기에서 확인 된 제프 (Jeff)는 거의 10 년 동안 일리노이 주 오로라에서 에스코트로 자원했습니다. 
예, 사람들도이 일을합니다. Jeff가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그것은 남성들이 선거 정치를 행동으로 옮기고 심지어 페미니스트 방식으로 특권의 일부를 사용할 수있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Jeff는 적절한 면접을 시작하기 전에 자원 봉사 활동과 마지막 인터뷰 대상자 Robert Yang의 예술 경력을 예기치 않게 연결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위험은 로버트 양 (Robert Yang)과 클리닉 에스코트 (Closer Escort)와 같은 누군가에게도 동일합니다. 당신은 단지 그들의 전술에 대해 매우 치열한 사람들의 아주 작은 부분의 관심을 끌어 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셨습니까? 나는 대학 주변에 조금 있었지만 졸업 한 후에 시작했습니다. 나는이 높은 페미니즘 이론을 모두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 내가 한 행동주의 밖에서는 세계에 나가서 페미니즘 적 행동을 취할 수있는 많은 방법이 없었습니다. 나는 몸과 공간, 그리고 나의 특정한 신체와 나의 특권의 교차점이 정당한 의심으로 읽힐 수있는 방법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앉아서 이런 것들을 가져다가 자산으로 전환 할 수있는 방법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나는 호송 클리닉에 정착했다. 당시의 나의 이론은, 여기에 나의 몸의 크기, 모양 및 나음이 긍정적으로 읽힐 공간이 있습니다. 진료소 밖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당신을 남성 클리닉의 에스코트로 어떻게 대합니까? 환자는 대부분 매우 차갑고 행복합니다. 
당신이 병원을 방문 할 때 배웠던 멋진 점은 자신의 힘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감정을 높이는 것입니다. 계획된 부모가되기 위해서는 많은 이유로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나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기분이 조금씩 달라 지기도합니다. 그 무언가의 무언의 공간을 탐색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이 사람은 좀 더 행복합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몇 가지 일을하면서, 나는 더 우울한 어조를 취할 필요가있다. 이와 함께 모든 일에 놀란 환자들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에있어 이상하고 중요한 교훈입니다. 나는 왜 호위병이 호위를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반복적 인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자동차에서 사람들에게 접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은 제가 시위대 중 하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시위대가 우리가하는 조���를 입는 전술을 취했기 때문에 우리 조끼의 색깔을 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쪽에서 난독 화 전술이 많아서 누가 누군지 혼란스럽게합니다. 그 멋진 점은 그 모든 것을 매우 빠르게 제거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즉석에서 제거하고 해제하십시오. 
나는 지금 사물을 풀기 위해 내가 사용하는 농담을한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이 당신이 기대하지 않을 방법으로 세계에서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 지 깨닫게됩니다. 제가 클리닉에서 이야기 할 때, 특히 훈련을받을 때 에스코트하는 것은 전투에서 90 % 나되는 경우가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좋은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순간적으로 좋은 느낌이들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판단을하지 않고도 실제로 진짜 일 수 있고 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시위대의 경우, 그 반대의 모든 사실이 사실입니다. 그들은 모두를위한 최선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하는 멋쟁이 에스코트에서 소리 지르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것을 알립니다. 당신이 빨리 배우는 것은 당신이 기대하는 모든 방법으로 여성 대행사를위한 공간이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저에게 소리를 지르며, 특히 "남성이 여성을 보호하기로되어있는 방법"을 목표로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선택권을 갖고��있다는 생각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물론 그것은 환자 손님들에게도 해당됩니다. 
당신이 남자 친구와 함께 오는 여자라면, 그들은 보통 그를 목표로 삼아 아버지가되는 것이 자신의 직업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종류의 에이전시 삭제는 이상하고 유익한 방식으로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그런 시나리오에 대해 어떤 종류의 교육을 받습니까? 훈련은 생각보다 훨씬 쉽습니다. 
오래 2 시간 정도입니다. 우리는 극단적 인 시나리오를 준비하지 않습니다. 
Tumblr media
수사관과 문자 그대로 미국 내 진료소에 대한 폭력의 맹렬한 발언이 있지만, 호송중인 진료소는 여전히 믿을 수 없을만큼 안전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과는 달리. 계획된 학부모 님들은 구체적으로 시나리오를 너무 많이 훈련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좋은 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시위대와 어떤 방식 으로든 상호 작용해야한다고 말하는 무 접촉의 담요 정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하거나 전혀 토론하지 마십시오. 정책은 정말 잘 작동하고 내가 가진 모든 시나리오에서 개최되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당신을해서는 안되는 것을 말하도록 당신을 미끼로 삼 으려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곤경에 빠지게하지 않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게다가, 어떤 요점도 없습니다. 
정기적으로 진료소 밖에서 항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신을 말할 수 있다면 우리가 될 수 없다는 약속을 이미 보여 줬습니다. 환자의 손님, 특히 남성 손님이 조금 더 많이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어떻게 카타르시스가 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다음 사람들이 들어올 시위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전부입니다. 전반적으로 당신이 기대하는 것만 큼 외투와 대거는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안전한 정체성있는 방법, 불법 침입과 불법 침입에 대한 규칙, 그리고 버블 존 규칙과 관련하여 허용되는 것과 허용되지 않는 것에 대해 가르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정책은 단지 그들과 상호 작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요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할 것도없이 에스코트로서 우리는 에스컬레이션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자에게 집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잠시 후 시위는 백색 소음에 빠지게됩니다. 
당신이 다루어야 할 구체적인 시나리오는 시위자 - 규칙을 깨뜨리는 것보다 훨씬 더 환자 중심적이고 손님 중심적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6 개월 전 우리는 담배를 피우지 않은 환자의 손님을 맞았습니다. 그녀는 발작이있었습니다. 우리는 거기에있는 첫 번째 사람들이었고, 구급차에 전화하여 그녀가 필요한 보살핌을 받았는지 확인했습니다. 
다른 때에는 사람들의 타이어를 교체했습니다. 나는 자동차를 뛰어 들었다. 때로는 재미있을 수있는 컨시어지 전체가 있습니다. 그것은 에스컬레이션을 찾고있는 시위대 같아 보이지? 시위대 준비. 즉, 처음에는 GoPro를 뒤집을 때, 이름을 부르거나, 토론에 도전하거나, 무엇이든 도전 할 때 무시하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당신은 그들이 정말로 당신을 말로 미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Tumblr media
 우리가 시작하기 전에 당신이 전에 언급 한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에 대해 말해 줄 수 있어요? 그래, 나는 7 년이나 8 년 전 처음으로 돌아 왔어. 그 이후로 다시 한 번 일어난 일이야. 그것은 부분적으로 가난한 데이터 보안이었고 부분적으로는 우연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그것을 알아 냈는지 아직도 확신 할 수 없다 
만일 그것이 내 번호판 번호 나 소셜 미디어상의 나의 이름이거나 무엇인지, 그러나 내 이름이 잘못된 사람들에게 돌아갔다면. LifeSiteNews 나 WorldNetDaily에 익숙한 지 모르겠지만,이 나라의 전통적인 우익 미디어와 상호 작용하지 않는이 전체적인 선택형 미디어 날개가 있습니다. 일단 그 사이트가 트위터 추종자에게 정보를 배포하기 시작하면, 당신은 그것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 고맙게도, 몇 명의 협박 용 DM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실제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래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당장 분명하게 보입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많이 두려워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시점에서 당신은 그것이 그 영토와 함께 온다는 것을 배웁니다. 나는 외모를 혼란스럽게하려고 애 쓰지 않고 내 번호판을 은폐하고 그 길이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진료소 에스코트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내 이름이 거기에 붙어 있다면,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또한 내가 경험 한 것이 거의 같지 않을만큼 나쁘지는 않다는 것을 약간 분명히 밝히고 싶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내 고용주에게 연락했습니다. 또한 에스코트에 흔히있는 사건이 아니며 내 트위터 계정에서 공개적으로 내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결정한 결과였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고려하는 경우에 누군가가 너무 많이 걱정해야하는 것이 아닙니다.다른 특별한 상황이 있습니까? 수사학 적으로 강렬한 상황이 있습니다. 그러나 빨리 배우는 것은 규칙적인 시위자가 규칙을 알고 돌아 오는 것을 허용하는 데있어서 이기심을가집니다. 
낙태 클리틱의 미프진 권유
Tumblr media
[편집자 주 : 계획된 부모의 보안 정보에 따르면, "시위대는 표지판을 휴대 할 수 있으며, 팜플렛을 건네고, 사진을 보여주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을 말해 줄 수 있습니다. 합법적으로, 그들은 당신을 만지거나 병원이나 주차장으로가는 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서 무엇이라도 가져 가거나 그들과 이야기 할 필요가 없습니다 ... 항의자가 법을 어 기지 않는 한 항의 할 권리가 있습니다. "] 
 따라서, 그들은 항상 규칙을 따를 것입니다  
 그들이 당신이 걱정해서는 안되는 사람들의 유형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12 일이나 13 주 연속으로 협박을 당했을 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병원의 다른 측면은 환자 나 손님들과 상호 작용하는 데서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힘든 하루이며 때로는 사람들이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누군가와 똥을 쏘고 싶어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나 무겁고 딱딱한 상황에 관해 당신에게 공개 할 때가 있지만, 결코 다시는 그들을 보지 못할 것임을 알고있는 누군가와 가질 수있는 아름다운 상호 작용에서 태어납니다. 정말 근사한 정직함이 있습니다. 잠시 후에 배우는 것은 그런 날에는 사람들이 환기를 원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을 갖지 않게 낙인 찍혔습니다. 멋지다면 담론에서 잃어버린 정서적 노동에 대한 긍정적 인 변화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제가 솔직히 그것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이 사람들을 위해 감정적 인 노동을하기 위해 여기에 나가있는 것처럼, 또한 저에게는 유익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조금 더 집중할 수있는 것입니다. 
긍정적 인 교훈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있는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힘으로 그들을 압도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생식 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있습니다.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모든 환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내가 왜 그런 괴롭고 흥미로운 공간을 찾은 이유입니다. 
Milo가 관객에게있어 자신의 삶에서 듣고 싶은 것에 대해 이미 몇 가지 결정을 내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클리닉 밖에서 배우는 것은 언론의 자유가 매주마다 적극적으로 벌어지는 공간에서 그 모든 것이 무한히 복잡하다는 것입니다.계획된 학부모 프로그램은 반대 시위에 대한 지원을 광범위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다음 두 차례의 항의 시위가 벌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환자들이 대부분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집단의 사람들을 소리 치며 추가하는 것이 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진흙 투성이였습니다. 나는 과거에 전술을 탈피하는 것을지지했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왜냐하면이 모든 가운데에 의사에게 가고 싶은 가난한 여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의 실시간 효과를 볼 수있는 기회를 갖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몇 달 전에 트랜스 환자를 앓 았고 시위대는 당신이 기대하는 모든 것을 말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격한 말을하고 사람들이 종종 이런 종류의 연설에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에스코트를 받는다는 것은 일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탐색하는 것입니다. 위협을 구성하는 것, 괴롭히기를 구성하는 것, 그런 다음 그 라인들을 더욱 더 흐리게하는 것  
내가 위협이라고 생각하는 것, 장교 나 시위자가 생각할 것 같은 것이 위협인가? 시위대는 그 노선에 맞서서 그 공간을 탐색하는 법을 매우 잘 배웁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도 배워야 만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그것들은 단지 모든 연설 행위 일 뿐이며, 나는 그 급료 등급 중 어느 것이 그 상황에서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 이상입니다. 
강렬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누군가의 파트너가 약속을 잡았으며, 항상 힘들었습니다. 나는 HIPAA 사유로 그들을 전제로 허용 할 수 없을뿐만 아니라 HIPAA의 이유로이 사람이 건물에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거나 부정 할조차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외부의 사람은 자신이 아는 사람이 내부에 있고 어떤 진술을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 주 전에 누군가의 남자 파트너가 밖에서 장면을 만들기 시작한 후 그녀의 가족 구성원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경찰을 데리고 나와서 건물 밖으로 나오게해야했던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어쨌든, 네가 아는 누군가가 너의 약속에 대해 알았고 네가 알고있는 거의 모두가 너를 기다리고있다. 지금 당장 밖으로 와라. "이런 종류의 날들은 빨기도하지만 극단적 인 소수에 속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규칙을 따르며 항의 자와 에스코트 사이에는 이상한 종류의 데탕트가 있습니다. 끝내기 위해, 선량한 행동주의에 더 많이 참여하기 위해 사람들이 할 수있는 일은 무엇인가? 귀하의 지역 가정 계획 부모 또는 낙태 진료소에 연락하면 거의 항상 에스코트를 구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충분하지 못합니다. 계획된 친자 관계 웹 사이트로 가면 가입하게됩니다. 아마도 한 달 정도의 과정 일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몇 가지 참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약 2 시간 정도의 교육입니다. 짜증 나는 것은 토요일에 일찍 일어나야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토요일에 오전 5시 30 분에 병원에 갈 때인 7시에 일어난다. 하지만 시간 외에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만난 다른 에스코트는 평생 동안 만난 가장 멋지고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당신과 같은 방식으로 당신과 같은 생각을하는 사람들과 당신이 할 수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대화를 나눌 수있는 것은 단합되어있는 것이 좋습니다. 때때로 이상하고 재미있는 일도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지난 여름, 우리는이 노인에게 거대한 토트 백을 보여주었습니다. 
Tumblr media
그녀는 소도구가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말로 알지 못했지만, 그녀는 단지 그녀의 가방을 우르르 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이 여자는 무엇을 가지고 있나?'마지막으로, 그녀는 기본적으로 Beats Pill과 같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꺼내 클리닉 옆에있는이 빈 곳으로 간다. 스피커를 큰 풀밭에 숨기고 옆에 그녀의 전화를 놓는다. 그것. 그녀는 40 야드 또는 50 야드 거리를 걷고 묵주기도를 시작합니다. 갑자기, 어쩌면 20 초 30 초 후에 우리는이 우는 아기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아기 울음 소리를 녹음하고 클리닉에서 직접 연주합니다. 그녀는 그것이 육체가 아닌 육체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녀는이 연설자를 숨겼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소리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물론 5 분 후, 이상한 일시 정지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튜브 자동 재생 목록을 울리며 아기를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광고 블록이나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광고가 나왔습니다. 광고는 Summer 's Eve를위한 것입니다. 첫 번째 줄은 "왜 Summer 's Eve? 왜냐하면 끈 팬티는 그 이유야. "그 여자는 붉은 사탕무로 변하고, 죽은 스프린트에서 벗어나, 인간이 뛰는 것을 본 것보다 더 빨리 40 야드 거리를 닫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우연히 Summer 's Eve 광고 방송. 
그것은 그녀의 주장을 완전히 훼손했기 때문에 놀랍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되돌리려 고 노력했지만, 그녀는 그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10 분 안에 그녀는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수치스럽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https://mifegynemedical.com/
0 notes
Text
강유원 고전 목록
original source : http://losermarxdr.tistory.com/1624
* 책읽기 20분(2014)
이노우에 가쓰오: 막말 유신
구메 구니타케: 특명전권대사 미구회람실기. 1: 미국
에릭 홉스봄: 만들어진 전통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야스마루 요시오: 근대 천황상의 형성
마키하라 노리오: 민권과 헌법
이와나미 신서 편집부: 일본 근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후쿠자와 유키치: 학문의 권장
다카시 후지타니: 화려한 군주:근대일본의 권력과 국가의례
요네쿠보 아케미: 천황의 하루
* 인문고전강의(2014)
호메로스: 일리아스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샬롯 히긴즈: 그리스 고전
자클린 드 로미이: 왜 그리스인가
미셸 푸코: 주체의 해석학
허먼 멜빌: 모비딕
귀스타브 플로베르: 부바르와 페퀴셰
파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맷 키시: 그래픽 모비 딕
프리드리히 니체: 비극의 탄생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을 넘어서
백승영: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 아주 평범한 사람들
미야자키 이치사다 해석: 논어
이블린 언더힐: 대림절 묵상
시라카와 시즈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바꾸리라
시라카와 시즈카: 문자강화 1
H.G.크릴 : 공자:인간과 신화
안핑 친: 공자 평전
이성규: 사마천 사기
현상윤: 현상윤의 조선사상사
셰익스피어: 맥베스
셰익스피어: 오셀로
스탠리 웰스: 셰익스피어, 그리고 그가 남긴 모든 것
테리 이글턴: 문학이론 입문
소동파: 소동파 사선
조지 F. 케넌: 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
후지타 쇼조: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
야마무로 신이치: 러일전쟁의 세기
황준헌: 조선책략
리쉐친: 중국 청동기의 신비
M.엘리아데: 성과 속
앨버트 O. 허시먼: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앨버트 O. 허시먼: 열정과 이해관계
앨버트 O. 허시먼: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로버트 L. 하일브로너: 세속의 철학자들
하인리히 뵐플린: 르네상스의 미술
하인리히 뵐플린: 미술사의 기초개념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르네쌍스, 매너리즘, 바로끄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 - 로꼬꼬 고전주의 낭만주의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영화의 시대
브루노 스넬: 정신의 발견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강유원의 라디오 인문학(2012-2013)
클리프턴 패디언: 평생독서계획
한중일3국공동사편찬위원회: 동아시아 근현대사 1
한중일3국공동사편찬위원회: 동아시아 근현대사 2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순구: 조선의 가족 천 개의 표정
플라톤: 향연
김혜정: 하이킹 걸즈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윌리엄 셰익스피어: 맥베스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 대포 범선 제국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샬롯히긴스: 한권으로 읽는 그리스 고전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의 기억
데���비드 아불라피아: 위대한 바다
빅터 데이비스 핸슨: 살육과 문명
도덜드 케이건: 전쟁과 인간
존 키건: 세계 전쟁사
존 키건: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
존 엘리스: 참호에 갇힌 제1차 세계대전
조지프 나이: 국제분쟁의 이해
조너선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조너선 스위프트: 책들의 전쟁
시어도어 래브: 르네상스의 마지막 날들
피터 디어: 과학혁명
토머스 핸킨스: 과학과 계몽주의
이영림, 주경철, 최갑수: 근대 유럽의 형성 16 18세기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김영미: 그들의 새마을 운동 책
로버트 트리버스: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
프란시스 베이컨: 새로운 아틀란티스
에라스무스: 우신예찬
요한 하위징아: 에라스뮈스
슈테판 츠바이크: 에라스무스 평전
제러미 벤담: 파놉티콘
한스 모겐소: 과학적 인간과 권력 정치
하영선, 최정운, 신욱희, 김영호, 장인성: 근대 한국의 사회과학 개념 형성사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오이디푸스 왕/안티고네
Sophocles: The Three Theban Plays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크세노폰 : 헬레니카
Kennedy, J. B: The Musical Structure of Plato's Dialogues
박찬승: 마을로 간 한국전쟁
자클린 드 로미이: 왜 그리스인가
H.D.F 키토: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
카를 슈미트: 정치적인 것의 개념
* 철학의 기본개념들(2006)
소광희,이석윤,김정선: 철학의 제문제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콜링우드: 자연이라는 개념
포퍼: 역사주의의 빈곤
조르주 뒤비: 서기 1000년과 서기 2000년 그 두려움의 흔적들
스티븐 툴민: 코스모폴리스
홍성욱: 과학은 얼마나
키케로: 수사학
움베르트 에코: 장미의 이름
사이델: 고전적 형이상학에 대한 현대적 접근
호르크하이머: 도구적 이성 비판
데카르트: 방법서설
서준식: 옥중서한
* 낭만주의의 뿌리(2006)
이사야 벌린: 낭만주의의 뿌리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권
칼 쇼르스케: 세기말 비엔나
앨런 재닉,스티븐 툴민:빈, 비트겐슈타인, 그 세기말의 풍경
데이비드 하비: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헤르더: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
비어슬리: 미학사
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콜링우드: 자연이라는 개념
이사야 벌린: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니콜라이 하르트만: 독일 관념론의 철학
지따 쇼오조오: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알렝 핑켈크로트: 사유의 패배
린 헌트: 포르노그라피의 발명
르낭: 민족이란 무엇인가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앨런 스피겔: 소설과 카메라의 눈
조가경: 실존철학
존 산본마쓰: 탈근대 군주론
밀란 쿤데라: 불멸
카를 뢰비트: 헤겔에서 니체로
찰스 테일러: 불안한 현대사회
서양 철학사 강의(2012) 에릭 A. 해블록: 플라톤 서설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루이 앙드레 도리옹: 소크라테스 시라카와 시즈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바꾸리라 W.D 로스: 아리스토텔레스 그의 저술과 사상에 관한 총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키케로: 수사학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율리우스 푸치크: 교수대의 비망록 로버트 D.퍼트넘: 나홀로 볼링 플로니노스: 엔네아데스 선집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클라우스 리젠후버: 중세사상사 G.R 에번스: 중세의 그리스도교 메리커닝엄: 비잔틴 제국의 신앙 위르겐 몰트만: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역사 키에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키에르케고르: 불안의 개념 데이비드 하비: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도널드 서순: 유럽 문화사 오도릭: 오도릭의 동방기행 혜초: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하영휘: 양반의 사생활 이븐 바투타: 이븐 바투타 여행기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슈테판 츠바이크: 위로하는 정신 슈테판 츠바이크: 어제의 세계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브루니: 피렌체 찬가 그루노브: 칼 바르트의 신학묵상 토마스모어: 유토피아 베이컨: 새로운 아틀란티스 라인홀드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마루야마 마사오: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마이클 가자니가: 뇌로부터의 자유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찰스 길리스피: 객관성의 칼날 피터 디어: 과학혁명 스피노자: 신학정치론 스피노자: 에티카 피터 싱어: 다윈주의 좌파 최정규: 이타적 인간의 출현 장 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칸트: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브라이언 매기: 철학의 역사 마이클 루: 형이상학 강의 F.M 콘퍼드: 쓰여지지 않은 철학 강유원: 역사고전 강의
* 역사고전강의(2011)
헤로도토스: 역사
헤로도토스: The Landmark Herodotus
강유원: 인문고전강의
수요역사연구회: 곁에 두는 세계사
버나드 로 몽고메리: 전쟁의 역사
E. M. 번즈, R. 러너, S미첨: 서양 문명의 역사 상
E. M. 번즈, R. 러너, S미첨: 서양 문명의 역사 하
윌리엄 맥닐: 세계의 역사 1
윌리엄 맥닐: 세계의 역사 2
윌리엄 맥닐: 전염병의 세계사
윌리엄 맥닐: 전쟁의 세계사
W. 버나드 칼슨: 말랑하고 쫀득한 세계사 이야기 세트
린다 월튼, 캔디스 고처: 세계사 특강
조너선 글랜시: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건축의 역사
룩콴텐: 유목민족제국사
르네 그루세: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의 기억
요시다 유타카: 일본의 군대
배리 스트라우스: 살라미스 해전
아이스퀼로스: 아이스퀼로스 비극전집
도널드 케이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키디데스: The Landmark Thucydides
플라톤: (플라톤의) 국가, 政體
박찬승: 마을로 간 한국전쟁
오카다 히데히로: 중국의 역사와 역사가들
이시바시 다카오: 대청제국 1616~1799
오카다 데쓰: 돈까스의 탄생
다카시 후지타니: 화려한 군주
코린 쿨레: 고대 그리스의 의사소통
버나드 마넹: 선거는 민주적인가
윌리엄 케인: 거장처럼 써라
쓰루미 요시유키: 해삼의 눈
앙드레 보나르: 그리스인 이야기 세트
로베르 플라실리에르: 고대 그리스의 일상생활
톰 홀랜드: 페르시아 전쟁
톰 홀랜드: 공화국의 몰락
트리스트럼 헌트: 엥겔스 평전
프리드리히 엥겔스: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
토머스 핸킨스: 과학과 계몽주의
에우리피데스: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세트 (전2권)
에두아르트 푹스: 풍속의 역사 1
에두아르트 푹스: 풍속의 역사 2
에두아르트 푹스: 풍속의 역사 3
에두아르트 푹스: 풍속의 역사 4
클로드 모세: 고대 그리스의 시민
카알 폰 클라우제비츠: 전쟁론
율리우스 카이사르: 갈리아 전기/내전기
배은숙: 강대국의 비밀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크세노폰: 아나바시스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프란시스 M. 콘포드: 쓰여지지 않은 철학
이승렬: 제국과 상인
허승일: 로마공화정
콜린 맥컬로우: 로마의 일인자 1
콜린 맥컬로우: 로마의 일인자 2
콜린 맥컬로우: 로마의 일인자 3
콜린 맥컬로우: 로마의 일인자 4
일본사학회: 아틀라스 일본사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김헌: 위대한 연설
플라톤: 법률
카를로 M. 치폴라: 대포, 범선, 제국
프리츠 하이켈하임: 로마사
게오르크 오스트로고르스키: 비잔티움 제국사 324-1453
피터 히더: 로마제국 최후의 100년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세트
헨리 채드윅: 초대교회사 (펭귄교회사1)
R.W. 서던: 중세교회사 (펭귄교회사2)
오언 채드윅: 종교개혁사 (펭귄교회사3)
알렉 비들러, 제럴드 크랙: 근현대교회사 (펭귄교회사4)
크리스토퍼 브룩: 수도원의 탄생
정성호: 수도원의 역사
스티븐 런치만: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존 줄리어스 노리치: 비잔티움 연대기 1 - 창건과 혼란
존 줄리어스 노리치: 비잔티움 연대기 2 - 번영과 절정
존 줄리어스 노리치: 비잔티움 연대기 3 - 쇠퇴와 멸망
피터 브라운: 어거스틴 생애와 사상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피터 브라운: 기독교 세계의 등장
헨리 채드윅: 아우구스티누스
R.W. 서던: 중세의 형성
페르디난트 자입트: 중세의 빛과 그림자
자크 르 고프: 서양 중세 문명
마르크 블로크: 봉건사회 I
마르크 블로크: 봉건사회 II
클라우스 리젠후버: 중세사상사
W. 울만: 서양중세정치사상사
움베르토 에코: 중세의 미학
아일린 파워: 중세의 사람들
요한 호이징하: 중세의 가을
윌리엄 조지 호스킨스: 잉글랜드 풍경의 형성
윌리엄 R. 맨체스터: 불로만 밝혀지는 세상 - 중세 유럽의 풍경
잠바티스타 비코: 새로운 학문
앤서니 그래프턴: 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
시어도어 래브: 르네상스의 마지막 날들
김덕진: 대기근, 조선을 뒤덮다
브라이언 M. 페이건: 기후는 역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단테 알레기에리: 단테 제정론
야콥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말틴 루터: 말틴 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
시리카와 시즈카: 문자강화 I
플라톤: 크리티아스
이종흡: 마술 과학 인문학
이븐 할둔: 역사서설
라인하르트 코젤렉,크리스티안 마이어: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디터 그로, 외르크 피쉬,루돌프 발터: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3 - 제국주의
빌헬름 얀센: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4 - 전쟁
존 루이스 개디스: 역사의 풍경
마크 길더러스: 역사와 역사가들
찰스 P. 킨들버거: 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90
카를로 긴즈부르그: 치즈와 구더기
곽차섭: 미시사란 무엇인가
뤼시엥 페브르: 16세기의 무신앙 문제 : 라블레의 종교
조너선 스위프트: 책들의 전쟁
피터 디어: 과학 혁명
프랜시스 베이컨: 신기관
마르틴 브로샤트: 히틀러국가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 아주 평범한 사람들
E. 카시러: 계몽주의 철학
로버트 단턴: 고양이 대학살
티모시 메이슨: 나치스 민족공동체와 노동계급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나치 시대의 일상사
라울 힐베르크: 홀로코스트 유럽유대인의 파괴 1
라울 힐베르크: 홀로코스트 유럽유대인의 파괴 2
이언 커쇼: 히틀러 1
이언 커쇼: 히틀러 2
김진송: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이사야 벌린: 계몽시대의 철학
존 엘리스: 참호에 갇힌 제1차 세계대전
뤼시엥 골드만: 계몽주의의 철학
이해영: 전국시대 비판철학
리사 자딘: 상품의 역사
에릭 홉스봄: 혁명의 시대
에릭 홉스봄: 자본의 시대
에릭 홉스봄: 제국의 시대
에릭 홉스봄: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 -상
에릭 홉스봄: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 -하
이사야 벌린: 낭만주의의 뿌리
강유원: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
마샬 버먼: 맑스주의의 향연
칼 마르크스: 헤겔 법철학 비판
G. W. F. 헤겔: 역사철학강의
자크 르 고프: 중세의 지식인들
C. B. 맥퍼슨: 홉스와 로크의 사회철학
에드워드 파머 톰슨: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상)
에드워드 파머 톰슨: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하)
베르너 파울슈티히: 근대초기 매체의 역사
대니얼 R. 헤드릭: 정보화 혁명의 세계사
티모시 브룩: 능지처참
배경식: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
티모시 브룩: 쾌락의 혼돈
앨버트 O. 허시먼: 열정과 이해관계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버나드 맨더빌: 꿀벌의 우화
존 그레빌 에이가드 포칵: 마키아벨리언 모멘트 1
존 그레빌 에이가드 포칵: 마키아벨리언 모멘트 2
앨버트 O. 허시먼: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에릭 A. 해블록: 플라톤 서설
주경철, 이영림, 최갑수: 근대 유럽의 형성
조르주 르페브르: 1789년의 대공포
앙리 세: 18세기 프랑스 정치사상
E. 카시러: 국가의 신화
테다 스코치폴: 국가와 사회혁명
에드먼트 버크: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R. 니스벳, C. B. 맥퍼슨: 에드먼드 버크와 보수주의
하비 케이: 과거의 힘
오언 채드윅: 19세기 유럽 정신의 세속화
임마누엘 칸트: 칸트의 역사철학
버트런드 러셀: 러셀의 시선으로 세계사를 즐기다
요한 고트프리드 폰 헤르더: 새로운 역사철학
요한 고트프리드 폰 헤르더: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
프랑코 모레티: 근대의 서사시
프랑코 모레티: 세상의 이치
리오 휴버먼: 휴버먼의 자본론
야콥 부르크하르트: 세계 역사의 관찰
서중석: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게오르그 루카치: 소설의 이론
게오르크 W. F. 헤겔: 헤겔 예술철학
미야자키 마나부: 야쿠자, 음지의 권력자들
피터 게이: 부르주아전
로저 백하우스: 지성의 흐름으로 본 경제학의 역사
데이비드 데이: 정복의 법칙
소스타인 베블런: 자본의 본성에 관하여 외
아인 랜드: 아틀라스 1
아인 랜드: 아틀라스 2
아인 랜드: 아틀라스 3
아인 랜드: 아틀라스 4
아인 랜드: 아틀라스 5
아인 랜드: 자본주의의 이상
토르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서중석: 6월 항쟁
E. H. 카아: 20년의 위기
빌 플레처 주니어: 정체성 싸움:서구의 인종주의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외
로자 룩셈부르크: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막스 갈로: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에르네스트 만델: 즐거운 살인
존 키건: 1차세계대전사
존 키건: 세계전쟁사
존 키건: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
존 키건: 전쟁의 얼��
조지프 S. 나이: 국제분쟁의 이해
이브 라코스트: 마그레브, 북아프리카의 민족과 문명
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
한스 모겐소: 과학적 인간과 권력정치
케네스 월츠: 인간 국가 전쟁
디트마르 로터문트: 대공황의 세계적 충격
찰스 P. 킨들버거: 대공황의 세계
양동휴: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연구
존 키건: 2차세계대전사
A.J.P. 테일러: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마르틴 브로샤트: 히틀러 국가 : 나치 정치혁명의 이념과 현실
티모시 메이슨: 나치스 민족공동체와 노동계급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나치 시대의 일상사
히로세 다카시: 제1권력 1
히로세 다카시: 제1권력 2
* 인문고전강의(2009)
호메로스: 일리아스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셰익스피어: 맥베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단테: 신곡
플라톤: 향연
이시 히로유키 외: 환경은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헤로도토스: 역사
루카치: 소설의 이론
플라톤: 국가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공자: 논어
보르헤스: 칠일 밤
존 보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성서
페터 제발트: 가톨릭에 관한 상식사전
이마미치 도모노부: 단테 신곡 강의
마키아벨리: 군주론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보에티우스: 철학의 위안
자크 르고프: 연옥의 탄생
F. M. 콘퍼드: 쓰여지지 않은 철학
로버트 B. 마르크스: 다시 쓰는 근대세계사 이야기
시어도어 래브: 르네상스의 마지막 날들
데카르트: 방법서설
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리비우스: 로마사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슈테판 츠바이크: 어제의 세계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크세노폰: 키루스의 교육
스티븐 툴민: 코스모폴리스
로버트 B. 마르크스: 다시 쓰는 근대세계사 이야기
조나단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파스칼: 팡세
윌리엄 하비: 혈액 순환에 관한 연구
앨런 블룸: 셰익스피어의 정치철학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
데카르트: 성찰
브랜다 랄프 루이스: 폭정의 역사
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조지 레이코프, 마크 존슨: 몸의 철학
다우베 드라이스마: 기억의 메타포
칸트: 순수이성비판
칸트: 실천이성비판
칸트: 판단력 비판
로크: 인간 지성에 관한 시론
홉스: 리바이어던
찰스 다윈: 종의 기원
로버트 퍼트넘: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
로버트 퍼트넘: 나 홀로 볼링
스티븐 J. 굴드 : 풀하우스
양현혜 : 윤치호와 김교신
올더스 헉슬리 : 멋진 신세계
에드워드 윌슨: 생명의 다양성
케네스 O. 모건: 옥스퍼드 영국사
로크: 통치론
수요역사연구회: 곁에 두는 세계사
칸트: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
라파엘 젤리히만: 집단애국의 탄생 히틀러 447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막스 베버: 경제와 사회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토머스 멜서스: 인구론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벤담: 파놉티콘
아담 스미스: 국부론
사마천: 사기
이성규: 사마천 사기-중국고대사회의 형성
공자: 춘추
김구용: 동주열국지
알베르 까뮈: 최초의 인간
0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