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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
fruchtchen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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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 조권 (헤롯), 박은태 (지저스)
Jesus Christ Superstar - Jo Kwon (Herod), Park Eun-tae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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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topiabooks-blog · 2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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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는 하늘과 땅이 만나 태어난 존재이다. 모든 아이는 기적이다. 평범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 물질과 의식의 만남,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모든 아이를 기적으로 여겨라. 아이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라. 당연한 존재라고 받아들이지 말라.
아이를 당연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아이를 죽이게 된다. 사실 모든 아이가 죽임을 당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그것은 엄청난 대량학살이다. 이스라엘에서 헤롯만 아이들을 죽인 게 아니라 매일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헤롯 이전에도 있었고 그 이후로도 있었다.
모든 아이는 정신적인 살인을 경험한다. 아이가 존중받지 않고 소유물로 인식되는 순간 아이는 죽임을 당한다. 어린아이는 신으로 존중받아야한다. 어린아이는 이 세상에 다시 신으로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는 신이 아직 인간에 대해 절망하지 않았고 희망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인간을 계속 창조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이다. 죄인이 되었건 성자가 되었건, 신은 진정한 인간을 창조하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신은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모든 아이가 이 세상, 이 존재계에 태어나는 근거이다.
- <오쇼 메디테이션 36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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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kenlee-blog · 2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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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래아의 예수"
얼마 전에 읽은 '선천댁'의 강렬했던 여운이 사라지질 않아 같은 분이 쓴 또 다른 책을 빌림.
저자가 독일에서 불트만 계열 신학을 전공 후 귀국했고, 배워 온 걸 단순히 복사 & 붙여넣기 하신 게 아니라 독자적인 민중 신학 및 사회 운동을 전개했던 분이라 평소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
'갈릴래아의 예수'는 1990년에 초판이 나왔고, 내가 읽은 거는 2020년에 다시 발행한 개정판이다. 서울에 있는 도서관 검색 결과 초판은 정독 도서관에만, 개정판은 개포, 남산 도서관 두 군데에 있었다.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관용 표현에 등장하는 부처는 대승 불교 전통에서 만들어진 '법신불'이라는 신화적 존재로서 아함경에 나오는 '인간' 싯다르타와는 전혀 다르다.
마찬가지로 '사도신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와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쳤던 인간 예수를 동일하게 보느냐 다르게 보느냐는 관점의 차이로부터 기독교가 나온 거라고 개인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나는 신약 성서를 최소 세 번 이상 읽었고, 인간 예수를 한 번도 만난 적 없이 다카스커스에서 환상으로 본 바울의 관점, 유다를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정치 지도자로 인식했다가 쓸모없음을 알자 즉시 팔아넘긴 가리옷 유다의 관점, 그리고 세례 요한의 제자, 광야에서의 시험, 산상수훈에 몇 가지 흔적만 남아 있는 예수 자신의 메시지가 혼재해 있는 문서로 이해했다.
길가는 무사(=도사) 입장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만 전할 뿐 원수마저 사랑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기 위한 구체적인 수련법이 나와 있질 않아 딱히 참고가 되질 않았다.
혹자는 "기도가 있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보기에 인간의 언어로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기복 신앙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고, 언어를 초월한 기도는 결국 '명상'과 구별할 수 없다고 봄.
로마가 카톨릭을 공인한 이후부턴 바울의 관점이 표준으로 굳어진 채 이천 년을 이어왔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 = 인간 예수'에 관한 연구는 사실상 불트만이 시초라고 주�� 들음.
하지만 불트만 연구가 용두사미처럼 결론이 너무 허탈해서 (=역사적 예수의 자취는 확실한 게 하나도 없다) 반발도 꽤 거셌다 들었다. 이 책 또한 이 맥락을 따르고 있는 거로 보이고, 나아가 한국이라는 사회에 적용하고자 '민중'이란 개념을 재정의하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하긴 거구나…로 이해했다.
124쪽에 흥미로운 글이 있었다. 다윗 왕을 이스라엘 공동체를 파괴한 주범으로 묘사해 놓은 것.
"…그런데 이같은 고대 이스라엘 공동체가 다윗에 의해 파괴되었다. 군주파들이 날로 득세하여 사무엘이 마지못해 사울을 왕으로 세우지만(삼상 8장) 그것은 본격적인 군주체제가 아니었는데 반디트의 괴수였던 다윗(삼상 22,1-2;27,8)이 무력으로 유다 지파에 군림하여 왕이 되고(삼하 2,3-4.11), 블레셋 (Philister)의 침공에 탈진한 북이스라엘의 사울을 협공하여 이스라엘을 뺏고 그것을 유다와 병합하여 이스라엘 왕국을 수립한 것이다(삼하 5장). 이때부터 본격적인 다윗왕조가 시작된다. 그는 권력의 독점을 정당화하기 위해 야훼의 상징인 법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하고 다윗왕조의 수호신으로 삼았는 데(삼하 6장), 그의 아들 솔로몬에 와서 그 위에 성전을 짓고 스스로 대사제를 겸하고 야훼가 성전에만 임재한다는 강제된 신학을 세우고, 야훼를 '감금'하여(열상 8,12-13) 다윗 왕조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삼은 것이다…"
아마도 예수와 대립했던 헤롯, 바리새, 사두개 같은 (민중을 억압해 온) 지배층의 시초를 다윗의 건국이라 보신 듯.
한편 그리스도를 다윗의 혈통에 갖다 붙이려고 애쓴 공관복음서 저자들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미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야훼를 감금했다"는 주장에 관해선 야훼의 본질이 유목신이란 의미도 될 듯. 근거는 카인의 농산물은 거부하고 새끼양을 바친 아벨의 것만을 받아들였단 점, 나아가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농경 민족이 유목 민족 나와바리를 자꾸 침범하는 것에 대한 메타포일지도 모른다는 개인 생각. 이런 대척 관계는 (농경신) 바알을 향한 극도의 적대감으로 나타났으리라고 봄.
또 모세가 "누구세요?" 물었을 때 "나는 나다(=I am who I am)"라고 대답한 것 역시 애당초 지성소에 모시는 신이라기엔 너무 자유로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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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shikkim · 2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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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Passion Week) 예수님의 행적(2267)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베드로전서 2:24)
-고난주간 (HOLY WEEK OR PASSION WEEK)
부활주일 전 한 주간을 고난주간 또는 수난주간이라 하며, 이 주간은 수난절의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주간임을 말한다. 고난주간은 종려주일(Palm Sunday)로부터 시작된다.
금년 종려주일은 3월 24일이다.
- 종려주일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축하하는 주일(마21:1-11,막11:1-10, 눅19:28-40, 요12:12-19)이며, 고난 주간의 시작이기도 하다.
종려주일은 사순절의 여섯 번째 주일이며 ‘호산나 주일’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날은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쁨으로 영접하며 또한 예수님의 고난의 시작과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며 정결하게 일주일을 시작해야 하는 날이다.
-일요일(개선의 날)
예수가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 입성(마 21 : 1 - 11, 막 11 : 1 - 11).
-월요일(권위의 날)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마 21. 18 - 19, 막 11 : 12 - 14).(세금의 질문에 설명) 성전 청결케 함(마 21 : 12 - 13, 막 11 : 15 - 19).
-화요일(논쟁의 날)
무화과나무 마름(마 21 : 19 - 22, 막 11 : 20 - 25).
제사장 바리새인의 질문(막 11 : 27 - 33, 눅 20 : 1 - 8).경고의 세 가지 비유, 포도원 비유(마 21 : 28 - 22 : 14, 막 12 : 1 - 12).
바리새인과 헤롯 왕이 예수께 질문(마 22 : 15 - 40).
메시야에 대한 예수의 질문(눅 20 : 41 - 44).
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 책망(막 12 : 38 - 40).
과부연보에 대하여 칭찬함(막 12 : 41 - 44, 눅 21 : 1 - 4)
유대인이 예수를 배척함. 예루살렘 멸망과 말세를 예언함(눅 21 : 5 - 38, 요 12 : 37 - 50).
-수요일(음모의 날)
예수가 밤마다 베다니에 나가시니 이 날은 거기서 기도했을 것임(마가복음 14:1~11)
유다가 배반하다(마26:14-16,막14:41-45,눅22:1-6,요18:1-11)
 -목요일(최후성찬의 날, Maundy Thursday)
최후 성만찬, 예수 그리스도의 고별사(마 26 : 31 - 35, 막 14 : 12 - 26, 눅 22 : 31 - 38).
 예수님이 로마병정에게 체포되어 가야바의 법정으로 가고 있는 모습(베드로 통곡교회에 있는 부조)
-금요일(고난의 날, Holy Friday)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반역과 예수의 포박(마 26 : 36 - 47, 막 14 : 32 - 52).
안나스와 가야바의 심문(막 14 : 53 - 72, 요 18 : 13 - 27).
빌라도의 심문(마 27 : 2 - 11, 31, 요 18 : 13 - 29).
십자가의 고난(마 27 : 32 - 56, 눅 23 : 26 - 45).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를 장사함(마27 : 57 - 61, 막 15 : 43-47). 무덤을 파수꾼이 굳게 지킴(마 27 : 62 - 66).
-일요일(부활의 날, Ressurection Sunday)
부활의 새벽(마 28 : 1 - 10, 막 16 : 1 - 17).
파수군이 부활의 사건을 제사장에게 보고(마 28 : 11 - 15, 눅 24 : 13 - 35).
엠마오 도상의 예수(눅 24 : 13 - 35).
도마와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 나타남(막 16 : 14, 요 20 : 19 - 25).
3-29-2024/hwanshikkim.tumblr.com/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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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aasilveira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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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열정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멜 깁슨 감독의 2004년 미국 비극 영화입니다. 영화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그리스도의 기도와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본디오 빌라도와 헤롯 왕 치하에서 견디신 시련과 고문을 따릅니다. 빌라도가 그리스도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자, 야유하는 군중과 끔찍하게 구타당하는 가운데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갈보리로 옮기셨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속하셨기 때문에 사탄은 패배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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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태복음 2장13절-23절 애굽에서 불러낸 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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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uchtchen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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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 "헤롯의 노래" - 김영주 (헤롯) & 마이클리 (지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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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topiabooks-blog · 3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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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는 하늘과 땅이 만나 태어난 존재이다. 모든 아이는 기적이다. 평범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 물질과 의식의 만남,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모든 아이를 기적으로 여겨라. 아이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라. 당연한 존재라고 받아들이지 말라.
아이를 당연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아이를 죽이게 된다. 사실 모든 아이가 죽임을 당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그것은 엄청난 대량학살이다. 이스라엘에서 헤롯만 아이들을 죽인 게 아니라 매일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헤롯 이전에도 있었고 그 이후로도 있었다.
모든 아이는 정신적인 살인을 경험한다. 아이가 존중받지 않고 소유물로 인식되는 순간 아이는 죽임을 당한다. 어린아이는 신으로 존중받아야한다. 어린아이는 이 세상에 다시 신으로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는 신이 아직 인간에 대해 절망하지 않았고 희망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인간을 계속 창조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이다. 죄인이 되었건 성자가 되었건, 신은 진정한 인간을 창조하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신은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모든 아이가 이 세상, 이 존재계에 태어나는 근거이다.
- <오쇼 메디테이션 36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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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daily-life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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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31
예수님의 침묵
2018년 9월6일 목요일 아침, 그 날짜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는 아침부터 손님이 오기로 되어있어서 아침을 먹은 후 대충 청소도 하고 과일도 씻고 분주했다. 아는 형제가 우리가 관심있는 지역 출신의 한 친구를 데려오기로 되어있어서 우리는 기대반 흥분반으로 들떠 있었다. 남편은 시간이 되어 곧 마중을 나갈려고 채비를 하고 있고 나는 부엌에서 과일을 깍고 있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가는 것이다. 문을 열고 주변을 보니 복도며 옆집이며 다 켜져 있는데 우리집만 불이 안들어왔다. 전기세 미납도 아닌데 분명히...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남편이 먼저 끌려가고 나머지 열뎃명은 남아 집을 뒤집고 책이랑 CD 등을 가져 온 큰 트렁크에 쓸어담았다. 몇몇은 여기 저기를 훓었다. 나에게 이것 저것을 캐묻기도 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나에게 같이 갈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나는 간단한 차림에 간단한 마음가짐으로 따라나섰다. 그 길이 그렇게 길줄은 모르고...
심문받는 내내 나는 여러가지 감점을 오갔다. 처음엔 오만함이 있었다. 니네가 나를 어쩌랴! 머리로 맞서는 오만함이었다. 믿음과 겸손이 결여된. 다음으로 피로감이었다. 반복되는 추궁과 의심 간간히 하는 협박, 나는 생리중으로 몸까지 피곤했다. 점점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하루 이틀 끝날거라 예상했던 나의 생각은 빗나갔다. 왜 나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들은 우리를 스파이로 몰아갔다. 그 사실은 나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주기 시작했다. 그것이 명백해지면 아니 그것을 죄로 엮으면 왠지 우리는 빠져나올 구멍이 없을것 같았다. 그들은 그러고도 충분히 남을 인간들이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어느 정도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거짓증언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들도 그것을 믿을 만큼 호락한 사람들도 아니었다. 어디까지 말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머리를 굴리느라 머리 반쪽이 깨질듯 아팠다. 이빨도 어깨도 같이 아팠다. 나는 참기보다 아프다고 그들 앞에서 엄살?을 부리는 쪽을 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당당해 보이던 나의 오만함은 사라지고 무력하고 지친 아픈? 나의 모습이 드러났다. 예수믿는 자답게 멋있게 보이고 싶었지만 무력감을 감출 수는 없었다. 내 의식속엔 오직 ‘주님 불쌍히 여겨 주세요’ 라는 기도외엔 어떤 기도도 나오지 않았다. 
어느 곳에선가 심문받고 있을 남편이 한없이 걱정이 되었다. 불안했다. 그를 스파이로 몰것이고 그 증거를 분명히 갖고 있다고 나에게 말했는데 남편에겐 어떻게 하고 있을까? 혹여 남편에게 나쁜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빨리 끝내고 나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후반부에 머물던 호텔에서 밤이 되면 건너편 동네의 불빛들이 나를 더 참담하게 했다. 아무렇지 않게 유유히 흐르는 중간의 강물 도로에 줄지어 지나는 차들과 집집에 켜져있는 따뜻한 불빛들은 나에게 잠깐이지만 자유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문득 생각난 한 분, 그 해 3월 베이징에 가서 잠깐 뵈었던 가정교회 목사님 한분, 7년째 가택연금 중이었고 그 감시와 갇힘이 언제까지 될지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 있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으시며 나를 울렸던 그 분이 생각났다.
나는 지금도 그 목사님을 생각하면 가끔 부끄러움 가운데 눈물이 나려고 한다. 나의 짧은 8일 그분의 7년! 내가 느꼈던 자유에 대한 생각. 오늘 예수님은 빌라도와 헤롯 두 정치인 앞에서 침묵하신다. 너무나 무력한 모습이다. 더구나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어떤 말로도 변명하거나 자신의 위대한 목적에 대해 한치의 언급도 하시지 않는다. 침묵!!! 
이 침묵의 의미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때 나의 그 무력감을 떠올려 본다. 그 날 이후 그러한 경험을 했다는 것만으로 잠깐 내 의에 자만에 빠지기도 했고, 또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던 나, 그리고 한동안 주님앞에 부끄러움과 무력감으로 힘들어했던 나에게 주님은 오늘 말씀하신다. ‘나도 무력해 보이지? 너를 이해한다’ 주님은 실제 무력하시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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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qwr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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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띠 - 잘못한 것을 반성하고 뉘우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기에 잘못에 대한 사과와 반성은 한 걸음 앞으로 나가는게 크나 큰 거름이 될 것이다. 54년생 : 일의 본질을 바로 보아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66년생 : 깊이 고민하지 말고 앞만 생각하라. 78년생 : 평범한 생활이 반복되는 가운데 특별한 인연이 다가오는 날이다. 90년생 : 오늘 하루만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절제하지 못하면 탈이 난다. 02년생 : 항상 같은 일상에 지쳐있다. 스스로 활력소를 찾아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도록 하라. 벳새다 아람어 ‘베트 체다’의 헬라어 음사(音寫)로 ‘어부들의 집’, ‘고기 잡는 집’이란 뜻. 학자들 중에는 예수께서 오병이어(五餠二魚)로 5천 명을 먹이신 뒤 제자들을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셨다’는 기록(막 6:45)에 근거하여 갈릴리 호수 양편에 같은 이름을 가진 두 벳새다로 보기도 하나(Lagrange, Gould), 여기서는 마가의 중복 현상을 고려하여 오히려 동격적인 표현인 ‘건너편 곧 벳새다로 가게 하셨다’는 뜻으로 보아 벳새다를 한 곳으로 소개한다.갈릴리 호수의 북동쪽 즉, 요단 강물이 갈릴리 호수로 유입되는 입구에서 북동쪽 약 1㎞ 지점에 위치한 비옥한 평야 지대. 예수님의 세 제자인 베드로, 안드레, 빌립의 고향(요 1:44; 12:21). 예수께서는 이 마을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고(눅 9:10), 또 맹인의 눈을 치유해 주기도 하셨다(막 8:22). 하지만 예수께서 권능을 많이 행하셨음에도 회개치 않는 이곳 주민들의 불신앙을 보시면서, 고라신과 함께 벳새다를 책망하셨다(마 11:20-23; 눅 10:13-15).한편, 신약 시대 이곳은 분봉왕 헤롯 빌립의 영토였으며,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추방당한 딸 ‘줄리아’(Julia)를 기념하여 ‘벳새다 율리아스’(Bethsaida Julias)로 불리기도 했다. 오늘날은 시리아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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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happyrhino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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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mas for #Christ 그리스도를 위한 #성탄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 이라 하리라 - #이사야 7:14 #크리스마스 #성탄절 #구주 #구세주 #구주예수 #구세주예수 #예수 #예수그리스도 #그리스도 #메시야 #베들레헴 #요셉 #마리아 #동정녀마리아 #요셉과마리아 #동방박사 #헤롯 #이스라엘 #유대 https://www.instagram.com/p/B6X8TmslZhi/?igshid=9xqydk8vs3b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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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issuecollector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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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반지가 성경 인물 본디오 빌라데의 반지로 의심되는 이유는 글자 '의' 때문이다
이 반지가 성경 인물 본디오 빌라데의 반지로 의심되는 이유는 글자 '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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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악인 하면 아마 본디오 빌라데가 떠오를 거다.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내린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그 진상에 대한 논란도 치열하다).
그는 예수 생존 당시 로마제국의 속주인 유다의 총독을 맡은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1961년에 발견된 ‘빌라도의 돌비문(Pilate Stone)’은 본디오 빌라도가 유다의 총독이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최초의 유적이었다.
그런데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한 연구팀이 그가 실존했다는 논리를 뒷받침할 새 연구를 이스라엘발굴협회지에 발표했다며 그 증거로 2000년 된 반지를 제시했다. 
’빌라도의(of Pilatus)”라는 글이 새겨진 아래 반지는 50년 전 헤롯 왕의 무덤인 헤로디움 발굴 작업 도중 발견된 보물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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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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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just-said-that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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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월의 팬들이 세일링의 곡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는 유명하다. “아무도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 아무도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 아무도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 그래도 상관없어.” 나는 늘 그 노래가 처량한 구석이 있다고 느꼈고, 그 노래에 딱 어울리는 주인공이 있다면 그건 바로 아스널이라고 생각해왔다. 아스널 팬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아무도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날마다 밉살스럽다는 소리를 들으며 산다. 신문의 스포츠면을 매일 읽고, 텔레비전을 늘 보고, 축구 잡지를 보는 평균적인 축구팬이라면, 일주일에 두세 번은 아스널을 무시하는 기사를 접하게 될 것이다. (존 레넌이나 폴 매카트니의 노래를 듣게 되는 횟수와 비슷할 것 같다.) 방금 축구 퀴즈 프로그램 세인트 앤 그립시를 보았는데, 지미 그리브스가 ‘환호하는 수백만 명의 팬들을 대신하여’ FA컵에서 아스널을 이겨준 데 대하여 4부 리그의 렉섬 감독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내 숙소에 굴러다니고 있는 축구 잡지의 표지에는 어째서 모두가 아스널을 미워하는가? 라는 기사 제목이 박혀 있다. 지난주에는 신문에 우리 선수들에게 예술성이 부족하다고 공격하는 기사가 실렸다. 그렇게 매도당한 선수 가운데 하나는 겨우 열여덟 살에다 아직 주전으로 뛰어보지도 못한 선수였다. 우리는 지루하고, 재수만 좋고, 지저분하고, 건방지고, 돈이 많고, 치사하다. 내가 아는 한 1930년대부터 늘 그래왔다. 1930년대에는 역사상 최고의 축구 감독인 허버트 채프먼이 수비수를 한 명 더 기용하는 식으로 경기 방식을 바꿈으로써, 아스널이 소극적이며 매력 없는 축구를 한다는 평판을 다진 시기였다. 하지만 그 후로도 계속해서, 특히 1971년 2관왕을 이룬 해에 아스널은 지긋지긋하게 철저한 수비를 성공의 도약대로 삼았다. (그해 리그 경기 가운데 0-0이나 1-0으로 끝난 것이 열세 번이나 되었고, 공정하게 말하자면 그중 어느 한 번도 신 나는 경기는 없었다.) 60년 동안 1-0 승리를 지켜오며 상대 팀 팬들의 믿음과 인내심을 시험해왔으니 ‘재수 좋은 아스널’이란 말은 ‘지루한 아스널’에서 나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토트넘과 웨스트햄은 수준 높고 흐름이 빠른(요즘에는 ‘프로그레시브’라는 표현을 쓰는데, 나 같은 삼십 대 장년층은 그 말을 들으면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나 킹 크림슨 같은 밴드들이 떠올라서 괴롭다) 축구를 구사하며 즉흥적이고 날카로운 경기를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두들 스토리와 탤벗, 애덤스 그리고 아스널이 대변하는 모든 것을 증오하고 경멸하듯이 모두들 피터스와 무어, 허스트와 브루킹 그리고 웨스트햄을 사랑하게 된다. 요즘 웨스트햄을 대표하는 선수는 반 덴 후베와 펜위크와 에딘버러라는 것에는 개의치 않는다. 재능 있는 머슨과 눈부신 림파가 아스널에서 뛰고 있다는 것도 상관이 없다. 1989년과 1992년에 우리가 1부 리그에서 가장 많은 골을 기록했어도 상관없다. 웨스트햄과 토트넘은 불꽃의 수호자이며 올바른 길을 따르는 무리다. 우리는 거너스이고 비지고스이며, 오프사이드 판정에 항의하느라 두 팔을 휘저어대는 ‘헤롯 왕’과 ‘노팅엄 보안관’이라는 별명을 가진 센터하프를 데리고 있다. 1980년 FA컵 결승전에서 아스널의 상대였던 웨스트햄은 그해 2부 리그에 있었고 그들이 2부 리그 팀이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더더욱 열광했다. 전 국민의 환호를 받으며 아스널은 패배했다. 잉글랜드의 세인트 트레버가 한 골을 넣어 무시무시한 괴물 아스널을 물리쳤으며, 야만인들은 쫓겨나고 아이들은 다시 안전하게 두 발을 뻗고 잘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평생 악당 역할을 맡아온 우리 아스널 팬의 손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묵묵히 참아온 불만은 소름 끼칠 정도다. 지금 사람들이 그 경기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브루킹의 보기 드문 멋진 헤더와 윌리 영이 폴 앨런에게 가했던 잔인하고 전문적인 파울, 그리고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FA컵 결승전에 나간 선수가 웸블리 역사상 가장 귀엽고 가장 낭만적인 골 가운데 하나를 기록했다는 사실뿐이다. 웸블리 관중석의 깜짝 놀라 말문이 막힌 아스널 팬들 틈에서 웨스트햄 팬들과 중립 팬들에게서 쏟아져나오는 야유에 귀가 멍멍해진 채로 서 있던 나는, 파울을 한 윌리 영의 냉소적인 태도에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그날 밤 텔레비전에서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나는 마음 한 구석으로는 그 파울을 즐겼음을 깨달았다. 그것이 앨런의 골을 막았기 때문이 아니라(경기는 끝난 셈이었고 우리는 어쨌든 졌으므로 그게 들어갔든 말든 상관없었다) 너무나 우스울 정도로 아스널다운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아스널의 수비수 외에 그 누가 열일곱 살짜리 꼬마 선수를 밀치겠는가? 머슨인지 데이비스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해설자는 당연히 기겁을 하면서 법석을 떨었다. 착한 편이 악당을 쫓아냈다는 타령에 지겨워진 나는 그의 정의감 넘치는 해설에 부아가 치밀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1976년에 빌 그런디가 펑크록 밴드인 섹스 피스톨스를 텔레비전 쇼에 초대해놓고서는 나중에 그들의 버릇없는 태도에 노발대발했던 일이 떠올랐다. 아스널은 최초의 진정한 펑크 로커다. 우리의 센터하프들은 섹스 피스톨스의 조니 로튼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일탈성에 대한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피버 피치』, 닉 혼비
/진짜 괴짜라면 축구 팬이 될 때 아스널 정도는 응원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란 생각을 하게 만든 책. 한참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혼비는 사랑할 수밖에 없어. 나 또한 축구에 빠지고 싶게 ��든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갤러거지 형제의 트루 럽인 맨시티와 혼비가 인생을 걸며 사랑하는 아스널, 둘 사이에 어느 쪽을 응원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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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shikkimus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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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라와 그의를 구하자
                                                                       김환식 장로 (Ph.D)
연말연시를 맞으면, 으레 영국의 계관시인(桂冠詩人) 알프레드 테니슨(1809~1892)의 ‘종소리 울려 퍼지라(Ring out)'로 시작되는 그의 장시(長詩)를 떠올린다. 시의 내용은 요약되어 교회 찬송가로도 운율에 맞춰졌다. “종소리 크게 울려라 저 묵은해가 가는데, 옛것은 울려 보내고 새것을 맞아들이자”로 시작되는 이 찬송은 시기와 분쟁, 옛 생각을 울려 보내고 순결한 삶과 새 맘을 맞아들이며, 흉한 질병과 고통, 탐욕과 전쟁은 울려 보내고 평화를 맞아들이며, 기쁨과 넓은 사랑과 참자유 행복 누리게 이 땅의 어둠을 보내자고 축복한다. 그 가사의 절절함이 부르는 이의 마음을 애잔하게 하고 송구영신의 의미를 깊게 해 준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테니슨의 그 ‘종소리’에 담긴 염원이 이뤄지기를 먼저 기원한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때가 때인 만큼 새해를 맞아 좌우명처럼 떠올린 것이 성서의 한 구절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태복음 6:33)는 복음서 산상수훈(山上垂訓)의 일절이다. 이 구절은 사람의 의식주 문제와 관련된 교훈이다.    이 강론은 먼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는 당부로 시작한다. 의식주를 걱정하지 말라는 이 권고는 공중의 새와 들판의 꽃을 사례로 들어 풀어간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거두지도 않지만 너의 하늘 아버지가 기르지 않느냐 너희는 새들보다 귀하지 않느냐, 들의 백합화를 보라 수고도 길쌈도 아니 하지만 솔로몬의 옷보다 더 아름답지 않느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을 아신다.”    의식주 문제에 대한 강론을 끝내면서, 경제 문제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지 않고는 해결점이 없다고 강조라도 하듯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가르쳤다. 당시 헤롯 왕조와 로마 제국 그리고 성전(聖殿) 체제 등 삼중의 조세수탈로 심각한 사회경제적 위협에 처했던 민중을 향해 예수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의식주와 관련, ‘그 나라와 그 의’를 강조함으로 경제문제에까지 가장 비현실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성서가 말하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말한다. 의식주의 경제 문제까지도 하나님의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방법으로 접근해야만 해결된다는 가르침이다. 경제적인 문제라 해서 주판알을 먼저 튀기지 말고 그 전에 ‘그 나라의 질서와 정의’를 강구하고 그 원리에서 풀지 않으면 안된다는 교훈이다.    문제는 예수님이 오늘 이 땅에 오신다면 2천 년 전에 고난받는 유대 민중을 향해 강조했던 그 강론을 그대로 외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한국인들이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그보다 먼저 강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다. 필자는 그가 한국의 상황을 접하더라도 그렇게 외칠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의 해결도 ‘비경제적’ 방법처럼 보이는 이 원리에 해답이 있다고 본다. 특히 새누리 정권의 무능·무책임·부정·부패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진통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 더 근원적인 접근도 수십 조를 더 풀어서 경기를 부양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선순위를 ‘그 나라와 그 의’를 찾는 데에 두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 나라와 그 의’의 원리에 따르지 않으면 그 막대한 국부(國富)와 자원도 부정과 부패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나라와 그 의’는 어떻게 현실에 적용될 수 있을까. ‘그 나라’는 어떤 나라를 이룩할 것인가에 대한 목표를 의미하고, ‘그 의’는 이를 이룩하는 방법이요 원리라고 본다. ‘그 나라와 그 의’는 비단 경제 문제에만 적용될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라를 나라 되게 하는 목표요 원리이며, 사회를 사회되게 하는 정의로운 가치관이다. ‘그 나라’는 하나님이 인간과 더불어 만들어가는 나라이며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나라다. 민중들이 그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며 그들의 민주적인 합의가 우선적으로 이뤄지는 나라다. ‘그 나라’는 백성의 위임을 받은 권력이 군림하지 않고 종복(從僕)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나라다. ‘그 나라’는 노동의 가치가 어떤 재화보다 더 인정되고, 약자의 생존권이 보장되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가 제대로 대접받는 나라다.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 나라’는 남북이 화해·평화·통일을 이룩하는 나라다.    ‘그 의’는 ‘그 나라’를 이룩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요 방법이다. 바빌로니아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예레미야 5:1)고 예언자 예레미야가 외친, ‘정의와 진리’가 바로 ‘그 의’라고 본다. 그 ‘정의와 진리’는 바로 국방의 요체이기도 했다.
국부와 자원도 부정부패의 온상이 된 까닭은
   백범 김구는 『나의 소원』에서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백범이 이룩하려는 나라는 바로 ‘그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려는 이념에서 가능했다고 본다.    오늘날 한국이 처한 혼란한 상황은 지도자와 국민이 ‘그 나라와 그 의’를 제대로 추구하도록 요구한다. 오늘의 곤궁함은 ‘그 나라’에 대한 원대한 목표가 없고, ‘그 나라’를 이룩하려는 가치관으로서의 정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소리가 사방에서 함성으로 들린다. 번영을 구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다운 나라를 꾸려보자는 존재론적인 몸부림이다. 가라앉고 있는 경제를 부흥시키자는 데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국가 시스템 자체를 어떻게 개혁 재건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럴 때 우리는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는 지혜의 말에 귀기울어야 한다. 지혜자는 다시 말한다.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언 14:34) (끝) 20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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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lsuavndad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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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
유통업체의 자체 브랜드 제작이 늘어나는 가운데, `백화점 브랜드` 자체를 상품으로 만든 기념품도 등장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갤러리아 브랜드 정체성을 담아 제작한 `갤러리아 수버니어(기념품)컬렉션`을 출시했다고 23일 밝혔다. 
컬렉션은 쇼퍼백과 파우치, 노트, 향초, 디퓨저 등 생활용품과 화장품 트레블세트, 핸드크림 등 총 12종의 상품으로 구성된다. 상품 가격은 3만~20만원대다.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갤러리아 명품관 웨스트 5층 기프트샵에서 판매한다.
백화점이 새로운 브랜드를 제작해 상품을 판매한 경우는 다수 있었지만, 기념품식으로 자체 상품을 선보인 것은 국내에서는 처음이다. 영국 헤롯, 셀프리지 백화점 등에서는 백화점 자체 상품을 모아둔 기념품 매장을 운영한다고 갤러리아 측은 설명했다. 
갤러리아 측은 상품 제작을 위해 국내외 유명 브랜드와 협업��다. 이탈리아 명품 문구 브랜드인 `파브리아노`와 노트를, 미국 바디케어 브랜드 `스웨디시 드림`과도 손잡았다. 
특히 향초와 디퓨저에는 국내 업체인 `메종데부지`와 협업해 갤러리아백화점 만의 `17 Seoul` 향을 담았다. 그린 플로럴 계열로, 싱그러운 잎사귀와 꽃잎을 연상시키는 향이라는 설명이다. 
백화점 관계자는 "향초와 디퓨저 PB상품을 갤러리아 브랜드를 알리는 툴로 활용했다"며 "향만 맡아도 갤러리아 브랜드를 떠올릴 수 있게끔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버니어 PB 상품 디자인은 세계적인 일러스트 작가인 `주디스 반덴 후크`가 맡았다. 갤러리아를 상징하는 시그니처 컬러인 네이비와 골드 등으로 제작했고, 명품관 외관 디자인 등도 담아냈다. 
갤러리아 백화점은 "스마트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고객을 위해 실용적인 아이템으로 구성했다"며 "향후 콘텐츠 강화를 위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PB상품을 선보여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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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message-blog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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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0 장
이사야 10 장
(사10:1-34)
9장의 연속이다. 9장까지의 죄는 주로 우상숭배(신앙의 문제)의 문제이었다. 여기서는 윤리적 죄의 문제를 다른다. 신앙이 타락한 자는 윤리도 타락한다. 가난하고 나약한 자를 돌 봐야 할 자(지도자)들이 ‘하나님이 정한 율법’을 무시하고,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법령을 만들고 이것을 도구 삼아 오히려 사회적 약자를 핍박했다(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가난한 자와 고아, 과부의 권리를 박탈하고, 토색하고 약탈했다. 이런 자들의 죄는 절대로 용서 받을 수 없다. 심판의 날, 하나님이 이들에게는 어떤 긍휼도 베풀지 않는다.  
1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2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3 벌하시는 날과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의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4 포로 된 자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심판의 도구인 앗수르
하나님이 범죄 한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서 앗수르를 잠시 도구로 사용했다. 이 앗수르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징벌 받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이들은 자기들이 징벌도구로 잠시 사용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마치 자신들이 잘나서 전쟁에 승리한 것으로 착각한다. 이들은 하나님이 마땅히  받아야 할 영광을 가로챈다. 하나님은 절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누지 않는다. 교만한 자를 무섭게 징벌하신다. 단4장에 보면 대 제국을 건설한 느브갓네살(왕)이 하나님이 자신을 잠시 도구로 사용했다는 것을 모르고, 자신의 능력으로 바벨론 제국을 건설했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진노했다. 하나님이 네가 저주를 받고, 앞으로 광야에서 7년 동안 소처럼 풀을 뜯어 먹고 들짐승처럼 살 것이라고 말했다. 행12장에 보면 헤롯 안티파스가 두로와 시돈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신격화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다. 즉시 몸에서 벌레가 나와서 살을 먹어 치웠다.  
앗시리아의 왕(디글랏 빌레셀 3세)이 전쟁에 승리하고 기고만장(氣高萬丈)해서 하나님 영광을 가로챌 것이기 때문에, 이 왕 역시 느부갓네살이나 헤롯처럼 하나님이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선을 걷어치웠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처럼 위에 거주한 자들을 낮추었으며-”(12-13)
5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 6 내가 그를 보내어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령하여 나를 노하게 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길거리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니와7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 그의 마음의 생각도 이같지 아니하고 다만 그의 마음은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는도다8 그가 이르기를 내 고관들은 다 왕들이 아니냐
9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 하맛은 아르밧과 같지 아니하며 사마리아는 다메섹과 같지 아니하냐 10 내 손이 이미 우상을 섬기는 나라들에 미쳤나니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신상들보다 뛰어났느니라 11 내가 사마리아와 그의 우상들에게 행함 같이 예루살렘과 그의 우상들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하는도다 12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 13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선을 걷어치웠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처럼 위에 거주한 자들을 낮추었으며 14 내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도다 15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
16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진 자를 파리하게 하시며 그의 영화 아래에 불이 붙는 것 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 17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고 그의 거룩하신 이는 불꽃이 되실 것이니라 하루 사이에 그의 가시와 찔레가 소멸되며 18 그의 숲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 19 그의 숲에 남은 나무의 수가 희소하여 아이라도 능히 계수할 수 있으리라
심판의 결과
(1)남은 자만 돌아온다
 타락한 백성들 사이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말씀대로 순종하며 산 거룩한 사람들만 심판에서 살아남는다. 이들만 남아서 하나님 품으로 다시 돌아 온다.
20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22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23 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2)앗수르에 대한 징벌
 하나님은 구원 받을 거룩한 백성들에게 앗수르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지 말라했다. 하나님은 범죄 한 이스라엘(아람)을 징벌한 후에 앗수르를 징벌(교만 때문에)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거룩하여 살아남은 자들은 우상숭배하는 자국의 지도자들에게서도 벗어나고, 외부에서 공격해 오는 적들의 두려움에서도 벗어나게 될 것이다.
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들아 앗수르가 애굽이 한 것처럼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25 내가 오래지 아니하여 네게는 분을 그치고 그들은 내 진노로 멸하리라 하시도다 26 만군의 여호와께서 채찍을 들어 그를 치시되 오렙 바위에서 미디안을 쳐죽이신 것 같이 하실 것이며 막대기를 드시되 바다를 향하여 애굽에서 하신 것 같이 하실 것이라 27 그 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28 그가 아얏에 이르러 미그론을 지나 믹마스에 그의 장비를 두고 29 산을 넘어 게바에서 유숙하매 라마는 떨고 사울의 기브아는 도망하도다 30 딸 갈림아 큰 소리로 외칠지어다 라이사야 자세히 들을지어다 가련하다 너 아나돗이여 31 맛메나는 피난하며 게빔 주민은 도망하도다 32 아직 이 날에 그가 놉에서 쉬고 딸 시온 산 곧 예루살렘 산을 향하여 그 손을 흔들리로다 33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가 찍힐 것이요 그 높은 자가 낮아질 것이며 34 쇠로 그 빽빽한 숲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베임을 당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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