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마르가리타>, 1909년, 니코 피로스마니(1860~1918), 캔버스에 유채, 117x94cm, 조지아 국립 미술관, 트빌리시.
'백만송이 장미' 노래에 얽힌 사연은 다음과 같다.
니코 피로스마니라는 평생 빛을 보지 못했던 조지아(그루지아) 출신 화가인데. 현재는 조지아 최고의 화가로서, 앙리 루소에 버금가는 화가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고 한다.
'백만 송이 장미' 스토리는 상점의 간판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화가는 평소 짝사랑하던 프랑스 출신의 아름다운 여배우 마르가리타가 자신의 마을에 공연을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전 재산과 그림을 팔아 백만 송이 장미를 사고, 그녀가 묵는 호텔 앞 광장을 온통 꽃밭으로 만들어 흠모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버려진 건물에 젊은이들이 하나둘 Bar를 오픈하면서 핫한 명소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하여 부다에 온 김에 한번 방문해 보았다. 낡은 건물에 낡은 채색과 인테리어를 보태며 bar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한 듯하다. Ruin bars 건물옆에는 안주거리 할만한 작은 street food market도 있으니 안주거리 한두개 사서 이곳 bar에서 맥주나 술을 주문하여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이색적 분위기 체험 차원에서 한번은 방문해볼듯하다.
비슷한 분위기를 이전에 라이프치히에서도 경험한 적이 있다. 어디가 원조인지는 모르나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모두 도시에 생기와 활력을 심는 자생적인 젊은 공간들이므로
거리연주는 째즈 아티스트인 Wahorn andras 라는 분의 공연이다. 유명하신 분이라는데 나는 아직 이분이 어떤분인지는 모르나 그의 자유롭고 즉흥적인 그러나 현대 파노라마같은 연주가 좋아 한참을 그의 공연 감상에 빠졌다.
박찬욱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본 소감은 세련됐지만, 한국에선 별 호응을 못 얻은 게 왠지 이해가 갔다. 편견일 수 있겠으나 내 눈에 비친 현재 한국 사회는 많이 경박해져 있고, 이런 헤비한 주제를 꺼내면 “진지충” 운운 경멸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고 느낀다. 말러 5번 역시 약간 유명해지려다 흥행이 지지부진하며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난 것 같다.
20대 초반에 '슈타이너 학교의 음악교육'이란 책을 사서 읽었다. 세광음악출판사, 1988년 4월 20일 초판 발행으로 돼 있다. 나는 90년대 초반에 산 거로 기억한다. 아마 그때까지도 초판이 다 안 팔렸던 것 같다. 내용이 굉장히 신선했고, 꽤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다 부질없는 썰에 불과하지 않은가 한다. 요즘 한국에선 슈타이너 학교를 '발도르프'란 이름으로 부르는 것 같다.
168~169쪽에 말러 5번 얘기가 나온다. 저자 딸의 음악 선생과 1971년 개봉한 비스콘티 감독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Morte a Venezia)'에 관해 나눈 잡담이었다. 덕분에 말러 5번 4악장이 이미 딴 영화에서 사용됐음을 알았다. 감독이기 전에 영화광으로 알려진 박찬욱 씨라면 당연히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봤을 거고 어쩌면 자신의 영화에 오마주 한 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구글 검색을 하니 “흉내 내는 느낌을 받는 게 싫어서 오랜 시간 대체할 만한 다른 음악을 찾았지만, 대안을 찾지 못했다"는 답변을 찾았다. 그러니까 오마주는 아닌 걸로. 책에선 '바르빌로리'란 지휘자가 녹음한 음반을 구해 함께 들으며 소감을 나누는 걸로 이어진다. 처음 보고 어리둥절했는데 아마도 존 바비롤리(John Barbirolli)인 것 같다. (보통 바비롤리, 바르비롤리라고 하지 바르빌로리라고 쓴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자연히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 동네 비디오 대여점을 훑었다. 하지만 '젖소 부인 바람 났네’ 같은 건 흔해도 외국에서조차 흥행이 안 된 이태리 영화를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리 없다. 결국 실패. 하지만 말러 5번은 구할 수 있었다. 동네 음반 가게엔 없었지만, 종로 신나라 레코드 같은 델 가면 당연히… 이런 사연으로 말러 교향곡 9개 중 5번을 제일 처음 들었다. LP를 다 처분해버려 어느 단체가 연주했는지 확실친 않지만 아마도 번스타인 + 뉴욕필 아니었겠는가 싶다. 이때부터 말러와 나 사이 보이지 않는 밀당이 20~30년에 걸쳐 있다. "도대체 이런 걸 왜 듣냐"며 투덜대면서도 꾸준히 반복 청취했고, 몇 년 전부터 일부 결실이 나타났다. 특히 산행을 할 때면 골전도 이어폰으로 종종 말러를 듣곤 한다. 바람소리, 새소리와 말러가 뒤섞이며 아주 묘한 기운에 휩싸이는 맛이 있다. 혹자는 교향곡 스코어를 본 적 없고, 좋은 오디오 시스템도 없으면서 말러를 듣는다 말할 수 있냐고 비난할지 모르겠으나 난 내 식대로 그 음악들에 조금씩 다가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