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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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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족
▓ 출처: noddle글광 [역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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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글은 [朴노들]이란 분이 「2002 韓日 월드컵 대회」가 열렸던 그 해 여름 2002년 7월 17일자(日字) 경향신문 홈페이지 ‘미디어 칸‘에 ‘노들 백과사전‘이라는 ID로 올린 내용입니다. 내용이 너무 좋고 완벽해 가져왔습니다.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 터키의 한국 사랑
    ▲ Miss Turkey 2007
    ● Miss Turkey – World : SELEN SOYDER
  ● Miss Turkey – Universe : SINEM SULUN
  ● Miss Turkey – Europe : FEYZA CİPA
  ● Miss Turkey – International : ASLI TEMEL
    ▓ 이하 퍼온 내용
  터키(Turkey)와 우리나라는 오랜 형제지국(兄弟之國)이지요.
  터키는 예전에 우리 민족과 중국이 다같이 한자(漢字)로 ‘돌궐(突厥)’이라고 불렀는데, 중국 북쪽의 몽골(蒙古) 일대(一帶)와 중앙아시아 일대에 분포해 살던 유목민족으로서 그 세력이 커지자 이웃이었던 중화(中華) 민족을 꽤나 오랜 동안 괴롭혔던 민족입니다.
  영어(英語)로는 터키(Turkey), 독일어 식(式)으로는 튀르크(Türk), 다시 터키를 한자(漢字)로 음차(音借 : 音寫)하면 토이기(土耳其)라고 하는데, 자기들끼리는 ‘투르키예(Turkiye)’라고 부르지요.
  원 뿌리는 우리 민족과 같은 ‘몽고–퉁구스(Mongol-Tungus)’ 계통이라고 보는데, 유목민족이라 여기저기 이동을 하다가 멀리 유럽 쪽으로 진출하여, 옛날 ‘트로이 제국(Troy帝國)’의 땅이었으며 사도(使徒) 바울(Paulos)이 전도여행(傳道旅行)을 다니던 ‘아나톨리아(Anatolia) 반도(半島)’ 즉 ‘소(小)아시아 반도‘까지 진출하였습니다.
  그들은 ‘천년 왕국(千年王國)’임을 자부(自負)하던 ‘동(東)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발칸(Balkan) 반도(半島)’ 대부분을 차지하여 마침내 ‘오스만(Osman) 터키 제국(帝國)’을 건설하였으며, 오랜 동안 아랍권(Arab圈) 전체를 통치하였고,멀리 북(北)아프리카의 튀니스(Tunisie)까지 지배하는 등(等) ‘알렉산더(Alexander) 제국‘ 이래(以來) 세계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한 영역을 근세(近世)까지 지배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여러 민족과 피가 섞여, 어찌 보면 황인종과 그리스인의 혼혈 내지 아랍인과의 혼혈까지 이루어져 원래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이들의 언어만은 그대로여서 그들의 뿌리가 동양(東洋)임을 여과(濾過) 없이 잘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터키어(語)는 우리와 같은 ‘알타이어(Altai語)’라서 문법도 비슷하고 어순(語順)도 같으며, 모음조화 법칙이나 두음법칙도 있고, 심지어는 단어가 우리말과 비슷한 것도 꽤나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엄마를 그들 말로 ‘에미‘라고 하고, 아빠를 ‘아바‘라고 하는 따위인데, 상당히 가까운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이스탄불(Istanbul : 옛 Constantinople 콘스탄티노플)이 있는 유럽 쪽 터키인들은 그렇잖지만, 수도 앙카라(Ankara)가 있는 소아시아반도 터키인들은 지금도 태어날 때 엉덩이에 ‘몽고반점(蒙古斑點)’이 있는 아이들이 상당수 발견되고 있다는 뉴스를 언젠가 신문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인종학적으로 그 뿌리가 우리와 사촌지간인 셈입니다.
  터키는 돌궐족(突厥族)으로 불려지며 중국과 전쟁을 자주 치를 때, 우리 고구려(高句麗)와 동맹을 맺어 두 나라가 양쪽에서 중국을 협공하기도 하였고, 그 통에 고구려는 그 영역을 멀리 내몽고(內蒙古)인근과 북경(北京) 산해관(山海關) 근처까지 넓힐 수가 있었습니다. 고구려 말엽(末葉)에 수(隋)나라 양제(煬帝)나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고구려를 침공하다가 패전 끝에 더 싸움을 못하고 퇴각하였던 것도 자기들 배후에 있는 돌궐족(突厥族) 때문이었다더군요. 그 당시 만 해도 돌궐족의 피부색은 우리 민족과 거의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고구려 말기(末期) 영웅 연개소문(淵蓋蘇文)의 부인 중 한 명이 바로 돌궐족 여자였지요. 양국관계가 얼마나 가까웠는지 여실히 증명되잖습니까? 바로 그 돌궐족 여인의  소생을 총애한 연개소문이 그에게 권력승계를 하려고 했기 때문에, 연개소문 사후에 고구려 여인 소생의 아들들이 연합하여 권력쟁탈전을 벌였기 때문에 고구려가 급격히 쇠망의 길을 걸었다는 것도 역사책에 다 나와 있는 얘기이지요. 
  고구려가 망하는 바람에 당(唐)나라 태종(太宗)과 고종(高宗) · 현종(玄宗) 등 역대 황제의 압박 정책을 견디다 못한 터키 민족은 그때부터 그 중심세력이 민족 이동을 시작하여, 마치 훗날 몽고의 칭기즈칸(Chingiz Khan) 기병대(騎兵隊)가 사막(沙漠)의 모래바람처럼 신속하게 이동을 하여 멀리 모스크바(Moskva)와 동유럽 일대를 순식간에 석권하였듯이 서진(西進)하여, 천년왕국 동(東)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그 영역 위에 셀주크(Seljuk) 터키 제국 · 오스만(Osman) 터키 제국을 잇달아 세워, 전(全) 유럽 제국(Europe諸國)을 벌벌 떨게 했었답니다.
  유럽 제국(諸國)은 터키로 인해 인도(印度)와의 무역이나 실크로드(Silk Road) 길이 막혀 버리자, 성지(聖地) 이스라엘(Israel) 예루살렘(Jerusalem)을 수복(收復)한다는 명분 아래 백년간에 걸쳐 십자군(十字軍) 전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는데, 막강(莫强) ‘투르키예‘의 위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히 알만하지 않습니까?
  그 터키가 근세에 이르기까지 수세기(數世紀)에 걸친 유럽의 공세, 특히 영국(英國)과 러시아의 협공 등으로 인해 점차 위축되기 시작하였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독일제국(獨逸帝國)의 편을 들었다가 2차(二次)에 걸친 세계대전(世界大戰) 이후 세력 재편성과정에서 이스탄불(Istanbul)을 제외한 발칸 반도(Balkan半島) 대부분을 내놓고 소아시아 반도(半島)만 차지하는 중소 국가(中小國家)로 전락(轉落)을 하게 되었던 겁니다.
  쇠퇴한 터키제국의 후예들이 한때 다시 극동(極東) 지방까지 진출하여, 마치 러시아(Russia) 제국(帝國) 멸망 후의 ‘백계(白系) 러시아인‘들처럼 만주(滿洲)와 우리 나라에 들어와 소규모의 제조업이나 무역업에 종사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도로코‘는 바로 그 시절 ‘터키‘를 일본식(日本式)으로 발음하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지요. 영어의 [t]를 일본인들은 제대로 발음을 못해 택시를 ‘다꾸시‘, 트럭을 ‘도라꾸‘라고 하잖습니까?
  ‘케말파샤(Mustafa Kemal Pasa 1881-1938)’라는 걸출한 인물의 등장으�� 다시 국가를 추슬러 재건한 터키는 1950년 멀리 동방의 코리아(Korea)에서 전쟁이 나자 옛 대제국(大帝國)의 용맹한 후예답게 전원 자원용사(自願勇士)로 구성된 15,000명이라는 사단(師團) 규모의 전투병력을 우리 나라에 파병하여, 우리와 함께 피를 나눈 형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소말리아(Somalia)나 동(東)티모르(East Timor)에 소규모의 비전투병력을 파병하고서도 우리 아들들의 안위가 염려되어 늘 걱정하고 있는데, 저 터키는 ���원 전투병력으로 15,000명이라는 대군(大軍)을 참전 국가(參戰國家) 16개국 중 미국(美國) 다음으로 많이 파병하여 ‘경기도 파주 전투‘ 등 여러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던 것입니다.
  그런 터키를 우리는 아주 오랜 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이번 ‘한일(韓日) 월드컵(World Cup)’을 계기로 그 동안 까맣게 잊었던 터키를 되찾은 것이 여간 기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잊지 않고 살았더군요. 
  우리 나라 방위산업(防衛産業) 무기(武器)의 중요한 수입 국가라는 것도 이번에 비로소 알게 되었으며, 자기들 국산품 애용으로 유명한 나라가 지금 한국 상품 구매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터키는 지금 외세에 의해 그 민족이 여러 나라에 걸쳐 흩어져 살고 있지만 잠재력이 아직도 대단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현재 터키족(Turkey族)은 중앙 아시아 일대에서부터 발칸 제국 및 동유럽 여러 국가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그 수는 약 1억 60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터키 공화국에 약 5800만 명이 살고 있으며, 옛 소련(蘇聯) 지역 · 중국 · 발칸 제국(諸國) 및 동부(東部) 유럽에 1억(億) 이상의 터키족이 있고, 이 가운데 러시아 남부(南部)의 우즈베키스탄(Uzbekistan) · 키르기스스탄(Kirgizstan) · 카자흐스탄(Kazakhstan) · 투르크메니스탄(Turkmenistan) · 아제르바이잔(Azerbaidzhan) 등(等)에 5000만 명 이상의 터키인이 집중적으로 모여 살고 있습니다.
  중국 신강성(新疆省)━━ 즉(卽) ‘신장웨이우얼 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일대(一帶)에 살고 있는 터키족들은 방계(傍系) 민족인 위구르(Uighur) 족(族)과 동맹하여 ‘동(東)투르키스탄(East Turkistan)’ 또는 ‘동(東)터키공화국‘으로 독립하려고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외신(外信)의 전언(傳言)도 있습니다.
  중국 쪽에 아직도 잔류하고 있는 터키 민족의 모습은 우리와 보다 더 가깝게 생겼다고 합니다. 그들이야말로 진짜 원조(元祖) 터키 민족의 후예(後裔)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몽골로이드(Mongoloid) 계열의 피가 더 섞여 있다는 것이지요.
  만약 다민족(多民族) 국가인 중국의 강력한 중앙집권 통치력이 약화되어, ‘몽골 공화국‘이 이미 독립하였듯이 다수 민족(多數民族)이 중국에서 떨어져나가게 된다면, 맨 먼저 독립을 선포할 민족이 달라이라마(Dalai Lama)의 티베트(Tibet ; 吐蕃)보다는 오히려 터키 계열 민족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광활한 중앙아시아 초원에 펼쳐진 1억 6000만 명의 터키 민족이 러시아와 중국 세력의 약화를 틈타 다시 하나가 된다면 21세기나 다음 세기에 다시 터키 민족은 옛 영광을 되찾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꿈은 ‘대(大) 투르키예 연방(聯邦)’ 건설이랍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민족은 저 ‘터키‘의 ‘대(大) 투르키예 연방‘처럼 ‘대(大) 고구려‘나 ‘코리아 연방‘같은 것을 꿈꾸고 있을까요?
  우리도 만주(滿洲)에 조선족(朝鮮族) 200만, 러시아(중앙아시아 및 시베리아 블라디보스톡, 사할린 지방)에 고려인(高麗人) 50만 명이 흩어져 살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에 위축되어 ‘대(大)∼코리아 연방‘ 같은 것은 아예 꿈도 못 꾸고 있잖습니까?
  터키 민족은 자기들끼리 ‘투르키예(Turkiye)’라는 이름 아래 언제든 하나가 될 수 있는 저력과 진취적 정열 내지 에너지가 넘치는 민족입니다. 이번 월드컵 대회를 계기로 터키인들이 얼마나 정이 넘치고 적극적인 성격을 지닌 민족이라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50년이 넘게 우리 나라를 위해 참전하였던 사실에 대해 자부심과 함께 코리아(Korea)를 가슴 속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우리 나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과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 나라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며, 한국에서 부르면 또다시 우리를 위해 함께 피를 흘릴 각오가 되어 있다니, 우리 나라는 행복한 나라입니다.
  가족 관계에서도 형제가 있는 사람이 외동보다 행복하듯이 국제 관계에서도 형제애와 같은 우방(友邦)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든든하고 행복한 일이지요.
  터키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앞으로 양국간에 국경분쟁이 있을 리도 없고, 그저 양국간에 서로 존중하면 할수록 정서적 거리가 더욱 가까워지기만 할 테니, 이런 나라와는 정말 형제지국(兄弟之國)으로 영원한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비바(Viva)! 투르키예(Turki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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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mytown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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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 나 우리 아버지 얘기 할 거 있어.   (1936년생, 여, 전남 구례 출생)   우리 아버지는 서른 여덟에 돌아가셨는데, 내가 열 세 살 때 돌아가셨는데, 그때 내가 태어나기는 전라남도 구례에서 태어났는데. 왜정때니까 아버지가 징용을 피해서 어릴 때니까 엄마한테 자세히 알아놓을 걸 안 들어놓은 게 한이 돼. 옛날엔 도라꾸(트럭)라 그랬어요. 인부들을 싣고 아버지가 객지로 막 다녔어요. 징용에 안 갈라고. 시골에서 농사짓고, 서당 열고, 한문 한글 다 하고, 밖에 나가서 일 하고. 집에 잘 안 오고 그랬는데.   함경도로 평안도로 객지로만 다녔을 때. 내가 9살 때까지. 내가 아홉 살 때.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는지. 우리 아버지가 교육열이 강한 분이라, 나를 초등학교 입학 시켜놓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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