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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kettales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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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팔도 구석구석 최불암 아저씨는 서울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가마솥으로 지은 고봉밥에 금방 잡은 생선이며 귀한 산나물을 바로 무친 걸 복스럽게도 드신다. 나는 참말로 아저씨가 부럽다. 특히 거친 시골밥상은 내가 그 집에 연고가 있지 않고서야 돈 주고 사 먹을 수도 없다는 것이 한 사람을 쓸쓸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스무 살이 된 3월부터 더 이상 시골에 내려가지 않게 됐다. 홀로 친가의 기둥이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아빠의 고향 김천은 경상도의 내륙 지방이라 특산물이라고는 햇빛을 듬뿍 받은 포도와 자두뿐이었다. 그렇다고 포도를 배불리 먹어본 기억도 없다. 일 년에 두어 번 명절 음식이 그야말로 집밥인 것이다. 그러나 명절에 내려가면 사흘 밤낮으로 음식을 푸짐히 준비하던 여자들의 고달픈 시집살이도 끝은 있었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큰어머니들이 한 분씩 돌아가시니 장만해야 하는 음식 같은 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흔적만이 남은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남았을 뿐 그걸 이어받을 시간도 우리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가오리 찜’
나는 이것을 첫 직장 근처 오래된 칼국숫집 메뉴판에서 발견하고 그리움이 몰려와 눈물샘 대신 침샘이 묵직해졌다. 명절이면 가오리 찜이 매 끼니마다 반찬으로 나왔는데 나는 쌀밥에 가오리 찜하고 식사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 광에서 차가운 공기와 바람에 말린 가오리를 꺼내 큰엄마가 양념장을 정성스레 가오리에 바르고 찌기를 반복하길 반나절을 꼬박 공들여야 그 맛이 났다. 가오리 찜은 김천에 계신 큰엄마 말고는 맛을 제대로 내지 못해 아무도 그 음식을 전담할 용기를 못 냈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의 손이라면 과연 저래야 하는구나, 나는 큰어머니의 참기름에 반질반질한 손 모양을 기억한다. 당신의 손으로 직접 가오리를 죽죽 찢어 깨소금 뿌리고 상에 올리는 모습이 나는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칼국숫 집의 가오리 찜도 큰어머니의 것과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평범한 생선찜 맛이었다. ‘이 맛이 아니야!’하며 퇴근하는 길에 큰어머니를 생각했다. 돌아갈 고향이 없어진 기분이 과연 이런 걸까 그때 난 내게 남은 흔적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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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kettales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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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남산의 밤이었다. 마치 분에 넘치는 선물을 받는 듯, 불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최근 뉴스에서 들었던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두 친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주변 사람들을 통해 지켜본 사람의 나약하거나 강한 심성이 미치는 행동 심리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나쁜 사람은 없어. 모든 일에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잖아.”라며 인간 본연의 ‘선’을 믿고 싶다고 했다.
거짓말처럼 두 어린 친구들에 대해 애도가 끝나갈 무렵,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고 있는데 신호를 무시한 채 돌진하는 차량을 보았다. 멈출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검붉은 얼굴은 눈이 풀린 채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흡사 악마의 얼굴이 저런 걸까? 아 이제 난 죽는구나 싶었는데 만약 1초라도 느리게 움직였더라면 내일이 없었다는 생각을 하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다시 생각해도 그런 얼굴에서 이성적인 사고의 가능성은 전무하고 이유 같은 건 없었다.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법은 음주로 인한 사고의 결과를 크면 클수록 관대한데, 이 역시 인간의 선함을 믿고 싶은 선처일까. 오늘 겪은 죽음의 문턱 앞에서 인간에 대한 낭만 같은 건 없었다. 현장감이 없는 법. 나부터 부끄러웠다.
유난히 반짝거리던 서울의 야경, 오늘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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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kettales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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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늘 모든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당신이 몸소 보여주시며 가르쳐 주셨다. 늘 엄마의 생각은 멀리 닿아있었고, 나를 품 안의 자식이란 인상보다는 한 명의 인격체로 존중해 주시는 느낌이었던 터라 ‘나’보다는 ‘모두’가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는 걸 동등하게 느낄 수 있도록 대우해 주는 것으로 내가 그걸 깨닫길 바라셨다.
어느 위대한 위인들의 어머니 같은 엄마를 둔 나는 가끔 삶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한다. 엄마에 비해 뭐가 부족한지 너무 잘 알겠고, 늘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어디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을 때 말이다.
할아버지께서 내게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니 모든 일에 열성을 다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하셨다. 사람을 볼 때도 껍데기가 아닌 태도를 보라고 가르쳐 주셨고, 태도 속에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항상 명심하라는 어조엔 열심히 살아온 당신의 삶이 가득해서 나는 그걸 헤아리다 보면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마련이다.
아빠는 언제나 틀린 말을 하신 적이 없으나, 그 솔직한 말은 때론 엄청난 상처로 남았다. ‘아빠도 틀릴 때가 있을 거야!’라는 생각에 아빠가 모로 가라고 하면 도로 갔지만 아빠의 예견은 틀린 적이 없었다.
최근에 아빠로부터 ‘네 말이 맞더라. 네 의견을 반영하니 훨씬 더 좋아졌구나.’라고 문자를 받았을 때, 차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리고 더 이상 청개구리처럼 행동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빠의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거울처럼 웃게 되지만, 보통내기 아빠들이 주는 사랑을 떠올려보면 아쉽게도 평생을 가득 채울 수 없는 결핍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인정을 하고 나니 또 다른 사랑의 형태가 그려졌다. 오늘 이 얘기를 비슷한 부녀지간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에게 젤라또를 먹으며 “오 맛있다!”와 동시에 뒤이어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을 만큼 어른이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믿고 있는 종교가 환생을 이야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죽는 날 미련없이 먼지로 사라지고 싶어서. 한 번뿐인 이 생은 모든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고 아끼며, 포기해야 할 때는 깨끗하게 포기할 줄 아는 삶을 살 거다. 가족들의 삶과 이름이 부끄럽거나 헛되지 않게 살고, 나는 또 나만의 사랑을 일구어 가까운 주변과 후대에 전해주고 가야지. 무기력해지는 순간이 올 때마다 이 글을 썼던 마음을 떠올려야겠다.
‘무엇으로 사람들을 기쁘고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작은 것 하나라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날 바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돌아가신 친할아버지께 왜 매일 아침마다 담배꽁초를 주우러 다니셨냐고 묻고 싶었는데, 이런 마음이셨을까. 나도 은퇴하고 할아버지처럼 조깅도 하고 꽁초도 주우러 부지런히 다니려면 치매 안 걸리게 조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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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kettales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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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통화 버튼을 꾹 누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도리어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에도 고마운 마음이 들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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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kettales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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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우진아,
너의 첫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네가 태어나고 이모가 싱가포르가서 네가 좋아하던 노래 나오는 튤립 장난감이랑 놀고 우유 먹여준 걸 넌 절대 기억 못 하겠지? 네 엄마가 이모 눈에는 아직도 어린애 같은데 그런 엄마가 너를 깨끗하게 씻기고 안아주고 놀아주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들을 했단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구나 하는 걸 느끼고 있어. 네 엄마 아빠는 내가 아는 가장 멋있는 사람들이야. 알게 모르게 부모님의 좋은 점이 너의 삶에 스며들고 영향을 미칠 거야. 그렇다면 어른이 된 우진이의 모습이 기대되지 않을 수가 없다.
살다 보면 너한테 부모님 모습이 느껴질 때 기분 좋게 웃긴 순간이 있을 거야. 그걸 깨닫는 순간이 올 때마다 꼭 사랑한다고 말씀드리렴.
너의 첫 번째 생일 선물로 이모의 사심을 담아 미키마우스 클럽 오리지널 모자를 선물한다. 엄마가 이모랑 친구인 이상 디즈니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될 거야? 이모 유치하다고 하지 말아 줘. 이모는 디즈니를 좋아하는 웃긴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이야.
지구에 온 지 1년! 환영해!
그리고 사랑한다. 우진아. 앞으로 신나는 일들이 가득할 거야! (이모와 함께라면)
-20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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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kettales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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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이맘때면 친구랑 어복쟁반을 먹으며 한 해에 기념할만한 것들을 곱씹었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올해는 조용히 넘어가고 싶어서 아무 계획도 잡지 않고, 부르는 대로 자리만 지킬뿐이었다. 머릿속은 딴 생각에 가득 차있는 채로. 여느 날과 다름없이 무심코 갑자기 만나자는 친구를 만나러 회사 앞까지 걸어가면서 뒤따라 오는 버스랑 내기를 한다고 뛰다가, 귀가 고드름처럼 “또각!”하고 부러지는 줄 알았다. 덕분에 경주에서도 이기고, 친구도 내 귀를 보고 웃을 수 있었다.
날도 춥고 하니 맛 좋은 손 칼국수 집엘 친구를 데려갔다. 보쌈 하나에 손칼국수 하나 이렇게 시켜놓고 먹는데, 몸이 얼어서 그런지 음식을 먹는 건지 사우나를 하는 건지 무아지경이 따로 없었다. 엄지로 ‘짱이다!’를 연발하다가 앞으로 친구한테 입맛 없단 소리 안 하겠다고 약속했다.
음식이 보약이라고 느낀 게, 든든하게 먹고 나니 모든 것이 또렷하게 받아들여졌다. 마음의 보일러가 풀가동된 느낌처럼.
계절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자연의 색이 소멸된 혹독한 계절일수록 공허한 마음에 그걸 버텨낼 재간 같은 게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때 일기에 이러한 어른이 되고 싶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해가 수없이 바뀌어도 여전히 떡볶이 단추가 달린 코트를 좋아하고, 소박한 기쁨을 느낄 줄 아는 사람. 계절에 취약한 사람은 특히 겨울이 오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산인지 알 수 있다며, 겨울에 이유도 모르는 채 울적하다는 친구들과 이걸 화두로 자주 얘기하곤 했었다.
오늘 한 해의 마지막 모습을 남기고 싶어 들고 있던 빵 봉지만 찍어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했는데, 사진엔 서른 살의 내가 서 있었다. 떡볶이 단추가 조악하게 달린 어설픈 옷을 입고 빵 봉지를 소중하게 들고 있는 내 모습이. 고등학교 때 내가 바라던 모습이 이런 모습일까 의심이 들면서도 두려웠다. 나는 조금씩 변하고 다듬어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은 어떤 면에서 사회의 쓰임에 따라, 말과 행동에 따라 길들여진 도구와 같이 변모한다. 그래서 그 책임의 무게가 점점 무겁게 느껴진다. 내가 예전에 상상하지 못한 어른의 모습이었다.
친구와 헤어지기 전에 나눈 대화들에서 내가 무엇이라도 통달한 사람처럼 말을 했지만, 사실 그건 두려워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문득 궁금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이런 대화들을 오고 가게 하는 연말을 보내고 있을까라는 생각. 더불어 오늘 밤만큼은 우리의 마음이 공기 중에 다 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들 숨만 쉬어도 그들의 보일러가 가동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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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kettale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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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스케치 단계에서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지우개로 지웠다 고쳤다를 반복한다. 그래서 크로키처럼 한 번에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드로잉이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닌 것은 많이 그려보고 노련해야 수월하기 때문이다.
나라는 그림 전체에서 일부분의 형태도 스스로 만족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지우고 고쳐왔다. 참 많이 서툰 나였다. 여전히 다시 그리고 싶은 순간들이 많다. 하지만 요즘 문득 튀어나오는 나의 단호함은 그동안 내가 애써 많이 다듬어 만들어진 하나의 형태로 나타났다. 더불어 뭘 그리 지우며 고치고 싶었는지 그 형태 안에 흔적들로 꽉 차있었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웃음만 나왔다. 완벽한 형태는 아니지만, 오늘 이 부분은 드로잉을 멈추고 색칠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색상이 없으니 그저 잘 물들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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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kettale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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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생일 아침, 아빠가 꽃을 한 아름 들고 엄마에게로 가셨다. 두 팔 벌려 엄마를 안아주시자, 엄마는 고개를 돌려 아빠의 오른쪽 어깨에 뺨을 대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숨기셨다. 나는 이 풍경에 감초 역할이 되고 싶어 문 뒤에서 몸을 반쪽만 내밀고 씩씩거렸다.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의 포옹에 나는 엄마를 독차지하고 싶은 질투의 화신 역할을 하곤 했는데, 엄마보다는 사실 아빠의 깔깔 웃음을 위한 촉매제였던 터라 단 한 번의 실패 없이 쏠쏠한 재미를 봤었다. 올해는 그동안의 레퍼토리에서 벗어나 아빠가 나도 안아주려고 하시자,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도망가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숨겼다. 나라는 딸은 참 아빠에게 미꾸라지 같은 딸이다.
곧이어 아빠는 엄마가 시집올 때 가져온 크리스털 화병을 꺼내셨다. 아빠가 그 화병을 들고 계신 모습은 우리 집안 풍경에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더불어 나는 또 역사적인 순간을 마주했는데, 이 모습을 보고 뭉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빠가 꽃을 다듬으며 그 화병에 꽃을 하나씩 꼽으시는 호젓한 뒷모습.
한참을 몰래 지켜보면서 나는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것처럼 반가웠다. 그날 이후 아빠의 출근길 배웅에 나는 엄마 뒤가 아닌 나란히 서서 미소와 하이파이브로 배웅해드렸다. 늘 이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살 수 있다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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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kettale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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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kettale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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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christmas.
어릴 적 난 이런 연극 대본을 만든 적이 있다. 토비라는 꼬마 눈사람의 크리스마스를 그린. 글은 사라졌고 내가 어떤 크리스마스를 꿈꿨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토비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잠들기 전 산타를 위해 갓 구워낸 초코칩 쿠키와 설탕 한 스푼이랑 시나몬 가루를 한 꼬집 넣고 끓인 우유를 준비하는 대목이다.
어린 마음에도 그 쿠키와 우유는 ‘기다림’과 ‘따뜻한 마음’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표현할 줄 아는 토비가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손님에게 고봉밥을 내어드리던 사람들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음을 그를 통해 보여주���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었던 까닭인 것 같다. 내게 크리스마스는 토비의 가면을 쓰고 그런 마음을 표현해 볼 수 있는 좋은 마당이 되어 주었다.
난 이 이야기를 참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있었다. 빛 바랜 토비의 구슬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던 것은 20년이 흘러 크리스마스가 아닌 무더운 여름 어느 생경한 도시에서 일어났다.
“나 여기 아무개랑 꼭 와야지 했잖아.”
따끈한 초코칩 쿠키와 밀크셰이크가 내 앞에 놓였다. 어느새 나의 꼬마 눈사람이 친구로 나는 산타가 되어 있었다. 밀크셰이크를 마시는 순간, 그가 능청스럽게 윙크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 산타도 이런 스팀 밀크를 마시고 기운을 내지 않았을까. 어른의 입맛을 잘 알던 토비는 럼을 쪼르륵 넣었다. 산타는 이 깜짝 선물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최고의 찬사로 집 앞에 (이런 순간이) 매일 배달 왔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친구의 기다림과 마음이 테이블에 작지만 아주 커다랗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나의 오래전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작은 일도 마치 마법처럼 팽창되는 순간으로 남기는 사람이 있고, 마법 같은 순간을 12시 종이 끝나버린 기분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 일상의 연금술사 같은 사람이 지금 내 옆이나 당신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공감되는 사람이라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질 수밖에 없다. 산타가 썰매를 끌고 수많은 토비를 만나러 가는 일이 왠지 그의 이면에 이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한 여름 나를 산타로 만들어준 친구가 있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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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kettale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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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약자와 강자가 있다면, 과거에는 사랑을 주는 쪽이 약자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랑을 많이 받아보면 어느 순간 내가 약자라고 깨닫는 순간이 온다. 나는 이 싸움에서 절대 지고 싶지 않은 승부욕 강한 고집쟁이이지만, 이걸 깨닫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항복할 수밖에 없다. 
관계의 끝 지점이 아닌 우리의 가장 기쁘고 행복한 순간, 완패라고 느끼게 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강자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말해줘도 못 알아듣는 겸손하고 다정한데 웃기기까지 한 바보들.
20190706-201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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