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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ne-blog · 1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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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feat. 롤러코스터) - 봄이와
"나는 잠이와 오는 잠에 나른해지고
눈이 무거워 무거운 눈꺼풀이 싫어
다 좋은데 딱 한가지 안 좋은 것은
눈뜰 수가 없네. 눈을 뜰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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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언제 왔었어?! 이제 봄은 없나봐. 이런 노래도 이제 덥지만 뭐 이렇게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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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ne-blog · 1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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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ming Urban Stereo - Insomnia
깨어보니 그렇지 않은 것처럼 봄비는 내리고 
"귀여워 귀여워 웃을때 귀여워 너무 귀여운 나만의 연인 그대~"처럼
문득 그 궁금했던 목소리는 앞으로도 그렇게...
나에게 맞닥뜨린 이별이 아니더라도 그것처럼 힘들다.
부디 그 궁금하고 '귀여운' 목소리에 평화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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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ne-blog · 1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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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사이에 생기는 일이 어찌 논리로만 설명이 되겠습니까?
해를 품은 달(2012)에서 '월이(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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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ne-blog · 1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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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ney Houston - Exhale
▶◀ 휘트니 휴스턴(1963-2012) R.I.P Whitney Hou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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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ne-blog · 1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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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2011)
스웨덴의 아득한 눈속에 묻힌 더러운 진실...
데이빗 핀처(David Fincher)의 영화다운 정말로 끝장나는 오프닝, 그러나 드러내어 내세웠던 007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는 숟가락만 얹었고 거슬러 가면 이 쿨한 여자 리스베트(Rooney Mara) 중심의 이야기... 쫄아서 찔끔거리게 되면서도 주먹을 불끈 쥐도록 통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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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ne-blog · 1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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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Te - Romantico
그 유명한 슈퍼스타 K3의 '투개월'이 부른 달콤한 그 곡의 원곡이 이것이었구나. 그러나 역시나 이 원곡의 달콤쌉사름하고 옥탑골방솔로티코스러움엔 무릎꿇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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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ne-blog · 1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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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MOT) - 서울은 흐림(Cloudy Seoul)
요 며칠 서울 날씨는 정말 이래. 그렇지? 오래전에 어디에 못이 박혔던 것같은 흐린 기억의 그 곳에서 전해오는 아련한 아픔이 그속에서 뒤돌아 앉아 빈정대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 정말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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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ne-blog · 1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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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 봄 여름 가을 겨울 (080725, Live)
"봄이 오면 강산에 꽃이 피고, 여름이면 꽃들이 만발하네, 가을이면 강산에 단풍들고, 겨울이면 아이들의 눈장난, 아하하~ 아름다운 아하하~ 우리강산~ 봄. 여름. 가을. 아하하~ 겨울. 해가 바뀌어도 변하지않는?! 아름다운 우리강산..."
그러니까 가을비?가 내려버려서 오늘부터는 모르겠지만 어제까지의 몇몇날들은 추위가 아닌 반팔티나 아이스커피의 얼음을 깨물어주는 것이 어색하지 않기에 당황스러운 더위였으니 그리고 그동안의 몇몇 해에는 누구나 흔희 알고 있는 이 노래의 가사처럼이지는 않았으니... 아주 아주 먼 후에 기후가 확연이 바뀐 어떤날에 어떤이가 저 노래를 듣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하긴 저 라이브 공연이라는 것이 그 곳에 내가 있지 않았으니 지금 그 녹화영상이야 몇번을 반복해 들어 보아도 불어터진 라면의 면발같은 느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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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ne-blog · 1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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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 (The King of Pigs, 2011)
"이곳은 얼음처럼 차가운 아스팔트와 그보다 더 차가운 육신이 뒹구는... 세상이다."
여고괴담류보다 무섭고 경악케하며 오랫동안 그 정신의 숙취?로 고생할... 에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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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ne-blog · 1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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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ister’s Eulogy for Steve Jobs By MONA SIMPSON Published: October 30, 2011 나는 홀어머니 밑에서 독자로 자라났다. 우리는 가난했고, 아버지가 시리아 출신 이민자였다고 들어서 아버지는 아마 오마 샤리프(Omar Sharif)를 닮잖았을까 상상하곤 했었다. 그가 부자이고 친절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도 좀 도와주면 좋잖을까? (아직 우리 아파트에는 가구도 다 갖춰지지 않았었다.) 나중에 아버지를 만나고 나서는 아버지가 아랍인들을 위한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전화번호를 바꾼 다음에 주소도 남기지 않았다고 믿으려 노력했었다. 페미니스트이기는 했지만 나는 인생에 걸쳐, 사랑할 남자,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남자를 기다려 왔었다. 아무래도 그런 남자는 우리 아버지가 아닐까 싶었는데, 25살이 되던 해, 나는 오빠라는 남자를 만났다. 당시 난 첫 소설을 쓰기 위해 노력하면서 뉴욕에 살고 있었다. 한 작은 잡지사에 일자리를 얻어 벽장만한 크기의 사무실에서 다른 작가지망생 셋과 같이 일하던 때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한 변호사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들에게 직장 의료보험을 사달라고 졸라댔던 캘리포니아 출신 중산층 아가씨인 내게 말이다. 그 변호사 말에 따르면, 자기 고객 중에 부자이고 유명한 분이 한 분 계시는데, 그 분이 나의 잃어버린 오빠라고 했었다. 우리들은 열광했었다. 당시는 1985년, 우리들은 최신 문학잡지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디킨스 소설에나 나오던 음모에 빠져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변호사가 오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가 누구일지 추측놀이를 시작했다. 제일 그럴듯한 후보는 존 트라볼타(John Travolta)였다. 다만 나는 마음 속으로 헨리 제임스(Henry James)의 문학적인 후손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별 노력 없이도 뛰어나게, 나보다 재능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그렇게 해서 스티브를 만났다. 그 때 오빠는 청바지를 입은, 아랍계 혹은 유태계처럼 보였으며, 오마 샤리프보다 훨씬 잘생겼었다. 우린 오랫동안 산책을 했다. 우연히도 우리 둘 다 산책을 좋아했었는데, 사실 첫 번째 날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친구가 한 명 더 생겼거니 생각했었다. 오빠는 자기가 컴퓨터 일을 한다고 말했었다. 난 컴퓨터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다. 작업은 올리베티(Olivetti) 수동 타자기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한테는 최근 크로멤코(Cromemco)라 불리는 컴퓨터를 한 대 구입해볼까 생각중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오빠는 그것도 좋긴 하지만, 자기가 미칠정도로(insanely) 아름다운 컴퓨터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오빠로부터 알아낸 사실을 몇 가지 알려드리겠다. 27년이 넘게 오빠를 알아왔는데,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연도에 따른 시기가 아니라, 상태에 따른 구분이다. 그의 인생 전체와 그의 병환, 그리고 그의 죽음이다. 오빠는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정말 매일같이 열심히 일했다. 정말 간단하게 말했는데, 사실이다. 오빠는 멍한 채로 있는 적이 없었다. 결과가 실패라 할지라도 오빠는 주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오빠만큼 영리한 인물이면 자기가 시도했던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나도 그럴 테고. 오빠가 애플로부터 쫓겨났을 때 상황은 고통스러웠다. 오빠는 실리콘밸리 지도자 500명이 당시 대통령과 만찬모임을 같이 했었는데, 자기는 초대받지 못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오빠는 상처를 받았지만 곧바로 넥스트 일을, 또다시 매일같이 했다. 오빠가 가진 가장 큰 가치는 참신함이 아니라 아름다움이었다. 오빠는 혁신가에게 대단히 충성스러웠다. 좋은 셔츠가 있으면, 10벌이건 100벌이건 주문하기 때문이다. 팔로알토의 집에만 하더라도 장례식 때 교회에 모인 사람 모두 입을 수 있는 분량의 검정색 터틀넥이 있다. 오빠는 유행이나 술책을 좋아하지 않았고, 자기 나이대의 사람들을 좋아했다. 미학에 대한 철학을 보면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패션은 지금은 아름다워 보일지 몰라도 나중에는 보기 흉해진다. 예술은 지금 보기 흉할지 몰라도, 나중에는 아름다워진다." 오빠는 언제나 나중에 아름다워지는 쪽을 택했었다. 게다가 기꺼이 인정받지 않는 편을 택하기도 했었다. 대통령 만찬에 초대받지 못했던 오빠는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가로 주문한 동일한 기종의 스포츠카를 몰고 플랫폼 개발을 조용히 진행하고 있던 넥스트로 되돌아갔다. 나중에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넥스트를 사용하여 월드와이드웹 프로그램을 작성한다. 사랑에 대해 얘기한 시간만 따지면 오빠는 소녀같았다. 사랑은 오빠가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였으며, 신들 중의 신이었다. 오빠는 자기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로맨스도 알아보고 걱정하곤 했었다. 근사한 여자라도 보면 오빠는 항상 말을 걸었다. "헤이, 싱글이신가요? 혹시 내 여동생이랑 저녁먹으러 오지 않을래요?" 로렌을 만났던 날 내게 전화했던 일도 기억난다. "아름다워. 정말 똑똑한 여자 중의 여자야. 그녀랑 결혼할 거야." 리드가 태어났을 때도 오빠의 마구 쏟아지는 수다는 그칠줄을 몰랐다. 오빠는 아이들의 아버지였다. 리사의 남자친구 문제를 고민하고, 에린의 여행과 치마길이를 걱정했으며, 이브의 승마가 안전한지 우려한, 아버지였다. 리드의 졸업식에 참여했다면 누구도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 오빠와 리드가 같이 느리게 춤췄던 장면이다. 로렌에 대한 변치 않은 사랑이 그를 지탱시켜줬다. 오빠는 사랑이 언제나 어디에서나 이뤄진다면서, 사랑이라는 제일 중요한 것에 대해 오빠는 절대로 비꼬거나 회의적이지 않았고 매사 긍정적이었다. 지금도 오빠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다. 오빠는 젊은 시절에 성공을 거뒀고, 그 성공때문에 자기가 고립됐다고 느꼈었다. 내가 알기로 그 때 오빠가 내린 결정 대부분은 자신을 둘러싼 벽 없애기였다. 로스알토스 출신의 중산층 소년으로서 오빠는 뉴저지 중산층 출신의 소녀와 사랑에 빠졌고, 리사와 리드, 에린, 이브를 평범하고 튼튼한 아이들로 기르는 것이 둘에게는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오빠의 집은 예술작품이나 광택으로 겁을 주는 집이 아니다. 스티브와 로렌이 같이 살았을 때 저녁은 보통 잔디밭에서, 가끔은 딱 채소 한 가지만 갖고 먹을 때가 많았다. 딱 한 가지의 채소, 물론 양은 많았지만, 제철에 나온 브로콜리 뿐이었다. 간단히 준비한 음식이었으며, 싱싱한 허브와 곁들인 식사이기도 했다. 젊은 백만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오빠는 언제나 공항으로 날 맞이하러 나와줬었다. 청바지를 입고서 말이다. 업무중인 오빠에게 가족 중 누군가가 전화했던 일도 기억난다. 비서인 리네타가, "아버지는 지금 회의중이셔. 그래도 알려드릴까?"라 했었다. 핼로윈 때마다 리드가 마녀 복장을 고집하면, 오빠와 올케, 에린과 이브는 모두 위칸(wiccan, 마법숭배자)로 변장하곤 했었다. 부엌을 리모델링할 때 가족들은 차고에 있는 철판에서 요리를 했었다. 같은 시기 픽사 빌딩이 건축중이었고 절반 정도 완성돼 있었으며 팔로알토 집도 마찬가지였다. 욕실은 오래전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이 점이 결정적인 차이랄 수 있다. 정말 훌륭한 집의 욕실이었고 오빠는 그걸 알아본 것이었다. 물론 오빠가 자신의 성공을 전혀 즐기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성공을 매우 많이 즐겼다. 물론 뒷자리 숫자를 몇 개 뺀 채로 말이다. 오빠는 팔로알토의 자전거 가게에 가서 제일 좋은 자전거도 자기가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가 얼마나 좋았는지 말해준 적이 있었다. 정말로 좋아했었다.그리고 오빠는 그 자전거를 샀다. 오빠는 겸손했고, 계속 배우려 했다. 한 번은 자기가 다르게 자라났더라면 아마 수학자가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했었다. 대학에 대해 숭배하는듯이 말하고, 스탠포드 대학교 캠퍼스를 산책하는 것이 좋다고 했었다. 인생의 마지막 시절, 오빠는 미래 애플 캠퍼스의 벽에 어떤 그림이 어울릴지에 대한 생각을 하며 이전까지 몰랐던 화가인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그림을 공부했었다. 오빠는 기발한 생각도 자주 했다. 장미차에 쓰이는 영국과 중국 장미의 역사를 알고, 장미업자 데이비드 오스틴(David Austin)의 장미 중 자기가 특별히 좋아하는 장미가 있는 CEO가 과연 또 있을까? 오빠는 모든 주머니에 장난거리를 가득 갖고 있었다. 이를테면 오빠가 좋아하는 노래, 오빠가 잘라내어서 서랍 안에 집어 넣은 시, 예외적이라 할만할 정도로 가까운 20년의 결혼관계인데도 오빠의 선물을 아마 로렌이 다 발견해낼 것이다. 매일같이 오빠에게 말했지만, 뉴욕타임스에서 애플 특허를 다룬 기사를 봤을 때 완벽한 계단에 대한 스케치 그림이 지금도 기쁘고 놀라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오빠와 네 명의 아이, 올케, 우리 모두 정말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오빠는 행복을 정말 소중하게 여겼다. 그리고 오빠는 아팠다. 그의 인생이 보다 소규모로 줄어드는 광경을 우리는 지켜봤다. 한 때 그는 파리 시내를 거닐거나 쿄토의 조그마한 수제소바집을 발견하고, 우아하게 스키를 타기도 했었다.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좀 서툴렀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바깥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결국은 좋은 복숭아와 같은 일상적인 기쁨도 더 이상 그에게 매력이 없게 됐다. 하지만 놀라운 점이 있다. 오빠가 아팠을 때 배웠던 교훈이다. 그 많은 것을 못 할 때조차도 얼마나 많은 것이 남아 있던지. 책상을 갖고 다시 걷기 위해 노력했던 일이 기억난다. 간이식 수술을 받은 이후 오빠는 하루에 한 번씩 다리로 딛고 섰었다. 오빠의 다리는 몸을 지탱하기에 너무나 말라 보였지만 오빠는 과감하게 책상에서 팔을 뗐다. 멤피스 병원 복도의 간호근무실까지 책상을 밀면서 간 다음, 책상에 앉아서 잠시 쉬고 주위를 돌아본 다음 다시 걸었다. 오빠는 자신의 걸음걸이를 매일같이 세가지고 다음에는 조금씩 더 걸었다. 올케도 무릎을 꿇고 앉아서 오빠의 눈을 바라봤다. "할 수 있어요, 여보." 그러자 오빠의 눈이 넓어졌고, 입술도 팽팽하게 당겨졌다. 오빠는 노력했다. 언제나, 언제나 노력했고, 그 노력의 안에는 언제나 사랑이 들어 있었다. 그는 전적으로 감정적인 사내였다. 오빠가 자기 자신을 위해 고통을 참어가며 그 끔찍한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오빠의 목표는 아들 리드의 고등학교 졸업식 참가와 딸 에린의 쿄토 여행, 그리고 언젠가 은퇴한 이후에 가족들을 데리고 전세계를 돌아다닐 계획으로 건조중이던 보트였다. 아픈 와중에서도 오빠의 취향과 차별, 판단은 여전했다. 오빠는 67명의 간호사를 면접한 다음,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완전히 신뢰하여 오빠의 사망 때까지 자리를 지킨 간호사 세 명(트레이시와 알투로, 엘햄)을 선별했다. 만성 폐렴에 걸렸을 때 의사는 오빠에게 모든 것을 금지했었다. 심지어 얼음도 말이다. 우리는 일반적인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자기 이름을 잘라 먹거나 선 긋는 것을 싫어했던이름을 내세우거나, 새치기를 싫어했던 오빠는 이번에 좀 특별하게 취급받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오빠에게 말했다. 오빠, 이게 특별 취급이에요. 그러자 오빠는 내게 몸을 기울여서, "조금 더 특별하기를 원해."라 말했다. 관이 삽입됐을 때 오빠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메모장을 하나 달라고 했었다. 메모장을 받자 오빠는 병원 침실에서 아이패드를 지탱할 수 있는 기기를 스케치했고, 새로운 유동 모니터와 엑스레이 장비도 디자인했다. 오빠는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병원 내 각종 장비도 다시 디자인했고, 올케가 들어올 때마다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지켜봤다. 오빠는 메모장에 이런 말을 적었다. "정말로 큰 뭔가를 하려면 날 믿어야 함." 그가 날 올려다 봤다. 너도 그래야 한다고. 무슨 말인지 알았다. 결국 우리는 의사 몰래 얼음을 가져다 줬다.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여기에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지난 해, 건강이 좀 호전됐을 때 오빠는 프로젝트를 당장 시작하고는 애플 친구들을 불러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겠노라는 약속까지 끌어냈다. 네덜란드의 보트 제작자도 멋진 스테인레스 철 선체를 목재로 마감시킬 준비를 마쳤다. 세 딸은 결혼을 안 했으며(둘은 아직 어린 소녀이긴 하다), 오빠는 언젠가 내 결혼식 날 내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섰던 것처럼, 딸 손을 잡고 결혼식에 들어서길 바랬었다. 거두절미하고, 우리 모두 결국은 죽는다. 한 이야기의 중간, 아니 많은 이야기에 나오는 얘기다. 수 년간 암투병을 하던 환자가 죽는다고 해서 별로 놀랍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우리는 오빠의 사망을 얘기치 못 했었다. 오빠의 죽음으로 알아낸 사실이 있다. 성격이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죽는 방법도 달라진다. 화요일 아침, 오빠는 내게 급히 집으로 올 수 있겠냐고 전화했었다. 오빠 목소리는 다정했고 사랑스러웠지만 뭔가 자기 짐을 차에 싣고 여행을 떠나려는 아니, 여행을 이미 시작한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우리를 떠나서 미안하다는, 정말 미안한 목소리였다. 오빠가 작별인사를 시작하려 해서 난 성급히 오빠를 막아섰다. "기다려, 내가 가. 지금 공항 가는 택시 안이야. 내가 갈께." "모나, 혹시 제 때 못 올까 걱정돼서 말해주는 거야." 내가 도착했을 때, 오빠와 올케는 서로 매일 같이 일하고 살아온 동료인 양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오빠는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면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후 2시쯤 되자, 올케가 그를 깨웠다. 애플에서 온 친구들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그는 더 이상 깨지 못했다. 오빠의 숨소리가 바뀌었다. 힘들지만 찬찬히, 의도적인 숨소리였다. 발걸음을 다시 세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보다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말이다. 오빠는 숨소리마저 훈련하고 있던 것이다. 오빠에게 죽음이란 없다. 오빠는 죽음을 이겨냈다. 오빠가 이제 안녕이라며 항상 계획했던 것만큼 오래 못 살아서 정말 미안하고, 자기는 더 좋은 곳으로 간다고 말했다. 피셔 박사는 그날 저녁을 넘길 확률이 50/50이라고 오빠에게 말해줬다. 오빠는 그날 밤을 넘겨냈다. 올케가 침대 옆에 붙어서 숨 사이에 정지가 좀 길어지면 오빠를 바라보곤 했었다. 오빠는 다시금 깊은 숨을 쉬었고, 올케와 나는 서로를 바라봤다. 해내야 한다. 지금도 오빠는 단단하고 여전히 잘생긴 얼굴, 절대주의자이자 로맨틱한 사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숨소리는 몹시 힘든 여행을 하고 있었다. 가파른 길이라도 올라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의지와 직업윤리, 힘 외에도 오빠에게는 경탄을 이끌어내는 달콤한 능력이 있었다. 나중에 더 아름다워진다는 이상을 믿는 예술가의 믿음일 것이다. 사망 몇 시간 전, 오빠는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단음절로 세 번을 반복했다. 죽기 전, 오빠는 여동생인 패티를 보고, 아이들을 오래 쳐다본 다음, 인생의 동반자, 올케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들 어깨 뒤를 봤다. 오빠가 했던 마지막 말이다. OH WOW. OH WOW. OH WOW.
모나 심슨의 잡스 추도사 (AppleForum, casaub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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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ne-blog · 1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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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Jobs, 1955-2011
100년도 못사는 인생이여라 또 그러하기에 그렇게 스쳐가는 삶들 속에서 잠시나마 같은 시간에 존재해서 함께 호흡했었다는 것 만으로도 진심으로 소중하다거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은 그다지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 근 몇년간 그런 사람들이 유난히도 많이들 세상을 떠났다. 오늘 하루 온종일 온통 공허한 마음으로 가득찼었던 것을 생각해 보니 스티브 잡스 또한 그런 사람중 한명이었나 보다. 그가 떠나기 전날의 아이폰4S의 발표는 정말 4S, for Steve.였을까?! 이제 더이상의 "One more thing"은 없겠지만... 고마워요.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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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ne-blog · 1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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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방향 (2011)
어머나~ 이 장면 이 대사 홍상수의 다른 영화 어디에서 보고 들었던 것 같아 그런가봐 정말? 신기해?! 자꾸만 그러면 안될 것 같은데 보는내내 문득 개콘의 '생활의 발견'과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가 생각나서 머리를 휘저으며 그것들을 쫓아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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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ne-blog · 1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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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 한국 vs 일본
선린상고의 박노준, 김건우와 경북고의 문병권의 봉황대기고교야구 결승전과 세계야구선수권 결승에서 일본을 상대로한 김재박의 그 번트와 한대화의 홈런...아마도 우리나라 야구사에서도 몇손가락안에 드는 명승부전이였을 것이다. 그것에 열광했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아마도 프로야구 이만수, 장효조 선수가 뛰었던 전성기 시절정도까지가 내가 TV앞에서 메모해 가며 야구에 집착했었던 그저 좋았던 시절로 기억되는데...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의 상대팀 선수라는 이유만으로 또 너무 잘해서 박철순, 선동렬 선수는 야속하고 얄미웠었고... 
'안타제조기', '타격의 달인' 장효조 선수가 오늘 세상을 떠났다. 그시절 내 야구에대한 좋은 추억들도 함께 떠나가는 느낌이다. 장효조 선수 부디 편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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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ne-blog · 1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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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사랑 (Incendies, 2010)
그후로도 오랫동안 가슴앓이 될 영화, 루브나 아자발(Lubna Azabal)은 누구지?
예전에 본 '바디 오브 라이즈 (Body of Lies, 2008)'에 출연 했다고 나오는데 기억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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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ne-blog · 1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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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한무 거북이와두루미 삼천갑자동방삭 치치카포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세브리깡 무드셀라구름위 허리케인담벼락 서생원에고양이 고양이는바둑이 바둑이는돌돌이!!
부르다 내(네)가 지쳐 죽을 그 이름?!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물론 이 이름이 정확한지는 확실하지 않다!! 부르거나 기억하는데 있어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절한 라임은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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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ne-blog · 1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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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 - 아네스의 노래(Song of Anes)
아네스의 노래
                                       - 양미자 (이창동)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서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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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으며 그해 양촌리 김회장 둘째 아들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으로 있을때(지금도 그러고 있나?)의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마스터영화제작지원작'이란 것을 선정할때 시나리오를 0점 줬다는 이창동감독의 영화 '시'의 극중 양미자(윤정희)가 마지막?으로 완성한 시(실제로 이창동감독이 직접 썼다고 함) '아네스의 노래'를 가사로 박기영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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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ne-blog · 1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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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C/UW - 사람들을 착하게 만들어 놓았더니
'소몰이국밥'?의 발라드 노래나 현란한 아이돌 그룹의 '후ㄹ크' 송이나 도대체 노랫말이 뭔 얘기를 하는 것인지 우리말인데도 알아 들을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의외로 힙합 뮤��션들의 랩이 의미있는 좋은 가사가 많다. 물론 요즘은 힙합도 살살거리거나 아이스크림같은 랩질이나 하는 이들도 많지만... 
...오랜만에 대 놓고 조롱 당하는 것 같아 듣는 내가 다 불편하지만 "ㅋㅋㅋ 내 알 바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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