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kimanza · 3 years
Text
올해 들어서 병원을 다니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한 것은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신년 계획 따위가 나를 더 타인들과 분리시켜주지 않을까 하는 어느 정도의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 대화를 이어가다 결국 만나서 이야길 하다 보면 "생각보다 너무 잘 웃고 밝아서 놀랐어요."라는 말을 꽤 자주 듣는데 내가 그쪽으로 가기까지 준비한 행동과 가다듬은 마음을 알기나 하는 걸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연유로 남들 또한 내 앞에서 보이는 겉의 감정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또는 공감을 못하거나 하는 척을 하거나 그 정도. 이런 계산적인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찾기까지는 방법이 없고 오로지 확률에 의지해야 하는데. 대화를 하게 될, 만남을 갖게 될, 연인으로 발전하게 될 기호로 나타낼 수 없는 경우의 수 속에서 우리는 계속 헤엄만 치다 가라앉기 일쑤 아닌가. 그 와중에 어중간하고 미지근한 관계는 애매한 파동만 만들어가고, 그걸 타고 가다 보면 멀리 와버리고 나서야 뒤를 돌아 볼 줄 알게 된다는 것이. 나도 계속 그렇게 확률에 휩쓸려 왔다는 것이 애석하지만 요즘 사랑은 이렇다고 밖에 말을 못 하겠다. 절절함과 간절함은 온갖 매체에서 대리만족을 할 수 있고 껍데기만 남은 유사 사랑들은 하나의 장르가 되어가고 있는 판이다. 심지어 사랑한다는 말뿐인 것조차 어느 목적 있는 행동의 추임새가 되어버렸는데 이런 흐름 속에서 나는 왜 스스로에게 아직도 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작년 이맘때 즈음이었을까? 내가 가장 상처 준 사람과 꼭두새벽에 따듯한 차 한잔 감히 나누고 나서 집에 보내는 길에 '너 이제 좀 잘 살아'라는 뉘앙스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잘 가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가 가장 죄송해야 할 사람에게 그 시간, 그 공간에서 그런 대화를 했다는 것은 나는 도대체 얼마큼의 파동을 타고 멀리 가야 하는 걸까.
5 notes · View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