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사람이 된다는것
스스로의 가치와 자존감을 지키고 쌓아갈줄 아는것
보다 더 현명한 선택과 판단을 하는것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내 신념과 줏대를 강하게 잡고 있을 수 있는 다부짐
스스로의 감정에 잡아먹혀 버리지 않게끔 중심을 잡을 수 있다는것
난 단단한 사람이 되고말테야!
대학시절 한달에 한번은 엄마가 국제택배로 음식을 보내주시곤 했었다. 양손을 쭉 뻗어도 안기에 버겁던 그 택배상자 속에는 한살림이나 자연드림에서 산 건강식 냉동식품이나 이따금씩은 유기농 과자들도 들어있곤 했다. 그 시절엔 몰랐었다 한 박스를 부치는데 30만원은 들었었다는 걸, 그 무거운 박스를 언니 하나 나 하나 두개씩 이고 엄마 혼자 우체국을 매달 들락나락거렸다는것을. 암 말기 판정을 받은 상태에서 아빠 약국일을 도우며 시간을 쪼개며 지내던 그때 본인 몸보다도 딸들의 식사 한끼라도 더 챙겨먹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앞섰다는것을.
초등학생 시절엔 주말이면 광안리 할아버지 할머니댁을 1박으로 놀러갔었다. 매주같이 샤워를 하고 나오면 할아버지께서 쇼파에 앉아 수건을 챙겨오라 하셨다. 할아버지는 쇼파 위에 나랑 언니는 나란히 바닥에 앉아 10분이고 15분이고 우리 머리를 손수 말려 주시곤 했었다. 그 손길이 얼마나 부드럽던지 앉아 졸다 그대로 잠들곤 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입맛이 까다롭진 않지만 입이 짧은 나는 할머니 손맛이 정말 잘 맞았다. 어릴적부터 줄곧 먹어오던 맛이라 그런지 할머니댁만 가면 끼니는 곧잘 챙겼다. 대학교 1학년이 끝나고 한국에 들어와 할머니의 돼지김치찜 노래를 불러댔다. 그거 하나면 세그릇도 금방이였다. 그해부터 할머니는 엄마의 택배를 통해 몇달에 한번씩 돼지김치찜을 부쳐주셨다. 비닐봉지에 소분해놓은 꽁꽁 얼린 돼지김치찜이 함께 온 날이면 콧노래를 부르며 데워먹곤 했었다. 얼마 전 명절에 내려간 이모댁에서 익숙한 맛의 콩잎을 먹었다. “이모, 이거 어디서 난거예요?” 라고 여쭤보았을때 돌아온 대답이 잘 쌓아두고 지내던 내 마음속의 댐을 무너뜨렸다. “할매가 이걸 얼마나 만들어 놓았는지 아직도 남아있다. 혼자 맨날 뭘 그리 열심히 하나 했더니 콩잎을 그리 담가뒀더라.” 할머니 보내드린지 이제 거의 1년, 아직도 할머니의 콩잎은 이모댁 냉동실에 쌓여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평생 내 가슴에 묻어둘 우리 땡순에게
엄마
"내가 준 사랑은 눈에 남아 눈물이 되어 나온다.
내가 받은 사랑은 가슴에 남아 나오질 못하고 아픔이 된다.
우린 겨울이 되어서야 지난 여름이 그립다."
이 구절 생각나?
내가 엄마한테 여러차례 너무 좋은 문구라고 몇번이나 공유했었어.
나는 엄마한테 준 사랑이 하염없이 부족한것만 같은데 뭔 눈물이 이리 끝도없이 나는지...
근데 엄마한테서 받은 무한한 사랑이 가슴에 남아 나를 더 아프게 해
마지막까지 아빠 언니아 나 그리고 남아있게 되는 가족들을 얼마나 걱정했을까
오롯이 그 걱정 하나로 몇개월을 버티고 또 버텼을 엄마가 나는 너무
불쌍하고 안쓰럽고 미안하고 또 미안해
1/10 월요일 이른 새벽 엄마 소독을 하러 갔을때
유달리 가쁜 엄마의 숨소리를 듣고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엄마가 이 땅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걸
손발 조금이라도 더 주물러주고 머리도 더 쓰다듬어 주고
말 한마디라도 더 걸껄
그 한시간 반 엄마 병실에 머무른 시간동안 몇 마디 해주지도 못한게
아직도 너무 미안해
엄마
2017년 암 판정을 받고 나한테 제일 늦게 소식을 전했잖아
2학년 2학기 봄방학 미국날짜기준 3월 18일
나한테 영상통화 걸고 한참을 뜸들이다 한 말 기억나?
"마로는 어른이야 아니야?"
나는 짜증스런 투로 대답했어 "아 왜또"
엄마가 대답을 듣곤 화면을 가리고 울기 시작할때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걸 눈치챘어
그때 난 스물셋이였고 그 당시의 나는 아직 너무 어렸어
근데 이번에 그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
나는 차츰차츰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것 같다고
아직 온전한 어른이 되진 못했지만 그 과정을 거치는 중인것 같다고
이 얘기를 1/10일 낮에 엄마 다시 보러 갈때 꼭 해주고 싶었는데
열두시에 엄마 보러 가려 했는데
그 한시간을 채 못 기다려줬어 왜.........
너무 힘들었지 엄마
홀로 너무 외로운 사투를 벌이느라 너무 고생 많았어
지치고 또 지쳤을텐데 우리 생각하느라 끝까지 버텨줘서 너무 고마워
엄마 뱃속에서부터 지금까지 엄마한테 받아온게 너무 많아서
그게 나는 너무 마음이 아프다
반의 반도 되갚아주지 못했는데 엄마가 떠나버려서.....
아직 서른도 안된 언니아가 엄마 영정사진을 붙들고 앞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
언니아도 아직 너무 어린데....
엄마 화장이 끝나고 납골당으로 향하는 길에 엄마를 정말 오랜만에 안아볼 기회가 있었어
내 기억속 엄마는 너무 가녀려서 깃털처럼 가벼울것만 같았는데
너무너무 무겁더라 엄마의 유골함이
엄마
이번 겨울은 유달리 춥다
조금이라도 더 따뜻해질때 보낼수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지막 이틀 너무 춥다고 이불을 어깨까지 덮어달라던 엄마의 모습이
덜덜 떨리던 엄마의 손이
체혈을 수도없이 해서 손등에 남아있던 하트모양의 시퍼런 멍이
아직도 너무 생생해
근데 너무 슬픈게 엄마 목소리가 기억이 잘 안나
마지막 며칠을 말도 잘 못해 앓는소리만 듣다보니
엄마가 편하게 말하던 그때의 그 목소리가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려해
엄마 보고싶어
너무너무 보고싶다 진짜..........
이제 더이상 아프지말고 즐거운 소풍 즐기길 바래
나는 엄마가 내 엄마였어서 너무 행복했고 감사했어
항상 우리 곁에서 지켜봐줘 열심히 살아나가볼께
엄마가 원하던 진정한 어른이 되어볼께 걱정하지마
평생 사랑하고 기억할께
사랑해 엄마 우리 땡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