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allineon · 1 year
Text
어느덧 겨울은 희미합니다. 바람 속에 흩어진 겨울내음을 뒤적이며, 겨울의 추모곡을 하나 골라 듣습니다. 겨울이 벌써 그립습니다. 특별한 시절로 기억에 남을 법한 겨울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겨울다운 겨울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메마른 가지에 앉은 새처럼 메마른 마음에 겨울이 앉았다 갑니다. 겨울을 기다리던 자리가 아니어서 여전히 쓸쓸했습니다. 쌀쌀한 겨울과 쓸쓸한 마음은 맞춰입은 한 벌 같아 그런대로 좋았습니다.
담배 좀 태우고 오겠습니다.
시간은 이 역을 건너뛰는 기차처럼 무의미하게 지나갑니다.
나는 정거장 벤치에 앉아 오래된 희망처럼 사랑을 기다렸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랬더라구요.
한동안은 더 정거장 가까운 언덕을 서성일 겁니다.
이 역까지 나를 데려다놓은 기차 속 풍경를 그리면서,
가끔씩은 건널 길 없는 맞은편을 바라보면서,
텅빈 하늘
텅빈 정거장
기차가 지날 때면
얼마나 많은 희망이 사랑처럼 뛰어들었나
아니, 사람처럼 뛰어들었던가
겨울이 벌써 그립다고 했던가요. 눈 내리는 정거장에는 온기의 흔적이 오래도록 남습니다. 눈이 올만큼의 쌀쌀함도 의미없이 지나가버린 듯 하니 쓸쓸함도 마저 지나가기를. 흔적 뿐일 희망은 이제 그리지 않겠습니다. 겨울이 가고 있습니다. 정거장에 홀로 남은 사람들에게 봄이 오길 바랍니다.
8 notes · View notes
allineon · 1 year
Video
youtube
스다는 제물이고, 아이묭 내한 기원.
2 notes · View notes
allineon · 1 year
Video
youtube
스다마사키 내한 기원
0 notes
allineon · 2 years
Text
나는 사실 무직의 이언석을 사랑했는데, 그것은 그가 가진 것들이 그에게 얼마만큼 소중한 것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바다, 가족, 친구들, 익숙한 길과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조용한 풍경들, 그 속에 새겨진 시간들. 직장인이 된 그는 현재가 낯설게 느껴질 때마다 지금의 선택과 변화들의 긍정적인 면을 되짚어보고, 가끔씩은 그것마저 익숙지 않아 애를 쓰기도 한다.
무직의 그는 소중한 것들 사이에 머무를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다만 어제의 바람이고, 오늘의 믿음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안전한 나날이 지나고 있었지만, 장식장 위에 가만히 놓인 사물처럼 바람 없는 시간 속에 침전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심장에서 가장 먼 갈비뼈 하나를 잃게된 일련의 사건들을 지나면서 사물이 되지 않으려는 자가 두 발을 잃은 채로 시곗바늘의 무심한 동작음에 미쳐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것을 잊지 않기로 했다. 소중한 것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더이상 원죄나 저주 따위가 아니라 가설이나 법칙으로 추대해야 할 때가 왔고, 그 때를 놓치지 않았음에 감사하는 자세를 취하기로 했다. 무직의 이언석은 그토록 무력하면서도 절로 취해지는 수동적인 자세에 자주 억울해졌다. 그렇게 불복하는 밤에는 혼자 저주를 떠안은 것 같아 많이 외로웠다. 외롭지 않고 싶었던 무직 이언석은 소중한 것들을 떠나서라도, 다시 함께할 소중한 것들을 위해 직장인이 되었다.
이제 직장인 이언석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 이언석은 무엇과 함께하는가. 직장인이 된 그를 나는 아직 사랑하지 않는다.
2 notes · View notes
allineon · 3 years
Text
4 notes · View notes
allineon · 3 years
Text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3 notes · View notes
allineon · 4 years
Text
Tumblr media
미래의 미래는 과거
과거의 과거는 미래
폐곡선을 따라
세탁기 안을 나뒹구는 양말같이
빙글빙글
현재가 멈추지 않는다.
발톱이 자라는 만큼
발톱을 잘라낸 만큼
돌아갈 곳도
돌아올 것도 없다.
1 note · View note
allineon · 4 years
Text
이십 년 쯤 전에는 고등학생이었던 큰 사촌누나, 작은 사촌누나와 함께 작고 낡은 집의 창고를 고쳐 만든 방에서 같이 놀았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는 친누나가 없었기 때문에 촌수와는 관계없이 큰누나, 작은누나하고 불렀다. 누나들이 같이 지냈던 그 방에는 타자기가 하나 있었다. 나는 수정 기능이 없던 그 타자기로 빈 종이를 가득 채우고 싶어서 설레 하면서도 지워지지 않는 오타를 남기는 것이 두려워서 자판 위에 손을 올려두고서 가만히 있는 시간이 길었다. 자판을 동시에 세 개 누르면 해당 글자와 연결된 레버와 세 개의 막대가 작동하고 먹이 묻어 있는 활자가 종이에 닿기 조금 전에 막대들이 서로 맞물려 글자가 찍히지 않는 채로 고정된다. 고정되어서 자판이 빠지지 않게 된다. 그런 상황이 잦아지면 타자기가 고장난다는 것을 알았다. 자판 몇 개가 그렇게 내 손에서 고장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혼자서 여러 자판들을 동시에 누르고 있어도 두 누나는 나를 혼내지 않았다. 두 누나는 나를 칭찬하지도 않았고, 딱히 나를 달가워 하지도 않았다. 누나들은 집에 자주 없었고, 나는 타자기가 있는 방에 들어가기 위해 누나들을 종종 기다렸다. 그때의 나는 큰집을 자주 갔는데 큰아빠는 지병으로 자주 병원에 계셨고,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없는 사람이었다. 큰집에는 할머니와 큰엄마와 큰누나, 작은 누나가 지내고 있었다. 큰엄마는 바쁘게 일을 하러 다니셨고, 큰 누나와 작은 누나는 해가 지고 나서야 집에 들어왔다. 낮 시간에는 주로 할머니가 혼자 계셨고, 일찍 하교해서 혼자 집에 있어야 했던 나는 십 분 정도 걸어서 큰집으로 갔다. 큰집에서 나는 티비를 보거나, 할머니와 함께 도라지의 껍질을 까거나, 시장을 다녀 왔다. 시장을 다녀 오는 길에 할머니의 친구가 하는 슈퍼에 들러 할머니는 담소를 나누고, 나는 작은 오락기 앞에 앉아 게임을 했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할머니와 큰집으로 돌아가 밥을 챙겨 먹었다. 큰집의 반찬들은 종종 어쩐지 지저분해 보였고, 역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반찬을 먹지 않고 오찬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을 좋아했다. 키도 덩치도 눈에 띄게 작았던 나는 ‘그러니까 키가 안 크지.’라는 말을 들을 뿐이었다. 역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자주 밥을 말아 먹었다. 밥을 먹고 나면 다시 도라지나 콩나물 손질을 하면서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 전화가 오면 집으로 돌아갔다.
큰 누나가 스무살이 될 무렵 큰아빠가 돌아가셨다. 큰아빠가 돌아가시고는 큰누나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해가 지고 난 시간이든 주말이든 큰집에는 큰 엄마와 작은 누나만 돌아왔다. 작은 누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바로 공장에 취직했다. 큰엄마처럼 바쁘게 일을 하러 다녔다. 몇 해 지나 큰집은 덜 낡고, 방 두 개와 화장실이 딸린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 집은 걸어서 십오 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작은 방은 작은 누나가 혼자서 사용했고, 컴퓨터가 한 대 있었다. 우리집에는 아직 컴퓨터가 없었고, 형과 나는 컴퓨터를 하기 위해서라도 큰집을 자주 갔다. 컴퓨터는 주로 형이 차지했고, 나는 할머니와 시장을 다녀왔다. 할머니는 예전보다 기력이 쇠했기 때문에 더이상 시장을 가는 내리막도 집으로 돌아오는 오르막도 쉽지 않았다. 5분이면 갔을 거리를 길 한켠에 앉아 쉬었다가 갔다가 다시 쉬기를 반복하였고,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오르막을 다 오르고서 여전히 가게를 하고 계시는 할머니의 친구에게 들러 담배를 달라고 했다. 할머니의 친구는 가끔 할머니에게 담배를 주지 않고 아까도 사갔다고 말하거나, 집에 가면 많으니까 가보라고 했다. 짧게 실랑이를 하다가 할머니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게임을 다하고서 그런 할머니의 팔뚝을 가볍게 붙잡고 큰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서는 쌓여있는 이불 틈, 전기장판 밑, 서랍 속, 바느질 통에 할머니가 스스로 숨겨둔 담배를 하나만 꺼내어 할머니께 드렸다. 그 무렵 아빠와 엄마의 대화에서 가끔 큰누나가 여기저기 남자들을 만나며 돌아다닌다는 말들을 주워 들었다. 큰누나는 키가 작았고, 얼굴부터 손가락까지 퉁퉁 부어오른 것처럼 살이 찐 사람이었다. 길이가 짧은 말총머리를 하고 있었고, 어릴 때의 나는 큰누나를 보며 산적같다고 자주 생각했다. 그런 사람도 사랑을 하는구나. 그런 외모로도 사랑을 받는구나. 사랑보다는 합당한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중학생이 되어 교복을 입고 학원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중환자실에서 몇 개월을 투병하다가, 폐암과 노화로 인한 합병증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병원에 있을 때의 할머니는 이미 큰엄마도 아빠도 엄마도 애지중지하던 작은누나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전까지 나만큼은 알아보았다. 본인의 이름 마저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내 이름을, 내가 자신의 손자라는 것만을 기억했다. 할머니의 코에서 엄지손가락 만한 핏덩이가 뽑혀 나올 때, 산소호흡기를 차고, 면회가 더이상 어려워졌을 때에도 나는 그게 자랑스러웠다. 자랑스러워서 작은누나에게 미안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이틀 밤낮으로 장례식장을 지키고서 할머니의 송장을 화장터의 불가마에 집어 넣을 때까지 가장 많이 운 사람은 작은누나였고, 가장 적게 울었던 사람은 나였다.
여러 해가 지나고 작은 누나는 결혼할 사람이라며 남자 하나를 집에 데려왔다. 마트를 돌아다니며 건전지를 파는 사람이었다.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식을 올렸고, 나는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결혼식에 참석했다. 큰엄마와 작은누나, 엄마, 아빠 그리고 형과 함께 가족사진을 남겼다. 큰누나는 오지 않았다. 결혼 생활을 시작하고서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더 깨끗하고 넓고 따듯한 집으로 이사했다. 집에 든 비용의 대부분은 작은누나가 댔고, 나머지는 큰엄마와 매형이 나누어 부담했다. 반년이 지나 아이가 태어났다. 새로운 생명이 집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큰누나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가족은 어쩌면 유일한 신부측 하객이 될지도 몰랐기 때문에, 형과 나 모두 빠짐없이 결혼식을 갔다. 작은 누나는 오지 않았다. 큰누나는 여전히 퉁퉁 부어있었다. 남편이 될 사람은 왜소했고 촌스러울 정도로 바짝 밀어 올린 머리를 하고, 순하디 순한 눈빛을 띄고 있었다. 측은했다. 퉁퉁 부어올라서 걷는 것 마저도 편하지 않아보이는 사람을, 자기 씀씀이를 감당못해 수천만원 빚을 내고, 그 빚을 다 떠넘기고, 도망가버려서는 가족에게 연을 끊긴 사람을 데리고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큰누나가 떠넘긴 빚 때문에 작은누나는 직장까지 쫓아오는 빚쟁이의 독촉에 창피를 당하고, 늦은 밤 집들이 고양이만 지나다닐 틈 정도를 두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네에서 누군가 찾아와 소리 치고 윽박지르는 것을 불들이 다 꺼진 집에서 참고 견디면서 쉬지 않고 매일 일해야 했다. 그래도 그 빚은 다 해결이 안돼서 엄마가 들어둔 적금을 몇 개나 깨야만 했다. 그냥 이제 잘 살았으면 했다. 그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제외하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피해자였다. 신랑과 그의 가족들이 다음 피해자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둘이 되었고, 하나는 벌써 초등학생이 되었다. 작은누나는 곧 사십대가 되고, 나는 곧 서른이 된다. 매형은 하던 일이 잘 되지 않아 보험일을 했고, 잘 되기를 바라며 들었던 우리 가족들의 보험이 자주 엄마의 골머리를 앓게 했다. 매형은 꼼꼼하게 서류를 검토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보험 일은 오래가지 않았다. 작은 누나는 여전히 쉬지 않고 일을 하느라 시댁에서 바라는 며느리 노릇을 감당하지 못했고, 그것은 종종 매형과의 다툼으로 이어졌다. 엄마와 아빠는 집안의 어른으로써 자꾸 말을 보탰고, 듣다 보면 결국 작은 누나 편을 들었고, 매형이 그 말들을 크게 수긍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매형은 김해의 감자탕집에서 일을 배우게 되었고, 아이들은 주말마다 아빠 차를 타고 따라 나서는 것이 재밌고 감자탕이 맛있어서 좋아한다. 누나는 일하지 않는 시간을 내어 힘을 보태기 위해 감자탕집을 따라 나서서 서빙을 하거나 청소를 하기도 한다. 코로나가 퍼지고서 아이들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우리 집을 자주 온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좋아하고, 삼촌과 비행기를 날리거나 그림을 그리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며칠 전 큰누나가 죽었다는 연락이 왔다. 혼자 쓰러져 있었고, 발견한 것은 이미 숨이 멎은 뒤였다고 한다. 그때의 그 신랑은 부검을 하고 식 없이 바로 화장을 할 것이라고 했다. 아빠에게 그 얘기를 전해듣고 나는 찾아가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아빠는 한숨을 쉬고 큰엄마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아 생전 안보던 자식을 죽어서 본다고 뭐 하겠노.’ 일을 마치고 온 엄마도 소식을 알고서 안가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라고 어찌됐든 가봐야 하는 거라고 성토하듯 말했다. 나는 아무도 큰엄마의 심정은 이해할 수 없는 거라고, 가서 괜히 말 보태지 말고 큰엄마 하신다는 대로 내버려 두라고 말했다. 작은 누나에게는 누구도 큰누나에게 갈 지 말 지를 묻지 않았다. 끝내 큰엄마를 비롯한 우리 가족 모두 화장이 끝날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부검 결과로 드러난 사인은 심장병이었다. 큰누나의 심장은 정상적인 크기의 두 배 정도로 부풀어있었다. 전화를 통해서 그렇게 전해 들었다.
3 notes · View notes
allineon · 4 years
Text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2 notes · View notes
allineon · 4 years
Video
1 note · View note
allineon · 4 years
Text
그렇다고 밤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자꾸 달아나고 싶다는 말을 하는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안심하고
달아날 수 있었다.
달아나기 전에 나는
그의 뒤통수를 기억하고 싶었다.
그의 뒤에 서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사사건건 그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었고
기억해야 할 뒤통수가 자꾸 늘었다.
그는 다르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달아나고 싶다고 말하는 실수를 자주 하는데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고
방에는 의자가 있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자리에 앉았다.
시끄럽게 징징대는 파리가
방충망에 연신 머리를 찧어댄다
살고 싶은 건지
달아나고 싶은 건지
비오는 날의 파리는 어떤 기분인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벽지가 흉처럼 벌어지고
책상 위에 무언가 썼다 지운 흔적들이
다 타서 연기가 되어버린 파라핀들이 쌓인다.
방이 전부 달아날 때까지
그는 여전히 파리의 기분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가
알 수 없었다는 뒤통수만 남겨둔 채
실수로 달아나버린 것은 아닐까
고민하는 것은 외로운 일이었다.
외로워서 나는 그의 뒤통수를 떠날 수 없었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도
아무 일 생기지 않는다.
단지 시간이 흐르는 만큼
밤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4 notes · View notes
allineon · 4 years
Text
유배지도 아닌 곳에서 삼촌. 삼촌을 보고 있으면, 힘이 나요. 여기 온 첫날에 삼촌이 가져다 준 솜이불과 베개도 그렇지만요 삼촌 눈빛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말로 따듯해져요. 세상에서 제일 포근한 삼촌이 다른 삼촌들에게 욕짓거리를 내뱉을 때마다 함부로 져서는 안되겠구나, 하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다른 삼촌들이 있는대로 인상을 쓰면서 욕을 하면 열심히 웃었어요. 지지 않으려구요. 한 번은 바퀴만 해도 제 키만한 크레인 아래에 비둘기가 죽어 있었어요. 아무도 신경을 안쓰는 게 무척 신경이 쓰여서 들고 있던 페인트통에 시체를 담아들고 배가 정박하는 곳으로 가서는 바다에 내던졌어요. 생각이랑은 다르게 둥둥 떠있기만 하고,  멀어지지도 가라앉지도 않아서 난감했지만요. 삼촌은 그러고 있는 제가 신경쓰였던 것 같구요. 삼촌. 오늘 새벽 눈을 떠보니 떠돌이 개가 문 밖에 내놓은 신발 한 짝을 물어갔어요. 신지도 못할 걸 왜 물어갔을까요.  아무렇게 남겨진 한 쪽 신발은 끈을 혀처럼 내밀고 핵핵대고 있구요. 이빨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은 것이 꼭 싸움에서 진 개새끼같아요. 약속한 일은 이제 곧 끝이 나요. 일이 끝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려구요. 이길 수도 질 수도 없는 곳에서 살지는 않으려구요.
내리쬐는 태양 아래 달궈질대로 달궈진 배 위에서 페인트통 한가득 쇳덩어리를 들고 나르고 철가루가 담긴 포댓자루를 짊어지고 사다리를 올라서 하루하루 삶이 단단해져가도 여기는 용이나 호랑이 한마리씩 기르는 삼촌들이 많아서 누구한테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정말 달아나고 싶었거든요. 근데요, 삼촌 그냥 조금 무서워서 그러는데 돌아가서도 아무것도 끝이 나지 않으면 어떡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여기가 그리워지면, 그때는 어떡하냐구요. 언젠가는요. 저도 누구보다 살고 살아서 노련할대로 노련한 인간이 된다면 좋을까요 무엇보다 살고 살아서 삶이 더이상 삶이 아니게 된다면 좋을까요 그냥 삶에도 닳고 닳은 구멍이 몇 개쯤 난다면 좋겠어요. 몇 달 사이 해질대로 해져서 빈틈이 많아진 저 티셔츠처럼 가끔씩은 겉과 속, 안과 밖, 그 밖에 무엇이든 경계가 애매해진다면 좋겠어요.
3 notes · View notes
allineon · 4 years
Video
12 notes · View notes
allineon · 6 years
Photo
Tumblr media
 어쩌다 듣게 된 불시착을 위한 외딴 행성 얘기 출발하는 누구도 그려보지 않는 길 도달하지 않은 꿈들이 눈을 뜨는 곳 고향을 잃은 별빛이 비행을 멈추는 곳 밤의 호수처럼 빛의 편린을 무한히 머금은 먼지들판에서 별 것 아닌 것처럼 굴러다니는 이물들은 만나고 서로 끌어안고 다시 굴러다니고 눈부신 땅에도 이름없는 것들의 그림자에는 침범할 수 없는 엄격함이 존재하지 그것은 길이든 꿈이든 빛이든 무언가를 잃은 것들의 기억이 되지 
 날개 잃은 박쥐처럼 빗물은 곤두박질치고 딱 맞아 떨어지는 법 없는 기억들의 어웅한 동굴을 팬티바람으로 터벅대던 밤에는 지진계의 바늘처럼 흔들리는 방식으로 종유석에 맺힌 눈물의 말들을 받아적다가 빗줄기 속에서 조금씩 뚜렷해지는 빗방울의 주파수를 엿듣게 되었지 '단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눈물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죄를 지은 것처럼 힘이 다 빠져버려서 손에 쥔 펜은 땅으로 처박히고 말았지 죄다 불시착하고 마는 행성이 여기에도 있는데 어쩌면 그 행성이 여기로 불시착 해버렸는데 어쩌나, 이걸 어쩌나. 별 것처럼 굴러다니는 이름들의 그림자가 이젠 다 내 기억이 돼버렸는데
7 notes · View notes
allineon · 7 years
Photo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가독성이 떨어지는 날들을 보낸다. 훗날 누군가에게 내가 보내온 세월에 대해 얘기한다면 오늘 같은 날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나는 자란다. 자라지 않으면 하루를 견딜 수 없다. 성장과 생장의 차이는 무엇인가. 지나간 시간의 다름없는 지점들을 애써 나눠 갈피끈을 매달아 놓는다. 생이 아닌 삶은 밀도의 문제일까 차원의 문제일까.
8 notes · View notes
allineon · 7 years
Photo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가까이 있는 것보다 멀리 있는 게 좋다. 만질 수 있는 것보다 만질 수 없는 게 좋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좋다. 사람보다 사람의 것이 좋다. 내 얼굴 사진보다 내 얼굴이 좋다. 시야가 어두워 질수록 초점이 멀어진다. 왜 자꾸 먼 곳을 바라봐야 할까. 삶의 맹점은 내가 지나온 길 바로 앞에 놓여있다. 발이 자꾸 사각 위로 떨어진다.
10 notes · View notes
allineon · 7 years
Text
자연스러운 죽음이란게 있겠냐마는, 우박같은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니라, 밀려드는 음표를 모두 감내하고 나서야 찾아오는 끝을 맞는다면, 하나의 생은 하나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대문에서 서른 걸음만 가면 마을을 지키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엄마와 내 세월을 합쳐도 못다할 세월을 가졌다. 아침이면 가벼운 차림으로 찾아가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마른 껍질이 부스스 떨어진다. 껍질이 지켜온 겹겹의 시간들을 센다. 거실에서 잠이 든 할머니는 오래되었다. 오래된 사람이다. 오래 전부터 할머니는 할머니였고, 늙은 채로 더 늙어만 가는 할머니는 젊은 나와 같이 산다. 거실에서 세월이 흘러간다. 거실에서 세월이 속절없이 쌓인다. 창 너머로 바람에 대나무 가지가 천천히 기운다. 틀어 놓은 tv 앞에서 모로 누운 할머니가 눈꺼풀을 느리게 깜빡인다. 할머니 옆에 가만히 누우면 할머니가 느껴진다. 오래된 할머니가, 할머니의 오래된 시간이 가만히 누워있다. 커다란 시간이 야윈 할머니의 무게로 얕은 숨을 쉰다.
6 notes · View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