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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jrahomo · 2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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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 후기
파묘를 보았습니다. 장재현 감독님은 워낙 좋아하는 감독이라 개봉 이전부터 많이 기대하고 있던 영화였습니다. 같은 감독의 '검은사제들', '사바하' 모두 수작이라 블루레이를 사서 때마다 한 번씩 다시 보는 영화들이지요. 파묘는 한국 전래의 무속신앙과 풍수지리를 기반한 오컬트 영화라고 홍보하길래 꼭 보고 싶었습니다.
보고 온 입장에서 봐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따지자면 우선 저는 봐야 한다는 쪽입니다. 한국 오컬트로서 이만한 작품도 대안도 없는 상황이지요. 사실 중반부까지는 거의 완벽하다고 생각해서 이 정도면 해외에도 충분히 먹히겠다고 생각했는데 중반 이후부터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이하 제 감상 및 약 스포.
하나는 역시나 그 일본 관련 내용 때문입니다. 제가 오타쿠라서 그럴 수는 있는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다소 촌스럽달지요. 곡성에서도 그대로 써먹었던 전략이지만 일본을 아직도 이질적인 존재로 상정해서 이질적인 존재가 가져오는 공포감을 활용하려고 했던 것인데 제가 볼 때는 이게 시대적으로 낡았다는 것입니다. 한일관계의 좋고 나쁘고와 무관하게 일본 문화가 상당히 오랫동안 유입되었기 때문에 겉핥기 식의 인용은 전혀 공포스럽지 않다는 점입니다.
전 기순애라는 말을 듣자마자 아 '키츠네(여우)... 음양사'를 떠올렸습니다. 일본의 가장 유명한 음양사가 아베노 세이메이고, 아베노 세이메이는 여우의 자식인 걸로 유명하지요. 이외에도 나루토 등에서 나오는 히토바시라라는 개념. 인간을 산제물로 삼아 지박령 같은 것을 만드는 그런 것들도 일본 문화에 익숙한 현 세대에게는 별로 이질적이거나 공포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민족정기 말살 말뚝 같은 것도 극 중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너무 낡은 이야기이지요.
그렇다고 상당한 개연성을 부여할 정도로 일본 주술을 설명한 것도 아니고 우리 한국 전래의 일본에 대한 공포심을 다시 끄집어내는 점이 좀 그랬습니다. 단순히 잘 모르는 일본의 무언가라기에는 이젠 일본은 잘 모르는 곳이 아니니까요.
일본 귀신은 사람을 다 죽인다는 내용도 나오는데 이것은 무속적 관점이라기보다 2000년대 초반 일본문화가 개방되어 들어올 때쯤 생긴 관념이지요. 링, 주온, 착신아리 같은 일본 귀신 영화가 개봉했을 때 한국인들은 그런 충격이 있었지요. 한국의 공포물에서 귀신은 철저한 인과응보에 따라 사람을 죽였는데 마치 재앙처럼 이유 없이 살인하는 일본 귀신을 보고 관객들이 충격을 받았지요. 그런데 무당의 입으로 "일본 귀신은 사람을 다 죽인다!"라고 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고 좀 "깨는" 설정이었습니다.
다만, 몰라서 이렇게 하신 것은 아닌 것 같고, 감독 본인도 오타쿠 문화에 대한 지식이 있으신 게 분명한데 영화 상영시간이 모자랐던 것일지도 모르지요.
다음으로 오히려 한국의 무속을 더 보여줬어야 했다는 점입니다. 김고은 배우의 굿 장면은 정말 더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장면이라 생각합니다. 한일 주술대전을 보여 주기보다는 오히려 한국적 신비를 좀 더 보여줬어야 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세 무당의 도깨비 대화나 화림의 할머니라는 존재, 한국에서 혈통이라는 굴레 같은 포인트는 매우 좋았습니다.
덧붙여 풍수지리로 시작했기 때문에 시나리오적으로 그런 부분이 더 들어갔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풍수지리와 음양오행이 전반에 깔린 시나리오인데 결말에서는 오행의 이치가 갑자기 라면 스프 느낌으로 가벼워집니다. 최민식이 찾아낸 해법이 작위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보국사 같은 사찰이 등장하는 걸로 볼 때 풍수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비보 사찰의 아이템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단순히 소모되어 아쉬웠습니다. 오행과 풍수지리로 상황을 역전시키는 내용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들어갔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마치... 강철의 연금술사의 역전 국토연성진처럼...(오타쿠의 늪을 벗어나지 못함)
감독님은 이런 주술문화나 오타쿠 문화까지도 전반을 많이 아시는 것 같은데 이걸 대중에게 쉽게 납득 시키기에는 러닝 타임의 문제라거나 너무 오타쿠스러워지는 문제 때문에 이렇게 만드신 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습니다만 봄직한 영화라고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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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jrahomo · 4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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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추워진 오늘 집에 돌아오니 도어락이 죽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인지부조화가 옴.
"나다 이 놈아!! 나라고! 왜 알아보지를 못하니!" 오열함.
춥고 배도 아파 화장실도 가고 싶은데 이제 문앞에서 성냥에 불을 하나씩 켜며 견뎌야 하나 생각함.
다행히, 성냥 사러 가려다가 사각전지로 임시 전원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음.
집에 겨우 들어오니 안심되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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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jrahomo · 8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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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언제나 현재진행
해리포터를 보면 역사적 진보를 위해 언제나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것 같음.
볼드모트는 악인이고 단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자들은 늘 존재하고 악행을 벌임.
우리나라에서 친일도 군사독재도 다 악행이라고 평가되었음에도 아직도 지지자들이 득시글거리는 것을 보면 겹쳐 보임.
난 요새 이 나라 국민들이 단체로 미쳤나 같은 생각을 하다가도 해리포터 같은 소설을 봐도 원래 세상이 계속 싸워나가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듦.
이미 판명된 선악조차도 선을 지키려면 계속 애써야 하는 것임.
심지어 악을 어느 정도 슬리데린 기숙사 같은 곳에 품고 살면서도... ㅋㅋㅋ 큰 교훈이 있음.
심지어 저런 세계를 만든 롤링 작가조차도 편협성에 빠질 수밖에 없었음을 고려하면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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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jrahomo · 8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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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 닦은 밥의 야망
언젠가 지인들과 시장 유명 소고기 구이집에 간 적이 있다.
탁자 위에 웬 접시가 있고 거기 붉게 양념된 밥을 뭉쳐놓은 것이 있어서 뭐냐고 물어보니 "아! 드셔도 돼요!" 이러시고 가시는 것임.
의심 없는 내가 먼저 하나 먹어봤는데 고추장아찌와 이런 저런 양념으로 만든 주먹밥인데 맛이 기가 막힘.
다들 함 잡숴보라고 내가 지인들에게 권했는데 지인들도 쭈삣쭈삣하더니 먹어보고는 감탄함.
다들 걸신들린 것처럼 고기가 나오기 전에 다 먹어치워 버림.
하지만 곧 사장 할머니가 이렇게 나오시더니 "아니! 냄비닦은밥을 다 먹어버렸네!"라고 소리를 치고 가심.
우리는 무엇을 먹었는지 여전히 모름.
그러나 그 냄비 닦은 밥의 맛을 잊지 못해서 우리는 언제나 그 가게에 가면 옆에서 괜히 "오늘은 냄비 닦은 밥은 없나~" 같은 이상한 소리를 해봄.
그러나, 사장 할머니는 들은 척도 안 하심.
후... 냄비 닦은 밥이여... 대체 그 분은 어디에.
우리에게는 환상의 음식으로 남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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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jrahomo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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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BL적 모먼트는 필요하다
오늘 커밍한 친구랑 통화하다가 불현듯 수치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보다 한 살 아래이고 치명적인 검사님이 계시는데 내가 나름 좋아했다.
근데 너무 치명적인 분이라 본인도 그걸 알고 나름 즐기는 타입이었다.
군대에서 교육 갔을 때 피곤하다며 내 다리를 베고 눕거나 하트를 숙소 유리창에 그린 다음 창을 두들겨서 내가 보게 한다거나.
이젠 정확히 기억도 안 나는데 걔가 뭔가 날 놀려서 내가 화를 내려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놈이 뭐라는 줄 앎? 
"형은 어차피 나한테 화 못 내잖아요~"라고 말하고 실실 웃는 것이었다.
이렇게 난 즉각 패배를 당했다.
후. 갑자기 이 일이 떠올라 와신상담의 마음으로(아니..  사실은 인생의 BL적 모먼트로) 기록함.
누구에게 BL적 모먼트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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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jrahomo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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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트위터가 오류나니 그 욕을 할 곳조차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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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jrahomo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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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에 홀린 세계사/리사 모튼
이 책은 지인과 함께 연말에 읽기로 같이 산 책인데 총체적으로는 실망이 크다.
물론 이 이상의 내용을 기대하고 샀던 것은 아니고 나도 흥미본위로 읽으려던 것인 것은 맞다.
그런데, 아무래도 미국 번역책 특유의 무미건조함과 내용없음이 좀 지나친 것 같고, 아시아 파트의 번역이 완전하지 않았다.
걸신축제의 걸신은 아무리 봐도 불교의 아귀 같았고, 한자나 인명의 독음이나 병기가 일관되지 않아서 거슬렸다.
그래도 유령과 관련된 영화사 부분은 흥미로웠다.
그리고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에 나오는 사냥꾼 훈이나 위쳐에 나오는 와일드 헌트가 어디서 온 이야기인지를 알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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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jrahomo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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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도감/오치 도요코
휴가인데 하루종일 집안일만 하고 있다.
가사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끝없는 것인지를 깨닫는 하루다.
나도 가사일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뭔가 궁금해진 것이 있어 예전에 구매한 생활도감을 꺼내 보았다.
근데 엊그제 산 것 같은데 무려 7년 전에 산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이 이리 무상하다.
머리말을 읽어보니 더이상 부모로부터 생활의 지식을 자연스레 배울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유감이 드러나 있었다.
나 역시 공감한다.
나도 우리 부모님만큼 생활에 능숙하지 못하다.
어릴 때 이 시리즈인 공작도감, 모험도감, 자연도감을 참 재미있게 읽었었다.
일본에서 온 책인데 일본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교본화하고 미래에 남기는데 능숙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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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jrahomo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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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 사실 협상의 대상이 아닌데 협상하여 늦춘다거나 시기상조론을 주장하거나 아직은 사회적 합의 운운하는 사람들은 사실 합리적인 게 아니라 그냥 자기가 아쉬울 게 없어서 그러는 것임. 자신이 인내심이 있고 균형적인 게 아니라 자기 일이 아니고 자신은 갑이라서(좀 착각이지만) 그렇게 말함.
사람 심리가 그렇지. "남자 키 180 이상만이 투표할 수 있다."라고 하면 난리가 날 것임.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둥 하며. 그러면서 또 키 180 넘는 놈들은 아 괜찮은 것 같다며 아직 키 작은 사람들의 투표는 시기상조라고 난리겠지. 그러나 실제로 지금도 소수자들은 그런 상황임. 차별에 근거가 있나.
그런 세계에서 위로가 도움이 되겠음? "언젠가 키 작은 남자도 투표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거야. 아자 아자! 화이팅." 이런 게 따뜻한 말이 될까. "아직은 사회적 합의가 없으니까."라고 투표권을 제한하면 순순히 늬들은 받아들일까. 다들 역지사지 할 수 없는 것임.
협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178까지는 허용해주는 것으로 합시다. 현재로서는 이게 최선이라며. 언젠가 더 나아질 날도 오겠지요라고 위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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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jrahomo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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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말과 글로 하는 것은 다 공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 뭐가 어렵냐는 것이지. 말 한 마디 해주고, 몇 자 써주는 것이 뭐 힘이 드느냐 이거지. 변호사 업무 같은 사무도 마찬가지라서 사람들은 그게 뭣이 힘든 일이며 공짜로 뭘 추가로 해달라는 경우도 허다함. 문과의 어둠.
나 역시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실제로는 생각보다 그것은 힘든 일이었고 결국 조금 희생해서 서비스해주는 것이 더 악업을 쌓는 경우도 생김.(다른 돈 받은 일을 못함, 무상으로 해준 일의 퀄리티 및 책임 문제 등등)
근데 그리고 글 몇 자를 쓰고 말 몇 마디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수도 있으나 내가 지켜본 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문제를 법률적 정리 수준이 아니라 그냥 글로 쓰지 못하고, 말로 하지 못함. 반성문, 확인서조차 쓸 수가 없음. 다들 한글을 아니까 뭔가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전혀 아님.
가만 놔두면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반성문에 "반드시 복수하겠습니다."를 써둔다거나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큰 소리 치고는 판사 앞에서 한 마디도 못하고 돌아온다거나(혹은 무의미한 장광설) 갖가지 일이 있음. 결국 용역이 필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됨.
한편으로 신기한 것은 이렇듯 말과 글에 지불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브로커비나 음으로 뭔가 할 것 같은 느낌에는 돈을 잘 낸다는 것임. 이것이 부패 사회의 그늘인가. 법원 통해 하는 강제집행절차에는 수수료 수십 만원을 아까워 하지만 누가 받은 돈에서 10%만 주면 반드시 받아준다는 것엔 솔깃.
추심업체는 어떻게 하나 지켜보기도 했지만 결국 거기도 용빼는 재주는 없었고. 하여튼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실제로는 말과 글을 파는 것은 별로 수지 맞는 일은 아님. 사람들은 정규 절차를 좋아하지 않음. 공인중개사 수수료보다 야매 컨설팅 수수료가 훨씬 높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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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jrahomo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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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서는 실패 - 자보선 / 미야베 미유키
미야베 미유키의 아기를 부르는 그림 자보선이라는 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완전한 실패다.
간만에 트위터 홍보에 넘어간 셈이다.
트위터에서 미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나, 사법제도의 흠, 천공 등이 횡행하는 이유 같은 것이 궁금한 사람이 읽으면 좋다는 글을 보고 사보게 되었는데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니거나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 수준이었다.
이야기가 그렇게 흥미진진한 것도 아니고 결말도 답답하고 주말 오후에 괜히 눈 아파하며 읽은 나 자신이 서글퍼지는 책이었다. 
모쪼록 다른 분들은 희생되지 마시길. 그냥 저 작가의 추리소설이 좋으시면 읽을 수는 있을 것 같다.
미신을 믿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고찰 같은 것은 전혀 없으므로 기대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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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jrahomo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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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를 트위터처럼 쓰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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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jrahomo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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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법 19. 오늘도 심박은
목요일은 우리 지역 법원의 합의부 재판과 선고가 있는 날이다.
아무래도 단독 재판부 사건에 비하여 크고 복잡한 사건이 많기 때문에 왠지 심란해지는 날이다.
우리 지역 법원은 합의부가 하나 뿐이기 때문에 온갖 변호사들이 목요일이면 같은 법정 앞을 서성거린다.
이번 주 목요일은 나의 합의부 사건 3건의 선고가 예정되어 있던 날이었다.
그러나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운명의 장난과, (아마도) 판사님들의 업무과중, 인과율의 장난 등에 의해 2건의 선고는 연기되었다.
결국 1건의 선고만 남았더라.
그것은... 3년이 넘게 끌어온 공사대금 사건.
내가 이 사무실을 도망가기 전에 담당하다가 도망간 후에 다른 변호사님이 맡으셨다가 그 분이 다시 도망가서 결국 나에게 돌아온 사건이었다.
하울도 말했다. 인생은 회전목마라고.
초임때부터 하던 사건이라 괜시리 암중모색을 하며 처리했던 사건이었다.
상대 변호사님은 나름 큰 법인의 경력 있는 분인데 약간 재수 없는 양반이었다.
법정에서 나에게 “원고 변호사님이 아직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같은 드립을 치셨다가 나는 빈정이 상했고 원한을 품었다.
기회를 노리다가 감정결과에 의구심을 품는 상대편 변호사님 주장에  “감정 때는 가만히 계시다가 이제와서 감정 결과를 뒤엎기 위해 그런 자료를 내는 것은 실기한 주장이고 기회주의적인 소송전략이다!” 같은 괴비난을 했는데 왠지 재판장님이 맞는 말이라고 하셔서 머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법정에서 큰 소리 치는 것과 승패의 여부는 사실은 별로 상관 없다.
승패를 장담 못할 안개 같은 날들이 지나 드디어 선고날이 되어버린 것이다.
제길!
원래는 재판 선고 때는 내가 들어가지 않고 직원분이 듣고 오신다.
하지만 이번엔 너무 궁금하기도 하고, 선고를 마치면 내가 들어가야하는 재판도 있는지라 직접 듣기로 하고 법정에 앉았다.
그러나.
왜 이렇게 불안한가.
사실은 전날 밤도 잘 자지 못했다.
결과가 걱정되어서이다.
과연 운명은 무엇인가. 아아. 휠 오브 포춘이여.
제비가 낮게 나니 패소인가. 돌아가신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시는 꿈이 있었으니 승소인가.
별별 생각을 다하고 있었다.
심지어 손목에 찬 갤럭시 핏을 보니 심박수는 130.
성인의 정상 심박수는 60에서 100이다.
여기서 나는 끝인가.
가슴은 쿵쾅쿵쾅 뛰고 식은 땀이 날 지경이었다.
도대체 왜 나는 불안한가.
나는 내 티셔츠 값도 돈 천 원 깎지 않는 사람인데 타인의 돈을 위해 이렇게 긴장하며 살아가고 있다.
쿵쾅쿵쾅.  침이 마른다.
하지만 민사재판 선고란 맥없이 금방 끝나기 마련이다.
결국은 1억 5천 만원 청구를 인정 받았다.
청구금액에 비하면 좀 적은 게 아닌가 싶겠지만, 어차피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어서 일부러 크게 청구한 것이고 주요 주장은 다 인정 받았더라.
그리고 상대방 반소도 모두 기각이라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심지어 나중에 판결문을 받아보니 판사님이 지적한 부분을 좀 보완하면 항소심에서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선고가 끝나고 나서야 심박수가 정상으로 돌아오더라.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내 담당 재판을 진행하였다.
아. 이런 마음가짐으로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매일매일을 남의 돈 때문에 불안해하며 심박수가 널뛰는 삶.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이런 상황으로 과연 난 제 명에 살 수는 있나.
이미 수명은 많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의 사건은 끝났지만 이것으로 해피엔드도 아니다.
소송엔 끝이 없고, 판결이 나도 항소도 있다.
오늘의 사건 뒤에는 또 내일의 사건이 있다.
내 심박은 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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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jrahomo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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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법 18. 특별히 할 말이 없는 시대
판사님들은 가끔 재판을 마치며 물어보신다.
"양측 더 하실 말씀 없으신가요?"
이미 너무 많은 말을 했기 때문에 보통은 이렇게 대답한다.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그러나 상대편이 뭔가를 주절주절 말하기 시작하면, 나도 몇 마디 보탤 수밖에 없다.
"지금 그렇게 일방적으로 말씀하시는데요! 그건 사실과 전혀 다르고요!"
기다렸다는 듯이 뭔가 기계적으로 말을 쏟아낸다,
그다지 화는 나지 않았지만 괜히 격양된 목소리다.
사실은 특별히 할 말은 없었는데 말이다.
요새는 특별히 할 말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다지 할 말이 없다.
항상 이야기 수집꾼처럼 새로운 이야기를 갈망하던 나였지만, 현재 나의 삶은 지나치게 과잉되어 있다.
이야기는 너무 많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가 컨베이어 벨트처럼 지나가고, 나 역시 흐르는 물 속에서 안경을 건지듯 적당한 말을 찾아내기 바쁘다보니 특별히 할 말은 없다.
지금도 내가 방직기처럼 뽑아낸 말과 글들이 넘쳐난다.
마치 봄철 비닐하우스 보온용 펠트마냥 둘둘 말려 굴러다니고 있다.
때로는 모든 것들이 헷갈리기도 한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워 이혼한다고 했던 분이 A였던지, 혹은 B였던지.
사실은 둘 다지만.
해산을 한다는 조합은 C였던가, D였던가.
역시나 둘 다다.
마치 속도는 빠르지만 전원만 끄면 휘발되는 RAM 같아졌다.
내 앞에 마주한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이야기하지만 돌아서면 까먹어버리는 증상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다.
사기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의뢰인들의 모습은 다 비슷해서, 혼자 떠올려보면 모두 똑같은 얼굴만 생각난다.
다행히 실제로 만나보면 어떻게든 구분은 되지만 말이다.
그러나 또, 정신을 놓을 수는 없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사람들은 하나하나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다.
또, 자신의 너무나 소중한 삶을 위해 조마조마 나에게 물어온다.
자신이 만든 공작품이 행여 부서질까봐 벌벌 떨며 가져온 아이들처럼 말이다.
엉망진창 너무나 안쓰럽다.
그래서 항상 정신을 차려야지. 정신을 차려야지 하고 있다.
사연. 사연. 또 사연들.
"그런 쓰레기와는 얼른 헤어지세요!"
"계속 생각만 하시는 게 오히려 벌 받으시는 거에요. 여기서 마무리하시는 게 나아요."
"부담이야 되시겠지만 어쨌든 안 할 수는 없는 싸움이에요."
남의 사연에 겸연쩍게 발을 넣은 채, 주제넘은 이입을 하며 계속 말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연도, 말도 너무나 많다.
사연에 눌리고, 내가 한 말에도 눌린다.
그렇기에 나로서는 특별히 할 말은 없는 것이다.
특별히 할 말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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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jrahomo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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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유투브의 시대.
모두가 유튜브를 통해 지식을 얻는다고 한다.
글로 쓰면 몇 줄이면 될 것을 저렇게 영상으로 올리는 이유가 뭐냐!라며 반동분자로 살아가던 나였지만, 요새는 어쩔 수 없이 유튜브를 틀어두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컨텐츠 제작자가 된 이 시대에 볼 수 있는 방송을 고르기가 너무 어렵다.
취향, 주제도 맞아야 하지만 틀고나면 목소리가 이상하거나 어조가 이상하거나 온갖 함정들이 즐비한 세계다.
그리고 가짜가 너무 많다.
가짜 정치 뉴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지식채널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그 안에 틀린 정보가 너무 많은 것이다.
진지하게 "피라미드를 지은 이유가 밝혀졌습니다! 학자들이 인정했습니다."라고 해서 클릭해보면 그 놈의 외계인 타령이고 뭐 그런 식이다.
아니 지식 정보 채널이 아니라도 확인되지 않았거나 틀린 정보를 너무 당당하게 언급하고 수정하지도 않는다.
왠지 그런 걸 보고나면 채널의 정나미가 떨어진다.
그리하여 더이상 스트레스 받지 않기 위해 요새는 게임 스토리 유튜브나 애니메이션 리뷰 유튜브 방송을 좀 보고 있다.
이런 건 뭐 검증할 필요가 없지 않나 해서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괴롭다.
게임 유튜브를 보다가 진행자가 드립으로 치는 말이 "저러면 근로노동법에 위배되는 겁니다!"인 것이다.
후. 근로노동법이란 말은 없다. 노동법이나, 근로기준법이란 말은 있지.
난 단박에 영상을 꺼버렸다.
이제는 애니메이션 채널을 보는데 진행자가 "하마자라 칸의 딸인 하만 칸이.."라고 말을 한다.
물론 저것은 고유명사이기는 하다.
그러나 사실 "마하라자 칸"이다. 하마와 자라는.. 물에 사는 훌륭한 동물들이고 마하라자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마하라자는 산스크리트 어로 대왕을 뜻하는 말이라 인도에서는 왕을 마하라자라고 부른다.
그런 배경을 알지도 않거니와 평소 마하라자란 말을 별로 해볼 일이 없으니 "하마자라"가 되어버리는 것.
난 또 영상을 껐다.
이 역시 나의 괴로움으로 더해질 뿐이다.
결국 나는 지인인 W젤 선생님의 수능 지리 특강이나 보고 있다.
믿을 수 있고 안심할 수 있는 유튜버는 W젤 선생님 뿐이다.
모쪼록 많은 유튜버들이 W젤 선생님을 본받아 믿을 수 있는 컨텐츠 세상이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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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jrahomo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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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신작 드라마 드라큘라를 힘들게 보았다. 개인적으로 좀 재미가 없고 답답해서 말이다.
그러다가 대체 원작은 어떤 모습이길래 이런 각색이 나온 것인가 주말간 원작 소설을 찾아서 읽어 보았다.
고전이라는 것 역시 당대의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에 재미는 있는 것이다.
오히려 드라마보다 훨씬 활극적이라 재미있게 읽었다. 
그건 그런데 책 마지막을 읽다가 발견한 역자의 서평이 너무 기괴하다.
내가 읽은 것은 열린책들 판으로 역자는 이세욱이라는 사람인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등 많은 소설을 번역한 사람이고 이 책 역시 번역은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 영국이 배경인 소설에서 “군자호구는 요조숙녀다.” 같은 말도 나오고 해서 좀 수상쩍기는 하였지만. 
서평의 내용은 이런 것이다. 작가인 브램 스토커는 외설을 비판하고 경멸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러한 엄숙주의와 [드라큘라]의 외설 사이에는 자가 당착이 있지만, 그렇다고 스토커가 위선자였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가 그 자신의 마음을 모르고 있었던 것 뿐이다. 그가 그 자신의 소설을 알았더라면 [드라큘라]와 같은 소설은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공포는 꾸밈이 없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것이 된다. 여자일 수 없으면서 여자의 흉내를 내는 동성애자의 과장된 몸짓이 된다. 예술이나 인생에서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자는, 자신이 흉내내는 자를 조롱하고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조롱한다. 그는 자신이 흉내 내는 형식이나 방식을 비웃지만, 그런 흉내를 내고 있는 자기 자신을 비웃게 된가. 그는 결코 자신의 것이라 부를 수 없는 여성의 형태와 방식을 희화화하고, 짐짓 꾸며 보이고, 깔보고, 시샘하는 여성역의 연기자와 같다.”
이런 걸 읽다보면 문과를 다 쏴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뭔 말을 똑띠 못한다. 
언뜻 의미가 안 닿아 몇 번 생각을 해보니 진짜 웃기는 이야기다.
결국 브램 스토커는 외설을 경멸하면서 사실상 외설 소설에 가까운 드라큘라를 썼다는 이야기인데,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외설을 경멸한다는 자기 자신을 희화화한 거나 다를 바 없다는 거다.
특히, 이 소설은 선과 악의 대비가 중심적이고 선과 악은 확실하게 구분되는 존재인데, 결국 그 점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선악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이 역자는 서평에 남기길, 브램 스토커가 진정으로 두려워한 것은 자신의 여성적 특성 아니냐는 말을 하고 있다.
역자가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는데 대체 동성애자를 무엇이라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꾸며대고 자가당착적으로 스스로 깎아 먹는 특성이 여성을 흉내낼 수록 더 웃겨지는 동성애자 같다는 건데 진짜 무례한 이야기가 아닌가.
사실 지금 돌려 말하여 더 웃겨지고 있는 것은 역자 본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서평을 쭉 읽다보니 자꾸 브램 스토커의 여성적 특성 운운하는 것은 브램 스토커가 당시 미남 연극 배우인 헨리 어빙의 비서로서 그를 추종했다는 점에 착안해서 그 동성애 의혹을 비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차라리 그 점을 지적하고 싶으면 직접적으로 지적을 하든가, 별 실없는 소리로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꾸미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조롱이라는 역자의 후기가 본인한테도 들어맞는 것이 아닌가 해서 좀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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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jrahomo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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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2019)
영화 조커에 대해서 평이 갈리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며, 특히 그 평가가 여성과 남성이냐에 의하여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조커에게 쉽게 감정을 이입시키거나 연민의 감정을 품을 수 있는 것은 남성들에게 한정됩니다. 여성들에게 있어서 조커는 주거침입범이고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정신이 불안정한 상태의 이웃 남성에 불과합니다. 조커의 고통을 이해하기에 앞서 나에게 언제든 폭력이나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일 뿐이지요.
이 영화의 주인공인 조커가 여성이었다면 오히려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에 가까웠을 거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여성이 주인공이 될 때는 그 메시지의 결이 달라지니까요. 여성과 남성의 권력차는 다른 단면과 의미를 던졌을 것입니다. 백인 남성인 조커가 갖는 고통은 다른 소수자들에게는 그렇게 와닿지 않고 그 행동 역시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이 영화 상영과 관련하여 가장 우려되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 영화에 지나치게 열광하는 사람들이지만, 그 다음으로 걱정되는 사람들은 이 영화의 위험성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부류들입니다. 이 영화 자체로 무슨 폭동이 일어나거나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열광이든, 위험의 과장이든 이상한 아우라를 이 영화에 자꾸 주입한다면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지요.
이 영화의 메시지는 좀 더 간단한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 사회의 어떤 초상 같은 것 말입니다. 사회의 혼란은 가중되고, 복지제도는 줄어들며, 빈부격차가 커지고, 소외계층에 대한 멸시가 강해진 고담의 모습은 현재 트럼프 치하 미국의 어떤 캐리커쳐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던지려고 했던 것은 계속 이런 식으로 하층 계급에 대한 멸시가 강해지면 판을 깨는, 이를 테면 “죽창”의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전통적이고 유구한 경고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란 복잡한 것이라 이 영화도 그렇게 순수한 관점으로 봐줄 수는 없게 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여성과 남성의 문제로 본다면 조커는 21세기 남성 권력의 또다른 파산선고입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이카리 신지와 같은 것입니다.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등장했던 에반게리온의 신지는 더이상 용감하지도 씩씩하지도 않은 어떤 남성 권력에게 변명을 주는 캐릭터였습니다. 용감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스카를 구하지 않아도 괜찮아. 넌 애썼어. 그렇게 위로하는 것이죠.
조커가 마음에 와닿는 것도 이 시대의 망해버린 남성 권력에 대한 위로이기 때문입니다. 법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고, 더이상 멋있지 않아도 괜찮고, (머레이 프랭클린이나, 토마스 웨인처럼)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심지어는 미쳐도 괜찮다고 속삭이는 것입니다. 저는 고대신의 속삭임 같은 저런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20세기 말엽부터 지금의 21세기까지 남성 권력의 레짐은 붕괴 일로에 있고, 그들은 어떤 유의미한 대안을 제시하거나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허구한 날 엄마를 찾거나 변명거리를 열심히 발굴 중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게이들은 이런 비겁하고 변변치 않은 남자를 사랑하는 대가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죠. 게이들 역시 파산한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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