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keemlog · 9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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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를 Seushi라고 썼다면?
일본의 대표음식 '스시'는 영문으로 'Sushi'이다. 원래 일본어 발음이 '수시'쪽에 가까운지 아니면 우리가 원래 알고 있는 '스시'쪽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사람들은 '스'라고 쓰고 'su'라고 영문표기를 한다. 만약 'Seushi'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한국어 발음 중에서 'ㅡ'를 표시한 영문표기를 보면 이렇게밖에 안되겠지 하면서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답답하다;;
장승배기 Jangseungbaegi
증산 Jeungsan
능곡 Neunggok
금산 Geumsan
금릉 Gemneung
'ㅡ'발음이 들어간 영문표기는 죄다 저런 모양이다. 한 눈에 단어가 잘 들어오지 않고 발음하기도 애매하다. 좀 감성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단어 자체가 주는 호감도가 떨어진다. 그렇다면 저렇게 표시하면 외국인이 한국 발음인 'ㅡ'발음을 정확히 하느냐? 그렇지도 않다. 한국사람이 생소한 프랑스어나 중국어 발음을 발음기호보고 열심히 따라한다고 해도 현지인들이 주고받는 발음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소통하는데 오해를 최소화하는데 목적이 있고 어차피 현지 발음과 똑같이 못하겠다면 좀 더 단순하고 발음하기 쉬운 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외국인들의 발음이란 어색하기 짝이 없으니까.
다시 스시로 돌아와보면 sushi. 한 눈에 잘 들어오고 간편하다. 솔직히 "쑤쉬 먹으러 갈래?" 라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는다. 아무도 "스시 먹으러 갈래?"라고 정확히 발음하지 않으니까. '으'발음을 'U'를 사용해 '으'와 '우'의 중간 정도로 발음하게 하는 건 매우 합리적이고 간단하며 단어 자체에 접근성을 높여준다 (자꾸 이모티콘처럼 보이는 건 뭐지 ㅋㅋ '오')
'ㅓ'발음도 마찬가지다. 내 이름 가운데 글자는 '정'인데 정확한 영문표기법으로는 'jeong'이 맞다. 실제로 그렇게 쓰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난 예전부터 왠지 그렇게 쓰기 싫은 거다. 그냥 단어를 딱 봤을 때 매력이 떨어진다. 저렇게 쓴다고 외국인들이 '정'이라고 읽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예전부터 'jung'이라고 쓰고 있는데 외국인이 내 이름을 발음할 때 '중'이라고 읽는 거다. 아 그래서 불편하지만 'jeong'이라고 굳이 쓰는 거라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하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한국사람이 발음하는 내 이름은 외국인들이 절대 똑같이 못 따라한다.(처음에는) 그럼 좀 더 내 이름 발음과 가깝게 설명해주면 된다. 그럼 걔네들도 아 그래? 하면서 따라하겠지.
위에 있는 명칭을 다시 매력적으로 고쳐 써 보자.
장승배기 Jansunbeki
증산 Junsan
능곡 Nungok
금산 Kumsan
금릉 Kumlung
받침 'ㅇ'도 (자꾸 이모티콘 같은 건 내 느낌탓이겠지) 단어를 어렵게 보이게 하고 접근성을 떨어뜨리는데 일조한다. 마지막 문자가 이응받침으로 끝나면 입을 벌리면서 혀를 둥글게 말아서 정확히 'ing'로 발음해야겠지만 뒤에 문자가 와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게 발음하기 편할 경우에는 'ng'보다는 'n'으로 발음하게 하고 표기하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ㄱ'을 'K'로 할지 'G'로 표기할지는 논란이 되었던 부분이긴 한데 최근 'G'로 바꾸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뒤에 모음 'u,i,e'가 올 경우다. 영어랑 거리가 먼 내가 보기에도 'ge, gi'는 '개,기'로 보이지 않고 '재,지'로 보인다. 영어에서 쓰이는 법칙이 외국어 표기법에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사람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게 함정이다. 그래서 그런 모음이 올 때는 'K'로 바꾸었다. 'u'모음은 괜찮을까? 'gum'보다는 'kum'이 더 '금'같아 보인다는 게 내 생각인데 이런 건 전문가가 알아서 해주길. (아몰랑)
이러다 된소리가 들어가는 '떡볶이, 김치찌개'쪽으로 가면 좀 더 복잡해진다. 하지만 자음을 두 번 두드려서 쓰는 'Topokki, Kimchi-Jjigae'는 정말 아닌 것 같다. 차라리 독어나 스페인어에서 보이는 알파벳 문자 위에 어떤 표시를 해주는 특수문자를 만드는 편이 훨씬 낫다.
예) 스페인어로 소녀는 la niña (라니냐) : 'n'위에 물결표시를 하면 '나'가 '냐'로 발음된다
어쨌든 '스시'가 'Seushi'가 아니라 'Sushi'인게 부러워서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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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mlog · 9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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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경가족' 대화
영화 ‘동경가족'을 끝까지 다 보지도 않고 절반만 본 상태에 머물러있는데 잠깐 썰을 풀자면.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츠마부키의 엄마, 엄마라고 하기엔 좀 많이 늙으셨다, 가 시골에서 올라와 도쿄에서 혼자지낼것이라 생각되는 아들 츠마부키 집에 홀로 갑자기 방문했다. 집을 치우지도 않고 어질른 상태로 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깔끔한 집에 놀라워하며 혹시 가정부를 쓰냐고 농담삼아 물어봤는데 숨겨뒀던 동거녀가 들어와서 인사를 하는 장면이 있다. 엄마 캐릭터가 무척 곱고 단아 그 자체라서 별 험한말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현재 캐릭터를 가지고 이 상황 저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미리 예측하면서 영화를 보는 방법은 꽤 재미있다. 나라면 저 상황에서는 혼구녕을 내줬을텐데, 우리 엄마라면 저 상황에서 그래 아가씨 무슨띠에 몇날몇시에 태어났어?라고 물어봤을테고 이런식으로 상상해보는거다. 어짜피 결과는 잠시후에 나오니까 비교하면서 보며 그 간극의 차이를 즐기는셈이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와서, 급작스런 삼자대면에 분위기는 얼어있었지만 피를 말리는 극한의 나쁜 상황은 아니다. 이미 엄마가 노여워하지 않고 되게 애매모호한, 긍정도 아닌 부정도 아닌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츠카부키가 평소 엄마를 아빠보다 훨씬 편안해하면서 능청스럽게 동거녀를 소개해줬기 때문이다. 소개가 끝난 후 자기 이름을 얘기하며 이 녀석의 엄마라고 일단 자기소개를 한다. 이름을 얘기하는 것은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하기 힘든 말이며 상대방을 노여움이나 가르침의 대상으로 보는것이 아닌 그저 인사를 해야 될 중립의 대상으로 볼 때 가능하다. 실명인사를 받은 동거녀는 안절부절하게 자기소개를 하며 어쩔줄을 몰라한다. 여기서 한번 더 상상해본다. 이럼 예의는 정도껏 차렸으니 한마디 하겠지? 모질게 하진 않더라도 부드럽게 한마디 할 수 있잖아라고 상상해본다. 하지만 엄마는 우리 아들이 신세를 지고있다라는 식으로 말하며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간다. 그러자 동거녀 또한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오히려 자기가 신세를 지고있다고 맞받아친다. 엄마는 발톱을 숨기고 연기를 할 지 모른다고 생각되지만 동거녀는 비록 천벌받을 행동은 아니더라도 뭔가 떳떳하지 못한 상황임에는 틀림없으므로 행동이나 말이 거짓스러워 보이진 않는다. 만약 엄마가 날카로운 발톱을 여전히 숨기고 있는 것이라면 이 다음의 대사가 무척 중요하다. 세번 연달아 빙 돌려말하거나 거짓감정으로 애써 예의를 차리는것이라면 나중에 꼴사납게 보는 행위가 무척 위선적일 수 있다. 정말 진심으로 동거녀를 아껴서 호감을 나타낸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척 무리한 설정 아니겠는가. 처음보는 아들녀석의 동거녀를 무작정 아낀다는건 마더테레사급이 되어야만 가능한데 이는 주위를 불편하게 만드는 캐릭터다. 누구든지 성자가 될 필요는 없다. 
‘당신은 무척 좋은 얼굴을 하고 있군요' 내가 감명을 받았던 단어는 ‘얼굴'이다. 당신은 무척 좋은 사람이군요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그건 남을 듣기좋게 만들기 위해서 만든 스스로 최면을 거는 억지이고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않거나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게 말해버림으로써 뭔가 다른걸 요구하는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말�� 받는 사람 역시 제가 좋은 사람이란걸 어떻게 알았죠? 라던가 감사합니다 (불편) 라고 평가를 받는 학생의 자세가 될 수 밖에 없다. 다분히 동양권 문화에서 남자친구의 연로하신 어머니는 다분히 손윗사람이고 앉은 자리가 따가움에 틀림없다. 자네는 참 좋은 사람이구만! 자네는 참 좋은 얼굴을 하고 있구만! 은 그래서 무척 다르게 다가온다. 전자는 상대방을 아랫사람으로 생각하고 윗사람의 입장에서 평가를 내리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후자는 관찰자의 시점에서 어떤 권력투쟁을 하려는 의도가 없이 현재 상황을 편안하게 읽어나가고 있다. 이 엄마가 이 대사를 할 때 지었던 표정처럼 말이다. 상대방이 아랫사람이고 불편한 감정이 일렁이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빛이난다. 남자친구의 엄마된 입장이지만 너를 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라는 무장해제. 너를 공격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방어하지도 않는다. 단지 너가 누군지 궁금한데 다행스럽게도 너는 좋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좋은 사람인 것 같다라는 추정. 그런 말을 듣고 반기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넌 참 착해라고 누군가 얘기하면 기분이 좋으면서도 어딘가 살짝 캥기게 된다. 언제나 착한 사람은 없으니까. 어떨 때는 내가 그렇게 악마같을 수 없다. 누구나 그렇다. 그런데 넌 착한 인상이야라고 말하면 느낌이 다르다. 단어 하나만 달라져도 이 세계를 너와 나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 그대로 묻어나오는게 신기하다. 단어를 잘 골라서 써야할것이 아니라 그런 세계관에서 저절로 그런 단어가 튀어나오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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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mlog · 9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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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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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mlog · 9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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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는 '수고'하지 말자!>
http://www.typographyseoul.com/1468514
'수고하세요', '고생하세요'는 남자라면 군대에서 고착화된 말이기도 하다. 군대에서 짬밥이 안될때 선임과 같은공간에 있다가 자리를 먼저 뜨게되는 경우 적절한 말이 없을때가 많은데 이 때 널리 두루 쓰는말이 바로 '수고하십시오'이다. 간부와 같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 만날때는 경례로 인사를 먼저 하지만 후임이 먼저 떠날때는 경례를 하지 않기 때문에 뭔가 말은 해야겠는데 선임이 티비를 보든, 코를 후비고있든, 청소를 하든 상관없이 하는말이 '수고하십시오'. 가장 황당한 경우는 화장실에서 나란히 볼일을 보는중에 먼저 자리를 뜨는 후임이 내게 하는말. '수고하십시오..'. 물론 나도 군대에서 후임때 많이 쓰던 말이었는데 옆중대 친구는 '고생하십시오'라는 말을 썼다. 난 그 말이 너무 이상하게 들려서 쓰진않았지만 느낌이 뭐랄까. 좀 더 아저씨스럽고 친근하며 더 위해준다고나할까. 아무튼 복잡미묘한 차이가 있다. 어쨌든 난 '고생'이라는 말이 싫어서 하지않았다. 
요즘엔 아침에 사무실주변으로 복싱을 하러 다니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 같이 운동을 하는 아저씨들이 서로 안면은 있지만 잘 모를때 특히나 샤워실에 땀에젖은채로 들어왔을때 거의 99.9%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건넨다. 다행히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군대에서 '수고'라는 말을 건네는 이유는 같은 소속이고 작업이나 훈련같은 공동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기때문인데 (화장실 제외) 복싱장은 공동노동이 아니고 개인운동이지 않은가. 내가 나를 위해서 혼자서 운동하고 땀흘리고 들어왔는데 수고했다고 말을 듣는건 뭔가 어색하다. 틀렸다라는건 아니지만 뭔가 어색하다는것. 
차라리 '안녕하세요'가 낫다. 물론 운동이 다 끝나서 집에 갈려는데 이제와서 무슨 안녕이냐고 할 수 있겠다. 그럼 '오늘 운동은 어떠셨어요?' 아니면 꼭 그런 인사치레로 정해진말을 하지않고 그 상황에서 눈을 마주치고 운동하느라 개운한 기분이라던가 많이 힘들었다던가 하는 느낌을 교감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하는게 얼핏보면 무척 예절발라보이지만 사실 그걸로 대화를 끝내고 더이상 내게 말걸지마 난 분명히 아는척했다 하는것 같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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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m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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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공부하는 인간' 시리즈를 보고
같은 사회현상을 두고 다양한 문화권을 비교하며 해석해보는일은 언제나 재미있다. 나는 사고방식이 대부분 서양권 방식에 맞춰져있는데 현재 살고있고 내가 자랐던 곳은 동양권이기 때문에 특히 더 그렇다. 어렸을 때 이해가 잘 안되었던 부분들도 커서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공부해나가다 보니 그게 절대적인 정답이 아니라는것도 알면서 다소 안심하게 된 경우도 많다. 만약 내가 겪었던 모든 일들을 세계 모든 곳에서 똑같이 벌어졌다고 한다면 그것 역시 답답한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대학에 왜 가는가>, <학교란 무엇인가> 등등 교육관련 다큐시리즈는 관심을 가지고 보는편인데 이번 <공부하는 인간> 시리즈는 공부하는 방법 자체에 포커스가 맞춰져있어서 다른 다큐와 비슷한 듯 다른게 재미있다. 동양, 특히 한국의 교육방법에 대해서는 정말 날이 새도, 아니 한달동안 날을 새서 이야기해도 할 말이 남을것이다. 그것도 내 입에선 부정적인 단어들만 마구마구 튀어나올 것이 뻔하다. 그걸 굳이 또 이야기하고싶진 않다. 나도 더이상 까칠하게 살고싶진 않으니까. 딱 한가지만 이야기하고~
한국인들은 지나치게 자기를 과소평가하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선생님이 정답을 감춰놓은채로 학생들을 대하는 분위기속에서 12년 교실생활을 하고 대학에서도 이와 크게 다르지않게 스스로 탐구하고 질문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하다보니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 상당히 자신감이 결핍되어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나의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굳이 자기 이야기나 주장따위를 내세워야 될 필요가 전혀 없기도 했다. 발표점수가 포함된다고는 하지만 그 발표하는 내용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자기의 독창적이고 주체적인 의견이라기 보다는 단답형의 대답이거나 책에 있는 내용을 먼저 발견해서 손을 들어 정답을 말하는 식이 많을것이다. 일단 그렇게 된 배경엔 질문이 멍청해서이기도 하다. 선생님들은 보통 '이러이러한 것은 왜일까?'라는 추상적인 질문보다는 '이러이러한 것���는 무엇이 있는지 아는사람?'처럼 꽤 직접적이고 범위가 한정적인, 그러니까 외운것을 토해뱉어야 하는 식의 지식확인 정도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정답을 늘 움켜쥐고 있는 선생님과 대등한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하고 항상 따라가고 바라보는 2인자의 입장에서 수업을 뒤따라가게 된다. 어쩌다가 망망대해에 떠있는듯한 질문을 받고 생소하게도 나만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상황에 닥치게되면 2인자의 자세에서 1인자 선생님이나 다른 1인자의 눈치를 살피게되고 자기가 아는선에서 얘기하고 끝내면 될 일을 정답을 찾아 헤메는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것이다. 
사실 대수롭지 않는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런 습관이 사회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본다. 어느 문제나 비슷하겠지만 어느 특정문제는 문제가 처음 생긴곳을 벗어나게 돼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렵사리 대학에 들어와서 4년동안 학문에 정진해도 회사라는곳은 늘 2인자로 만들어버리곤 한다. 사실 대학에서 1,2년만 전공학문을 공부하면 그 분야에 대해서 어느정도 자기 의견을 피력할 수 있어야 하는데 겸손하기 짝이없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3,4학년도 아닌주제에 감히 그러지 못한다. 그럼 4년 120학점을 다 채우고 스스로 전문가라고 하고 다니는가? 또 그렇지도 않다. 자기가 나온 대학의 학과를 졸업한 선배님들을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사회는 배워야할것들이 엄청 많다면서 스스로 1인자 행세를 하기 시작하고 대학교를 당당히 졸업한 후배들을 여전히 햇병아리 취급하며 선생질을 하기 시작한다. 사회초년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며 여전히 배우는 중이라고 자기 의견을 함부로 내뱉거나 하는 경거망동을 자제하며 나이 30대중반이 넘어가거나 40대가 되면 나도 전문가소리를 들을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다소 편파적으로 적긴 했지만 어느 분야나 크게 다르지않을거라고 본다. 만약에 틀렸다면 그걸로 감사한다. 그래도 내 생각보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절망적이지 않다는걸 증명해주는 것만큼 감사한 일은 없으니까. 한국인들이 영어를 그렇게 갈망하면서 잘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있다고 본다. 영어는 학문이라기 보다는 언어, 문화, 생활 그 자체이기 때문에 자기 의견을 얼마나 다양하고 재미있게 말하고 듣고 반응하는가에 달려있다. 그런데 모국어로도 자기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데 영어로는 오죽하겠는가. 재미있게 가지고 놀아야 할 외국어를 수학문제 공식외우듯이 단어를 달달 외우고 문제집을 풀고있으니 효과를 못보는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짧게 써보려고 했는데 주제가 교육인지라, 양조절에 또 실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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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m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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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경제 서비스 - 나는 남을 믿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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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 자기 빈 집을 여행객에게 숙소로 내어줌
프렌드라이드 : 돈을 받고 차가 필요한 사람을 태워줌. 
마이리얼트립 : 현지인이 여행가이드를 해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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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경제는 쓸데없는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social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간다는 점에서 무척 현명하고 미래적이며 보다 인간다운 가치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경제적 접근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눔'을 공유한다는 취지하에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고 가지는 적은 물질적/인적 재산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자극한다고 본다. 흔히 재산을 기부하고 시간을 쪼개어 멀리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사람들은 대견하게 생각하면서도 실천하기에는 까다로운, 그러니까 할만한 사람들이 정해져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공유경제 플랫폼 서비스들은 그런 망설임들을 어느정도는 현실로 바꿔놓는 역할을 하게된다. 그리고 모든 서비스나 필요한 도움같은 것들을 모두 돈으로만 바꾸기에는 어딘가 인간적인 요소가 많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우긴 힘들었다. 자본주의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지 않고, 내가 도와주는 대상이 누구인지 관심가질 필요는 없고 단지 돈만 벌고 쓰면 된다고 주입시켰다면, 이런 공유경제는 이왕 어떤 활동을 한다면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서비스를 누려야한다면 서로 따뜻한 인사를 하며 친구가 되어보는것이 어떻겠냐고 질문한다. 그 활동에는 우리가 친구를 만들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숙소주인(에어비앤비), 렌트카주인(프렌드라이드), 여행가이드(마이리얼트립)도 포함된다. 그저 돈을 지불하고 받던 고객과 호스트의 경제적 관계에서 좀 더 인간적이고 관계지향적인 도우미나 친구가 되어보는것이 어떻냐고 하는것이다. 
'믿음'의 문제
이런 공유경제의 핵심은 '신뢰감'에 있다고 본다. 아무래도 어떤 회사에 소속되어 있기 보다는 개인이 주로 활동하는 무대이다 보니 남을 믿지 못하면 한없이 불안해질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다. 사실, 사무실도 있고 사업자등록도 되어있는 '회사'와 인터넷에 간단한 개인정보만 올려둔 '개인' 중에서 어느 쪽에 신뢰감이 가냐고 한다면 아무래도 전자쪽일테지만 회사라고 해서 무조건 일을 잘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안좋은 일이 발생했을 때 후속조치를 취하기 용이한점은 사전에 신뢰감을 가지게 할만한 큰 요인이 되는것은 맞다. 내가 볼 때, 이런 서비스들은 아무리 취지가 좋고 앱 개발을 잘해놓아도 사회 전반에 불신감이 가득 차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이 서비스들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은 '과연 남을 신뢰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타인을 믿는가?
여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 Yes이다. 어려운 문제지만 굳이 Yes라고 대답한 이유는 내가 남자라서 뜻밖의 위험에 대해 덜 불안해하기 때문이고, 남도 나와 같이 비슷하게 상식적인 사람일 것이다라는 암묵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상당히 근거없이 허무맹랑한 소리일 수 있다. 물론 상식적이지 않는 파렴치한 인간도 존재한다는 것 쯤은 안다. 그런 인간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Yes라고 대답한 이유는 그런 인간들때문에 타인 전체를 믿기 싫어하는 내가 싫어서다. 그렇다.. 어려운 문제다. 괜히 예전 그리스 철학자들이 성선설과 성악설로 논쟁을 벌였겠는가. 어딜가나 어느시대나 쓰레기같은 사람은 있다. 그런 사람의 집에 가서 하룻밤 잘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과는 공항에서 도심까지 차를 같이 타느니 그냥 걸어가고 말겠다. 이건 순전히 돈을 아끼고 편리하게 이용가능하다는 그런 편한 화제가 아니다. 자원을 아끼고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내가 위험에 빠질지도 모르는데 뭔 놈의 세계고 자원이냐는거다. 차라리 그럴바에는 비싼 돈을 주고 유명한 회사에서 고용된 프랑케슈타인같이 생긴 과묵한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나쁜 일은 절대 생기지 않을테니까.
그래도 에어비앤비가 잘 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문화적 차이가 아닐까 싶다. 믿음에 지역적, 시대적 차이가 과연 있을까 싶냐마는 이런 공유경제가 서양권에서는 주목을 받고 쑥쑥 커가는 분야이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타인에 대한 믿음의 정도를 유추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이리얼트립'은 우리나라에서 나온 서비스인데 주로 해외에 있는 유학생들이 용돈을 벌기 위해서 여행객들을 상대로 하는 아르바이트로 많이 사용중이다. 어느 회사에 소속되어있거나, 정식 가이드 라이센스가 있지 않기 때문에 이 플랫폼을 이용하는 가이드들은 여행일정을 상세하게 짜서 올려놓거나 (포트폴리오 역할을 한다) 자기가 얼마나 여기서 오래살았는지, 자기가 얼마나 쿨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어느 학교인지 밝히는것도 큰 도움이 될 듯) 자기소개란에서 적극적으로 표현을 한다. 그런데 웃긴 점은 여행객만 믿음의 용기가 필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서비스를 주고 돈을 버는 공급자 역시 타인을 믿을 줄 알아야 한다. 돈 입금 문제야 서비스 플랫폼에서 가장 신경을 들이고 있어서 잘 처리해주고 있긴 하지만 괴팍하게 나오거나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오면 공급자 역시 되려 당할 수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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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잘됐으면 하는 '자동차 공유 서비스'
자동차를 원하는 시간에 빌려서 사용하고 가까운 곳에 반납하는 이런 서비스도 신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기 자동차야 막 굴려서 사용하든, 내장재를 띄어서 내다팔든 어떻게 사용하든 누가 상관하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공용으로 사용하는 자동차를 자기 것처럼 아껴서 사용할 수 있을까? 자기는 그렇다고 치자. 타인은 그럴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깨진 유리창의 법칙처럼 점점 자동차의 상태가 망가질수록 나도 내 차처럼 깨끗하게 소중히 사용한다고 맹세할 수 있을까? 점점 수리할 곳만 늘어나서 서비스 업자가 이렇게는 더이상 안되겠다며 차 내부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이용료를 인상해도 환경을 살리는 공유경제 시스템이라며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멋진 아이디어에서 출발했고 실현되기에 부족하지 않는 상황이지만 '사람'을 매개로 굴러가는 서비스인데 '인식'이 다른 환경에 비해서 못따라가는 현실이라고 본��. 자동차 공유 서비스는 정말 하루빨리 이용하고 싶고 잘 돼서 주차난도 해결되고 불필요한 차 구입을 하지 않아도 됐으면 한다. 공공생활 의식이 많이 발전된 일본이나 유럽같은 나라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나라도 에어비앤비나 그 짝퉁들, 쏘카나 기타 등등이 있고, 점점 더 이런 시스템을 가진 서비스들이 많아질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 전에 하나 묻고 싶다. 당신은 남을 믿을 수 있냐고.
"나는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네" - <마음> 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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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m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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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주의'시리즈 두번째 썰 - 소개팅
90년대만 하더라도 '소개팅'이라는 단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당시 내가 청소년이었기 때문이라서 못들어봤을수도 있기 때문에 정확한 고증은 어렵지만 여하튼 내 기억으로는 그 당시 대학생이 되면 주로 오갔던 얘기가 '미팅'이었다. '미팅'과 '소개팅'은 팀 대결이냐 개인 대결이냐로 구분된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나뉘긴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분위기나 맥락을 짚어보자면 미팅은 마치 엠티처럼 즐거운 수다와 어색한 게임, 마치 짧은 여행을 상기시킨다면 소개팅은 결혼과 연애를 겨냥하는 맞선과 같다고나 할까. 굳이 나누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점점 미팅을 하는 문화가 사라져가고 대학생부터 늙은 직장인까지 너도나도 소개팅 소개팅 앵무새처럼 쪼아리는 이런 말들이 서서히 (아니, 진작부터) 짜증나기 시작하기에 몇자 적어본다. 
말 그대로 소개팅으로 시작해서 소개팅으로 끝난다. 결혼적령기에 해당하는 젊은 남녀들이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술집에서 잔을 기울이거나, 식당이든 어디든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패턴이 그렇다. 어쩔때는 소개팅을 시켜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오랫만에 친구를 불러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가까운 인맥들은 소개를 받게되는 2차 인맥 범주가 넓지 않다고 생각되고 겹칠때도 있기 때문에 새로운 금맥을 찾아서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구를 불러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연애 화제로 몰고갈 수 있다. 사실 어느정도 적극성만 있고 과거에 1차 지인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줬고, 현재 자기의 상태가 객관적으로 괜찮은 편이라면 충분히 시도해볼만 한 일이다. 이성친구(그냥 친구)가 거의 없는 사람도 있긴하는데, 그럴 경우는 또 한 사람을 거치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러니까 중개인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 되는 경우가 이제는 더이상 어색하지 않는 지경까지 왔다. 이런걸 부동산 업계에서는 공동중개라고 하고 수익은 반반이지만 이 소개팅 필드에서는 수익따윈 관심없고 나중에 기회를 돌려받을수만 있으면 얼마든지 쿨해질 수 있다. 내 경우에도 이런 공동중개를 통한 소개팅을 몇번 해봤는데, 그냥 느낌이 쌔하다.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라나는 아이를 남녀간의 사랑의 메타포라고 봤을 때, 공동중개로 만난 그녀와 나 사이에 느껴지는 공기는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고아원에서 자라나는 불쌍한 아이같다. 물론 그런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라고 모두가 끝이 불행한건 아니지만 누구도 자기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가정해본다면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인생을 시작하는 인생을 선택할것이다. 
소개팅의 시작
흔한 소개팅의 출발은 주선자의 사진교환이 끝나고 양쪽이 OK를 했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여기서 대략 40%의 이탈자가 발생한다. 그러니까 소개팅이라는 담론이 오갈수는 있어도 실제로 스타트를 끊는 경우는 절반이 살짝 넘는다는 말인데 이 결과는 참가자의 연령대와 사진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즉, 만나고 싶은 이성의 조건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율이 연령대에 따라 다르다는 말인데, 자세한 통계치는 알 수 없다. 경험적으로는 나이가 많을수록 외모를 많이 본다고 생각되는데, 인내심에 한계가 온 나이많은 사람은 물불가리지 않는 모드로 돌변하는 경우가 있기때문에 꼭 그렇지만은 않다. (흔히 말하는 남자면 돼, 여자면 돼 하는 경우) 정치적인 경우도 있다. 상대의 카톡프로필사진이 맘에 들지 않지만 회사 부장님이 소개해주는 경우, 어쩔 수 없이 연락을 해서 만나야한다. 소개팅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회사생활은 오래될 것이므로. 어찌보면 이런 외모 확인과정은 나중에 시간낭비를 줄여준다는 면에서 꽤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겠지만, 얼짱각도, 과도한 사진후보정, 쓸데없는 환상주입, 외모지상주의, 내적매력 발산기회 박탈 등 많은 부작용도 동반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은 나약한 생물이라 불안한 감정을 못견디고 사진을 보길 원한다. 주선자도 그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두가 찬성하고 행복해하는 결정인것이다. 그래서 자기 본모습보다 20%정도 더 낫게 나온 사진 몇장을 가지고 다니는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30%가 넘어가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연락하기
위에서 언급한 60%의 생존자들은 서로의 연락처를 갖게되고 거의 대부분 카카오톡으로 첫 인사를 한다. 이 방식도 소개팅 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할 무렵과는 다르다. 예전 소개팅은 이랬을 것이다. 주선자가 OK하고 양쪽에게 약속장소와 시간을 알려주고 셋이 만나서 서로를 소개시켜주고는 분위기가 괜찮아질 무렵, 그러니까 1차 식사가 끝남과 동시에 2차는 자연스럽게 빠진다. 2차가 끝날 무렵, 서로 맘에 들면 연락처를 교환하고, 아무런 교류가 없으면 다음날 주선자가 각자에게 어제 어땠냐고 물어보면 애매하게 대답하기 뭐 이런 시나리오가 아녔을까 싶다. 하지만 이제는 커피숍에 가서도 서로 모바일로 멀리있는 친구랑 대화하는 시대가 아닌가, 그런 거추장스러운 약속은 필요없다. 주선자도 굳이 나서지도 않는다. 그렇게 카톡으로 대화가 시작되면 5% 이탈자를 제외하면 거의 만나게 된다. 만나서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굳이 적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소개팅이 만들어낸 다른 가치의 상대적 결핍이지, 소개팅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
이성을 만나는 창구
이토록 소개팅 이야기만 하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장 소개팅이 필요없었을 때를 꼽아보라고 한다면 대학생때가 아닐까싶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여자가 8, 남자가 2인 비율의 과를 다녔다. 여자는 나이어린 남후배를 만나기가 좀 그렇지만 복학생 남자는 모든 여학우들과 만나도 다소 욕을 먹을 수 있어도 괜찮은편인데, 내가 나온 과는 학년에 90명정도, 거기서 여자가 70명정도고 군대갔다와서 들어가면 후배가 대략 5년터울이 있으니 대충 350명의 여자후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개팅을 했었다.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들보다는 혹시 있을지 모를 금맥을 찾아 갈구했던 것이다. 지나고보면 정말 자연스러운 관계로 시작된 연애가 더할나위없이 좋다는것 알게되지만 막상 그 상황에서는 현실을 외면하고 막연한 이상을 쫓고 싶더라는 것. 이러한 심리는 꽤나 분석해볼만하지만 나는 그런 연구를 할 수 없기에 경험에 의존해서 현상들을 나열하고 그에따라 얕은 수준에서 가설들을 끼어맞출 뿐이다. 어쨌거나 이런 결과는 상당히 흥미로우면서도 불행한 일이다. 우리들은 대학생이건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샐러리맨이건 지금은 별볼일없는 고시생이건, 백수건간에 마음한켠에 대박이상형을 만나게 될거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 
연인을 만나는 길은 다양하다. 초등학교 동창, 직장동료, 친한친구의 친구, 어르신들의 중매, 동호회, 밤문화부킹, 채팅, 해외여행.. 사실 적어놓고 보니까 그렇게 많지는 않은게 또 현실이긴 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본 전제는 '자연스러움'이다. 연인관계도 어짜피 사람관계이기 때문에 친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하며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난 연애라는것도 어쨌든 큰 관점에서의 교우관계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이 교우관계를 왜 억지로 그것도 수시로 만들려고 하는가? 사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친구를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만든 기억이 별로 없다. 아니라고? 우리 친구의 대부분은 내가 속한 단체가 같은 공간을 제공해주고 같은 시간을 보내게 해줬기 때문에 옆에 앉은 녀석과 가까워진거지 (학교, 회사) 자발적으로 교우관계만을 위해서 get한적은 드물다 (친목동아리) 학교나 회사같은 경우를 억지로 친해졌고 나의 노력을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기엔 또 말이 억지스럽긴 하나 도대체 이성을 언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이해하기에는 필요한 설정이긴 하다. 평생 친구를 억지로 만들어본적이 없는데 활동반경이 직장내 사무실로 고정되버리는 연령대에서는 연인이 될만한 이성친구를 만날 기회가 없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자연스러운 만남 - 인간 대 인간
이런 수동적인 인간맺기의 패턴은 다르게 보면 나와 단체가 겹치지 않는 타인에 대해서는 관계를 맺을 필요성을 아예 느끼질 못하거나 두려워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소개팅을 원하는데 자기 인맥을 벗어나서 좀 색다른 스타일의 이성을 만나고 싶어하면서도 너무 크게 벗어나면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고 다시 원래의 품으로 돌아와서는 투덜대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 그래도 자기는 노력중이라고 할만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개팅 좀 해달라고, 술도 사주고, 연락도 하고, 나가서도 최선을 다한다. 나는 나의 세계를 깨려고 하지 않으면서 남이 먼저 자기의 세계를 깨고 나에게 먼저 다가와주길 바라는. 이 지독한 현대인의 나약한 모습. 나는 이런 사태가 누구 탓이라고 원망하고자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연애를 하고 헤어지거나 말거나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졌다 나왔다를 보고싶다. 결혼 적령기라는게 의미없는 단어긴 하지만 나이 찬 멀쩡한 친구들이 짝을 못찾아서, 아니 연애조차 못한채로 몇년씩 투덜대며 술자리에서 소개팅을 구걸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인류가 생긴 이래로 이렇게 연애를 하기 힘든 분위기가 있었을까 싶다. 그것은 전쟁도 아니고, 기아 홍수 가뭄 자연재해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게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마음속에서 대박만 꿈꾸고 기다리는 이런 암울한 분위기가 아닌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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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m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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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on Mraz - I'm Yours 번역
Well you done done me and you bet I felt it I tried to be chill but you're so hot that I melted I fell right through the cracks, now I'm trying to get back
넌 내가 사랑을 느낄거라고 했지 나는 애써 쿨한척 하려 했지만 넌 엄청 뜨거웠고 난 녹아버렸어 난 나락으로 떨어졌고 이제서야 정신을 차린듯해
Before the cool done run out I'll be giving it my bestest And nothing's going to stop me but divine intervention I reckon it's again my turn to win some or learn some
냉정함이 없어지기 전에 내 모든걸 다 바칠꺼야 신 말고 그 어떤 것도 나를 막을 수는 없어 이건 이기거나 아니면 뭔가를 배울 수 있는 문제야
But I won't hesitate no more, no more It cannot wait, I'm yours
하지만 난 더이상 주저하지 않을꺼야 난 네것이라고
Well open up your mind and see like me Open up your plans and then you're free Look into your heart and you'll find love love love love
마음을 열고 나처럼 바라봐봐 편하게 생각해봐 너는 자유야 네 안의 목소리를 들어봐, 넌 사랑을 찾을 수 있어
Listen to the music of the moment people, dance and sing We're just one big family And it's our God-forsaken right to be loved loved loved loved loved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음악을 들어봐 우리는 하나야 사랑받아야 할 그런 우리의 권리라고
So I won't hesitate no more, no more It cannot wait, I'm sure There's no need to complicate, our time is short This is our fate, I'm yours
그래, 난 더이상 주저하지 않겠어 이젠 기다리지 않겠어, 난 확실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인생은 길지않아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야, 난 네 것이라고
D-d-do do you, but do you, d-d-do But do you want to come on Scooch on over closer dear And I will nibble your ear
너도 이리오고 싶지? 조금씩 다가와봐 콱 깨물어줄테니까
I've been spending way too long checking my tongue in the mirror And bending over backwards just to try to see it clearer But my breath fogged up the glass And so I drew a new face and I laughed
하루종일 거울앞에서 내가 어떻게 비쳐질까 바라봤어 더 자세히 보려고 몸을 숙였고 내 숨 때문에 거울이 뿌얘졌지 난 새 얼굴을 그려보고는 웃었어
I guess what I'm saying is there ain't no better reason to rid yourself of vanities and just go with the seasons It's what we aim to do, our name is our virtue
자만심에서 빠져나와서 계절이 흘러가는대로 그냥 가자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어 그건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 우리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어
But I won't hesitate no more, no more It cannot wait, I'm yours
하지만 난 더 이상 주저하지 않을꺼야 난 네것이라고
Open up your mind and see like me Open up your plans and damn you're free Look into your heart and you'll find that the sky is yours
마음을 열고 나처럼 바라봐봐 편하게 생각해봐 너는 자유라고! 네 안의 목소리를 들어봐, 저 하늘도 너를 향해 있잖아
So please don't, please don't, please don't There's no need to complicate 'Cause our time is short This is, this is, this is our fate I'm yours
그러니까 제발, 제발, 제발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인생은 길지않아 이건 우리의 운명이야 난 네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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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m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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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y Allen - I Could Say 번역
"I Could Say"
I could say that I'll always be here for you
But that would be a lie and quite a pointless thing to do
I could say that I'll always have feelings for you
But I've got a life ahead of me and I'm only 22
난 언제나 너와 함께할 거라고 말했었지
하지만 이젠 틀렸고 무의미한 말이 돼버렸어
난 언제나 너를 생각할거라고 말했었지
하지만 내겐 나만의 인생이 있었고 그땐 22살밖에 안됐었어
Since you've gone I've lost that chip on my shoulder
Since you've gone I feel like I've gotten older
Now you're gone it's as if the whole wide world is my stage Now you're gone it's like I've been let out of my cage
너가 떠난 후, 난 뭔가 잃어버렸고
너가 떠난 후, 난 늙어버린 기분이야
넌 떠났고, 이제 이 모든 세계는 나의 무대가 된 듯해
넌 떠났고, 이제서야 날 가두고 있던 틀에서 벗어난 것 같아
You always made it clear that you hated my friends You made me feel so guilty when I was running round with them And everything was always about being cool And now I've come to realise there's nothing cool about you at all
언제나 넌 내 친구들을 싫어했지
그래서 난 친구들과 함께할때면 죄책감을 느끼곤 했어
모든건 완벽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깨달았어 너가 빠졌었다는 것을
Since you've gone I've lost that chip on my shoulder Since you've gone I feel like I've gotten older Now you're gone it's as if the whole wide world is my stage Now you're gone it's like I've been let out of my cage Since you've gone I've lost that chip on my shoulder Since you've gone I feel like I've gotten older Now you're gone it's as if the whole wide world is my stage Now you're gone it's like I've been let out of my 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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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m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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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주의'시리즈 첫번째 썰 - 디자인 외모
안선주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성형 수술을 권했던 일부 한국 기업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은 (한국을) 떠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기사원문 : http://goo.gl/mkx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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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주라는 골프선수의 이야기인데, 이 기사를 보면서 디자인의 위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서 몇 자 적어본다. 사실, 이 행복한 골프선수가 국내에서 받았던 대접과 디자인이 산업디자인계에서 받고있는 대접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흔히 디자이너라고 하면 '와, 이쁘게 그릴줄 아시겠네요' 혹은 '저희 이거이거 하는데 한번 멋지게 만들어주세요'라고 한다.
{디자인}={이쁘게} 나는 이 공식이 상당히 맘에 들지 않는다.
첫번째 이유 : 누구한테 이쁜가?
사람마다 미의 기준이 다르기때문에 일반적으로 이쁘게해달라는 말은 성립하기 어렵다. 고갱의 그림을 보고 이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모던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몬드리안의 분할을 보고 이쁘고 세련됐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테니까.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이쁘게' 해달라는 사람은 보통 작업을 맡긴 주체, 클라이언트일 수도 있지만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예를들어 홈페이지를 만드는 사업자가 이쁘게 디자인해달라는 말은 자기가 보기에 이쁘면 좋겠다라는 뜻이 아니라 새 홈페이지를 보고 고객들이 좋아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의미이므로 '이쁘게'를 향하고 있는 대상은 일반 고객들이 된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장이나 외부 클라이언트가 일을 시키면 팀장급이나 해당담당자가 일을 진행하는데 ���지막에 디자인을 하게 되면서 전달하는 '이쁘게' 형용사는 자기 기준에서 '이쁘게' 해달라는 얘기가 아니라 일의 출발점이 된 사람에게 맞춰져있다. 하지만 그 담당자는 일의 주인의 미적 취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 경우에 '이쁘게'란 널리 적용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봤을 때 호감을 가질만한 '이쁨'을 말하게 된다. 
그렇다면 시공간과 개개인을 초월한 '이쁨'이 가능한가? 디자인 트렌드라는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디자인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디자인이란 기능의 편의성이라기 보다는 외관적인 스타일이나 형태의 우아함을 얘기하는 것 같다. 다시말해, 스타일리쉬하고 우아하다고 느끼는 형태가 정해져있지 않고 시대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완전히 바뀐다는 말이다. 오늘과 내일이 하필 문화적인 맥락이 바뀌는 그 시점이라고 가정한다면, 오늘 이쁘다고 느꼈던 스타일이 내일 맘이 바뀌어도 그게 잘못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상한 가정일 수 있겠지만 IT업계에서는 애플이 iOS7 디자인을 발표하기 전과 후가 그렇게 나뉜다. iOS7에서 채택한 편평한 플랫디자인은 발표전날까지만 하더라도 그저그런 스타일로 여겨졌었는데, 발표 후에 온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디자인을 잘 모르는 회장님도 어디선가 듣고는 플랫디자인이 제일 세련됐고 멋지다고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정말 하루아침에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정도로 짧은 과도기를 구경해보았다.
두번째 이유 : 이쁘기만 하면 돼?
가장 중요한 문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디자인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이다. 1 문제를 발견(인식)하고 2 해결방법을 모색하고 3 시도하고 4 피드백을 바탕으로 수정하고 5 다시 행동하는 그런 순환이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이다. 건방지게도 이 과정 어디에도 '이쁘게'라는 형용사는 없다. (그래서 내가 이쁘게 못하는 것일수도) 결과���의 시각적 아름다움은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긴 하지만 다다익선이라고 본다. 그보다는 문제의 핵심이 얼마나 해결되었는가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어떤 물건이나 서비스를 '이뻐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꼭 필요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물건의 용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래서 미적 완성도가 없는것보다는 있는것이 훨씬 낫다는 말이지만 정작 문제는, 미적완성도를 논하기 전에 해당 이슈가 정말로 원만히 해결되었는지 여부를 묻느냐 묻지 않고 덮어두느냐이다. 아니, 이보다 앞서서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불투명한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인식과 해결방법 모색을 건너뛰고 미적으로 아름다우면 모두 해결될거라고 보는 입장은 위에 링크된 신문기사의 슬픈 골프선수를 만든 상황과 비슷해보인다. 사람은 제품이 아니기때문에 미적 아름다움을 공유하긴 어렵겠지만 본질을 보지 않고 외적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행태가 비슷하다는 말이다. 나는 오히려 외적인 모습이 내적 본질과 연결되어 있을 때 더 합리적인 아름다움을 느끼는 편이다. 이치에 맞는 아름다움이랄까. 출처없고 시공간을 초월해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그런 모호한 이쁨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그런 소박하지만 수긍할만한 이쁨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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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m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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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아이덴티티 : 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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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색은 다루기 까다롭다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직방'은 메인컬러가 노란색인데 노란색은 다른 컬러와 비교했을 때 다루는 방법이 매우 다르고 까다롭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빛깔이 있지 않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데 용도마다 쓰임이 다르기때문에 딱히 없다는게 나의 대답이었다. 특정 색이 다루기 어렵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다. 그런 내 앞에 노란색이 본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직방' 브랜드 메인컬러를 노란색이 아닌 다른색으로 바꿔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으니까. 그럼 노란색은 왜 까다로울까? 일단 노란색은 밝다. 당연한 말이지만 빛의 스펙트럼으로 뽑아져 나오는 수만가지 색상중에서 가장 밝은 색이 노란색이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캐릭터그림이나 문자처럼 어떤 특정한 모양을 갖추고 있고 브랜드의 정체성과 메세지를 생략적, 은유적으로 전달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가시성이 좋아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브랜드 로고의 조건은 이렇다. 빠르게 달리는 차 안에서 멀리있는 옥외광고판을 봤을때나, 눈이 좋지않아 흐릿한 시야에서도 어떤 브랜드인지 전달이 되어야하고 여러 패턴들이 뒤섞여있는 아마존 밀림이나 우주 어느 행성의 표면에서도 특정 브랜드 로고의 형태가 숨어져있어도 노이즈와 분간해 낼 수 있을 정도로 형태가 독창적이고 쉬어야 하며 인상적이어야 한다. 
노란색은 이런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효과적으로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방해요인이 된다. 과거에 브랜드 디자인 관련 공부를 할 때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던 개념이다. 이제까지 디자인을 하면서 노란색이라고 색 사용을 기피한다는 얘기는 들어본적이 없다. 인터넷에서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노란색은 특유의 밝은 톤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흰 바탕에서 명암의 차이를 낼 수 없었다. 멋진 심볼과 로고타입을 만들어도 노란색이나 밝은 오렌지색으로 채우고 흰 바탕에서 보면 상품성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두운 바탕으로 만들면 되지 않냐고? 물론 Plan B로 반전된 버전도 있어야하지만 일단 Plan A는 기본 흰 바탕이다. 어떤 브랜드는 항상 어두운 바탕색이 따라다닌다고 한다면 그 브랜드는 메인컬러가 따로있는것이 아니라 어두운색 그 바탕색이 곧 메인컬러다. 메인컬러라는 것은 다른 요소보다 우선한다는 뜻이므로. 아래 그림처럼 괜찮은 타협점이 있다면 진한 테두리를 만들어서 노란색을 가두는 것이다. 흰 바탕과 밝은 노란색 사이에 짙고 선명한 경계선을 만들어줌으로써 BI의 가시성을 살리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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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회사인 Shell 심볼은 메인컬러가 레몬에 가까운 밝은 노란색인데 가시성을 위해 두꺼운 빨간색 선으로 둘러쌌다. 물론 이런식으로 해결하지 않고 노란색 그대로 노출한 경우도 찾아보면 은근히 있다. 그런 대표적인 심볼이 맥도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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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방 로고의 최종 디자인]
이런 방법을 사용해서 노란색(정확히 말하면 주황색과 노란색의 중간)으로 '직방'의 BI를 완성할 수 있었지만 메인컬러와 이런 비슷한 느낌으로 여타의 많은 디자인을 해야하는 나에게는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직방'이 점점 알려지면서 여러 플랫폼에 수많은 광고와 홍보성 컨텐츠가 필요했는데 노란색을 메인으로 사용하면서도 어느 환경에서나 눈에 잘 띄게 해야하는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나는 노란색 혹은 오렌지 계열의 색을 메인으로 사용하는 다른 서비스/브랜드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들은 이미 내가 하고있던 고민들을 미리 했을테니까. 
그래서 찾아봤던 브랜드가 음악듣는 '벅스', 원조SNS '싸이월드', 동영상플레이어 '곰 플레이어', 소셜커머스 '티몬', 영화추천 '왓챠'다. 이 중에서 '직방'처럼 앱/웹 가릴 것 없이 활발하게 마케팅을 펼치는 곳이 '왓챠'다. '왓챠'는 개인적으로 기획, 아이디어, 센스, 개발능력, 디자인, 메세지 모든게 훌륭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제품을 잘 만드는 곳이 잘 되어야 선순환이 이루어지기 때문. 직방 디자인작업에 애를 먹거나 밝은 메인컬러를 가지고 어떻게 작업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때면 왓챠를 보며 안심하기도 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모색할 기회를 갖는 등 큰 영향을 주었다.
동변상련 상표들의 배신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근래 1,2년 사이에 오렌지(노란색같으면서도 오렌지같은) 컬러 기반의 많은 브랜드들이 레드컬러에 가깝게 메인컬러를 바꾸었다. '왓챠'야 컬러뿐만 아니라 아이덴티티 전체를 바꾸는 전면리뉴얼을 한 케이스라서 그럴수 있다고 이해하겠는데, 이상한점은 리뉴얼이라는 낌새도 없이 교묘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컬러가 교체되었다는 점이다. '티몬', '벅스', '싸이월드', '곰플레이어'는 거의 비슷한 오렌지계열의 컬러를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라데이션으로 Design Variation을 주더니 마치 영화의 두 장면이 자연스럽게 디졸브 되듯이 마침내 레드계열로 바뀌어버렸다. 이런 변화는 비슷한 난색계열안에서의 이뤄진 눈에 확 띄지 않는 변화이기 때문에 감지해내기가 쉽지않고 그냥 어렴풋한 느낌이 들 뿐이다. 나도 혹시나 해서 구글링을 하여 예전 이미지를 보니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지, 사람의 감각이란 금새 적응을 하게되어 원래 그랬던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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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Orange -> Red 과연 우연일까?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거창하게 전면리뉴얼을 하지 않아도 은근~~히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도 그랬���. 대기업은 쉽지 않겠지만 판이 작은 중소기업의 경우는 좀 더 나은 방향이 있다면 소란스럽지 않게 교체해 나가기가 쉽다. 그런데 위 그림과 같은 변화는 우연치고 너무나 비슷한 공통점이 있다. 모두 비슷한 컬러에서 출발했고 비슷한 컬러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오렌지계열의 색을 포기한 원인이 뭘까?
1. 그라데이션의 사용 - 교체의 징조
예전 자료를 찾아보면 알 수 있는데 '벅스'는 그림에서 보이는 컬러보다 더 노란색에 가까운 밝은 오렌지색이 메인컬러였다. '싸이월드'도 마찬가지로 더 밝고 산뜻한 색이었는데 이 셋의 공통점은 그라데이션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보통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나갈 때, 메인컬러 (key color)는 한 가지 색을 지정한다. 16진수로 이루어진 hex code 혹은 Pantone 컬러로 정확히 한 색을 지정한다. 어떤 디자이너가 들어와도 디지털 코드르 이루어진 그 색을 사용하자는 약속이다. 그런데 밝은 컬러로 지정된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은 어떤 환경에서는 약속된 메인컬러가 약빨이 잘 안받는다는 것을 알고는 다른 방법을 고민했을 것이다. 예를들어 위 그림에서 두 번째 '싸이월드' 그림과 같은 경우, 바탕을 하늘로 정했는데 흰 바탕일때보다 밝은 오렌지는 확실히 묻힐 수 밖에 없게된다. 이럴 때 이미 정해진 약속을 깨지 않으면서 하늘배경에서 도드라지게 보일 수 있으려면 약속된 컬러를 사용하긴 하되 조금만 사용하고 조금 더 톤이 진한 색을 사용해서 효과를 보는것이다. 약속을 아슬아슬하게 깨지 않으면서 현재 디자인에 충실할 수 있게 된다. 큰 문제는 되지 않지만 정확하게 하자면, 그라데이션의 색 범위를 지정하는것이 맞지만 그렇게까지 타이트하게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2. 짙은 그림자의 사용 - 유행과 관련
'곰 플레이어'의 아이콘 곰 발바닥 하단에 검은색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는게 보인다. 이는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의도된것이라기 보다는 흰 바탕과 오렌지색을 구분시켜서 형태를 더 선명하게 보여주려는 의도에 가깝다. 다시말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고 말할수도 있게된다. 그런데 최근 선풍적으로 유행하는 미국발 디자인이 있다. 플랫디자인 (Flat : 평평한, 납작한)이 그것인데, 애플이 최근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있는 모든 디자인을 평평한 스타일로 바꾸면서 다른 업체나 대다수의 디자이너들이 비슷하게 따라하고 있다. 예전에는 입체감이 느껴지게 하는 쪽이었다면 애플의 발표이후 디자인을 아는 사람은 아는만큼, 모르는 사람은 그런대로 이제는 평평하게 디자인을 하는것이 멋진것이 되버린 요즘이다. 그래서 '곰플레이어'의 짙은 다크써클은 없애버리고 싶은 눈총을 받았을것이고 그림자없이 나이스하게 잘 보이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결국 메인컬러를 버린것이 아닌가 한다. 
3. 다른 사정도 있겠지.
'티몬'의 경우는 몬스터 캐릭터를 버린것, 그리고 전에 얘기했던 디자인 유행이 얽혔다고 본다. 몬스터 캐릭터는 전략적으로 버렸겠지만 '직방'과 같이 두꺼운 어두운 테두리를 사용했다는 점이 평평한 디자인을 하고싶었던 욕망과 부딪히지 않았을까. '왓챠'의 경우는 그라데이션을 꽤 많이 사용해와서 밝은 오렌지색에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도 있지만 전면적 리뉴얼을 했기 때문에 좀 더 새로운 느낌을 주고싶었기 때문에 교체했다고 보는게 더 맞다. 아무래도 고생해서 다 바꿨는데 잘 못알아봐주면 섭섭할테니까. 
4. 그런데 왜 하필 레드계열인가?
'왓챠'처럼 전면적 리뉴얼을 하지 않는 나머지 브랜드들은 너무 큰 변화를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좀 더 잘 보이고 최신 유행에 따르기 위해서 선택한 긍정적인 출발이었지만 그 변화의 폭이 너무 클 경우엔 브랜드 정체성마저 흔들릴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오렌지계열에서 레드계열의 변화정도라면 기존의 난색의 핫하고 따뜻한 느낌은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고 본다.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빨간 유행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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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m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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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간다, 분노의 리뷰 - 스포일러 그 자체
나는 영화를 보기전에 치밀하게 사전조사를 하는편은 아니다. 평이 괜찮거나 안좋거나 나만의 독립적인 관점으로 영화를 즐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엄청 대단한 사람이 재밌다고 했는데 내가 재미없으면 나의 수준을 의심해보는건 피할 수 없다. 그래서 혼자 영화를 보러간다면 그러한 미묘한 지점을 뚫고 나가는데 의미가 있다. 상을 탔든 어디에서 초대가 됐든, 혼자니까 눈치보지 않고 졸리면 잘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이 봤으면 누군가에게 미안해 하겠지만 혼자서는 약간만 씁쓸해하면 되는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같이 재밌는 영화를 보고 싶다면 그래도 조금의 평을 보고 가는 편이긴 하다. 그 누군가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략 두 사람 정도면 충분하다. <끝까지 간다>라는 영화도 정확히 두 사람의 좋은 평가를 보고 가족들을 데리고 갔다. 한 사람은 '강추!', 다른 한 사람은 '올해 들어서 최고의 영화!' 그랬다. 
(영화를 볼 생각이 없다면 읽어도 좋습니다)
영화는 목욕탕에서 울리는 목소리로 유명한 이선균의 난처한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주인공은 두 입장 사이에서 괴로워하는데 어두컴컴한 한적한 밤에 운전을 하는 중에 실수로 사람을 친다. 즉 주인공은 2개의 사건이 얽힌 상황에서 굉장한 1개의 사건이 추가된 셈이다. 주인공을 괴롭히고 얽혀있는 사건은 이로써 총 3개가 됐는데 여기까지는 이 빠른 전개가 맘에 들었다. 그리고 한적한 도로위에서 난데없이 이뤄지는 음주단속 검문검색 이로써 총 4개의 사건! 오 이런 상황 좋다. 그런데 주인공이 난데없이 도주를 시도하면서 상황이 악화되고 영화에서의 첫번째 갈등대치구도가 발생한다. 주인공 vs 경찰들. 그런데 약간 분위기가 이상하다. 주인공이 경찰들을 완전히 압도하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겉으로는 굴종적 태도를 보이면서 영리하게 모면하려는것도 아니다. 아, 찌질한 인물로 설정된건가? 알고보니 주인공은 경찰이었고 나름 높은 위치에 있던 베타랑 경찰이었다. 그럼 처음부터 유연하게 혹은 경찰 나름의 양아치스러운 터프한 방식으로 그들을 제압했을수도 있는데 굳이 도주하려 할 필요가 있었을까. 주인공의 곤란한 상황을 극대화해서 보여주고자?? 그랬다면 뭐 넘어가자. 하지만 나는 극 초반인 이 곳에서 상당한 위화감을 느꼈다. 주인공의 난처한 처지에 감정이입하지 못했고 캐릭터를 일관성있게 파악하기 힘들었다. 
이와동시에 주인공 소속부서에서는 또다른 갈등상황이 발생한다. 소속인 강력반 vs 감찰기관. 과도한 양아치스러운 언행을 섞어가며 감찰하는쪽과 거부하려는쪽이 기싸움을 하는데 돈뭉치가 책상위에 어지럽게 펼쳐져있는데도 반장이라는 사람은 너네들 나가라고 큰소리친다. 사실 검은돈이 경찰서안에 그렇게 꼼쳐져있는 설정도 과도한데, 그렇게 들켰음에도 불구하고 상남자스러운 대화가 오고간다. 사태파악은 뒤로하고 지금 주인공인 소속부서가 위기에 처했다는 상황을 부각시키고 싶었나보다. 그랬다면 뭐 넘어가자. 그렇게 감찰관에 털린 소속부서 사람들은 주인공을 찾아오는데 이번엔 주인공 vs 소속부서 사람들이 된다. 반장님과 오랜친구같은 동료와 후임이 찾아와서 궁지에몰린 주인공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 다 죽을 순 없잖아~ 한번만 희생해줘라’ 이게 뭔 소린지.. 주인공을 더 낭떠러지에 몰아넣기 위해서 같은편인 사람들마저 매정한 역할을 시키긴 하는건 알겠는데, 이건 주인공과 동료들의 관계설정에 혼란을 주었다. 이러고나서 나중에는 다시 평범한 동료관계로 돌아오고 극 중후반부에는 의리까지 지킨다. 
어쨌든 주인공의 상황은 많이 힘들어졌다. 캐릭터가 애매한 주인공과 부서동료들 덕분이다. 가장 큰 위험요인이었던 시체도 상당히 어설픈 공작으로 엑스트라들을 까막눈을 만들면서 창의적이게 처리했다. 관 안에서 멜로디가 나오는 설정은 꽤 참신하고 긴장감을 일으키기 충분했으나 그것이 핸드폰의 벨소리라는건 나중이 되서야 알았다. 이것도 설정오류인데 사소한 부분이니 넘어가겠다. 어쨌건 관을 묻게되기까지 결코 쉽지않은 험난한 과정이라는 설정을 뒷받침해주는 분위기설정 관점에서는 괜찮은 포인트였기 때문이다. 관을 묻게되기까지 너무나도 힘들었던 주인공은 엄마가 돌아가신것과는 다른 이유로 통곡을 하게 되는데 관을 묻는 아저씨가 ‘참 효자네 효자’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 대사는 극 후반부에도 다시 나오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통곡을 하는것처럼 보이는 그 분은 그게 그렇게 감명이 깊었나보다. 우스개소리로 말했지만 대사의 수준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 차도 수리하고 블랙박스도 확인해본 결과 찜찜한 부분을 남기고 (이 작은 부분을 남겨놓고 나중에 동료가 체포하는 점은 굿) 별 이상이 없는걸로 확인까지 했고 이제 완전범죄에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쉬운 점은 완전범죄를 하려는 캐릭터가 경찰이라는 점이다. 경찰이 완전범죄를 한다면 범죄를 수사하는 경찰이기 때문에 그 허점을 잘 알고 역이용해서 알리바이를 서서히 완성해갔으면 하는게 내 바람이지만, 주인공이 직업이 경찰로서 완전범죄를 위해 노력한 것이라고는 다른 경찰차를 어이없게 들이박고 태연하게 대처하는 것 밖에 없다. 사실 그 장면도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는 설정이다. 누가봐도 고의로 들이박은게 뻔한데 아무문제없이 일단락되다니. 하지만 여전히 불안감을 품은 주인공은 여러 정황적으로 안정기에 들어서는 듯 한데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이 타이밍은 굿. 이럴 때 전화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 톤과 사용하는 단어, 억양이 무척 중요하다. 영화는 이제 전혀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는 그 지점이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서 처음 들어가는 대학교 첫 모임에서 하는 자기소개와 같이 긴장되면서 약간 알싸한 느낌이어야 하는데 이 부분은 괜찮았다고 본다. 자 이제는 대결구도는 무조건 주인공 vs 이사람이 되는것이다. 숨기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의 대결. 그렇다면 관객은 누구편을 들겠는가? 다른 영화도 그러하듯이 이 질문이 이 영화를 대하는 호불호가 나뉘게 한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끝까지 숨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면 주인공의 처지에 공감하며 악역에 저항하며 관람하게 될 것이고, 주인공이 맘에 안들거나 밝히려는자가 매력적이라면, 혹은 밝혀져야 하는 이슈라고 생각된다면 주인공이 까발려지길 원하며 관람하게 될 것이다. 감정이입은 영화를 보는 이유이자 목적이라고 본다. 감정이입이 되지않는 영화는 연출자가 의도하지 않았다면 할말 없는것이지만 대부분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것이기 때문에 아쉬운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끝까지간다>는 어떠한가? 주인공의 딱한 처지는 잘 알겠지만 그다지 편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안땡긴다. 그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봐야하는데 단순한 신고자가 아니다. 이 상대방을 편의상 악인이라고 부르자. 정말 끝까지 악인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불러도 괜찮을 듯 하다. 악인은 단순신고자인척 하지만 이내 답답했는지 곧바로 다 알고있다며 주인공을 위협한다. 절대전능한 신이 있는것처럼 아무도 모를거라고 생각했던 주인공의 뒷통수를 치는데, 이런 강력한 존재를 설정하는 것 까지는 좋았지만 사실 너무 과했다. 얼굴을 보여줄까말까 관객의 애간장을 태우는가 싶더니 어설픈 추격전으로 액션씬을 맛만 보여주고는 바로 얼굴을 보여주는데 일단 생긴것 자체가 너무 악하다. 절대 조진웅이라는 배우의 외모 얘기를 하는것이 아니다. 표정이나 눈빛, 캐릭터를 연기해내는 뉘앙스 자체가 너무 '나쁜놈'스러웠다는 말이다. 예전 우뢰매나 드래곤볼에서 봤을법한 뼛속까지 '악당'이 거기 있었다. 그리고 밝혀지는 악인의 목적 또한 그닥 흥미롭지는 않다. 영화주제상 경찰의 비리를 비틀고싶어 하는 마음은 잘 알겠는데, 하도 그런 상황을 많이 접해온지라 딱히 특별하지도 새롭지도 않다. 그리고 악인의 첫등장은 시작부터가 화려하다. 밑도끝도없이 주인공을 세게 후려치는데 (사람을 잘못봤다는 설정) 그 액션에서 절대악이 등장했다는 위압감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나보다.. 고 생각했다. 
사실 이 부분부터는 이제까지의 모든 갈등들. 여동생과의 장례식문제, 소속부서의 검은돈이 밝혀진 문제, 주인공에게 덤탱이 씌우려하자 드는 배신감, 뺑소니범으로 밝혀질까봐 두려움, 시체처리문제 등은 이 절대악 앞에 싸그리 사라지고만다. 그 문제들은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해결되었다기 보다는 주인공 앞에 나타난 이 상대가 너무나 프리더스러운 절대악이기 때문에 묻혀버린다는 느낌이다. 그만큼 영화는 다른 호흡으로 전개되고 은근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까 주인공에게 기대했던 나는 이때부터 지지부진한 힘싸움을 맥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철저한 이 주인공 vs 악인 구조속에서 긴장감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 균형이라고 반드시 힘이 팽팽할 필요는 없다. 일방적으로 쫓는 자와 쫓기는 자처럼 잃어버린 균형에서도 긴장감은 흐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영화 속 악인은 주인공과 동료간의 은밀한 대화도 말도안되게 다 지켜보고 있고 중장비를 절벽위에 언제 어떻게 설치했는지 무지막지하게 동료를 살해해버린다.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주인공과의 격투씬은 힘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절대 범접할 수 없는 '신'인 것이다. 게다가 평판이 괜찮은 경찰이니 말 다했다. 캐릭터도 이렇게 에너지가 넘치는데 시체를 찾으려고 주인공과 대립하는 욕망또한 절대 '악'이다. 그니까 쉽게말해 엄청 못되게 생긴 사람이 무지막지한 못된짓만 골라 하는 것이다. 마치 우주에서 침략해온 외계인처럼 말이다. 이런 캐릭터가 나왔을 때 가장 좋지않는점이 하나 있다. 결말이 뻔하다는 것. 그리고 아무도 악인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에 그들은 외롭고 쓸쓸하게 최후를 맞이한다. 그 악당이 쓸쓸한만큼 영화 역시 쓸쓸해짐은 당연한것이다. 긴장감이 없는 액션씬은 마치 김빠진 콜라와 마찬가지니까.
건들건들하지만 그래도 나름 짬밥이 있는 형편없는 주인공은 이 악인을 처치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한다. 그래도 나름 경찰들인데 다른 해결방법은 생각하지도 않고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서로 죽이려든다. 두 주인공의 충돌하는 욕망이 죽음이나 복수같은 극단적인 성격도 아니다. 주인공은 자기의 우발적 범행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랄뿐이고, 악인은 시체를 찾아 돈을 챙기길 바랄 뿐이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후달리는 쪽이니까 시체를 갖다 바치고 악인이 돈만챙기고 함구하면 끝이라는 결론이다. 물론 그렇게 끝내버리면 재미없어서 안되겠지만, 굳이 쉬운 방법을 시도해보지도 않고 같은 경찰끼리 서로 죽이려드는것도 상당히 어색한 상황인것이다. 그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서 악인을 초 울트라 에너자이틱한 악인으로 만들고 주인공을 두드려패 화나게 만드는 것이다. 후반부에 주인공이 스릴넘치게 악인을 폭탄으로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쳐들어와서 문을 부수는 장면은 영화 <샤이닝>에서 잭 니콜슨의 명연기를 다시 보는 듯 했다. 이제는 이 영화에서 설정된 모든 갈등과 욕망은 사라진지 오래됐고 오로지 분노와 광기, 살해의지만 남게된 것이다. 그것도 같은 경찰관끼리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일로. 잔혹한 악인의 결말은 쓰러진 책장밑에서 어이없게 등장한 권총으로 끝이 나고 만다. 
대체로 이 영화는 평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이 영화에 대해 호평을 하는 대다수 사람들과 다른 쪽에 있는데, 사실 기대를 많이 했던 만큼 실망도 컸다는 건 인정한다. 아무런 기대없이, 혼자서 봤다면 내가 이렇게 분노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잘만든 영화도 아니고 그렇게 쓰레기인 영화도 아닌데 말이다. 이렇게 다 쓰고나니 마음이 후련해진다. 이제 영화가 생각이 잘 안나서 그럴 수도 있다. 아름다운 여자가 나오지도 않고 건들거리고 비슷한 욕을 찰지지도 않게 내뱉는 경찰들 때문일 수도 있다. 8,90년대 군대에나 있을법한 '~하지 말입니다' 말투를 어색하게 달고사는 경찰후임 때문일 수도 있고, 괜한 가족을 데려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그게 클 것 같다) 어쨌든 영화는 보기전에 너무 내맘대로 스토리를 그려나가서는 안된다는것,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나와 영화보는 눈은 다르다는것, 딱히 할 일이 없을때는 영화도 좋지만 그냥 그대로 쉬는것도 돈도 굳고 괜찮다는것 정도가 어제밤을 버티고 난 후의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그깟 영화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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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m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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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 포메이션보다는 개인역량으로 이긴다
취미삼아 축구를 한지 20년이 훌쩍 넘어 24년쯤 된 것 같다. 태어난지 10년도 안되어서 학교운동장을 뛰어다녔으니 내가 지금 밥먹고사는 디자인보다도 훨씬 오래되었고 실제로 먹는 밥보다는 덜 되었다. 그렇다고 제대로 축구를 한 것은 1달도 되지 않는다. 체계없는 말 그대로의 즐기는 축구를 24년동안 한거다. 좋다면 좋은거고 아쉽다면 아쉬운거다. 하고싶은말은 나름 오랫동안 축구를 하면서 느끼는것들. 역시나 사람들이 모여 어울리는 행위이기 때문에 때때로 다른 시각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것 하나가 포메이션과 관련된 전술/전략에 대한 갸우뚱이다. 전술과 전략의 차이점 역시 서칭을 해보아도 읽을때는 대충 알겠는데 돌아서면 까먹는 용어인데 이와 마찬가지로 아리송한 개념이 실제 축구현장에서의 배치(포메이션)의 공헌도이다. 축구를 조금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은 체계없이 축구하는 행위를 이른바 동네축구라고 폄하하고 근간없는 무식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442로 할지 352로 할지 4141로 할지에 대해서 자기가 알고있는 외국인 감독의 성향을 빠삭하게 학습해 참고하여 우리 조기축구팀에 적용하려 애쓴다. 
그런데 내가 근간이 없어서인지 실력이 없어서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강팀을 상대로 할 때는 그 어떤 포메이션이나 전략/전술을 가져와도 지고 만만한팀을 상대로 할 때는 대충해도 상대를 농락하며 큰 점수차로 이긴다. 그렇다. 한마디로 나는 될놈은 되고 안될놈은 뭘 해도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실제로 해보니 그런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축구를 좀 해본 사람은 안다. 상대팀이 될 친구들이 운동장에 도착해서 몇번 공을 튕기는 모습만 봐도 오늘의 스코어가 대충 그려진다. 그 친구들이 무슨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는지 결코 중요하지 않다. 그냥 1:1 싸움에서 쳐발리면 내가 포백을 서고 있는지 스리백을 서고있는지 여기가 늪바닥인지 물속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는다. Team Spirit은 개인의 사기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것. 결국 개인싸움에서 승리해야 팀싸움에서 승리한다는 말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축구동호회에서 이런 말을 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모두가 준전문가급인 요즘 시대에 이런 전술짤 시간에 개인훈련에 집중하자고 하면 무식하게 들릴 수 있으며 남 개인훈련을 내가 시키는것도 아닌데 그냥 경기전 준비를 게을리 생각하는 한심한 동네형으로 비칠뿐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오해의 여지가 있을까봐 말해두지만 나는 완전한 팀 포메이션의 해체 혹은 전략의 불필요성을 얘기하는것이 아니다. 방향전환을 할 때 시야확보가 원활하지 않는 급한 상황에서 이쯤에 A가 있겠다 싶어서 패스할 때 실제로 A가 그 곳에 있으면 플레이하기가 무척 원활해진다. 개인의 유기적인 조합은 전체경기에 숨을 불어넣어 생기를 돋게하며 리듬을 타게 해준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개인의 기량'에 기반하지 않는 단순한 조직타령인 것이다.
실은 최근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다. 원래는 이 얘기를 하고 싶어서 축구얘기를 시작했는데 자연스럽게 연결시킬려다보니 서두가 길어졌다. 사고 뒷수습으로 대통령 주도로 조직개혁안을 내놓았는데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방관하고 눈치만 보는 공무원은 자르겠다? 눈치를 잘보는데 어떻게 잘린단말인가. 이건 마치 패배한 축구감독이 '다음 시합엔 좀 더 유기적이고 창의적인 전략을 취하겠다' 고 인터뷰하는것과 같다. 창의적인 전략을 내세우든 효과적인 전술로 포장하든 그 토대위에 있는건 선수이다. 결국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전술이고 나발이고 크게 소용없는게 아닐지. 개혁대상은 사람으로 타겟팅되어야 한다. 사람을 개선시키는 일. 그건 시간이 오래걸리고 당장 개선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지루한 일이기 때문에 그래서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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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mlog · 11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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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한글폰트 제대로 쓰기 (6)
(5)쪽 까지만 적고 그만 적으려고 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있긴 하지만 나 역시 쥐뿔도 모르는축에 속하고 더이상 늘어놔봤자 내 무식을 광고하는 일 밖에 되지 않기때문이다. 적어도 이것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말이다.
http://www.woowahan.com/?page_id=3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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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형제들'이 '무료폰트'를 만들었으니 어서 '다운로드'받으라는 트윗? 페이스북?을 봤다. 벤처업계에서는 꽤나 유명한 우아한형제들은 익히 알고 있었고 그들이 세상에 내놓은 '배달의 민족'앱도 얼마전에 친구랑 얘기를 할 정도로 나도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무료폰트를 만들었다니. 방문해서 처음 받은 인상은 좋지 않았다. 빅터 파파넥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 책의 한 부분을 자체제작한 서체인 '한나체'로 적어놓았는데 들쑥날쑥 보기 불편했던게 그 이유였다. 세벌체도 아니고 완성형 서체를 만든다는것이 무지막지하게 힘든 일임을 알기에 이정도 퀄러티가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내가 불편했던 이유는 또 따로 있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글폰트 무료제작 후 배포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정말이지 그렇게라도 만들어서 상업적이용을 허락하는 곳들에게는 유저의 한 사람으로서 고마운 마음이 드는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곳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폰트=무료라는 공식을 정당화하게 되고 디자이너들의 즐겨찾기에 등록되어있는 사이트중에는 항상 '무료폰트 다운로드' 관련 사이트가 있기 마련이다. 사실 네이버에서 배포한 '나눔'서체도 그리 달갑게 보이진 않았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들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곳저곳에서 너무 많이 쓰이고 있기 때문) 
헌데 재밌는 것은, 이 '한나'체를 보고 있으니 '나눔'서체가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 (순전히 내 기준에서의 시각적 균형감과 아름다움) 비교가 되었다는점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못된소리를 하는 것 같지만 ('한나'체를 다운로드 받았으니까) 탐탁지 않았던 '나눔'체가 좋아보였던건 사실이다. 이상하다. 이런식으로 인정하게 되다니.. 그리고 어쨌든 생각해봐야하고 해보고 싶었던것은 왜, 무슨 이유로 이들이 완성형폰트를 만들었느냐 하는 점이었다. 네이버나 아모레퍼시픽같은 대기업도 아니면서, 유명하긴 하지만, 잘팔리긴 하지만 여전히 작은 몸집의 벤처기업에서, 내가 알기로는 벤처에서 국내최초, 혹은 세계 최초로 폰트를 왜 만들었냐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런 다소 조악한 형태의 폰트를..
예전에 깔았다가 지워버린 '배달의 민족'앱을 다시 다운로드 받았다. 앱 디자인 역시 개성이 강하고, 나 역시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쌈지'체 같은 서체로 전체 룩을 통일시킨것도 인상깊었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두터운 고딕체가 광고박스에 등장해있었다. '쌈지'체 비슷한 서체 (명조계열)와 어울려있으니 무척 잘 어울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랬다. 이래서 이렇게 만든것이리라. 그래도 대단했다. 비슷한 느낌의 서체를 구입할 수도 있었을텐데, 아니면 그때그때마다 그릴수도 있었을텐데.. 일단 노력과 생각과 실천에 박수를 보낸다. 첫 인상에서 쌓였던 오해가 조금은 풀렸다.
얼마전에 한글디자인하시는 이용제형이 말씀하셨던 '시각공해'라는 단어에 너무 집착한 것은 아닌가 싶다. 그들이 '한나'체로 적어놓은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진정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 형태적으로 최고로 아름다운 디자인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공해는 싫고, 이런저런.. 뭐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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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mlog · 11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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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한글폰트 제대로 쓰기 (5)
내가 이렇게라도 정리를 해 보는 이유는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 정말로 '제대로 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조금 더 '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제대로 된 의식. 그것이 행동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듯이. 디자인은 곧 '태도'라고 하지 않았던가. 창피하지만 이렇게라도 정리를 함으로써 내가 선택했던 방식에 대해서 나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거고 앞으로 하게 될 또 다른 선택에 있어서도 무언가 남길 수 있게 좀 더 신중히, 그리고 세련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나의 출발선은 한글폰트를 대하는 세상의 태도에 대한 불만이었다. 내게 단 한 사람이라도, 단 한 선배라도 적나라한 상용한글폰트의 사용권리에 대해서 설명을 잘 해줬어도 디자인을 시작한지 10년만에 알게되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럴만한 환경이 되지 않아서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지, 사람이 환경을 만드는지는 알수없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내가 고른, 한글폰트를 가지고 디자인작업을 하고 있다. 내가 고른 필기체 [백종열필]체가 가독성이 조금 더 좋았으면 좋겠다고 회사 동료가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서체를 찾아 헤메는데 역시 선택의 폭이 넓진 않다. 폰트회사나 폰트디자이너들이 더 많은 서체를 합당한 가격에 여러 OS를 지원하게끔 내놓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역시 여러가지 이유로 쉽지 않은 일 같다. 역시 한글폰트는 만들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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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mlog · 11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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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내미.. – View on P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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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mlog · 11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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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한글폰트 제대로 쓰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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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산돌고딕네오>를 구입하고 한글폰트 저작권법에 대한 지식을 조금 쌓아올리고 구입한 두번째 폰트는 <백종열필>이었다. 디자인을 접근하는 태도를 아주 단순화시켜 본다면 필요한 폰트는 두 가지 정도 될 것 같았다. 만약 내가 주로 퍼블리싱하는 매체가 책과 같은 인쇄물쪽이라면 '고딕체'와 '명조체'가 되겠지만 내가 주로 하는 업무는 현재 웹40%, 모바일앱30%, 인쇄물15%, 기타15%이므로 전체 70%가 모니터로 보이는 작업물로 좁혀진다. 그래서 난 '고딕체'의 파트너로 '명조체'보다는 호흡을 달리할 수 있는 '필기체'류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었다. 메인 흐름은 '고딕'으로 꽉 잡고 가면서 그렇게만 가면 너무 답답하고 숨막힐 것 같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손맛폰트로 숨통을 조금 틔우고 싶었던 것이다. 해외사례에서도 헬베티카와 같은 산세리프 폰트와 짝으로 필기느낌의 폰트를 같이 사용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솔직히 말해서 유료폰트를 굳이 구입하고 싶진 않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무료폰트가 그래도 적잖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무료폰트중에 내게 강력히 어필하는 필기체 대안으로는 <나눔브러시>, <나눔펜>이 있었다. 이 두가지는 서로에게 없는 점을 메꿔주고 있어서 번갈아가면서 사용하기 적당했다. 하지만 내게 비춰진 문제점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너도나도 쓰기 때문에 내겐 오히려 매력이 반감되었고 특히 <나눔브러시>는 흘려쓰는 정도가 조금 큰 편이라 가독성이 좋진 않아보였다. 하여 이보다 가독성은 좀 더 나으면서 너무 많이 쓰이지 않으면서 완성도가 있는 필기체를 찾다가 적정한 가격(165,000원)에 내 컴퓨터사양(mac OSX)에 맞는 <백종열필>체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졸업 후 첫 직장이었던 CF 프로덕션 업계에 있을 때 백종열감독을 지나가다 딱 한번 본 적이 있었고 새벽에 불켜진 사무실앞을 지나가곤 했었던 기억이 있다.
위 이미지는 현재 내가 작업할 때 쓰는 폰트 우선순위를 순서대로 적어본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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